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심판을 지나 구원에 이르는 계획 [렘 23:1-8]
 – 2023년 08월 20일
– 2023년 08월 20일 –

예레미야 23장은 미래의 왕에 대한 예언이다. 1~2절은 여호와의 심판을, 3~8절은 회복을 서술한다. 이스라엘의 목자는 여호와의 양 떼를 흩어지게 할 뿐 아니라, 멸하는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목자를 심판한 이후 새로운 약속을 하신다. 새로운 목자를 일으켜 새로운 공동체를 이끌 것이며 “한 의로운 가지”가 나서 정의와 공의를 실천할 것이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새로운 공동체를 형성하도록 하며, 새 출애굽 시킴으로써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것이다.

 

 

 

1.내 목장의 양 떼, 다시는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1~4절)

여호와께서는 “내 목장의 양 떼”를 멸하고 흩어지게 하는 목자를 심판하신다. 그들은 “내 양 떼(하나님의 양 떼)”를 흩으며 몰아내고 돌보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를 “악행”이라고 하셨다(2절). 그러나 “흩어졌던” 모든 지방에서 다시 우리로 돌아오게 하신다(3절). 그리고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세워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아니하리라” (4절) 라고 약속하신다.

 

악한 목자들의 악행으로 인해 흩어진 양 떼를 여호와께서 다시 모아 우리에 모으고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들을 통해 “생육이 번성하고,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버리지 않으시겠다”라고 하셨다.

 

*목자는 통상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을 빗댄 표현이다. 지도자의 올바름이 나라를 건강하게 한다. 이런 면에서 지금 우리나라는 매우 우려스럽다. 정치뿐 아니라 종교 지도자들의 악행이 끊이질 않는다.

 

*지도자가 국가와 국민을 돌보지 않는다. 국가적인 비극과 망신의 사건들 앞에 책임지는 지도자들이 없다. 국민의 수준과 한참 뒤떨어진 눈가림식 행정과 정치력이 항상 밑천을 드러낸다. 도저히 용납해서는 안 될 범죄 이력의 지도자들을 세우는데 국민의 평가는 안중에도 없다.

 

*이런 지도자들에게 맡겨진 정치와 외교, 경제가 얼마나 바람직할까? 밑천이 드러나는 그것은 시간문제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권력을 자기 탐욕을 채우기 위해 악용하고, 평등해야 할 법 적용은 이미 치우쳐도 한참 치우쳐져 있다. 겉으로는 공정과 상식을 사탕발림하듯 말하지만, 실제로는 부정과 불법, 편향이 판을 치는 듯하다.

 

*두려운 것은 이에 따라 하나님의 양 떼들이 흩어진다. 이미 마음(여론)은 갈기갈기 찢어졌고, 소통은 꽉 막혀있다. 자기 진영의 논리에 함몰되어 무턱대고 서로를 비난만 하고 있다.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지 않은 악한 목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보응하신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말씀하신 대로 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신다. 악한 목자를 반드시 보응(심판)을 받는다.

 

 

 

2.다시는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의로운 가지를 일으키겠다(5~8절).

다시 모은 양 떼를 위해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다. 그가 왕이 되어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그런데 본문의 약속은 22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의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왕위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라(22:30)”라고 선포한 말씀과 충돌된다. 이사야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사 11:1)”라고 말했다.

 

“의로운 가지”는 “의로운 싹”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가지’로 번역된 ‘체마흐’는 흙을 밀치고 나온 새순을 가리키고, 이사야 11:1의 경우처럼 줄기가 잘려 그루터기만 남은 나무처럼 멸망한 다윗 왕조의 회복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핵심은 여호와께서 새로운 싹을 돋아나게 하셔서 다윗 왕조를 이어가게 하실 것이다.

 

그리고 이 “의로운 가지(싹)”는 이전의 악한 목자, 왕들과 달리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는 의로운 왕이다. 그의 통치 아래 유다는 구원받고 이스라엘은 안전하게 된다(6절).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는 왕을 사람들은 “여호와(께서) 우리의 공의(이시다)”로 부를 것이다(6절). 의로운 왕의 “정의와 공의”의 통치를 통해 공의를 원하시는 여호와의 의지가 구현될 것이다. 사람들은 그의 통치 아래에서 여호와의 공의를 경험한다.

 

사람들이 붙여준 “여호와 우리의 공의(여호와 치드케누)”는 유다의 마지막 왕의 이름 시드기야(치드키야후_나의 공의의 여호와)를 상기시킨다. 유다 말기의 세 왕 여호아하스와 여호야김, 여호야긴에 대한 심판을 다룬 22:1-23:8은 시드기야를 다른(21:1-10) 말씀으로 시작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일으킬 구원 시대의 왕 “여호와 치드케누”에 대한 약속으로 마무리된다.

 

*유다의 멸망과 회복이 하나님의 공의를 실천했는지 또는 무시했는지에 기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와 백성들을 위해 왕의 자리에 앉힌 왕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책무인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3.새로운 출애굽, 출바벨론(7~8절)

3절의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과 8절의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는 같은 히브리어를 사용한다. 사방으로 흩어졌던 자들의 귀향은 두 번째 출애굽으로 선포된다.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한 출애굽 사건은 미래에 있을 해방 사건의 모형이 된다.

 

가나안에서 이스라엘을 내쫓으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가나안으로 불러들이신다. 이 새로운 출애굽은 과거 출애굽의 반복이 아니라 그 이상이다. 회복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더는 출애굽의 하나님으로 맹세하지 않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 집의 자손이 쫓겨가서 살던 북녘땅과 그 밖의 모든 나라에서 그들을 이끌어 내신 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이 고향 땅에서 살 것이다.” (새번역_8절)

 

새로운 출애굽은 그 범위만으로도 첫 번째 출애굽을 압도한다. 애굽에 한정된 구원역사가 바벨론을 포함한 모든 나라에서 구원역사가 일어날 것으로 확장된다. 더구나 애굽으로만 피신하여 민족을 이룬 후 나온 첫 번째 출애굽과 비교하여 여호와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 흩어져 유배살이하는 이스라엘을 다시 가나안으로 데리고 올라오게 하신다.

 

신학적으로 해석하면 바벨론에 의한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과 포로유배는 출애굽 사건으로 시작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파탄에 빠졌음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출애굽 사건에 상응하는 새로운 구원의 역사가 필요한 것이다. 출애굽을 통해 이스라엘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했듯이 앞으로 있을 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이 이스라엘의 새로운 출발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미래 역사는 출 바벨론으로부터 시작된다.

 

 

 

나는?

-하나님으로부터 지도력을 위임받은 지도자들의 책임과 의무는 분명하다. 하나님의 통치원리를 따라 통치하는 것이다. “정의와 공의”로 통치하는 것이다. 목자들이 보여주어야 할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양 떼를 돌보듯 백성을 모으고, 돌보며, 백성들이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도록 통치하는 것이다. 악한 목자들이 심판받을 수 없는 악한 모습을 따라가지 않으면 된다(1-2, 4절).

 

-나는 지도자로서 멸하고 흩어지게 하는 악한 지도자인가? 모으고 돌보며, 보호하는 지도자인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하나님께서 보내시고 모아주신 양 무리를 돌보는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하나님의 양 떼를 돌보는 최선의 길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전하고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양 떼를 하나님께서 원하는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인도하는 지도자에게 책임을 엄히 물으신다. 그들은 양 떼를 흩고, 몰아내고, 돌보지 않았다. 그들은 거짓 평안을 외쳤고, 거짓 안전을 주장했으며, 거짓 신을 신뢰하여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백성을 오도하였다.

 

 

*심판이 마쳐지면 다윗 계열의 한 의로운(적법한) 가지를 일으켜 언약의 조건대로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게 할 것이다. 그는 힘으로 통치하지 않고 지혜로 통치할 것이고 유다를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평안케 할 것이며, 온 세상을 다스릴 것이다. 인간은 소망을 절망으로 바꾸었지만, 하나님은 흑암을 빛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셨다. 내 안전과 내 생명은 나의 역량에 달린 것이 아니라 내 왕이 누구인지에 달렸다.

 

 

 

*주님, 여호와 우리의 공의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주님, 심판이 끝이 아니라 완전한 구원을 향한 큰 그림임을 깨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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