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바스훌, 두려움의 대명사 [렘 19:14-20:6]
 – 2023년 08월 14일
– 2023년 08월 14일 –
렘 19:14-20:6 바스훌, 두려움의 대명사
 
힌놈의 골짜기에서 선포한 예루살렘의 멸망을 모든 백성이 듣도록 성전 뜰에서 동일하게 선포한다. 이에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인 바스홀이 그를 체포하여 모욕적인 방식으로 잡아 가둔다. 예루살렘 성전의 권위를 대표하는 바스홀에게 예레미야는 예언자 행세를 하며 소란을 피우는 자에 불과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신 곳이므로 이스라엘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는다고 확신했다. 예레미야의 성전 파괴와 예루살렘 멸망의 메시지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할 수도 있는 생각할 수도 없는 황당한 일이었다.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거짓 선지자일 뿐이었다.
 
 
 
1. 성전에서 심판을 선포하다(14-15절)
힌놈의 골짜기 도벳에서 일부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옹기를 깨트렸던 예레미야는 다시 성으로 돌아와 “여호와의 집 뜰에 서서” 모든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다(14절). 도벳에서 선포했던 심판 메시지와 같았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라 내가 이곳에 재앙을 내릴 것이라” 반복하며 선포한다.
 
도벳에서는 소수의 장로들과 고위 제사장들만 표적 행위와 심판 선언을 들었다. 하지만 예루살렘 성전에서는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의 심판 선언을 듣는다.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숭배와 폭력을 행사한 백성들이 들어야 할 여호와의 말씀이었다.
 
심판의 메시지를 듣는 청자의 범위가 확대되었듯 심판의 범위도 점차 확대된다. “이곳” 또는 “이 성읍”에서 “이 성읍과 그 모든 촌락”으로 확대되었다. 재앙이 예루살렘을 넘어 그 주변 마을들에도 임한다. 유다 지역 어느 곳이든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렇게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백성들의 죄악은 의지적이고 노골적이었다. 백성들은 여호와를 전혀 무시하며 완악하게 자기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다.
 
 
 
2.예레미야를 잡아 가두는 바스훌(20장 1~2절)
예레미야가 성전 뜰에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선포하자 “임멜의 아들 바스훌”이 그를 때리고 체포하여 잡아 가둔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의 총감독으로 성전과 그 주변 질서를 유지하고 관리하는 일의 총책임을 맡았다. 성전의 최고위층에 속했다.
 
성전은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기에 치안 유지가 중요했다. 그중에서도 여호와의 이름을 빙자하여 소란을 피우는 자들을 체포하여 벌을 주는 것은 총감독의 중요한 임무였다. 예레미야의 행동은 바스훌에게 “예언자 행세를 하는 미친놈”에 불과했다. 그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예레미야에게 모욕적인 징벌을 가한다. “예언자 예레미야를 때리고, 그에게 차꼬를 채워서 주님의 성전 위쪽 ‘베냐민 대문’ 근처에다가 가두었다.” (새번역_20:2)
 
 
 
3.바스훌이 아니라 마골밋사빕, 그의 최후(3~6절)
예언자를 사칭하는 자로 체포하여 체벌과 모욕을 가한 바스훌에게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권위로 반격한다. 아모스가 추방을 명하는 제사장 아마샤에게 주저함이 없이 멸망을 선언한 것처럼(암 7:16-17) 다음 날 풀려난 예레미야도 주저하지 않고 바스홀에게 단호하게 특별한 심판 선언을 한다. “. 주님께서 이제는 당신의 이름을 바스홀이라 부르지 않고, 마골밋사빕이라고 부르실 것이오.” (새번역_3절) 마골밋사빕의 뜻은 ‘사방으로 두려움’ 또는 ‘사면초가’이다. 예레미야는 6:22-26에서 땅끝 북방에서 내려오는 한 민족에 의해 시온이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을 예언하였다. 특히 25절에서 “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다니지 말라 원수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라”라고 했다. 시온에 선포된 “사방의 두려움”이 바스훌에게 개인적으로 적용되었다.
 
예레미야는 마골밋사빕이 상징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바스훌이 그의 친구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자신도 두려움을 경험하게 된다. “당신을 두고, 주님께서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소. ‘내가 너를 너와 네 모든 친구에게 두려움이 되게 할 것이니, 너는 네 친구들이 원수의 칼에 찔려 쓰러지는 것을 네 눈으로 직접 볼 것이다. 또 내가 유다 백성을 모두 바빌로니아 왕의 손에 넘겨주면, 그 왕은 백성을 더러는 바빌로니아로 사로잡아 가고, 더러는 칼로 죽일 것이다.” (새번역_4절)
 
그럴 뿐만 아니라 모든 재물과 재산을 빼앗긴다(5절). 이 비참한 상황 속에서 바스홀에게 닥칠 재앙을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그리고 바스훌아, 너와 네 집에 사는 모든 사람은 포로가 되어서, 바빌로니아로 끌려갈 것이니, 너는 네 거짓 예언을 들은 네 모든 친구와 함께 거기에서 죽어, 그곳에 묻힐 것이다.” (새번역_6절)
 
 
 
나는?
-가장 안전한 장소의 상징인 성전이 무너진다. 자연스레 그 성전 덕분에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유다의 성읍들에도 파국이 찾아올 것이다. 하나님이 스스로 자기 영광을 거두시겠다는 뜻이며 이제 유다는 자신들이 선택한 결과를 보게 될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이다. 교회는 현세대,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희망을 줄 유일한 곳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면 바로 그 교회에서부터 임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심판 원인을 교회에 물으실 것이다.
 
 
-바스홀은 성전 질서 유지를 위해 예레미야를 감금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한테서 나온 말씀을 가둘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은 예레미야를 베냐민의 문 위층의 목에 씌우는 나무 고랑을 채워 가두었어도 철회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가 기민하게 분별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경고 신호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로 “평안이다! 평안이다!” 외쳐대는 거짓 선지자들이다. 그들의 도를 넘어선 거짓 외침이 진정 들어야 할 진리의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가 무엇일까? 어떤 소리가 어떤 소리를 침묵시키고 있을까? 무겁게 되돌아보아야 할 문제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결박하는 것은 하나님을 결박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채 겁도 없이 선지자를 결박한 바스훌에게 “사방에 두려움이 있다”라는 뜻의 “마골밋사빕”이란 새 이름이 주어진다.
 
-아브라함은 복의 대명사였다. 그런데 바스홀은 이제부터 “두려움”의 대명사가 될 것이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거짓 예언을 한 바스훌과 그 예언을 참 예언보다 더 즐긴 그의 집 사람들과 친구들까지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바벨론으로 붙잡혀 갈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죽어 묻히게 될 것이다.
 
-난공불락의 성인 예루살렘의 성문이 열려 그들이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소유(재물)와 왕들의 귀한 보물들이 다 탈취당하여 바벨론으로 옮겨질 것이다. 선지자는 바스훌에게 당했던 수모를 역전시켜 주실 날을 볼 것이다.
 
 
 
*주님, 내가 가장 안전하다고 여기는 곳이라도 가장 먼저 무너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주님, 바스훌의 교만을 꺾으시는 주님의 모습을 기억하겠습니다. 거짓말에 심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알고, 늘 진리의 편에 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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