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무화과 두 광주리 [렘 24:1-10]
 – 2023년 08월 23일
– 2023년 08월 23일 –

이스라엘을 “나무”로 비유하는 것은 구약에서 어렵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예레미야도 여호와의 말씀을 “불”로, 이스라엘을 “나무”로 비유하며 여호와의 심판을 선포했다(5:14; 23:29). 본문은 무화과에 비유하며 심판을 선언한다. 무화과를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나누어 서술하며 이스라엘이 이렇게 나뉠 것임을 암시한다. 과연 바벨론 땅으로 끌려간 포로를 “좋은 무화과”로, 가나안 땅에 남아 있는 자를 “나쁜 무화과”로 서술한다. 여기에 담긴 의미가 무엇일까?

 

*지금까지 예레미야의 고발과 심판은 유다를 한 단위로 전제하며 선언했었다. 그러나 여기서부터는 유다를 두 집단으로 구분한다. 곧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자들과 시드기야와 함께 가나안에 남은 자들로 구분한다. 포로로 잡혀간 백성은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들로 구원받고, 가나안에 남은 백성은 하나님 백성의 특권을 상실하고 멸망의 심판에 넘겨진다.

 

 

 

  1. 누가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들인가?

본문의 배경은 바벨론의 침략과 그에 따른 유배로 주전 597년과 587년 사이에 발생한 예루살렘의 정치적 사회적 긴장과 분열을 배경으로 한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은 주전 598년 11~12월쯤 시리아와 가나안 지역으로 원정에 나선다. 다음 해 봄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공격한다. 이때 유다는 여호야긴이 막 왕위에 올라 통치하고 있었다. 여호야긴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게 저항을 포기하고 항복하므로 유다와 예루살렘은 최악의 상황은 면한다. 항복한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고 그의 삼촌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왕위에 앉힌다.

 

바벨론이 여호야긴을 포함, 삼천이십삼 명을 사로잡아 갔다고 기록했고(렘 52:28), 열왕기에 의하면 정치 사회 지배계층에 속한 자들뿐 아니라 기술자들이 포함되어 적어도 만 명 이상을 끌고 갔다고 기록한다(왕하 24:14-16). 기록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예루살렘 지배계층의 상당한 변화가 일어났다. 이와 관련하여 에스겔은 주전 597년 여호와긴 왕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간 자들과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 사이에 계속되는 긴장과 반목이 있었음을 분명하게 증언한다. 특히 에스겔은 그의 소명 시기를 밝히면서 “여호야긴이 사로잡힌 지 오년 그달 초닷새” (겔 1:2)라고 언급함으로써 포로기 원년을 시드기야의 연대를 거절하고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해를 기준으로 잡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여호야긴과 함께 끌려온 포로민들이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시드기야를 유다의 적법한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렇다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시드기야와 백성들이 잡혀간 포로민들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았다. 이들은 유배민들에게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모두 박탈했고, 여호와의 공동체에서 제외해 버렸다. 남아 있는 자들은 잡혀간 자들을 하나님 백성 공동체와 아브라함에게 약속으로 주신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자들로 정죄하였다(CF. 겔 11:15; 33:24).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이런 조치들은 정당한 것이었다. 유배가 하나님의 징벌이라는 시각은 유배를 면하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징벌에서 벗어난 자들이었고, 곧 하나님의 보호로 바벨론의 폭력에서 살아남은 자들이다. 또, 무엇보다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와 달리 제사를 여전히 드릴 수 있었다. 당시 시각에 따르면 유배민은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조상들의 전통과 신학으로부터도 유배당한 자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전혀 달랐다. 모든 관점에서 불리하기만 한 바벨론 포로민이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로 인정받는다. 이를 예레미야와 에스겔을 통해 알려주시면서 유배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을 깨우쳐 주신다. 유배는 단순한 징벌의 수준이 아니라 멸망 이후를 위한 준비였다. 유다의 완악한 불순종이 멸망을 초래했지만, 그것이 최종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멸망 심판은 새로운 회복으로 나아가는 관문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바벨론 유배민은 한편으로 보면 징벌받아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자들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와께서 유다 멸망 이후를 내다보시고 따로 옮겨 놓은 자들이었다. 반면, 유배를 모면하고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은 더 큰 심판을 위해 남겨진 자들이었다. 그리고 바벨론 유배민이 남은 자가 되면서 구원사의 중심도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유배의 땅 바벨론으로 자연스레 옮겨진다.

 

 

 

  1. 두 무화과 광주(1~3절)

주전 597년 1차 바벨론 유배 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을 보여주신다. 바벨론의 첫 번째 침략과 유배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치명적이었다. 느부갓네살은 항복한 여호야긴을 폐위하고 그의 삼촌 맛다니야를 시드기야로 개명하여 왕위에 앉힌다. 폐위된 여호야긴과 그의 가족, 유다의 지배계층과 용사들 그리고 장인과 대장장이를 포함한 기능공들을 바벨론으로 끌고 갔다.

 

이에 따라 유다와 예루살렘의 권력 지형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기존의 정치, 경제, 사회의 기득권 세력이 일순간 대거 사라지고, 주변부에 속했던 인물들이 권력의 중심부로 들어온 것이다. 또한 지금까지 하나님 백성은 누구나 가나안 땅 안에 살았지만, 만 명 이상의 유배민들에 의해 바벨론에 유다 공동체가 세워졌다. 그러나 이 두 공동체는 서로 우호적이지 못했다. 특히나 새롭게 주류 계급에 편입된 자들은 유배민들에게 적대적이었다. 이런 긴장과 혼돈이 지배하는 시기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이상을 보여주시고 백성의 미래에 관한 계획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보았다.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무화과처럼 “극히 좋은 무화과”가, 다른 광주리에는 너무 나빠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담겨 있었다. 포도나무와 더불어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표상이다. 무화과는 보통 8월 말부터 먹기 좋게 익는데, “처음 익은” 무화과는 5월 말에 얼린 열매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물으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라는 여호와의 질문에 예레미야가 대답했다.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였다. “무화과입니다. 좋은 무화과는 아주 좋고, 나쁜 무화과는 아주 나빠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새번역_3절)

 

 

 

  1. 여호와의 해석(4-10절)

먼저 “좋은 무화과”를 해석하신다(5~7절). 여호와의 징계로 여호야긴과 함께 주전 597년 바벨론으로 유배당한 자들이 “좋은 무화과”이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미래를 약속하신다. 이들은 징계받아 갈대아 땅으로 쫓겨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호와의 돌봄은 받는 남은 자들이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는다. 다만 여호와께서 유배지에서 돌보시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데려오실 뿐만 아니라 이들에게 하나님을 알고 온전히 따를 수 있는 마음도 주시고, 파기 되었던 언약 관계도 회복시켜주신다(cf. 31:33-34; 겔 36:26-28).

 

반면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들,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 애굽으로 피난한 자들은 너무 나빠 먹을 수 없는 무화과로 여호와의 심판에 넘겨진다(8-10절). 여호와께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이들을 완전히 멸망시키신다. 유배지도 이들에게 피난처가 되지 못한다. 이들은 쫓겨난 곳에서 수치와 속담 거리와 비웃음과 저주의 대상이 된다(cf. 25:18; 26:6; 29:18, 22).

 

 

 

나는?

-두 광주리 환상이 주는 위로가 있다.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고 절대 안전할 거라고 맹신하였던 예루살렘은 무너지고 성전은 훼손되었다. 왕과 백성은 처절하게 잡혀갔다. 그런 상황에서 두 무화과 광주리 환상은 바벨론에 잡혀간 포로들에게 위로가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자기 꿈을 통해 심판을 부정하고 거짓 위안을 해주었지만,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환상을 주셔서 혹독한 심판 후에 찾아올 구원을 확인해 주신 것이다.

 

-심판은 가혹하나, 반드시 구원의 희망은 살아있다.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간 이들이 “좋은 무화과”라고 하신다. 바벨론의 칼을 피하여 예루살렘에 살아남은 자들이 구원받은 자이도 좋은 무화과일 것이라는 착각을 바로잡아 주신다. 거듭 경고한 대로 죄에 대한 징계를 마땅한 것으로 여기고 순순히 받는 이들을 돌보아 잘되게 하실 것이다. 진정으로 회개한 이들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세우고 심으실 것이다.

 

-단지 본토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목표가 아니다. 여호와를 알고 전심으로 그분께 돌아와 새 언약의 계명에 사랑으로 충성하는 백성을 창조하시는 데 목적이 있다. 심판은 은혜와 긍휼을 통한 새 창조의 과정이다.

 

-거짓 선지자의 말에 안심하며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예레미야의 말을 거절했던 이들이, 비록 포로 됨을 피하여 예루살렘에 남았거나 애굽으로 도망하여 살아남았을지라도 하나님은 끝까지 추격하여 치욕을 당하고 칼과 기근과 염병을 보내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악을 행하면서도, 회개할 필요를 모르면서 잘 사는 이들을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심판은 반드시 실행된다.

 

 

 

*주님, 좋은 무화과로 선택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한 자리에 서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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