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르호보암의 죄 [왕상 14:21-31]
 – 2023년 10월 10일
– 2023년 10월 10일 –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통치하는 동안 남 유다도 북이스라엘 못지않게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 그들의 죄악이 조상들이 행한 것보다 더하므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일으켰다. 그들은 하나님이 쫓아낸 가나안 족속의 가증한 모든 일을 따라 산당과 우상들을 만들고 숭배했다. 이들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애굽의 시삭으로 하여금 유다를 공격하게 하신다. 유다는 이 일로 성전과 왕궁의 보물을 다 잃고 애굽의 속국이 된다.
 
르호보암 제5년(주전 926년)에 애굽의 바로 ‘시삭’이 예루살렘을 침공한다. 시삭은 세계사의 기록으로는 쇼셍크/세숑크 1세(주전 945-924)로 알려져 있다. 이집트의 제22왕조의 창시자이다. 그가 유다를 침공한 원인은 비터 호수 근처의 국경 분쟁이었다. 블레셋 지역으로 침공을 시작하여 유다 남부를 거쳐 북이스라엘의 세겜 및 므깃도까지 전진하여 여러 지역을 쳤다. 이때 르호보암은 전면적으로 응전하기보다는 항복을 선택했고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1세도 요단을 건너 도망을 선택했다. 이러한 시삭의 대대적인 원정과 성과는 테베(카르낙) 신전 벽에 기록이 되어있다.
 
 
 
1. 르호보암의 등극과 (유다 백성들에 대한) 평가(21~24절)
21절은 등극 공식이다. 열왕기는 왕들을 기록할 때 등극 공식과 죽음 공식이라는 틀을 만들어 그사이에 중심 이야기를 배치하는 같은 형식으로 기록했다. 유다 왕의 등극 공식에는 “왕의 이름, 다스린 햇수, 수고, 통치 기간, 어머니의 이름”이 기록된다. 어머니의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유다 왕들에게만 해당하였는데, 이는 다윗의 후손들이 왕 위를 계승하였기 때문에 전대 왕의 여러 왕비 가운데서 왕의 어머니의 이름을 남긴 것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종종 반정이 일어났기 때문에 등극 공식에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여로보암과 르호보암의 통치 기사는 공통점을 띤다. 이스라엘의 분열을 현실화하여 가고 있고 두 왕국의 첫 왕들이 계속 불순종함으로써 같이 멸망으로 치닫고 있음을 보여준다. 불순종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의 말씀이 계속 예고 되고 실행되기도 한다. 또 여로보암은 왕의 영적 타락을 직접적으로 기술하나, 르호보암의 통치 기사에는 백성의 영적 타락을 수면에 띄우고 그 아래에서 왕의 책임을 넌지시 묻는다.
 
르호보암은 어리석음과 포악함으로 북쪽의 열 지파의 신임 받을 기회를 날려 버린다. 그는 41세에 왕이 되어 17년 동안 다스렸다. 예루살렘 방비를 위해 유다 남부에 요새 성을 건축하였고(대하 11:5-12), 통치 첫 3년은 북이스라엘에서 이주한 제사장들과 신실한 백성들로 인해 하나님을 따르며 나라를 강성하게 하였다(대하 11:13~17). 하지만 나라가 견고해지기 시작하자 하나님과 율법을 버린다(대하 12:1). 르호보암의 죄와 우상숭배는 암몬 여인이었던 그의 모친 나아마의 영향이었을 가능성이 꽤 크다. 솔로몬이 사랑한 이방 아내 중 하나였다. 다른 아내들처럼 자국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솔로몬을 우상숭배로 이끌었던 여인이었다(11:1~8 참고).
 
열왕기 저자는 왕들을 평가할 때 ‘여호와 보시기에 선했는지 악했는지’로 보았다. 정치, 경제, 군사적인 성공은 평가 기준이 아니었다.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길은 “다윗의 길을 따라 하나님의 율법과 규례를 준수하고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이다. 특이한 것은 유다의 역대 왕들은 왕이 평가 대상이 되는데 르호보암만이 유일하게 백성들이 평가 대상이 되었다. 이는 이미 12장에서 르호보암은 악한 왕으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유다는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되 그 정도가 조상들이 행한 것 중에 가장 하나님을 “노하게” 만들 정도였다(22절). “노하다(카나)”로 번역된 단어는 “질투하다, 시기하다”의 의미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우상숭배에 강한 질투심을 느끼고 분노하신 것이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이는 그들도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음이라” (23절) 라고 밝힌다. 산당은 이방신에게 제사하는 장소이고, 우상은 히브리어 “마쩨바”인데 이를 직역하면 “기둥”이라는 뜻이다. 다른 번역본들은 그래서 “주상”으로 번역한다. 아세라도 아세라 여신을 상징하는 기둥 형태의 신상이었다. “산당과 우상(주상)과 아세라”는 모든 종류의 우상들을 섬긴다는 의미이다. 이는 유다 전체가 우상숭배가 만연했음을 표현한 것이다.
 
또 “남색 하는 자”가 있다고 했는데, 이들은 신전에서 봉사하는 남창들이다. 남자를 상대했는지, 여자를 상대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가나안 땅의 신전에서는 남자 창기와 여자 창기를 두어서 그곳에서 많은 음란 행위를 했다.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런 음란하고 가증한 행위들을 하지 말라고 하셨으나 유다 백성들은 이런 일들을 일반적으로 행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렇게 된 원인은 분명하다. 솔로몬이 이방 여인들을 맞이하게 되면서 이방신들을 들여와 예루살렘에서 섬길 수 있도록 허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죄의 시작은 솔로몬이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관망하지 않으시고 심판을 하신다.
 
 
 
2. 애굽의 시삭이 침략함(25~28절)
이스라엘이 분리되고 난 후 가장 중요한 사건은 애굽의 시삭이 침략한 것이다. 그는 예루살렘까지 쳐들어와서 성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고 솔로몬이 만든 금방패를 모두 빼앗아 갔다(25~26절). 솔로몬 때는 애굽과 결혼 동맹을 통해 좋은 관계를 유지했지만, 솔로몬 왕 후반기에 시삭이 바로가 되면서 적대적인 관계로 돌아선다. 이 때문에 여로보암이 자신을 죽이려는 솔로몬을 피해 애굽으로 도망하여 살 수 있었다. 시삭은 솔로몬이 죽고 이스라엘이 분열되면서 국력이 약화하자 유다를 침략하여 솔로몬의 부의 상징이었던 호화로운 물건들을 모두 약탈해 갔다.
 
이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혜 아래 누렸던 부와 영화를 하나님께서 모두 거두어 가셨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하나님만 의지하는 자에게는 지혜와 부와 영화와 평강을 주셨지만, 은혜를 잊고 돌아선 사람에게는 그것을 모두 거두어 가신다. 르호보암은 어리석게도 나라도 나뉘고 모든 부유함과 평화도 빼앗긴 것이다.
 
솔로몬 치세의 성공이 르호보암의 치세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보다 자신과 솔로몬이 남겨둔 부와 영화를 더 의지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 교만함이 자신이 의지하는 것을 모두 빼앗기는 심판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치와 허영의 삶의 태도는 모든 것을 빼앗긴 뒤에도 개선되지 않았다. 르호보암은 빼앗긴 솔로몬의 금 방패를 대신하여 비슷한 놋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 대장에게 주었다(27절). 철저하게 쇠락한 국력이었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고 예전에 행하던 의전을 버리지 못한다. 솔로몬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시위하는 자(경호하는 자)가 금 방패를 들고 의전을 했지만, 시삭에게 금 방패를 모두 빼앗긴 후에도 놋 방패를 만들어 동일하게 의전하도록 한 것이다. 르호보암의 허세가 씁쓸하다.
 
 
 
3. 죽음 공식(르호보암의 죽음_29~31절)
열왕기 저자는 왕의 죽음을 기록하는 데 몇 가지 공통적인 공식을 사용해서 기록했다. 먼저, ‘남은 사적은 다른 책에 기록되어 있다’라는 것이고, 둘째는 ‘기타 사건을 요약적’으로 언급한다. 셋째는 ‘매장’에 대한 언급을 하고, 마지막에 ‘후계자의 이름’을 언급한다.
 
르호보암의 경우에는 유다 왕이므로 ‘유다 왕 역대지략’에 남은 사적들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29절). 이는 저자가 유다 왕들의 일대기를 기록해 놓은 사료들을 참고하여 열왕기를 기록했을 것이라는 추론의 근거가 된다. 르호보암 생애 때의 기타 사건은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있었던 적대적인 관계였다(30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르호보암에게 통치 초기 갈라진 북쪽 열 지파를 복속하기 위해 동원령을 내렸지만 “전쟁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셨었다. 그런데 르호보암의 통치 때 크고 작은 분쟁들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우상을 숭배하는 죄뿐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조차 쉽게 불순종하는 모습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르호보암은 그 조상들과 함께 다윗성에 장사 되었다(31절). 이는 그가 비교적 평안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는 의미이다. 여로보암의 가문과 비교하였을 때 다윗 왕가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을 알 수 있다.
 
다윗의 통일왕국의 이스라엘이 솔로몬의 죄악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계로 르호보암 시대에 유다와 이스라엘로 나뉘었고, 두 나라 모두 영적으로 매우 부패한 상태가 되고 말았다. 이 모든 죄악의 시작은 솔로몬이었다.
 
 
 
나는?
-남 유다도 우상숭배가 만연해지고 가나안화 되고 말았다. 이렇게 된 원인은 솔로몬이 이방 여인을 사랑한 죄로부터 시작되었다. 그의 아들 르호보암의 때에 이르러 솔로몬이 물려준 권력과 부요함에 취하여 교만과 오만 속에 즉위한다. 결국 나라는 둘로 분열되고 유다와 베냐민 지파만의 소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이만으로도 충분히 교훈이 돼야 했는데 그 어느 시대보다 더 “지독하게” 우상을 숭배하였다. “산당과 우상(주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고 신전 창기들도 등장했다. 르호보암은 유다가 급속하게 타락해 가는 것을 방관하며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오히려 암몬 출신의 어머니(나아마)의 영향으로 숭상 숭배의 전도자로 살아간다. 이스라엘에 이어 남 유다도 다를 바 없는 급속한 타락이 전반적으로 일어났다.
 
-하나님께서 쫓아내라 하신 가나안 사람들의 행태를 그대로 따르고 만다. 교회 안에 세상의 행태가 만연해 있다면 경각을 가지고 쫓아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남을 당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물질 만능이 아니라 하나님 주권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 세상이 추구하는 성공과 쾌락이 아니라 순종과 절제의 삶을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세상에 물든 교회가 아니라 세상을 거룩한 말씀으로 물들이는 교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 세대는 다음 세대를 선교 전략의 대상으로 보아야 할 시대가 되어 버렸다. 교회가 세상의 가치에 흠뻑 젖어 있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부터라도 구별하고 구별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를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야 한다.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복음의 의지를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세워진 “산당과 우상(주상)과 아세라 상”에게 더 이상 영적 터전을 내어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 사람이 마지노선의 심정으로 직면해야 할 것이다.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과 남창들에게 잠식당한 하나님의 땅을 하나님께서 친히 심판하신다. 하나님이 축복으로 주신 성전과 왕궁, 창고에 가득 쌓여있던 금과 진귀한 보물들이 예루살렘을 지켜주지 못했다. 도리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자 애굽의 시삭은 힘들이지 않고 자유롭게 모조리 빼앗아 간다.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예루살렘 지켜주심을 포기하셨다. 이렇게 빼앗긴 금 방패 대신 놋 방패를 만들어 사용하지만, 그것이 르호보암과 유다를 지켜주지 못한다.
 
*르호보암은 놋 방패를 만들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가는 일에 최선을 다했어야 했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을 유지하려고 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든든히 세워가기 위해 돌아와야 했다. 그런데 쓸데없이 놋 방패만 만들고 있으니 평화로울리 있겠는가?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여로보암과의 전쟁이 그치지 않은 것도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 보다 이전에 누리고 있다가 잃어버린 것에만 마음이 팔렸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떠난 우상 숭배의 죄악은 유다의 평화를 빼앗아 갔다. 애굽의 시삭의 침략 뿐 아니라 북이스라엘과도 평화하지 못했다.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 항상 전쟁했다. 비록 가라졌지만 둘 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제사장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경쟁하듯 하나님을 떠나 악한 길로 치달았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짐을 무겁게 하면 자신의 통치에 복종할 줄 알았다. 그러다가 나라가 분열되었다. 또한 우상을 섬기면 자신의 통치에 좋을 줄 알았다. 부지런히 “산당과 우상(주상)과 아세라 상”을 세워나갔다. 그러나 솔로몬의 영광이었던 부함을 빼앗기고 만다. 나의 삶의 영광과 수치는 한 끗 차이에서 갈라진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에게만 충성하고 섬기느냐, 우상도 함께 섬기느냐의 차이이다.
 
*공교롭게도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은 하나님과 우상을 함께 섬기면서 자신들의 영광을 바랐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신을 존중하는 자를 존중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을 무시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고 만다. 이 일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어야 한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며 나아갈 때 나의 걸음을 책임지신다.
 
 
 
*주님, 르호보암의 어리석음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하였습니다. 자기 힘과 지혜와 권력이면 충분히 잘해 낼 수 있으리라고 여기는 교만이 패망을 불러왔습니다. 솔로몬의 영광 속에 취해 있다가 진정한 영광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그 길을 답습하지 않도록 늘 깨우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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