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불의 응답보다 산꼭대기에 올라 엎드려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기까지 [왕상 18:30-46]
 – 2023년 10월 20일
– 2023년 10월 20일 –

엘리야와 아합이 만나서 누가 이스라엘에 재앙을 가져온 자인지에 대한 설전을 벌였다. 이어 엘리야와 바알 전지자의 대결이 이어졌다. 결국 바알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제 엘리야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낸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맞선 엘리야는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다. 제단 주변에는 도랑을 팠으며, 제물 위에 물을 열두 통 쏟아붓는다. 도랑이 가득 찼다. 겉으로 보기에는 쉽게 불이 붙지 못하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엘리야가 간곡하게 기도하자, 하나님은 즉각 불을 내려 제물과 모든 것을 다 태우셨다. 이를 목격한 온 백성은 여호와가 참 신임을 고백했다. 이어 거짓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한다. 엘리야의 기도가 이루어지면서 폭우가 쏟아진다. 기도의 응답과 함께 비를 내리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1. 엘리야가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다(30~31절)

바알 선지자들이 불 내리기를 실패하자, 엘리야는 백성을 향하여 자신에게 가까이 오라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21절에서는 엘리야가 백성에게 다가갔다. 백성들이 엘리야의 말대로 아직 여호와와 그를 신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이 변했다. 백성이 바알 선지자들의 실패를 지켜보았다. 엘리야의 말과 그의 선지자적인 권위를 인정한 것이다.

 

엘리야는 제사를 드리기 전에 파괴된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한다(30절). 아합과 이세벨은 바알을 국가 종교로 숭배하면서 마치 산당을 없애듯이 여호와의 제단을 파괴한 듯하다. 갈멜산의 제단도 파괴된 제단 중의 하나였다. 파괴된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은 것은 여호와 신앙을 재건하는 상징적인 행동이다. 엘리야는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열두 개의 돌을 가져다 제단을 재건했다. 엘리야가 백성이 지켜보는 앞에서 야곱과 그에게서 나온 열두 지파를 언급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기원이 무엇이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누가 주었는지 백성들로 알게 하기 위함이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택하셔서 민족을 만드시고 세우신 나라이다.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면서 이를 일깨운 것이다.

 

 

 

  1. 제물을 준비하는 엘리야(32~35절)

제단을 쌓은 뒤 제단을 돌아가며 두 세아(대략 30리터)의 물이 들어갈 도랑을 팠다. 제단 위에 나무를 벌여놓고 그 위에 송아지의 각을 떠서 올렸다. 그 위에 네 통의 물을 가득 채워 붓기를 세 번 반복했다. 모두 열두 통의 물을 제단 위에 나무와 제물들에 부은 것이다. 물이 얼마나 흥건했는지, 제물을 적시고 남은 물이 제단을 두루 흐르고 도랑에도 가득 찼다. 제단을 재건할 때 열두 개의 돌을 취했듯 제단과 제물을 적실 때도 열두 통의 물을 부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이다. 흠뻑 적셔지고 도랑에 물이 가득 차게 한 것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권능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는 450명의 바알 선지자와 400명의 아세라 선지자가 있었다. 그들이 만에 하나 목소리를 높여 우연한 일이라고 왜곡하고 선동하면 엘리야 혼자서 그들의 주장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850:1의 싸움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아니 방관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합하면 북이스라엘 모든 사람과 엘리야 홀로 대적하며 싸우고 있다. 다른 말이 나오지 않도록 아예 흠뻑 적시고 도랑에 물이 가득 차 넘치도록 부은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그래도 엘리야는 조금의 염려도 없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이었다.

 

 

 

  1. 여호와께 기도하는 엘리야(36~37절)

모든 준비를 마친 후 저녁 소제 드릴 때, 바알 선지자들이 응답받는 일에 실패한 후에 엘리야가 여호와께 기도하기 시작한다. 기사가 진행되면서 처음으로 엘리야를 “선지자”라고 부른다. 공식적으로 백성 앞에서 여호와의 선지자로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 선지자들의 고함과 광란의 춤과 자해하며 뛰는 과격하고 혼란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오직 큰소리로 기도했다.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드러내기 위해서 요란스럽게 할 필요 없다.

 

엘리야는 여호와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부른다. 이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기나긴 역사와 언약 관계를 상기시킨다. 백성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과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아서 한 일인 것을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이 백성이 여호와가 하나님이며 그들의 마음을 돌아서게 만드는 분임을 알게 하는 것이라고 기도한다.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을 요청한 이유(목적)가 드러났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인 것을 알리고 이를 통해 백성의 마음을 여호와께 돌이키기 위해(37절)”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기적을 베푸신 이유는 분명하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 출애굽 때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구약에서 모세 다음으로 이적을 많이 베푼 선지자들이다. 이는 그들이 활약하던 아합 왕 시대가 영적으로 가장 어둡고 여호와 신앙이 가장 약했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에게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통해 많은 이적을 베푸신 것이다.

 

 

 

  1. 불로 응답하신 여호와, 비를 내리신 여호와(38~46절)

엘리야의 기도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까지 모두 핥아버렸다. 이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놀라 엎드리며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고백한다. 백성이 여호와를 인정하자 엘리야는 지체하지 않고 바알의 선지자를 모두 잡아들였고 그들을 기손 시내로 데리고 가서 모두 죽였다.

 

하나님의 기적을 맛본 이스라엘 백성의 놀라운 변화였다. 그동안 백성은 여호와와 바알 사이를 왔다 갔다가 하면서 갈피를 잡지 못했다. 하지만 바알의 실패와 여호와의 놀라운 권능을 본 백성은 그들이 선지자로 섬기던 바알 선지자들을 자기 손으로 잡아 엘리야에게 데리고 와서 그들을 죽이는 데 동참한 것이다. 엘리야는 그들을 모두 죽임으로 바알과 여호와의 전쟁에서 여호와께서 승리하셨음을 드러내고 바알 숭배를 척결한다. 바알 선지자를 죽인 것은 이스라엘 땅에서 바알을 몰아내기 위한 종교개혁의 일환이었다. 이것은 또한 신명기 13:1-11을 통해 선포된 이방신을 따르려 하는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는 명령에 순종한 것이다. 한편 아합은 엘리야의 행동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었는데 그도 역시 여호와의 권능을 보는 순간 여호와와 엘리야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것이다.

 

 

이 놀라운 일을 행한 후 엘리야는 아합에게 큰비가 올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올라가서 먹고 마시라고 명령한다. 여호와의 징벌이 끝났다는 선언이다. 그렇게 아합을 보낸 후에 사환 하나를 데리고 산의 꼭대기로 올라간다. 그곳에서 엎드려서 간절히 하나님께 구한다. 그리고 바다 쪽을 보고 구름이 있는지 확인하라고 한다. 사환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자 일곱 번까지 더 가라고 명령하고 그곳에서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엘리야는 곧 엄청난 폭우가 올 것을 예상했다.

 

아합이 비로 인해 이스르엘로 가지 못하는 것을 방지하고 자신도 이스르엘로 올라가기 위해 출발한다. 그때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자, 마차를 타고 먼저 출발한 아합을 따라잡고 이스르엘까지 마차 앞에서 달려갔다. 이는 말보다 더 빠르게 엘리야가 달렸다는 의미이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힘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을 잊지 않도록 경고한 것이다.

 

가뭄으로 고생하던 이스라엘에서 바알의 선지자를 제거하면서 비가 오기 시작하고 백성들은 여호와의 권능을 통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알기 시작했다.

 

 

 

나는?

-갈멜산에서의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열두 돌을 세워 무너져 있던 여호와의 제단을 다시 쌓았다. 갈멜산에서의 대결 목적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방치된 여호와의 제단은 백성들의 무너진 신앙 양심과 단절된 여호와 신앙 전통, 잊힌 언약을 바로 보여준다.

 

-눈에 보이는 우상을 척결하기 전에 그 우상에 빠져 만들었던 황폐하여진 마음의 제단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마음이 먼저 하나님께 돌아서야 삶 속에서 영적인 질서가 세워진다.

 

 

-엘리야의 하나님의 응답하심을 확고하게 믿었다. 네 개의 통에 물을 채워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되 세 번이나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자 제단과 번제물과 나무들에 물기가 가득하고 흘러내린 물이 도랑을 가득 채웠다. 제물을 태우는 것을 매우 어렵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불이 임하는 것이 결코 눈속임이 아니라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주려고 한 것이다.

 

-나의 삶의 약한 데서 더욱 주의 능력이 드러나는 법이다. 나의 강함보다 약함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랑하며 더 오래도록 더 신뢰하는 기회와 통로로 삼아야 한다. 내가 약할 때 주님은 더욱 강함으로 역사하신다.

 

 

-자기가 만든 신에게 자기 열심만으로 자기 뜻을 구한 바알 선지자들과 달리 엘리야는 제단에 불을 내려 주심으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과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것과 하나님께서는 백성의 마음을 돌이키시는 분이심을 증명해 달라고 기도한다.

 

-바알 선지자들보다 짧은 기도, 그들보다 소란스럽지 않고 더 열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간구하는 기도임이 틀림없었다. 하나님을 향한 확신 있는 신뢰 말고는 엘리야에게 유리한 것이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응답하셨다.

 

 

-엘리야는 비를 주신다는 약속을 믿었기에 일곱 번이나 포기하지 않고 기도했다.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을 보고도 비를 확신했다.

 

-그릿 시냇가와 사르밧 과부의 집에서 기다림과 인내와 믿음,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삶 속에서 가뭄의 때를 지날 때 신실하게 하나님의 이름을 붙잡고 은혜 안에 살아갈 때 때로는 작은 손바닥만 한 징조를 보고서도 하나님께서 행하실 큰일을 확신한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속에서 살아낼 수 있는 은혜이다.

 

-험한 세상 속에서 손바닥만 한 구름을 보고 싶다.

 

 

*하나님의 놀랍고 위대한 승리를 맛보았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 위대한 승리 직후에 비를 약속하신 하나님께 나아가 엎드려 기도했다.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이시기에 비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그저 비를 기다리고만 있어도 된다. 그런데 엘리야는 산꼭대기로 올라가 엎드렸다.

 

*이것이 엘리야에게 내가 꼭 배워야 할 부분이다. 어떤 성취를 맛본 후에 더욱 엎드리는 내가 되어야겠다.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여도 더욱 엎드려서 이루어 가시는 징조를 구하며 먼저 응답을 확신하고 앞서 달려가는 삶이고 싶다.

 

*성공했을 때 기도하는 엘리야의 모습에서 성공에 취해 더 이상 주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주관에 취하여 더 이상 무릎을 꿇지 않는 모습들을 꼭 반면교사를 삼아야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위대한 승리나 성공을 누리는 것보다,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붙잡고 그 일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뜻을 계속 구하며 찾고 두드리는 것임을 엘리야를 통해 깨닫는다.

 

*내가 더욱 구하고 찾을 것은 위대한 성공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을 찾고 구하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나에게 들려주시는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시는 손바닥만 한 징조이다. 오늘 나의 마음에서부터 주님께서 보내주시는 큰비에 앞서 손바닥만 한 구름을 먼저 보기를…. 그것을 보았을 때 큰비를 확신하며 담대하게 뛰어가는 삶이기를 고대한다.

 

 

 

*주님, 불로 응답하신 하나님뿐만 아니라 손바닥만 한 구름이 보이기까지 끝까지 엎드린 엘리야를 닮고 싶습니다. 저에게 맡겨주신 이 길 “산꼭대기에 올라 손바닥만 한 구름 고대하며” 달려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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