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닷과 르손이 주는 교훈 [왕상 11:14-25]
 – 2023년 10월 01일
– 2023년 10월 01일 –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대적자들을 일으키신다. 대표적인 인물이 하닷이다. 하닷은 다윗이 멸망시킨 에돔의 후손으로 애굽으로 망명했다가 솔로몬 시대에 에돔으로 돌아와 솔로몬을 대적하였고, 르손은 다메섹을 거점으로 하여 솔로몬 시대에 아람의 왕이 되면서 솔로몬을 대적하였다.
 
솔로몬의 대적들인 하닷이나 르손이 자리 잡은 지역은 각각 이스라엘의 남서부에 있는 에돔과 북부에 있는 아람이다. 에돔은 사해 건너편 동남쪽에 위치하고 남쪽은 아카바만이 경계를 이루었다. 북쪽은 세렛 강이 모압과 경계를 이루는 땅이다. 높고 험한 산과 바위가 많은 지역이며, 수도는 ‘보스라’이다. 아람은 25절에서 수리아라고 번역되었고 수도는 ‘다메섹’이다. 다윗이 에돔과 소바를 정벌한 기록은 사무엘하 8장과 10장에 기록되어 있고, 역대상 18~19장에서도 나온다. 소바와의 전쟁은 시편 60편의 표제에도 기록되어 있다. 소바(아람 소바, 24절)는 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아람의 소왕국 중의 하나이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정치적 반체제 인물이나 왕족을 망명객으로 받아들이는 일은 종종 있었다. 망명객들은 주거를 제공받고 결혼으로 후견인과 연결되었다. 그런 다음 후견인이 그들을 재정적으로 혹은 군사적으로 지원하여 경쟁자(경쟁국) 왕의 영토에 가능한 많은 문제를 일으키도록 조정하였다. 문제를 일으켜 상대의 힘을 약화시킨 뒤 정복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다윗이 사울을 피해 블레셋 땅으로 갔을 때, 블레셋의 아기스가 다윗의 망명을 받아 준 것은 다윗을 통해 사울을 치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찬가지로 애굽의 바로는 겉으로는 자기 딸을 솔로몬의 왕비로 보내 우호 관계를 유지하면서 뒤에서는 끊임없이 솔로몬의 부와 영광을 빼앗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1. 솔로몬의 대적 하닷(14~22절)
솔로몬의 배역으로 이스라엘의 분열이 예고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 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먼저 솔로몬에게 주셨던 보호와 평화를 거두신 것이다. 그동안 솔로몬의 부와 영광에는 그의 이름의 의미처럼 하나님께서 사방의 대적들을 없애주심으로 “평화” 속에서 이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면서 다시 이스라엘은 대적자들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이 단락은 하닷이 어떻게 솔로몬의 대적이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먼저 세운 대적은 “하닷(하다드, 강력한)”이다. 그가 솔로몬의 대적이 된 배경은 다윗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에돔의 왕족으로 원래는 에돎에 거주하였지만, 다윗이 요업과 함께 에돔을 정벌하고 속국으로 삼았을 때 겨우 살아남아 이집트로 도망간 인물이다. 다윗이 에돔을 정복한 기록은 사무엘하 8:13~14에 나온다. 다윗은 에돔을 정복하면서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죽였다고 기록한다. 그런데 본문은 이 기록보다 더 자세하게 당시의 상황을 설명한다. 에돔을 정벌할 때 에돔의 남자들을 모두 죽이는 데 6개월이 걸렸고, 그 일을 실행한 인물은 요압이다.
 
*6개월 동안 에돔에 머물러 남자들을 모두 죽였기에 에돔 사람들은 요압과 다윗 왕가에 대한 원한이 깊었을 것이다. 이러한 설명은 이스라엘이 지나치게 살육을 자행한 것을 비난하기 위함이다. 이런 이스라엘의 잘못된 행동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닷을 살려 주셨음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진멸은 모든 민족에 대한 이스라엘의 전쟁 방식이 결코 아니다. 이스라엘이 전쟁을 결정할 때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 “하나님이 원하실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만큼” 전쟁해야 “거룩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에돔 정벌은 결코 거룩한 전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기억하고 계시다가 솔로몬의 배교를 심판하시는 도구로 에돔의 원한을 사용하신 것이다. 요압의 6개월 동안의 에돔 남자 살육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정도껏”이라는 말이 있다. 문제는 어느 수준이 정도껏 한계를 지켜낼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매우 주관적으로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록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주시는 감동을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는 “정도껏” 순종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정도껏” 순종하지 않으면 그 원한을 하나님께서 내가 하나님을 떠났을 때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에돔의 남자들이 전부 죽임을 당하던 그때 왕의 아들인 하닷은 아버지의 신하들인 에돔 사람들과 애굽으로 살기 위해 도망친다. 모든 남자가 진멸 당하는 와중에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이들이 애굽을 망명지로 선택한 이유는 당시 애굽은 강성하여 다윗이 애굽까지 쳐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굽으로서는 부강해진 다윗의 왕국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을 테고, 언젠가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게 된다면 하닷을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다. 또, 하닷을 애굽이 받아들였다는 것은 이스라엘과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는 것도 놓치면 안 된다. 그런데 애굽과 이스라엘과의 관계는 솔로몬이 즉위하고 바로의 딸과 혼인하면서 관계가 호전되었다.
 
하닷이 애굽으로 망명할 때 홀로 간 것이 아니라 바란 광야에서 도망 나온 에돔 사람들과 합세하여 세를 규합한 뒤 애굽으로 들어갔다. 바로는 그들에게 집과 양식과 토지를 주며 환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체제를 하닷과 결혼시킨다. 이는 곧 일종의 결혼 동맹이며 바로는 이 결혼을 통해 애굽과 에돔과의 관계를 돈독하게 하고 에돔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견제하며, 에돔을 자신의 권위 아래에 두려는 속셈이었다.
 
하닷과 바로의 처제 사이에 태어난 그누밧을 바로의 왕비가 왕궁에서 바로의 아들들과 함께 양육했다(20절). 이 이야기는 모세가 바로의 칼날을 피해 바로의 공주의 도움으로 바로의 아들처럼 살았던 모습과 닮았다. 하지만 하닷의 아들 그누밧의 이야기와 다른 점이 있다면, 모세를 바로의 칼날에서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룰 지도자를 살려주신 것이다. 하닷은 이스라엘을 대적할 지도자를 살려주신 것이다. 이를 통해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지켜주시는 분이시지만, 이스라엘이 잔인하게 에돔을 정벌한 것에 대해서는 그에 적절한 벌을 내리기 위해 준비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와 정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기 위해 준비하시지만,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서 준비하시는 분이시기도 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대한 순종 여부”에 달린 것이다.
 
 
이렇게 애굽에서 와신상담하던 하닷은 다윗과 요압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자, 바로에게 자기 고향으로 보내 달라고 요청하고 만류하는 바로를 뿌리치며 자신의 평안하고 안락한 삶을 버리고 원수를 갚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간다. 하나님은 이런 하닷을 통해 솔로몬의 배교에 대한 심판을 하신다. 하나님 심판의 도구는 자기 민족을 향한 애정이 마르지 않고 이스라엘을 향한 그칠 줄 모르는 분노 가운데 있는 하닷이었다.
 
 
 
2. 솔로몬의 대적 르손(23~25절)
하나님께서는 남동부 에돔의 하닷 뿐만 아니라 북부의 르손을 솔로몬의 대적으로 일으키셨다. 이스라엘 남동부의 에돔이 남서부의 애굽 왕족과 혈연지간이 된 상황에서 북부와 북동부의 아람지역(소바, 다메섹)에서 세력을 키운 르손이 솔로몬의 대적이 된 것은 남과 북의 중간에 놓인 이스라엘에 큰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르손도 하닷과 비슷한 과정을 거쳐 솔로몬의 대적이 된다. 르손은 엘리아다의 아들인데, 엘리아다는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였다. 다윗이 아람을 정벌할 때 소바는 아람을 대표하는 군소 왕국이었다. 사무엘 하 8장과 10장의 기록에 따르면 당시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지역에 원정을 나가자, 다윗은 이를 기회로 삼아 아람을 공격하여 마병과 보병을 사로잡았다. 이때 소바를 도우러 다메섹의 아람 연합군이 왔지만, 다윗에게 모두 진압당했다. 이후 다윗은 다메섹에 수비대를 배치하였고 아람 연합국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 조공을 바치게 되었다(삼하 8:6). 그 후 암몬이 다윗을 충동질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아람과 돕 등과 연합하여 대치했을 때도 다윗은 그들을 제압하였다. 이때 패한 연합군을 하닷에셀이 도우려 했지만, 오히려 다윗에게 제압당하여 암몬, 아람, 돕 연합국은 모두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고 만다(삼하 10:15~19).
 
르손은 다윗이 소바를 칠 때, 하닷에셀 왕에게서 도망쳐서 사람들을 모아 그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다. 이렇게 모인 르손의 패거리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으로 이주해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다(24절). 그리고 다윗 이후 솔로몬의 통치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속국이었던 아람이 점점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25절은 하닷과 르손의 반역에 대한 후기와 요약이다. “르손은 솔로몬의 평생에 이스라엘의 대적자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솔로몬은 하닷에게 시달리고 있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르손에도 시달렸다. 르손은 시리아를 다스리는 왕이 되어서,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새번역) 라고, 기록한다.
 
하닷은 솔로몬에게 일평생 “환난(재앙 거리)”을 끼쳤다. 이는 하닷이 애굽에서 돌아온 후 그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지속해서 공격하였고 솔로몬은 하닷을 제압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는 동안 르손은 수리아(아람)의 왕으로 군림했다. 르손은 이스라엘을 대적(증오)했다. 하닷과 르손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이는 그들이 앞으로도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강력한 세력이 될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실제로 이후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아람은 이스라엘의 두려운 견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한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닷과 르손의 악감정과 도발은 에돔과 아람의 처지에서 보면 독립을 쟁취하기 위한 선량한 행동들이다. 하지만 솔로몬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였다. 아무리 지혜와 재물과 병거가 많아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지 않으면 평화를 누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가정, 교회, 나라가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은 경제력이나 학력, 군사력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세상이 말하는 안전의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의 은혜로운 보호를 구하는 것이 지혜로운 길이다.
 
 
 
나는?
-솔로몬에게 등을 돌리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자, 그를 대적하였거나 위협이 되었던 요압과 시므이와 아도니야를 제거해 주셨다(1~2장). 그래서 이스라엘은 솔로몬 통치 초기 안정을 이룰 수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가 아닌 자신의 지혜를 의지하여 정략결혼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며 우상숭배까지 용인하자, 세 사람 “하닷과 르손과 여로보암”을 일으켜 솔로몬을 대적하게 하신다.
 
-인간의 지혜나 군사력으로 만든 평화가 얼마나 허상이고, 기만적인지 똑똑히 깨닫게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성공은 가장 치명적인 실패를 불러오는 것이다. 우리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에게 지금 등을 돌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게서 등을 돌리시는 하나이시다. 내가 가장 두려워해야 할 일은 세상에서의 삶을 위해 내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일이다.
 
 
-심판의 도구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솔로몬을 대적하도록 남동부에서 하닷을, 북동쪽에서는 르손을 준비시키셨다. 다윗의 때에 요압이 6개월 동안이나 에돔에 주둔하면서 에돔의 남자들을 진멸하려고 했음에도 “작은 아이”에 불과했던 하닷이 살아남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다. 그가 망명한 바로에게 은총을 입어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의 기막힌 섭리였다.
 
-이스라엘을 바로의 손아귀에서 건지시려고 모세를 기적적으로 건지셔서 바로의 품에서 자라나게 하신 것처럼, 이제 이스라엘 심판하시기 위해 하닷을 기적적으로 건지셔서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 나라가 방향성을 잃고 세상을 향할 때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올바로 바로잡기 위한 징계의 도구도 함께 마련하신다.
 
 
-그렇게 마련하신 하닷과 르손을 솔로몬에게 가시 같은 존재로 그의 곁에 두셨다.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배한 패잔병에 불과한 르손이나, 죽음을 피해 애굽으로 망명한 하닷을 준비하셔서 솔로몬의 말년을 골치 아프게 만든다. 비록 강력한 세력은 되지 못했지만, 이스라엘 주변에서 솔로몬을 편히 잠들지 못하게 하는 고통스러운 가시 역할을 했다.
 
-금으로 방패를 만들 만큼 아무 걱정 없이 번영과 평화를 누리던 솔로몬의 나라는 하나님이 떠나시면 순식간에 보호의 장막이 걷힌다는 것을 일깨운다. 평화와 번영의 나라는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나라로 변모했다.
 
 
*내 삶에도 하닷과 르손이라는 존재가 출현할 수 있다. 그때 그들에게 마음을 쏟지 않고 나를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 그들에게 악을 악으로 갚으려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내가 어떤 이들에게 하닷과 르손이 되어서는 안 된다. 다른 이들에게 고통을 주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 악은 언제가 나에게 되돌아온다. 요즘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악성 민원 같은 것이 이런 류에 속하지 않을까? 나의 입장에서 건강한 제언이라도 상대방이 들을 때 고통스러운 것이라면 생각하고 또 생각한 후에 조심스럽게 해야 할 것이다.
 
 
 
 
*주님,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여니 주님께 등을 돌리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주님께 등을 돌리니 주님께서 당연하게 보호해 주시리라는 약속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이 되는지 똑똑히 보았습니다.
*주님, 나도 언제든지 주님께 등을 돌리면 하닷과 르손이라는 대적자가 나를 괴롭힐 것을 깨닫습니다. 혹시 내가 지금 고통당하는 일이 나를 돌이키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깨닫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주님께 다시 돌아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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