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여로보암 증후군_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왕상 12:25-33]
 – 2023년 10월 05일
– 2023년 10월 05일 –
이스라엘은 분열되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을 세워 남 유다와 완전히 갈라섰다. 하나님의 나라가 둘로 쪼개진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에 대한 기록이다. 지도자의 불신앙과 무분별함이 어떻게 백성들을 죄의 길로 이끌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제사하러 가게 되면 그들의 마음이 유다의 르호보암에게 돌아갈까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어리석게도 두 금송아지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백성들이 그 형상을 섬기도록 유도하고 만다. 또,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을 제사장으로 삼고, 마음대로 절기를 정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데 앞장서고 만다.
    
본문은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을 떠나가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이 무엇일까?
    
    
    
1. 예루살렘 성전이 고민이야. (25~27절)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세겜에 수도를 세우는 것이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솔로몬의 건설 부역 때문에 나라가 갈라졌는데, 여로보암도 수도를 세우는 건설 사역으로 통치를 시작한다. 세겜은 므낫세 지파 지역이다.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5km에 위치한 성읍으로 여호수아 이후 계속해서 종교적 정치적 중심지였다. 여로보암이 생각하기에 왕정의 정당성을 갖기에 적절한 곳이다. 또 ‘부누엘’까지 뻗어 나가 그곳에도 성을 건축하였다. 부누엘은 요단 동편 지역으로 얍복 강 근처이다. 예전부터 야곱이 하나님과 씨름하던 곳으로 여겨 전통적으로 거룩한 곳으로 여겨진 도시였다. 이는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지역과도 강하게 결속했음을 의미한다. 여로보암의 정치적인 입지가 점점 확대되고 견고하게 세워져 가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여로보암 스스로 어려움을 느낀다. 바로 예루살렘 성전 문제였다. 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분리되어 각각 이스라엘과 유다로 나누어 두 왕이 다스리고 있었으나 신앙적으로는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만이 합법적인 제의 장소였기에, 이스라엘 사람들도 제사를 드리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으로 와야 했다. 분리된 후 지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보면서 스스로 왕권의 위기의식을 느낀다.
    
여로보암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자주 다니면서 유다와 다윗 왕가에 호의를 가지게 되고 다시 다윗 왕가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들이 반역을 일으켜 자신을 죽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 이미 열왕기상 11:38에서 하나님의 명령과 율법을 잘 지키면 견고한 집을 세워주겠다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다. 왕권 유지는 하나님의 주권에 달린 것이었지만 여로보암은 자신의 왕권이 백성들의 마음에 달린 것으로 생각해서 염려하고 두려워했다. 급기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만다.
    
    
    
2. 단과 벧엘에 산당을 만들다(28~30절).
여로보암은 왕권을 지키기 위해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하나님 앞에서 산 다윗의 길을 택하지 않고 어리석은 방법을 택한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28절) 개역 개정은 “이에 계획하고(야아츠)” 라고 번역하여 여로보암의 혼자 계획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직역하면 “누군가와 의논했다”이다. 여로보암은 이 문제에 대하여 신하들과 상의했다는 것이다. “야아츠” 동사는 르호보암이 늙은 신하와 함께 자란 친구들과 “의논했다.”에서 똑같이 사용되었다(6, 8절). *여로보암도 조언을 구했지만 르호보암과 다를 바 없이 지혜롭지 못한 조언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백성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에는 충분히 다녔으니 인제 그만 가라고 말한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이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고 속인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다른 신을 섬기기 위해 금송아지를 만든 것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는 광야의 이스라엘처럼 금송아지를 자신들을 애굽에서 끌어낸 여호와의 형상으로 생각하고 만들었다. 그리고 송아지 형상을 만든 근본 목적이 경배에 있지 않고 백성들이 예루살렘 방문을 차단하는 데 있음을 알려준다.
    
*금송아지는 고대 근동에서도 바알이나 아파스 신을 상징하기 때문에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여호와의 보좌나 발등상을 의미하는 언약궤를 대신하여 만들었다고 주장하여도 백성들은 그것을 하나님 형상으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제 북이스라엘의 종교는 더 이상 여호와 종교가 아니라 이방 종교와 혼합된 우상숭배의 모습을 띠게 된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들을 하나는 이스라엘의 최북단인 “단”과 예루살렘과 인접한 이스라엘의 남단에 있는 종교적으로 유서 깊은 도시인 벧엘에 두었다. 벧엘은 야곱이 사다리를 왕래하는 천사들을 만난 곳이다. 단은 이스라엘의 최북단 사람들이 접근하기 쉬운 곳이었기에 택하였을 것이다.
    
이와 같은 여로보암의 행동을 향해 열왕기 저자는 “죄”라고 선언한다. 백성들이 단까지 다니며 경배하였는데, 이 일로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었다고 증거한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범죄이다.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것을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한 것으로 간주하셨다. 이런 심각한 죄를 여로보암이 지은 것이다. 그것도 자신의 왕권을 지키기 위해 서슴치 않았다. 이런 행동은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에게 약속하신 것을 파기하는 행동이다. 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 심판을 선언하신다.
    
    
    
3. 제사장과 절기까지 마음대로(31~33절)
여로보암의 죄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산당을 지어서 예배하는 장소로 정한 예루살렘에서 멀어지게 한다. 예루살렘을 예배 처소로 결정하셨기에(신명기 12장) 여로보암이 만든 벧엘과 단에 있는 예배 처소나 산당들은 모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긴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레위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 가운데서 제사장을 세웠다.
    
이는 레위인 가운데서 제사장을 세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것으로 선언되기에 ‘거룩한 존재’이다.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세운 일은 첫째, 하나님의 율법을 어긴 죄이며, 둘째, 거룩하지 않은 사람들이 드린 부정한 제사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수 없기에 죄이다. 그럼에도 여로보암은 일반인들 가운데서 벧엘의 제사장을 삼았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북이스라엘만의 절기를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광야에서 꼭 지켜야 할 절기들을 말씀해 주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절기를 직접 정하시고 이때 성회를 열고 여호와께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하였다. 가능하면 일 년에 세 번 성전에 와서 얼굴을 보이라고 하셨다. 이 명령 때문에 나라는 분열이 되었지만,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이 절기를 막기 위해 8월 15일을 절기로 새롭게 정했다. 이때 금송아지에 제사를 드리게 했다.
    
    
*여로보암의 죄는 여호와 대신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레위인 제사장 대신 일반 사람을 제사장으로 세웠으며, 일반 신을 위한 산당도 만들어 이스라엘의 종교를 완전한 혼합주의로 만든 것이었다. 얼핏 보면 여호와께서 명하신 것과 매우 유사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언약궤를 대신하여 금송아지 우상, 일반인 제사장, 예루살렘을 대신한 벧엘과 단, 여호와의 절기를 대신하는 절기 등 겉으로 보기에는 여호와를 섬기는 것처럼 형식을 갖추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범죄였다. 자신의 편의대로 왕권을 위협하지 않는 방법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법을 만든 것이다. 그러나 결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섬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말씀대로 섬기는 것이 순종의 기본이다.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말씀하신 방법이 아니라 나의 목적을 앞세우는 것이라면 오늘날의 여로보암이나 다름없다.
    
    
    
나는?
-여로보암의 죄는 분명하다. 신앙보다 국경을 강화하기 위해 세겜을 수도로 삼고 요새화한다. 북동쪽이나 동쪽에서 쳐들어오는 적들로부터 길르앗을 보호하기 위해 얍복 강변의 부누엘에 성을 쌓는다. 외부로부터 오는 적을 대비한 것이다. 그러나 여로보암이 진정 신경을 써야 할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울타리가 되어 주시고 방어막이 되어 주시도록 올바른 신앙을 챙겼어야 했다. 그는 나라의 왕으로 추대받을 만큼 자질이 충분한 듯 보이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신앙의 자질은 엉망이었다.
    
-그렇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보다 자신의 왕권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해 자신만의 생각과 방법에 몰두했다.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있는 한 지금 르호보암에게 등을 돌리고 자신을 왕으로 추대한 이스라엘 열 지파가 언제든지 자신에게 등을 돌려 죽이고 르호보암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염려했다. 절기 때마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나가는 백성들의 모습은 당연히 그런 염려를 가질 수 있게 했다. 남유다가 막지 않는다면 당연히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그래야 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백성들이 율법에 순종하여 사는 삶보다 자신의 왕권 유지에 더 관심이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자신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처음부터 그런 자격이 있었거나 정치적인 지도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자신을 징계의 수단으로 선택하신 것을 잊어버렸다.
    
-이렇게 왕권 유지에만 함몰된 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조급함과 불안감이 하나님의 율법을 외면하게 했다. 그리고 여호와 종교와 가장 유사하게 모방하여 유사 종교를 만들어 낸다. 이스라엘의 최남단 “벧엘”과 최북단 “단”에 산당을 세운다. 십계명을 철저히 무시한 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곳에 두었다. 레위 자손이 아닌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세웠다. 자기 마음대로 8월 15일을 절기로 만들었다.
    
-다윗의 길을 따라 순종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지만(11:38), 자신은 물론 백성들까지 미혹하여 혼합종교의 신봉자로 만들고 만다.
    
    
*지도자나 교인들의 욕심 때문에 자기 부정과 절대 순종을 요구하는 신앙이 자기 맘대로 해도 좋은 기복적인 종교 행위로 전락하지 않을까 늘 주의해야 한다.
    
*나의 신앙이 말씀을 성실하게 따르는 건강하고 올바른 신앙인지, 적당히 나의 안전과 복을 위해 내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 섬기는 “유사 종교”인지 기록된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해, 나의 불안함을 없애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만들어 내는 “여로보암 증후군”이 혹시 있지 않는지 살펴야 하겠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도용하여 “유사 종교”를 만들어 낸 그 마음이 우리에게는 없는지 살피고 살펴야 할 것이다.
    
    
    
*주님, 나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불사하는 현대인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길에 빠지지 않도록 더욱 기록된 말씀을 붙잡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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