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바아사와 엘라, 시므리로 이어지기까지…. [왕상 15:33-16:14]
 – 2023년 10월 14일
– 2023년 10월 14일 –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아들 나답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제2대 왕조를 시작했다. 하지만 여로보암이 걸었던 죄악의 길에서 떠나지 않았다. 여호와의 심판 말씀이 바아사와 그 가문에도 전달되었다. 후에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르지만 병거 지휘관인 시므리에게 암살당한다. 시므리가 바아사와 관련된 모든 이를 진멸함으로써 바아사 왕조는 막을 내린다. 여호와의 말씀이 이처럼 계속 성취된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이 등장하여 다윗 왕조를 이어가는 유다와 달리, 북이스라엘의 나답은 여로보암의 길을 따른 죄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바아사 역시 여로보암 가문의 모든 사람을 죽이고 새 왕이 된 후 여로보암의 길을 따를 것인지 하나님의 명령을 따를 것인지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1. 바아사 왕 이야기(15:33-16:7)

15:33~34절은 바아사의 등극 공식과 그의 통치 평가이다. 바아사는 유다 왕 아사 셋째 해에 디르사에서 왕위에 올라 24년 동안 다스렸다. 디르사는 벧산으로 가는 길에 있고 고도가 적당하고 마르지 않는 급수원이 있었다. 북이스라엘은 반란이 많이 일어났기에 어머니에 대한 소개는 없고 아버지에 대한 소개만 있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는데,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고 백성들을 죄짓게 만든 죄를 그대로 답습하였다. 바아사는 여로보암의 집을 진멸시키고 왕이 된 것이 자기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16:1~4절은 바아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하나니의 아들 예후에게 임했다. 선지자 예후를 통해 꾸짖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를 꾸짖는 이유를 2절에서 밝힌다. 먼저 교만이다. 하나님께서는 바아사를 “티끌(아파르)”에서 들어 올리셨다고 했다. 바아사가 왕이 될 가문이나 배경, 조건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다. 그의 반란의 동기가 명확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역사심이 있었다는 의미다. 바아사를 통해 여로보암의 집을 진멸하신 것은 여로보암이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백성이 섬기도록 한 죄 때문이다. 바아사는 이 점을 잊어 버렸다. 자신의 반란 성공이 여로보암의 가문을 심판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인식하지 못했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바아사의 집 역시 여로보암의 집처럼 쓸어버리겠다고 하신다(3~4절). ‘성안에서 죽은 자는 개들이, 들에서 죽은 자는 하늘의 새들이 먹을 것’이라는 저주였다. 이는 삶뿐만 아니라 그들의 죽음조차 하나님의 저주 아래 놓이게 되는 무서운 형벌이었다. 이 벌은 여로보암의 가문이 받은 형벌보다 더 중하다. 분명히 여로보암의 길을 따르는 것이 죄라는 것과 그 결말을 알고도 지었기 때문이다.

 

5~6절은 바아사의 죽음 공식과 엘라의 등극 공식이 이어진다. 바아사의 죽음 공식은 이스라엘의 다른 왕들과 같다. 바아사는 평안히 조상들의 무덤에 묻힌다. 하지만 예후의 심판 예언이 다시 한번 반복되어 기록된다. 이는 24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것이 바아사를 평가하는 데에 중요한 기준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의 뒤를 이어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오른다.

 

 

 

  1. 시므리 등극 공식, 반란과 죽음 공식(7~14절)

엘라는 2년 동안 왕 위에 있었다. 비교해 볼 것은 남 유다의 아사 왕이 41년간 평탄하게 통치하는 동안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나답-바아사-엘라-시므리-오므리-아합까지 모두 일곱 명의 왕이 바뀐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9~13절은 시므리의 반란을 기록한다. 엘라에 대한 평가는 다른 왕들과 비교하여 심판이 이루어진 후에 언급된다(13절). 엘라의 이야기는 시므리의 반란 사건에 묻힌다. 엘라는 왕궁 맡은 자 ‘아르사’의 집에서 연회 중일 때 그의 군대 장관 시므리가 왕을 반역한다. 엘라는 자신이 가장 신뢰하는 측근의 집에서 가장 신뢰하던 신하 중의 하나인 군대 장관 손에 죽었다. 아르사와 시므리가 협동하여 엘라를 제거한 것이다. 시므리는 1년 조금 넘게 왕위에 있던 엘라를 반역하면서 그의 집안 모든 사람을 죽인다. 남자들은 친척이든, 친구이든 모두 죽인다. 혹시 모를 반역의 씨앗을 완전히 자르려는 의도이다. 열왕기 저자는 이 반란은 선지자 예후를 통해 바아사의 집에 말씀하신 것을 성취한 것이라고 평가한다(12절). 바아사와 엘라는 “헛된 것들로 여호와의 노를 일으켰다”라고 말한다. ‘헛된 것’은 우상과 산당과 아세라 상을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왕들이 이런 것을 만들어 백성들이 섬기게 된 것에 대단히 화를 내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잘 인도하라고 세운 왕들이 하나님이 아닌 우상에게로 인도한 죄에 대하여 진멸이라는 가장 무서운 방법으로 단호하게 물으신다.

 

14절은 시므리의 죽음 공식이다. 다른 왕들에 비해 매우 간략하다. 조상의 묘실에 안장되었다는 기록이 없는 것은 4절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반란을 당해 그의 가족이 모두 죽었기에 그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했다는 기록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 선언은 확실하게 성취되었다.

 

 

 

나는?

-심판의 도구를 심판하셨다. 여로보암의 집에 내린 심판을 집행한 바아사는 그의 아들 때에 똑같은 심판을 받아 진멸되고 만다. 그 집 남자들의 시신을 성읍에서는 개가 들에서는 새가 먹을 만큼 방치되었다. “티끌에서 왕의 자리로” 올라갔으나 그 은혜를 망각하고 유일하신 참 왕의 말씀을 가볍게 여긴 교만이 왕의 집을 왕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한 것이다. 진토에 묻히지 못할 만큼 비참한 자리로 떨어뜨린 것이다.

 

-지도자는 내가 한 경고가 내게로 다시 돌아오지 않도록 날마다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고 성찰해야 할 것이다.

 

 

-바아사에게서 엘라에게로 떠나지 않는 죄의 연결이 안타깝다. 미천한 신분 출신 바아사는 나답을 반역하여 주권자가 되었다. 악한 왕을 심판하는 도구로 사용되었으나 정작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심판받는 왕으로 남는다. 여로보암과 나답의 길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고 겸손하게 백성들을 섬기는 왕이 되어야 했지만, 쾌락과 번영을 부추기는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하기를 택했다. 권력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자기도 백성들도 더 좋아했기 때문이다.

 

 

-엘라는 아버지 바아사에게 내린 경고를 몰랐을 리 없었을 텐데 그의 길을 고수했다. 아버지를 통해 여로보암 가문이 멸절하는 것을 보고도 말씀을 무시한 것이다. 결국 엘라는 백성들이 블레셋과의 전쟁에 참전하고 있을 때 가장 친근한 이의 집에서 마시고 취해 있다가 고작 2년 만에 시므리에게 암살당하고 만다. 단 2년간의 왕권에 취해 살다가 자기 가문과 함께 영원을 잃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대리 통치한 왕이었지만 저자는 그에 대한 신학적인 평가마저 생략할 정도로 무의미하고 헛된 인생을 살았다.

 

 

*역사 속에서 북이스라엘 앞에는 늘 두 길밖에 없었다. “다윗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이다.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살아야 하는 다윗의 길을 걸어야 할 왕들은 하나같이 여로보암처럼 우상을 숭배하고 가나안 문화에 취해 살아갔다. 나답에게 반역하고 왕이 된 바아사나, 엘라를 암살하고 왕위에 오른 시므리나 하나같이 여로보암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악행을 이어받았다.

 

*역사를 통해 배우며 발전과 진보를 이루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다. 특히 영적인 성숙은 역사를 통해 배우기가 쉽지 않다. 북이스라엘은 왕들이 바뀌면서 더 깊은 타락 속으로 침몰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선 줄로 아는 자는 넘어질까 주의하라”는 성령의 음성을 늘 들어야 한다.

 

*바아사는 “티끌(진토)에서 왕의 자리로” 올라갔지만, 세워주신 하나님의 뜻과 은혜를 망각한 채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겼다. 교만한 그의 집은 다시 왕의 자리에서 끌어내려져 진토에도 묻히지 못할 만큼 비참한 자리로 떨어진다. 오늘 내가 쓰임 받는 은혜를 다윗의 길로 걸으며 간직하지 못하면 내일도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님, 점점 여로보암의 길이 단단하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다윗의 길에 잡초가 무성하고 그 흔적을 찾아보기도 어렵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하나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지금 일어나는 하나님의 심판 징조가 그래서 예사롭지 않습니다. 더욱 다윗의 길을 정비하며 올바르게 걷겠습니다. 후손들을 위해 분명한 길을 남겨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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