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반드시 이루시는 선포된 말씀 [왕상 13:20-34]
 – 2023년 10월 08일
– 2023년 10월 08일 –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은 이유를 불문하고 죄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의 선지자에게 속아 여호와의 말씀을 어겼고, 이에 징벌을 선고받는다. 그는 유다로 돌아가는 길에 사자를 만나 죽임을 당한다. 이 소식을 들은 선지자는 그를 자신의 묘실에 매장한다. 이로써 여호와의 말씀이 성취된다. 여로보암은 이 사건 후에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고 계속 죄를 짓는다. 그의 왕조는 멸망할 수밖에 없었다.
    
벧엘의 노인 선지자는 하나님의 사람을 자기 묘실에 안치한다. 그가 죽으면 자기 뼈를 하나님의 사람 뼈 곁에 안치하라고 자식들에게 명한다(31절). 이 당부는 제대로 이루어졌고, 약 300년이 지나 유다의 요시야 왕(주전 640-609) 때 이와 관련된 사건이 전해진다(왕하 23:15~18). 이때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지 약 100년이 지난 때였다. 요시야는 통치 기간에 우상 척결 운동을 벌였고 벧엘과 북이스라엘의 산당 제사장들의 뼈를 무덤에서 가져다가 우상의 제단 위에서 불살랐다. 이때 벧엘에서 하나님의 사람 무덤과 그 안의 뼈들도 발견되었다. 요시야는 그자가 벧엘 제단에 하나님의 심판을 전달했던 사람임을 알게 된다. 요시야는 그의 행위를 존중하여 그의 뼈를 보존하라고 명했고 그 옆에 있는 벧엘 선지자의 뼈도 그대로 두게 했다.
    
하나님의 사람, 즉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특별한 사명을 받은 사람이다. 매우 권위가 있고 사람들의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은 반드시 그대로 지키고 행해야 했다. 에스겔이나 예레미야 선지자가 인분에 떡을 구워 먹는다든지, 옷을 벗고 다닌다든지, 짐을 메고 다니는 등의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호세아는 바람나서 도망간 아내 고멜을 다시 데리고 와서 살기도 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심판을 받는 일도 있었다. 요나는 바다에 빠져 죽을뻔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자신도 순종해야 했다. 벧엘의 선지자도 이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명령을 두고 하나님의 신탁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시험했다. 이로써 유다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사람은 죽임을 당한 것이다.
    
    
    
1. 하나님의 사람에게 임한 여호와의 심판(20~32절)
벧엘의 늙은 선지자에게 속아 벧엘에서 떡과 물을 먹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여호와의 말씀이 선포된다. 두 선지자의 식사가 마쳐지기도 전에 늙은 선지자에게 임했다. 이처럼 하나님의 즉각적인 대응은 하나님의 사람의 불순종에 대한 진노가 매우 크다는 것을 반증한다. “….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고 돌아와서 여호와가 너더러 떡도 먹지 말고 물도 마시지 말라 하신 곳에서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 네 시체가 네 조상들의 묘실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21~22절)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어기며…, 지키지 아니하고…, 떡을 먹고 물을 마셨으니”라고 직접적으로 모든 명령에 불순종했음을 확인하신다. 이에 대한 징벌은 “조상들의 묘실에 매장되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이는 신명기 28장 26절에 따르면 타지에서 죽거나 시신이 유기되는 등 불순종의 징벌로 죽는 죽음을 가리킨다. 이 말씀을 전달한 후 벧엘의 늙은 선지자는 유다의 하나님의 사람을 위해 나귀를 준비해 준다. 어떤 마음에서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렇게 길을 떠난 하나님의 사람은 가던 길에서 사자에게 물려 죽었고, 그의 시체는 길에 버려진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나귀는 시체 곁에 서 있고, 사자도 시체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24절). 대개 맹수들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허기를 채우기 위한 것임에도 잡아먹지 않고 그 곁에 서 있었다. 분명한 초자연적인 징조였다. 사자가 하나님의 사람을 죽인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내린 심판 선언이 실행된 것임을 드러낸다.
    
    
마침 그곳을 사람들이 지나갔고 이를 보고 성읍의 사람들에게 말했고(25절) 벧엘의 늙은 선지자도 듣게 되었다. 저자는 “그 사람을 데리고 돌아간 선지자”라고 두 번이나(23, 26절) 반복하여 기록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음을 강조한다. 이 소문을 들은 선지자는 죽은 사람은 여호와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사람이며, 여호와께서 그를 사자에게 주시고 그를 찢어 죽이게 하셨다고 말한다(26절).
    
    
늙은 선지자는 이로써 그가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가 벧엘의 제단에서 선포했던 말과 징조들이 여호와로부터 온 것인지, 단지 유다 사람이 벧엘 제단을 비방하기 위해서였는지가 그의 죽음으로 판가름 된 것이다. 늙은 선지자는 타인의 목숨과 운명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 매우 무섭고 위험한 인물이었다. 벧엘의 선지자는 직접 그곳으로 가서 하나님 사람의 시신을 나귀에 싣고 벧엘로 돌아온다. 유다에서 온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므로 살아서도, 죽어서도 유다로 돌아가지 못했다.
    
한편 벧엘의 선지자는 그의 시신을 자신의 묘실에 안치하고 장례를 치러준다. 아들들에게는 자신이 죽거든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옆에 묻어 달라고 부탁한다(29~32절). 그리고 이 죽음을 통해 확인한 사실을 아들들에게 밝힌다. “그가 주님의 말씀을 받아서, 벧엘에 있는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 안에 있는 모든 산당을 두고 외친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 (새번역_32절)
    
    
*유다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으로 벧엘의 제단과 산당들을 향하여 한 말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 죽음을 통해 그가 하나님의 선지자이며 그의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증명하였다.
    
    
    
2. 여로보암의 죄와 멸망 예고(33~34절)
13장을 마무리하면서 여로보암의 죄의 심각성을 밝힌다. 이는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의 심판이 정당함을 깨우치는 것이다. 여로보암은 여전히 죄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미 배역에 대한 심판의 경고를 직접 전달 받았고(2절), 심판의 징조와 그의 손이 말랐다가 회복하는 표적도 목격했었다(3절). 또한 자신에게 심판을 경고한 자가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소식까지 들었다(33절).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불순종하면 반드시 징계하시며, 그가 선언한 말씀을 꼭 이루심을 증명해 주었다. 늙은 선지자의 계략과 유다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벧엘과 단에서 드려지는 제의와 산당들을 매우 싫어하시는 것을 온 이스라엘 백성이 알게 되었다.
    
이것은 여로보암이 돌이킬 기회를 주신 것이었다. 하지만 여로보암은 돌아서지 않는다. 그는 계속 일반 백성 중에 자원하는 자들을 산당 제사장으로 세워 산당 제의를 이어갔다. 하나님께서 직접 선지자를 보내 경고하셨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완전하게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섰고 더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섬기지 않았다. 돌아설 기회를 거절한 여로보암의 집은 결국 하나님께서 여로보암의 집을 땅에서 끊어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신 심판을 고스란히 받았다.
    
    
*여로보암은 나중에 하나님께서 내리실 심판보다 당장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예배를 드리러 가므로 자신의 왕권이 약화할 걱정이 더 컸기에, 단과 벧엘의 제의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본분을 잃어버린 인간은 분명히 나쁜 결과가 올 줄 알면서도 현재의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선택을 한다. 현재의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잊어버린다. 두려움은 우리를 불신앙으로 빠지게 하는 늪과 같다.
    
*본문은 인간이 심판을 목격하거나 경고를 받아도 죄에서 떠나기가 무척 어려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솔로몬도 우상을 숭배하여 불순종하므로 하나님의 경고를 받았었다(11:9~11). 그도 죄의 심각성과 형벌의 엄중함을 숙고해야 했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 거기에는 죄에 대하여 무딘 마음, 교만함, 방심, 합리화, 타협, 미루기 등 여러 이유의 함정들을 피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결국 솔로몬의 불순종으로 인해 그의 아들 대에 이스라엘이 분열되었듯이, 여로보암도 그의 죄로 인해 그의 왕조는 끊어지고 만다(34절). 그가 제사장으로 세운 백성은 그들이 제사한 제단 위에서 자기 뼈가 불태워지는 심판을 받게 된다(왕하 23:16).
    
*왕과 백성의 죄악은 끝내 이스라엘의 멸망을 초래한다(14:14~16). 불순종은 심판에 이른다.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실현된다.
    
    
    
나는?
-죽음으로 심판의 확실성이 드러났다. 유다에서 올라 온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자 심판이 집행되었다. 예고된 대로 돌아가는 길에 사자에게 물려 죽는다. 말씀의 진실성이 입증되었다. 따라서 여로보암과 북이스라엘을 향한 심판의 예언도 반드시 집행될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 말씀의 권위가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다. 심판으로 주님께서 말씀의 권위를 증명하시기 전에 우리의 삶 속에서 말씀에 대해 순종함으로 말씀의 진실함을 증명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하나님 말씀의 진실함 앞에 먼저 반응하고 순종하자. 말씀은 선포된 대로 반드시 이루어진다.
    
-불순종한 하나님의 사람의 죽음으로 말씀을 확실하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이시라면, 축복이든 경고이든 우리에게 주신 말씀도 기어이 성취하시지 않겠는가! 지금도 하나님은 순종하는 이에게는 영생의 복을, 불순종하는 이에게는 심판하심으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확실한지 증명하신다. 나의 말과 행동은 주의 말씀을 진리로 드러내는가? 미덥지 않은 이야기가 되게 하는가?
    
    
-하나님의 사람이 확실히 하나님의 선지자인지, 그가 선포한 심판이 여호와의 말씀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의 불순종을 끌어내 시험한다. 자신의 미혹으로 불순종하여 죽음에 이른 하나님의 사람의 시신을 수습하며 슬피 운다. 그가 하나님께서 보내신 참 선지자임을 알았다. 그가 한 말이 반드시 실현될 것임도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 역시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것처럼 “벧엘에 있는 제단과 사마리아 성읍들의 산당에 하신 하나님 심판의 말씀이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선포한다(32절).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지금도 말씀으로 우리 삶을 인도하고 창조하시고 있음을 믿고 있는가?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 말씀이 나를 새롭게 창조하고 내 생각과 행동을 이끌고 있음을 경험하는 하루를 살아내 보자. 말씀이 나의 삶의 최고와 최종 권위가 되도록 순종하자.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분명한 심판 선언과 징조를 직접 듣고 보았음에도 악한 길을 고수한다. 심지어 일반 백성도 자원하면 누구든 산당의 제사장이 될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명령을 대놓고 어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여로보암의 가문에서는 더 이상 왕이 나오지 못하게 하셨다.
    
-우리의 시대가 혹시 하나님의 말씀을 수종 드는 사역자가 되거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일에 엄격한 기준이나 잣대가 없이 다만 자기가 원하면 언제든 될 수 있고 누구든 될 수 있는 시대는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왕이든 선지자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길은 없다.
    
 
    
    
*주님, 반드시 이루시는 말씀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쉽게 속임받지 않도록 주님의 말씀에 집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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