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포기하지 못한 욕심, 결국 죽음으로.. [왕상 2:13-25]
 – 2023년 09월 06일
– 2023년 09월 06일 –
다윗이 요압과 시므이를 죽이라는 유언과 바르실래의 아들들을 후대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은 후 솔로몬 홀로 정국을 끌어나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리고 아도니야는 왕이 되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세력을 모아 왕이 되려고 시도한다. 아직 솔로몬의 세력이 확고하지 않았기에 자신의 지지자인 요압과 아비아달을 중심으로 반역을 꿈꾼 것이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시중을 들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내로 삼고자 한다. 그는 밧세바에게 찾아가 솔로몬의 허락을 받아달라고 요청한다.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허락을 구하지만, 솔로몬은 이것을 왕위에 도전하는 행위로 간주하여 브나야를 보내 아도니야를 죽인다. 아도니야의 정치적 야망과 계교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약속한 대로 견고한 왕정의 약속을 지켜 나가신다.
 
 
 
1. 아도니야의 불순한 부탁(13~18절)
아도니야는 매우 불순했다. 밧세바를 찾아가 다윗의 품에 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삼도록 솔로몬에게 말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비삭의 이런 행동은 매우 계산된 것이었다. 그가 정말 바라는 것은 아비삭이 아니라 다윗의 첩을 얻음으로 다윗 왕조와의 모종의 연결을 도모하여 혹시 있을지 모르는 자기 반란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그런 흑심은 숨긴 채 “화평(샬롬)”의 얼굴을 한 채 밧세바를 찾았다.
 
여전히 왕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어리석은 시도였다. 순진한 것처럼 자신이 원래 왕좌의 주인이었지만 하나님께 솔로몬에게 주셨다고 말한다. 자신이 잃어버린 왕권에 비하면 이 요청은 큰 것도 아니라는 투로 말하며 밧세바를 설득한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을 깨닫게 된다. 사탄은 지금도 화평의 얼굴로 찾아 들어와 분열을 일으킨다. 크고 거창한 것으로 일으키지 않고 아주 작은 타협을 요청한다. 사탄의 궤계를 능히 분별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여기서 아도니야의 어리석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자신은 다윗의 장자이고 대다수 백성이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원했기에 마땅히 왕권은 자기 것이 되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하나님 때문에 솔로몬에게 돌아갔다고 말한다. 아도니야는 하나님의 기쁘게 수용하지 않고 상식을 무시한 하나님 때문에 자신은 큰 피해자가 되었다고 말하는 듯 하다.
 
*그가 되고 싶었던 왕은 백성들의 지지를 받는 강한 왕이었을 뿐이다. 정작 이스라엘의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지지를 받는 충성스러운 왕은 될 수 없었다. 아도니야에게 왕의 자리는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선물로 또 사명으로 받는 것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제단 뿔을 잡고 간청하여 겨우 목숨을 건진 은혜는 잊은 채 얻지 못한 것만 기억하고 탐욕이 이끄는 대로 구하다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2. 아도니야의 죽음(19~25절)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말을 전하기 위해 솔로몬에게 간다. 솔로몬은 어머니의 권위를 충분히 인정하며 그녀의 말에 경청한다.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라고 청탁한다. 그녀는 아도니야의 말을 듣고 다윗의 첩을 달라는 그의 요구를 “작은 일”로 여긴다. 나단 선지자의 조언에는 그토록 지혜롭게 반응한 그녀가 아도니야의 간교한 술책은 간파하지 못했다. 밧세바는 온정은 있었는지 모르지만, 분별력은 없었다. 너무 비정해도 문제지만, 너무 관대한 것도 화를 불러온다. 지혜롭게 분별하여 대처해야 하지 않겠는가? 솔로몬은 순진한 부탁 속에 감춰진 아도니야의 정치적 야욕을 읽어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둔감함을 질타한다(22절). 또한 아도니야 본인도 스스로 제단 뿔의 은혜를 입을 만한 사람이 아님을 증명한 꼴이 되었다.
 
“그가 솔로몬의 오른쪽에 앉았다(19절)”와 같이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어느 정도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음을 감안할 때 밧세바는 모든 언행을 삼가야 했다. 그런데도 그녀는 선한 의도였는지 아도니야의 마음을 간파하여 의도적으로 이런 행동을 했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아도니야에게는 저주의 통로가 솔로몬에게는 왕권 강화의 축복의 통로가 되고 있다. 한편 솔로몬은 아비삭을 달라는 아도니야의 순진하거나, 간교한 계책을 단번에 간파했다.
 
“그러자 솔로몬 왕이 어머니에게 대답하였다. “아도니야를 생각하신다면, 어찌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과 결혼시키라고만 하십니까? 그는 나의 형이니, 차라리 그에게 임금의 자리까지 내주라고 하시지 그러십니까? 또 아도니야만을 생각하여서 청하실 것이 아니라, 그를 편든 아비아달 제사장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을 생각하여서도 그렇게 하시기 그러십니까?” (새번역_22절)
 
*정적을 제거할 목적으로 하는 행동, 또는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를 남용하거나 탐욕을 부리는 행동, 옳고 그름보다 자신의 목적 성취를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것들은 우리가 지양해야 할 자세입니다. 작은 일이라도 그것 안에 우리의 탐욕을 투영하면 안 된다. 작은 일이라도 사리분별을 못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도 하지 않고 처신하는 것은 주의해야 한다.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하게 필요한 부분임을 인정한다. 나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선악 간에 분별하고 인과 관계나 시작과 결과에 대한 여러 가지 상황들을 객관적으로 알아보고, 그것에 담긴 의도를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의 결정에 대한 영향력이 커질수록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이라도 신중하게 결정해야 함을 절감하고 있는 요즘이다.
 
*그러므로 맡겨진 자리가 영향력이 커질수록 더욱 기도하며 근신하며 처신해야 하겠다. 한편으로 모든 것을 문제 파악의 관점으로만 보는 피곤함을 자초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안에 있는 자유”를 누릴 줄도 알아야 하겠다. 지금 나는 목회를 즐기고 있을까?
 
 
솔로몬은 밧세바의 작은 부탁에 분노했다. 아도니야를 위해 왕권을 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럴 거면 요압이나 아비아달을 위해서도 구하지 그러시냐고 한다(22절). 그리고 진정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달라고 했다면 그는 생명을 잃게 되리라 선언한다(23~24절). 이는 곧 반역이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이렇게 단언한다. “이제 주님께서 나를 세워 아버지 다윗의 자리에 앉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나를 시켜서 왕실(집)을 세워주셨으니,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합니다. 오늘 아도니야는 반드시 처형당할 것입니다.” (새번역_24절)
 
자신의 왕됨은 여호와를 통해서 세워진 것임을 확인하면서 아도니야를 처형하도록 브나야에게 명령한다(25절). 왕권에 도전한 아도니야는 이렇게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솔로몬은 자신의 왕권이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것임을 확신하고 아도니야의 처형에 주저하지 않았다.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도, 자신도 여호와께서 세우신 집이라고 고백한다(24절). 이런 확실한 정체성이 반역에 대한 분명한 분별을 할 수 있게 했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다. 이런 자세와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 아도니야처럼 내 인생을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않고 밧세바처럼 사사로운 인정이나 다른 감정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지 않아야 한다. 또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확신으로 왕의 자리(정체성)를 지킨 솔로몬처럼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확신과 담대함으로 분별하며 행동해야 하겠다.
 
 
 
나는?
-실패한 쿠데타의 주역이 선왕의 여인을 달라한다. 아도니야가 끝내 정치적 야망을 버리지 못한 것일까? 혹은 그저 성적 욕망에 치우친 한갓 필부에 불과한 것일까? 정치적인 의미도 모른 채 요청했다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자이고 정치적 의도를 알량하게 아비삭을 달라는 요청으로 숨긴 요구였다면 애초에 왕의 재목은 아니다. 왕의 아들로 태어났고 어찌하다 보니 장자의 자리에 있어서 그것 하나로 왕위를 탐내었다면 결코 왕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밧세바는 어떨까? 아도니야의 요청에 담긴 정치적인 함의를 모른 채 순진하게 솔로몬에게 그대로 가서 전할 정도라면 그녀의 정치력은 꽝이다. 아도니야의 세 치 혀에 놀아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 왠지 그의 전남편 우리야를 생각나게 한다. 이번에는 아들 솔로몬을 위험에 빠뜨릴 뻔했다. 그녀는 왕의 오른쪽에 앉은 수준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가엽고 가볍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정치”이다. 권력이 아닌 것이 없다, 그는 늘 그에게 맡겨진 왕국 이스라엘을 위해 파악하고 결정해야 한다. 아도니야의 한심한 요청 속에 담긴 정치적 의도를 단번에 파악할 정도로 이제 약관이 갓 넘은 그가 성장하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정적을 단번에 제거하고 자기 어머니를 따끔하게 훈계한다. 정치력이 웬만한 사람보다 능하다. 왕으로서 능력치가 올라가고 있다.
 
*세상은 ‘한 가지 소원’, ‘작은 소원’으로 포장된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음흉한 의도를 감춘 말들로 유혹하기에 십상이다. 성령께서 이를 “말씀대로” 깨닫게 하셔서 단호하고 담대하게 대처하도록 지혜를 주신다.
 
 
 
*주님, 영향력이 커져 가는 이 자리가 큰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세워주신 것을 확신한 대로 결단하고 움직이는 솔로몬의 모습에서 길을 찾습니다. 말씀대로 확신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순종하겠습니다. 다만, 더욱 무거운 마음으로 근신하며 기도로 구하며 나가겠습니다. 제게도 지혜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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