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이 세우셨다! [왕상 1:38-53]
 – 2023년 09월 04일
– 2023년 09월 04일 –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식에 다윗은 제사장 사독과 나단 선지자, 호위대장 브나야를 부르고 그 자리에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라고 명령했다. 솔로몬은 제사장 사독에게 기름부음을 받은 정식 왕으로 세워진다. 세력을 모으는 잔치를 하고 있던 아도니야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 소식을 듣고 순식간에 흩어진다. 아도니야는 성소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고 솔로몬에게 목숨을 구걸하는 처지가 된다.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제단 뿔을 잡고 자신을 죽이지 않겠다는 맹세를 하라고 한다. 그가 성소로 달려가 제단 뿔을 잡았다는 것은 성소가 일종의 도피성 역할을 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잡고 자신이 솔로몬이 왕이 될 줄 알면서도 반역한 것은 아니라는 변명을 하며 목숨을 구걸하기 위해 달려간 것이다.
    
솔로몬의 즉위식으로 인한 환호 소리는 애도이야 와 측근들이 잔치를 벌이고 있는 에느로겔까지 전달되었다고 기록한다(40~41절). 백성이 즉위식이 열린 기혼 샘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고 또 성안에서 환호하고 있었기에, 기혼 샘에서 남쪽 약 600M, 예루살렘 최남단 성벽에서 남쪽 약 230M에 위치한 에느로겔에서도 이 요란한 소리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다. 또한 지형상 에느로겔이 기혼 샘보다 훨씬 낮은 지형이었기 때문에 윗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 길이 없었지만, 소리는 잘 전달되는 구조였다.
    
    
하나님께서는 혈통으로나 장자 계승 원칙으로나 규합된 세력으로 보거나 외적으로 더 강력한 아도니야보다 다윗의 맹세(하나님 앞에서 약속)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삼는다. 이와같은 모습은 바벨론 포로 상태에서 열왕기를 읽는 1차 독자들에게 큰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바벨론의 지배 아래서 과연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왕위를 영원히 지속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것은 절망이었다. 하지만 열왕기의 솔로몬 왕 즉위 이야기는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확인할 수 있는 좋은 증거였다. 그들에게 약속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진정한 왕 되신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할 수 있도록 했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하나님 백성은 약속의 말씀대로 이루시는 역사의 증거만으로도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나에게 직접적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더라도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을 듣고 보게 되면 위기의 상황에서, 암울함에 함몰되어가는 비탄함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것이다.
    
    
*솔로몬이 왕위에 등극하자 축하하는 소리로 땅이 갈라질 듯했다(40절). 이 소리에 아도니야를 따르던 무리는 뿔뿔이 흩어진다(41, 49절). 스스로 자기를 높여 왕이 되고자 했고 이에 동참하던 무리의 흥겨움이 놀람과 두려움으로 돌변했다. 왕이 될듯한 아도니야를 위해 간까지 빼줄 것 같던 신하들은 자기 살길을 찾아 잠적한다. 나의 삶에는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잔치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말씀의 약속을 따라 걸어가는 걸음이어야 할 것이다.
    
    
*다윗 왕의 신하들이 브나야처럼 솔로몬의 왕위를 하나님께서 번성케 하시기를 구한다(47~48절). 다윗 역시 “몸을 굽혀” 새 왕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한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우셨다고 믿은 것이다.
    
*가장 위기의 순간, 격변하는 전환기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인정할 때 그 무엇보다 더 찬양하고 감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하셨다”라는 이 고백이 어떤 상황에서도 찬양과 감사를 끌어낸다!
    
    
*제단 뿔을 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초라한 아도니야와 바지를 베푸는 솔로몬의 모습은(49~53절) 1장 초반 쇠약한 다윗과 의기양양하여 스스로 높인 아도니야의 모습과 극적으로 대조가 된다. 하나님 없이 스스로 자기를 높이며 세상을 호령하던 아도니야의 인생은 이렇게 초라하게 역전당하고 만다.
    
*삶을 늘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함을 절감한다. 스스로 의기양양하게 세상을 호령할 수 있을 때 오히려 더욱 겸손해야 한다. 세상에서의 힘은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것을 안다면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내 삶이 그의 능력의 통로가 될 것이다.
    
    
    
나는?
*누구를 왕으로 삼을 것인가? 아도니야는 스스로 마련한 잔치에서 일부 동조자들만의 왕으로 군림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정한 솔로몬은 ‘모든” 백성들에게서 땅이 갈라질 듯한 큰 기쁨의 환호를 받으며 왕위에 오른다. 자기 스스로 높이며 주변 몇 안 되는 권력자들의 호응과 환호에 도취하여 의기양양하여 하나님도, 아버지 다윗도 무시하던 아도니야는 제단 뿔을 붙잡으며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형편으로 전락했다.
    
*나도 그럴 수 있다. 작은 성취와 성공에 도취하여 우쭐해하고 세상에서의 왕 노릇을 흉내를 내며 헛된 권력과 재물만 좇고 있다가 하나님 말씀의 약속들 마저 잊어버리는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다. 주님 다시 오실 것을 분명히 알고 있지만 세상의 소리에 마음을 빼앗겨 주님을 다시 맞이하는 자리를 망각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나 자신에 스스로 빠져 환호하지 않고 나의 구원자, 나의 왕 되신 주님께 환호하는 삶을 살아내야지!!
    
    
*다윗 왕의 신하들은 솔로몬이 왕이 된 것을 하나님이 하신 일로 고백하고 찬송한다. 솔로몬의 왕국 번영을 위해 복을 빌어준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의 이름이 자기 이름보다 더 아름답게 되고, 자기 왕위보다 더 크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들으며 자신도 쇠약한 몸을 이끌고 노쇠한 몸을 굽혀 하나님께 감사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노쇠하여 저무는 권력이 노욕에 사로잡히지 않고 이제 세워나가야 할 새로운 권력의 번성을 축복하는 신하들의 축복에 동참하는 이 모습이 바로 하나님 나라가 아닐까! 나도 나의 사역을 마무리해 나갈 때 이런 모습 잊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내가 바통을 건네줄 그를 마음껏 축복해주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떠나가도록 늘 연습해야지….
    
*그런데 신하들과 다윗의 고백 속에는 솔로몬이 아도니야보다 더 탁월하게 국가를 잘 이끌 만큼 유능하여서 감사하다는 말이 없다. 참된 왕 되신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지명하여 세운 왕임을 확신하였기에 찬송하고 감사한 것이다. 솔로몬이 다윗의 아들 중에서 누구보다 탁월하여 감사하다는 것이 아니었다.
    
*왕조의 성쇠는 언약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그 언약을 충분히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라도 스스로 영광과 자랑거리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떤 소식에 기뻐할까?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는 소식은 스스로 왕이 되려는 아도니야를 쫓은 무리에게는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두려운 소식”이었다. 자신들의 모든 인간적인 기대와 꿈을 깨뜨리는 절망의 소식이었다. 나의 삶의 진정하고 유일한 왕 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는 삶이 되어야 하리라
    
    
    
*주님, 주님이 솔로몬을 세우셨음을 찬양합니다. 주님께서 저에게 맡기신 모든 것, 주님께서 세우실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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