매일성경 묵상
주는 토기장이 나는 진흙… 그럼 된 거지… [렘 18:1-12]
 – 2023년 08월 11일
– 2023년 08월 11일 –
토기장이와 진흙의 관계를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관계에 적용하여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설명한다. 특히 심판의 관점에서 선포하는데, 이스라엘은 토기장의 손에 놓인 진흙에 불과하다. 토기장이가 자기 생각에 따라 진흙을 다루듯이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을 그렇게 하신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의 결정에 복종할 뿐, 어떤 권리나 자기주장을 내세울 수 없다.
 
여호와의 절대 주권에 대한 선포는 이스라엘의 자기중심적인 구원 신학에 대한 하나님의 단호한 거절이다.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은 백성임은 분명하지만, 여호와의 선택이 그분의 무한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은혜의 선택을 거절하면 은혜가 거둬질 수밖에 없다.
 
 
 
1.토기장이의 비유(표적 행위_1~6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토기장의 집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말씀을 기다리도록 명령하신다고(2절) 물을 많이 사용하는 토기 공장은 물을 구하기 비교적 용이한 예루살렘 성 남쪽이나 남동쪽의 골짜기에 모여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cf. 렘 19:2). 그곳으로 내려간 예레미야는 녹로에서 일하는 토기장이를 비켜본다(3절). 의도한 대로 만들어지지 않자 마음에 드는 그릇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되풀이했다(4절).
 
토기장이는 자기의 눈에 드는 대로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었다. 진흙은 토기장이의 손에 있는 재료로 그의 생각에 따라 이런저런 그릇으로 만들어진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다(5절).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가 보고 있었던 모습을 신학적으로 해석해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새번역_6절) 토기장이가 진흙을 가지고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그릇을 만들듯이 여호와께서도 이스라엘에 똑같이 하실 수 있다. 특히 만들다가 잘못되면 토기장이가 진흙을 다시 이겨 다른 그릇을 만들듯이 여호와께서도 불순종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거나, 더 나아가 버리실 수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아니시다. 진흙이 토기장이를 위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도 다르지 않다. 여호와께서 선택하셨다는 것만으로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백성으로 남을 수 없다. 하나님 백성의 의무와 책임이 정체성을 증명한다. 아무리 귀한 베띠라도 썩어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면 버려질 수밖에 없다(렘 13:1-11).
 
 
 
2.여호와의 주권과 민족들(7~10절)
이스라엘의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시는 여호와는 마찬가지로 민족들의 심판과 구원을 결정하신다. 여호와께서는 당신의 결정에 따라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부수거나 멸하기도” 하시고(7절),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건설하고 심기도” 하신다(9절).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권은 이스라엘의 울타리에 갇혀 있지 않고 온 세상에 미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민족들의 하나님이시다. 이들이 섬기는 우상은 헛된 것이어서 그들의 운명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절대 주권자로 땅의 역사를 주관하시는 여호와만이 이들의 멸망과 구원을 결정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민족들을 향하여 “그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한 재앙을 거둔다.” (새번역_8절) 라고 말씀하신다. 또, “그 백성이 나의 말을 순종하지 않고, 내가 보기에 악한 일을 하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기로 약속한 복을 거둔다.’ (새번역_10절) 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회개에 대하여 긍정적이신 하나님은 민족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신다. 또한 이스라엘의 구원이 무조건적이지 않은 것처럼 민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이다. 민족들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이들에게 베풀고자 하신 복에 대해 마음을 바꾸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의지에 반응하여 자기 미래를 만들어갈 기회를 열어 주신다.
 
*여호와의 의지와 목소리에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따라 민족들의 구원과 심판이 결정되는 것 같이 비치는 가르침은 보편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의 반응과 태도 여하에 따라 미래적인 구원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시각은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본문의 맥락은 오직 여호와께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가 구원과 심판을 판단하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절대 주권자이신 여호와께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악을 행하는 이방 민족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3.구원 가능성의 상실(11~12절)
본문의 문맥은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특별한 특권이나 대우를 받지 않는다. 민족들의 구원과 심판에 관한 가르침이 유다와 예루살렘에 적용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민족들이나 이방인 가운데 하나로 취급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달리 취급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지, 종교적 전통은 이차적인 문제이다. 하지만 여호와의 회개 요청은 이스라엘에 의해 거절될 것임을 미리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너는 이제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전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너희에게 내릴 재앙을 마련하고 있으며, 너희를 칠 계획도 세우고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어서, 각기 자신의 사악한 길에서 돌이키고, 너희의 행동과 행실을 고쳐라.’”(새번역_11절) 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대답을 알려 주신다. “네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이르기를 ‘그럴 필요 없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행동하겠다.’ 할 것이다.” (새번역_12절)
 
하나님은 토기장이가 그릇을 자기 생각대로 만들듯, 이와 같은 백성들에게 내릴 재앙을 만드신다. 그런데도 이 심판은 불순종에 대한 징벌이기에 이들이 악에서 돌이켜 행실을 바르게 하면 재앙을 거두실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마음으로 간절하게 요청하시는 회개를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은 완악하게 거절한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단호하게 무시하고 오직 자기 계획을 따른다.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의 자기 파멸적인 행태가 결국 구원의 가능성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회개하고 재앙을 피하라는 경고를 거절한 이스라엘에게 멸망 이외에 다른 길은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에 심판을 선포하신 것이 아니었다. 구원에서 심판으로 변덕을 부리신 것도 아니다. “여러 번 시도해도 그릇으로 잘 만들어지지 않는 진흙을 토기장이가 내버리는 것처럼, 여호와께서 심판 의지를 알려 주고 회개를 요청하셨지만, 이스라엘이 끝까지 돌아오기를 거절하고 제 길로 갔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은 어떤 경우에도 멸망의 원인을 여호와에게서 찾거나 그 책임을 여호와께 돌릴 수 없다.
 
 
 
나는?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주권을 전적으로 신뢰한다. “‘이스라엘 백성아, 내가 이 토기장이와 같이 너희를 다룰 수가 없겠느냐? 나 주의 말이다. 이스라엘 백성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안에 있듯이, 너희도 내 손 안에 있다.” (새번역_6절)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에 대한 심판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위임을 밝힌다.
 
-이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은 “죄악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거두겠다”라고 하신 말씀을 빼놓지 않는다. “그 민족이 내가 경고한 죄악에서 돌이키기만 하면 나는 그들에게 내리려고 생각한 재앙을 거둔다.” (새번역_8절) 그런데 지금 불순종하고 사악한 일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약속한 복을 거두겠다”라고도 하신다(10절).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기회가 주어졌지만, 이스라엘은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아가겠다”라고 고집을 피웠다(12절).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를 거부하는 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심판 이후에나 가능하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오래도록 빚으시고 마침내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 세워주셨다. 이 은혜를 기억하며 이스라엘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에는 심판이라는 기회라도 주어졌지만, 우리는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오시면 최후의 심판을 행하시기에 두 번의 기회는 없다. 지금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우리가 살아내는 길과 행위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순종하며 채워야 한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과 부활과 승천, 성령을 보내 주심의 은혜로 열어진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삶을 교리적으로만 이해하면 곤란하다. 왜곡된 구원주의에 함몰되어 일상의 삶에서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고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운 삶을 살아내지 못하면 이스라엘을 징계하듯 우리도 버려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은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우리에게도 있는 “자기중심적인 구원 신학”에 대한 분명한 하나님의 거절을 표명하시는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지만, 이스라엘에 종속된 여호와가 아니시다. 자기 뜻을 따라 이스라엘을 선택하셨지만, 이 선택에 대하여 무한 책임(구속)을 받지 않으신다. 자기 뜻을 거역하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자로 등장하여 멸망을 선고하실 수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자기중심적으로 이해하며 불순종을 떠나지 않는 이스라엘을 당연히 징계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이스라엘에만 그러신가? 아니다. 온 세상 열방의 민족들에게도 마찬가지이시다. 모든 열방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따라 살아가기를 원하시지만, 만일 여호와를 부인하고 각기 제 길로 행하며 우상을 섬기는 악한 행위로 살아간다면 재앙을 내리신다. 하지만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면 재앙을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구원과 심판은 종교적 전통 곧 성전이나 법궤, 율법, 희생 제사, 할례, 다윗 왕조의 혈연 공동체로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불순종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다. 온 열방들도 마찬가지이다.
 
*구원과 심판에 있어 민족의 경계가 허물어진다. 악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구원받는다. 자기 고집, 자기 중심성을 버리지 못하면 심판의 대상이 될 뿐이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만연해 있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에 젖어 일상의 삶에서 빛과 소금의 삶을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준엄한 경고의 말씀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불변하다. 그런데 그 사랑 때문에 때로 하나님은 단호하게 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 답게 살지 않는(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다) 완고하고 완악한 이들에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돌이킬 기회의 심판을 준비하신다.
 
*심판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가도 여전히 그 백성에게 돌이킬 기회를 주신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경고하시고 경고하신다. 그냥 심판하셔도 되지만 이렇게 하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결국 심판의 이유도 그 백성이 궁극적인 멸망을 당하지 않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이다.
 
*뜻을 돌이키시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람을 사랑하시고 자기 백성 삼으신 엇나간 그들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하심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삶을 살면서 때론 심판 같은 고난이 삶에 닥치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버리지 말아야 할 이유이다.
 
*나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 때문에 심판과 같은 고난이 찾아온 것이다.
 
 
*나의 유년, 청소년기는 고난밖에 없었다. 그 시기를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사랑의 하나님이었다. 이후 나의 삶 속에 찾아온 고난은 그저 손님일 뿐이었다. 그래서 맞이하고 함께 하다가 잘 보내 주면 되었다.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 계셨기에 그 고난이 나를 쓰러뜨리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꼭 붙들어 주셨으니까….
 
*나에게 맡겨주신 더온누리 목회도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신뢰하기에 더 겸손하게, 더 말씀을 의지하고, 더 사랑하며, 더 감사하며 누리리라. 사랑의 하나님이 함께하시기에 간혹 고통스러운 일을 맞이해도 손님처럼 잘 맞이하고 잘 보내 주면 될 일이다.
 
*나는 그저 토기장이 손에 들린 진흙과 같으니 나의 토기장이 되신 하나님께서 나를 잘 빚으시도록 내어드리면 되는 것이지…, 내 고집, 나의 자기중심성을 매일 말씀 앞에 세우고 털어내고, 깎아내고. 그러면 되는 것이지….
 
 
 
*주님, 내 고집, 내 방법을 완고하게 주장하지 않겠습니다. 나를 빚어주신 주님의 인도하시는 손길을 끝까지 신뢰하겠습니다.
*주님, 이런저런 고민이 많아지고, 여기저기 살펴야 할 일들도 많아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늘 먼저 살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빚으시는 대로 순종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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