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의 나라에서 바알의 나라로 [왕상 16:15-34]
 – 2023년 10월 15일
– 2023년 10월 15일 –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는 왕들이 북이스라엘에 계속 일어난다. 그만큼 북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은 가까워져 온다. 분열 왕국 이래 60년이 채 안 되어 이스라엘에는 여로보암, 바아사, 시므리, 오므리로 이어지는 왕조들로 바뀌었다. 제4왕조를 시작한 오므리와 아합은 그 어떤 왕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다. 특히 아합은 아내 이세벨의 영향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였고 그들의 제단과 우상들을 만들어 섬겼다. 우상숭배를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려 여호와의 노를 부추겼다.
 
여로보암의 죄가 북이스라엘에 이어지면서 이스라엘 왕정은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전 왕가의 사람들은 진멸 당하는 것이 반복되었다. 이스라엘 왕가에서 일어나는 반란과 진멸은 모두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긴 것과 백성들도 그 죄에 동참하게 만든 죄 때문이다. 하나님을 잘 섬긴 아사 왕이 41년 동안 평안하게 왕위에 있는 반면에, 이스라엘 왕국은 계속해서 반란이 일어난다.
 
 
 
1. 시므리 왕의 이야기(15~20절)
시므리는 바아사의 아들 엘라를 죽이고 유다의 아사 왕 27년에 이스라엘 디르사에서 7일 동안 역사상 가장 짧은 왕으로 등극했다. 그가 왕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깁브돈을 블레셋의 손에서 회복시키기 위해 전쟁 중이었다. 시므리의 반란 소식이 진중에 알려지고 이에 반발한 백성이 오므리를 왕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에 두 왕이 생긴 것이다. 백성의 지지를 받은 오므리는 깁브돈에서 군사를 이끌고 디르사를 함락시킨다. 이를 본 시므리는 왕궁 요새로 들어가서 왕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죽는다.
 
7일 천하를 이룬 짧은 왕이었지만 저자의 평가는 단호했다. 그도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고 범죄 하였다.” 반란으로 왕이 되었지만 종교 개혁을 하지 않고 여로보암의 길을 답습한 것을 지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반란을 통해 왕조를 세우시고 진멸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을 여호와께 돌아오도록 만들기 위한 기대 때문이었다. 그러나 반란을 통해 왕이 된 시므리는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
 
 
 
2. 오므리 왕 이야기(21~28절)
오므리 왕의 이야기는 다른 왕들의 이야기와 다른 형식을 갖는다. 등극 공식 이전에 정적을 제거하는 이야기부터 등장한다. 오므리는 시므리가 죽자 곧바로 왕이 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 안에 내분이 생겼다. 오므리를 지지하는 백성과 디브니를 지지하는 백성으로 나뉘었다. 둘 사이에 심각한 내전이 있었다. 두 번의 전쟁을 치르고서야 오므리를 추종하는 백성이 승리를 거두었다. 유다 아사 왕 27년에 시므리가 반역을 일으키고 7일 만에 죽었고 아사 왕 31년에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으니 4년 동안 내전이 있었던 셈이다.
 
결국 승리한 오므리는 왕이 되어 12년을 다스린다. 그의 가장 큰 업적은 “사마리아 천도”이다. 은 두 달란트로 세멜이라는 사람에게서 사마리아 산을 사서 6년 동안 성읍을 건축하고 그곳에서 6년을 다스린다. 오므리 왕에 대한 평가도 역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25절). 그 악은 그 전의 모든 사람보다 악했는데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갔고 백성들도 이를 따르게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노하시게 하였다.”(26절).
 
이스라엘의 왕조가 바뀌었어도 여로보암의 통치 방식을 따르는 것이 변하지 않았다. 또 두로와 동맹을 맺기 위해 아들 아합과 공주 이세벨을 결혼시켰다. 철저한 바알 숭배자인 이세벨을 며느리로 삼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악한 것으로 평가 받는다.
 
*열왕기는 오므리에 대하여 간략하게 기록하지만, 고대 근동 문헌에서 그는 정치, 외교적으로 이스라엘의 모든 왕 중에서 뛰어난 인물 중의 하나로 평가된다. 그는 반복되는 반란의 시대를 종식하고 이스라엘을 강력한 왕권 아래로 통합시켰다. 이리하여 사마리아 천도가 이루어진 것이다. 상업적, 군사적인 요충지인 사마리아를 수도로 세워 이스라엘을 재정비하였다. 당시의 강대국 아람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남 유다와의 전쟁도 정략적으로 중단하였다. 모압의 석비에 따르면 오므리왕은 모압 북쪽을 공격하여 그들을 굴복시켜 조공을 받아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오므리왕의 능력을 인정한 앗수르 사람들은 그들의 기록에서 이스라엘을 “오므리왕의 땅”이라고 불렀다. 이와 같은 혁혁한 공에 대하여 열왕기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오직 그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았느냐만 평가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그는 “악한 왕”이다.
 
그의 죽음 공식은 별다른 것이 없다. 이전의 왕들과 동일하게 기록되고 다만 엘라나 시므리와 비교되는 것은 평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수고 사마리아에 안장되었다고 기록한다. 그의 아들 아합이 왕위에 오르면서 “오므리 왕조”가 시작되었다.
 
 
 
3. 오므리 왕조_아합왕 등극 이야기(29~34절)
유다 아사 왕 38년에 왕위에 올라 사마리아에서 22년 동안 다스렸다. 오므리 왕가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긴 통치 기간을 가지고 있다. 아합은 예후의 28년 통치 기간 다음으로 긴 기간을 통치했다.
 
아합에 대한 평가 역시 “그의 이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였다.” (30절). 같은 평가를 받은 오므리에게는 평가 이유에 대해 기록이 남겨져 있지 않지만, 아합은 31절부터 그의 부정 평가 이유에 관해 설명한다.
 
첫째,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과 결혼하고 바알을 섬기며 예배하였다. 이러한 모습을 “여로보암의 죄를 따르는 것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가볍게 여겼다”라는 것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여로보암의 죄는 하나님을 섬기되 자기의 방법으로 우상 숭배하며 섬긴 것인데, 아합이 이것을 가볍게 여겼다는 것은 형식적이라도 남아 있던 여호와 종교에서 완전히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여호와를 완전히 떠나 바알 신에게 제사하고 절하며 경배하였다.
 
*31절에서 아합과 이세벨이 바알을 섬겼다고 언급하는데, 이세벨이 이스라엘 전역에 퍼뜨린 바알은 “멜카르트”라는 두로의 주신이다. 통상 구약에서 바알이라고 불리는 가나안 신 하다드와 다른 신이다. 바알 멜카르트는 메소포타미아의 신으로 저승 세계의 주인인 네르갈과 루에는 그리스의 신 헤라클레스와 동일한 존재로 여겨진다. 주전 6세기의 비문 “비르 하다드”의 기록에는 멜카르트는 전사 신이지만 그의 활동이 구약 시대의 신화에 등장하지 않는다. 후대의 문헌에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신으로 나타나는데, 불로 다시 생명을 얻는 것으로 여겨졌다. 학자들은 두로의 공주인 이세벨은 왕의 딸로서 민족신 바알 멜카르트의 여대제사장의 지위를 누렸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둘째,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을 만들고 제단을 쌓고 아세라 기둥도 세웠기 때문이다. 이것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만들고 여호와를 위한 제단을 만든 것과 비슷하다. 아합은 여호와 대신 바알과 아세라를 선택하고 섬긴 것이다. 그는 바알을 섬기는 시돈의 공주 이세벨과 결혼하여 여호와 제의는 버리고 바알 제의를 이스라엘의 공식 종교로 삼았다. 여호와에게서 완전히 돌아섰다는 것이다.
 
셋째,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기 때문이다. 34절은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했지만, 터를 닦을 때 그의 장자 아비람이 죽었고, 성문을 세울 때는 막내 아들 스굽이 죽었다. 이것은 여호수아를 통해 하신 말씀인 여호수아 6:26의 선포가 성취되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하게 하여 이르되 누구든지 일어나서 이 여리고 성을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그의 맏아들을 잃을 것이요 그 문을 세울 때에 그의 막내아들을 잃으리라 하였더라.” 히엘은 장자를 잃고도 계속 성을 지었고 막내 아들까지 잃는 비극을 자초했다.
 
이스라엘 사회가 여호와에게서 완전히 돌아선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시인데, 기록된 저주의 말씀을 알지 못했거나, 알고 있었어도 아합처럼 “가볍게 여김”으로 저주를 자초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가 이 정도였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여리고성을 짓다 두 아들을 잃은 히엘의 이야기가 자신들을 향한 강력한 경고인 것을 깨닫지 못했다. 이런 경고를 무시하면 비극을 겪게 될 것을 미리 보여 주셨으나 깨닫지 못했다. 아합은 히엘처럼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징벌을 받게 되었다.
 
 
 
나는?
-반역에는 성공했지만, 인생은 실패한 시므리이다. 술 취한 엘라를 손쉽게 죽이고 왕이 된 시므리의 세상도 7일 천하로 끝난다. 반역의 때를 잘 포착하여 기회를 놓치지 않는 시므리였지만 백성의 마음은 사로잡지 못했다. 손 쉽게 왕이 된 그는 결국 스스로 생명을 끊고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야 했다. 원하는 것을 어찌 어찌하며 해결할 듯 했지만, 인생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세상에서는 빛나는 평가를 받았지만, 성경 매우 처절하게 평가했다. 오므리는 사마리아 천도, 모압 평정 등을 통해 옛 다윗과 솔로몬의 강력한 영향력을 어느 정도 회복을 시켰다. 현존하는 모압의 비문에는 아합의 업적을 기록하고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오므리왕의 땅”으로 부를 만큼 그 영향력은 지대하였다.
 
-그는 현존하는 모압의 비문이 그의 업적을 기록하고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오므리왕의 땅(집)”으로 부를 정도로 안정되고 부강한 나라를 형성 했으나 저자는 그를 악을 행한 왕이라고 평가한다. 자신의 나라를 세우는데 막대한 돈과 열정과 재능을 쏟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는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나의 삶이 어떠한지 평가된다는 것을 절대 잊지 않아야 한다.
 
-세상에서 선명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길로 가는지로 우리를 점검시켜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꺼리를 준비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아합의 때, 이스라엘의 영적 부패는 극에 달했다. 바알 숭배자 시돈 사람 이세벨과 정략적인 결혼 이후 사마리아에 바알 신전까지 만들어 숭배한 것이다. 아세라 상도 세웠다. 바알의 나라가 되어 버렸다. 내적으로 단 한 건의 반란도 없었고 정치, 경제적으로 전례 없는 번영을 이룩하며 국제 관계도 안정되었으나 이스라엘 역사 내내 기억되던 “여호수아의 경고(수 6:26)”가 무시될 만큼 아합의 시대는 왕과 백성할 것 없이 총체적으로 부패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았다.
 
 
 
*주님, 유례없는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들리지 않는 아합과 같은 삶이 아니기를 간구합니다.
*주님, 하나님의 나라에서 바알의 나라로 변질된 아합의 시대에 한숨이 나옵니다. 나의 나라가 이런 길을 걷지 않도록 긍휼을 베풀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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