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결국 분열되다. 반드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 [왕상 12:12-24]
 – 2023년 10월 04일
– 2023년 10월 04일 –
예고된 대로 솔로몬의 배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분열된다. 르호보암이 왕으로 등극하자 백성들은 솔로몬의 멍에를 줄여달라고 요청했다. 원로들은 백성들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조언했지만, 르호보암은 도리어 더욱 가혹하게 다루어야 한다는 자기와 함께 자란 소년(젊은이)들의 조언을 따른다. 그 결과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을 분열 왕국으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던 지혜로운 선택을 할 기회를 버리게 되었다.
 
르호보암은 여로보암과 북쪽 지파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원로들의 충정 어린 조언은 ‘빌고’, 또래 신하들의 조언을 수용하고 만다. 그 결과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 르호보암을 왕으로 삼았고 북쪽의 열 지파는 여로보암을 왕으로 삼았다. 이에 르호보암과 그를 따르는 자들은 북이스라엘을 무력으로 통합하려 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포기한다.
 
참고로 본문에서 이스라엘이라고 언급되는 지역은 북쪽 이스라엘 열 지파 연합이고, 유다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 연합체이다.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 연합체였음에도 사울과 다윗과 솔로몬 시대만 열두 지파가 하나의 왕국으로 있었다. 사울의 시대에는 하나의 왕국이기는 하지만 왕정이 아직 확고하지 못한 지방 분권 시대와 다를 바 없었고, 사울이 죽자, 다윗이 헤브론의 왕이 되었고 이스보셋이 죽으면서 통일이 되었다. 이후 다윗이 강력한 왕정을 세우면서 통일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시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지파와 지방간의 갈등은 상존해 있었다.
 
 
 
1. 르호보암의 거절(12~15절)
3일 만에 여로보암과 온 이스라엘 백성이 르호보암에게 다시 나아왔다. 백성은 르호보암의 수용 여부에 따라 그를 따를 수 있음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포학한 말로(가혹한 말)” 대답한다. 백성을 함부로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왕으로 인정할 의사가 있었던 백성을 거칠게 대하였고 분노를 쏟아내게 만들었다. 결국 노인(원로)들의 충고를 버리고 어리석은 선택함으로써 이스라엘은 분열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르호보암의 선택과 결정에 따라 이스라엘이 분열하게 되었다고 거론하지 않는다. ” 왕이 이렇게 백성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은 것은 주님께서 일을 그렇게 뒤틀리게 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실로 사람 아히야를 시켜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려는 것이었다.” (새번역_15절)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진 일인 것이다. 르호보암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내리시는 가장 큰 심판은 악하고 어리석은 마음을 돌이킬 기회를 주시 않으시는 것이다. 르호보암이 원로들의 충고를 따라 백성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면 열왕기의 역사는 어찌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조차 스스로 “함께 자란 어린 소년들”의 말을 선택하여 돌이킬 수 없는 분열을 여는 왕이 되어버렸다.
 
저자는 르호보암의 이 거절을 단지 한 인간의 실수가 아니라 완악하고 교만한 그의 마음 때문에 가려진 하나님의 기회를 잡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보게 한다.
 
 
 
2. 분열(16~20절)
온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르호보암에게 다윗 왕가와의 관계를 끊겠다고 선언한다. “온 이스라엘은, 왕이 자기들의 요구를 전혀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왕에게 외쳤다. “우리가 다윗에게서 받을 몫이 무엇인가? 이새의 아들에게서는 받을 유산이 없다. 이스라엘아,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가라. 다윗아, 이제 너는 네 집안이나 돌보아라.” 그런 다음에 이스라엘 백성은 저마다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새번역_16절) 다윗을 이새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은 더 이상 다윗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스라엘은 각각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르호보암은 북쪽 이스라엘의 지지를 받지 못해 남유다를 중심으로 왕위에 오르게 된다. 통일 왕국은 깨졌다. 다윗이 처음 왕이 되었을 때의 상황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북쪽 이스라엘의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도람”을 보내 통치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아도람은 다윗 시대에 발탁되어 솔로몬 때까지 감독관을 지낸 인물이다(삼하 20:24, 왕상 4:6_아도니람). 원로들의 조언을 “버린” 르호보암이 이제야 원로들을 활용한 것이다. 하지만 아도람은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악몽 같은 존재였다. 그는 노동 감독관이었다. 북쪽 이스라엘 사람들을 심하게 노역시켰던 인물이다. 그를 보낸 것은 르호보암의 정치적인 역량의 한계를 보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도람을 보자 지금까지 학대당하던 괴로웠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올랐을 것이다. 르호보암이 그를 통해 다시 폭압적으로 노역을 시킬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들은 분노하며 아도람을 돌로 쳐서 죽인다. 백성들의 강력한 항거에 놀란 르호보암은 더 이상 협상이나 화해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예루살렘으로 도망하고 만다. 이제 온 이스라엘(북쪽 지파) 와 유다(유다와 베냐민 지파)는 완전히 갈라서게 된다.
 
르호보암과 완전히 결별한 온 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을 부른다. 그를 온 이스라엘(북쪽 지파)의 왕으로 세운다. 이로써 11:36~37에서 아히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11:13에서 솔로몬에게 예언하신 것처럼,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다윗 집은 한 지파만 남게 되었다.
 
 
 
3. 르호보암의 몸부림, 하나님의 개입(21~24절)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르호보암은 이스라엘을 무력으로 복속하기 위해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결집하여 전쟁을 준비한다. 베냐민 지파는 지리적으로 유다 지파와 인접해 있어서 자연스레 유다 지파의 편을 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결집한 수가 18만 명이라는 매우 많은 숫자가 모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스마야 선지자에게 임하셔서 전쟁하지 말라고 명령하신다. 스마야는 전쟁 출정을 위해 모여있는 군사뿐 아니라 유다와 베냐민 지파 모든 백성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달한다. 르호보암에게 찾아갈 수 있었지만, 모든 백성에게 직접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한 것은 왕국을 되찾을 욕심에 하나님의 명령을 충분히 무시할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스마야에게 전쟁에 출정하지 말라는 뜻을 전해 주실 때 “유다 왕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23절)”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르호보암을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유다의 왕으로 부르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분열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계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 싸우지 말라고 말씀하시면서, 비록 분열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여전히 형제(동족)라고 말씀하신다(24절). 이스라엘과 여로보암의 반란은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도 빼놓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나라를 다윗의 자손의 손에서 빼앗겠다고 솔로몬과 여로보암에게는 말씀하셨었지만, 르호보암에게는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다. 그렇기에 르호보암은 분열과 반란을 인정하지 않고 전쟁으로 진압하고 통일왕국을 지켜내야 하겠다는 당연한 의지를 행한 것이다. 하지만 스마야를 통하여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사실을 백성들과 함께 듣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그 명령을 따라 모두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르호보암도 마지막 순간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다. 이렇게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범죄로 인해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나라가 둘로 갈라지게 되었다.
 
 
 
나는?
-이스라엘 열 지파가 다윗의 집을 배반하였다. 르호보암이 내린 어리석은 판단 때문이었다. 이스라엘의 결정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지는 못하다. 그들이 다윗의 집을 섬길 것인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멍에와 관계없다. 하나님께서 누구를 왕으로 세우실 것인가에 달려 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들의 입장과 이익을 먼저 고려한다.
 
-르호보암은 분열된 이스라엘을 다시 통합하기 위해 자기 나름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시도한다. 감독관 아도람을 보내 중재하려고 있으나 백성들의 돌아 맞아 죽는다. 유다와 베냐민 지파에 동원령을 내려 무력으로 강제 통합하려고 시도하지만 이마저도 스마야를 통해 민족끼리 싸우지 말라는 명령과 이스라엘의 분열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을 알리신다. 르호보암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죄로 인해 나라를 나누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일을 이루기 위해 르호보암이 자신과 함께 자라온 어린 친구들의 어리석은 충고를 좇아가도록 내버려 두셨다.
 
-르호보암이 북쪽 지파를 다시 찾기 위해 전쟁을 하려는 것을 막아주셨다. 형제들과 싸우는 것이 옳지 못한 일일뿐더러 무엇보다 전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하나님은 르호보암이 젊은 자들의 충고를 따를 때는 내버려 두셨다가 형제들과 전쟁하는 것은 막으셨다.
 
-내버려 두시는 것도, 개입하시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는 방편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과 일을 이루시기 위해 우리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하시고 내버려 두시기도 하신다. 모든 일을 자신의 뜻대로 행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내버려 둠과 개입하심을 분별하여 때를 따라 순종하며 살아내야 한다.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원로들의 조언을 버리고 젊은이들의 조언을 따라 북이스라엘을 겁박하였다. 멍에를 더 무겁게 할 것이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솔로몬보다 더 엄한 징계를 내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북쪽 지파들의 불만이 얼마나 극심하고, 이스라엘의 통일 왕국이 얼마나 불안한 관계 위에 세워져 있는지를 인식하지 못한 실책이다. 왕궁에서 호사만 누리다가 갑작스럽게 왕이 되어 버렸으니 선대 왕이었던 솔로몬의 통치가 무척이나 자랑스러웠겠지만, 자신 누린 부귀영화가 얼마나 많은 백성의 탄식과 신음 위에 세워졌는지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는 역사의식이나 통치 철학 자체가 없었다. 무엇보다 공의와 정의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 통치에는 전혀 문외한이다. 아쉽게도 젊었을 때의 솔로몬이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통치하고파서 하늘의 지혜를 구하였던 모습조차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겸손함과 간절함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다. 이미 북쪽 지파들만 르호보암에 등을 돌렸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등을 돌린 듯하다.
 
*백성의 아픔에 둔감할 만큼 그가 누리고 있는 부요와 명예는 축복이 될 수 없다. 이웃의 신음소리에 실린 하나님의 신음과 진노를 읽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북쪽 지파들의 아우성을 단지 불평과 불만, 왕권에 도전하는 불손으로만 치부하는 저열한 인식은 그들의 소리에 담긴 억압과 고역에 따른 탄식과 고통을 절대로 읽어낼 수 없었다. 공감하지 못했다.
 
 
-결국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선택했다. 여로보암을 중심으로 한 북쪽 열 지파의 인내심은 임계점을 한참 넘어섰다. 하지만 르호보암이 솔로몬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간신히 힘을 내어 일말의 기대감을 가지고 마지막 심정으로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르호보암은 무례하고 무참하며, 무자비, 무개념의 결정을 듣고 결별을 확정했다. 즉시로 여로보암을 왕을 세우고 독립을 실행했다. 르호보암이 보낸 역군 감독이었던 아도람도 돌로 처형했다. 적극적인 독립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이 모든 흐름은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어 가신 것이었다. 르호보암은 끝까지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무려 18만의 군사를 결집하여 무력으로 북쪽 지파들을 굴복시키려고 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모은 무기들로 형제 지파를 치려고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오늘의 결별이 자신의 오판을 되돌아볼 기회로 삼지 않고 오직 열 지파의 반역으로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르호보암이 지금 사태를 해결하려고 취한 모든 방법은 자기 힘만 의지한 것이었다. 그가 지금 의지해야 할 것은 18만의 용사가 아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어야 했다. 자신이 꺾어야 하는 것은 북쪽 지파들이 아니라 자신의 오만함과 교만함인 것을 몰랐다. 자기 힘으로 되돌리고 싶어 하는 통일 왕국의 위용보다, 솔로몬 때부터 물들어진 우상 숭배에서 되돌아와야 했다.
 
*이렇기에 하나님께서 직접 스마야 선지자를 통해 이 모든 일이 자기 뜻이었음을 선명하게 드러낸 후에야 르호보암은 분열을 받아들였다. 힘의 논리로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려고 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하여는 큰 관심이 없었다. 심지어 이런 중대한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조차 보이질 않는다. 애초에 하나님의 뜻은 관심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저 왕위를 이어받은 우쭐함만 가득했다. 그 왕좌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반드시 이루어지고 말았다….
 
 
 
 
*주님, 르호보암의 꽉 막힌 시각과 마음, 통치의 태도가 당황스럽습니다. 지금 우리의 시대가 이런 지도력 아래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괴롭습니다.
*주님, 그럼에도 주님의 뜻대로 이 나라와 민족, 교회가 흘러갈 것을 신뢰합니다. 드러난 현상에 집중하다 이것을 통해 깨달아야 할 하나님의 마음을 놓치지 않게 해주십시오. 현상만 보지 않고 본질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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