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시 불러주심, 다시 맡겨주 [왕상 19:1-21]
 – 2023년 10월 21일
– 2023년 10월 21일 –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의 대결에서 여호와께서 권능을 나타내심으로 백성들은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죽임을 당하며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백성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온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 내리신 벌을 거두고 비를 주셨다.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였지만, 이세벨이 강력하게 저항한다. 엘리야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유다에 속한 브엘세바까지 한달음에 도망한다. 좌절하고 낙심한 엘리야는 광야에서 다시 임무를 받고, 다시 선지자로서 부름을 받는다.
 
 
 
1. 이세벨에서 도망한 엘리야(1~4절)
궁으로 돌아간 아합은 이세벨에게 그간 일어난 놀라운 일들을 알려준다. 이세벨은 여호와를 참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고 순종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도리어 화를 내며 사자를 보내 내일 엘리야를 반드시 죽이겠다고 선언한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보다 자신의 선지자들을 죽인 것에 대해 분노하기만 했다. 이세벨에게 여호와의 크신 권능과 바알 선지자의 죽음은 전혀 경고가 되지 못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협박을 두려워하여 그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는 유다의 최남단 브엘세바까지 한달음에 도망한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사환을 두고 광야로 더 들어가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여호와께 자신을 죽여 달라고 요청한다. 하나님께 대한 투정과 실망감의 표출이다. 엘리야는 스스로 생각했다. 여호와께서 큰 권능을 보이시고 아합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바알의 선지자들을 죽이는 개혁을 단행하면 순조롭게 진행될 줄 알았다.
 
더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통해 불을 내리시고 비를 내리신 것처럼, 이스라엘도 자신을 통해서 변화시켜 주실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런데 그가 마주한 현실은 처음보다 오히려 더 심했다. 이세벨의 지독한 거역과 도발의 현실을 보며 이스라엘의 종교개혁은 실패했다고 깊은 좌절과 우울감에 빠진 것이다.
 
*많은 사역과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으나 결과가 자신의 의도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많은 사람이 겪는 좌절과 아픔의 모습과 비슷하다. 혹시 나에게 이런 “내 마음과 원대로”의 맹신과 추구가 있지 아니한가?
 
 
 
2. 엘리야의 도망을 도운 천사(5~8절)
무기력하게 광야의 로뎀 나무 아래 누워 자는 엘리야에게 천사가 나타난다. 엘리야를 흔들어 깨우고 일어나서 먹으라고 명령한다. 그릿 시냇가에서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도망 한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어 막을 것을 주신 것이다. 엘리야는 자신의 머리맡에 놓인 떡과 물 한 병을 주섬주섬 먹고 마신 후 다시 누워 죽기를 간청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먹을 것을 보내주시며 살려주겠다고 응답하신다. 엘리야가 눕자, 천사가 다시 와서 건들며 일어나 먹으라고 명령한다.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먹을 것을 주시면서 엘리야의 “사명”이 아직 남아 있다고 말씀하신다. 엘리야는 죽을 작정으로 아무것도 없이 광야로 들어왔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살려서 다시 나가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며 그의 길을 계속 갈 수 있게 도와주셨다. 결국 엘리야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40일 동안 광야를 걸어 도착했다.
 
 
 
3. 불평하는 엘리야(9-14절)
호렙산에 도착한 엘리야는 굴에 들어가서 숨어 지낸다. 그때 여호와께서 다시 엘리야에게 나타나신다.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지 물으신다. 이런 하나님의 질문에 그동안 마음에 간직해 놓았던 울분을 쏟아낸다. 자신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여호와께 대한 열정과 열심과 사랑이 남다른 것과 이스라엘 백성이 언약을 버리고 제단을 헐고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였으나, 자신은 그들의 극심한 핍박 속에서도 홀로 남았었다. 이제 그들이 자신도 죽이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렇게 헌신한 자신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도망을 다니는 신세로 전락시켰냐고 한탄한다.
 
엘리야의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음에도 종종 실패하고 좌절하는 우리의 말과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엘리야의 한탄에 반응하지 않으신다. 대신 여호와 앞에 있는 산에 서라고 하신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지나가신다.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는 강한 바람이 일었으나 그 가운데 여호와는 계시지 않았다. 지진이 일어났으나 그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다. 그 후에 불이 있었으나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다.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은 일반적으로 여호와께서 나타나실 때 동반되는 자연 현상으로 알려져 있었다. 하나님의 권위와 힘과 능력을 보여주어 사람들을 두렵게 하려고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각인이 되는 힘과 두려운 상황이 아닌 “세미한 소리”로 나타나셨다. 그 소리를 들은 엘리야는 여호와를 직접 보지 않기 위해 겉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동굴 입구로 나가 여호와 앞에 섰다.
 
*엘리야는 모세 이후 여호와의 신현을 직접 경험한 두 번째 선지자이다. 너무나 낙심한 엘리야에게 여호와께서 직접 나타나셔서 그가 살아계신 하나님인 것을 실체적으로 보여주신다. 여호와께서 엘리야에게 물으셨다.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 (13절) 9절 말씀과 같다.
 
 
 
4. 새로운 임무, 엘리사를 부르는 엘리야(15~21절)
하나님께서는 세 가지의 새로운 임무를 주신다. 첫째,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의 왕이 되게 하라(15절). 둘째,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라. 셋째,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엘리야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16절)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아합의 가문을 멸망시킬 사람들을 세우라는 임무를 주신 것이다.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의 공통점은 모두 아합의 가문을 멸절시킨 자들이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도망한 겉모습으로만 보면 이세벨이 완전히 엘리야를 압도한 듯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합 가문을 멸절할 계획을 세우셨고 그 실행자로 엘리야를 부르신 것이다. 그리고 바알을 섬기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는 말씀으로 홀로 신앙을 지키고 있다고 좌절하는 엘리야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주신 임무를 순종하며 실행하기 위해 시내 산을 떠난 뒤 가장 먼저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찾아간다. 엘리사는 그의 앞에 열두 겨리의 소들로 밭을 갈고 있는 상황에서, 열두째 겨리의 소로 밭을 갈고 있었다(19절). 이는 엘리사가 열두 겨리, 즉 스물네 마리의 소를 가지고 밭을 갈았다는 것이 아니라 열두 겨리의 소로 공동 작업을 하고 있는데 그가 마지막 열두째 겨리의 소들을 몰고 있었다는 의미이다.
 
엘리야는 엘리사가 자기 앞에 오자 그에게 건너가 겉옷을 던진다. 여기에서 엘리야의 겉옷은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선지자를 상징하는 옷이다. 이 옷을 받자, 엘리자는 자신을 선지자로 부른 것으로 알고,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양해를 구한다. 엘리야는 그런 엘리사에게 돌아가라고 한다. 하지만 엘리사는 돌아가서 자기 소들을 잡고 마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엘리야의 뒤를 따른다.
 
즉, 엘리야는 부모에게 작별 인사를 한다는 엘리사의 말에 그가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음을 여겨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지만, 엘리사는 가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엘리야의 뒤를 따른 것이다. 이렇게 엘리야에게 엘리사라는 하나님 사역의 동반자이자, 제자를 얻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임한 배려였다.
 
 
 
나는?
-왕과 백성들이 보는 데서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증명하였는데도 왕과 왕비가 변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자신을 탓한다. 3년간의 하나님의 사역이 실패했다는 실망감이 넘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한다. 선지자는 성공이 아닌 순종함으로 부름을 받았다. 엘리야는 이것을 잊어버렸다. 사역이 성공했어야 한다는 마음에 성공과 실패의 기준이 순종이 아닌 성공인 것으로 단단히 오해했다.
 
-나의 사역 현장도 같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순종하는 길이 곧 성공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결과와 성과가 성공의 기준이 아니다. 매 순간 순종, 순종, 순종의 걸음이어야 성공이다.
 
 
-좌절하고 상심하는 엘리야를 책망하시지 않고 먼저 쉼을 허락하신다. 지난 3년 동안 그릿 시냇가와 시돈의 사르밧을 거친 나그네 생활뿐만 아니라 이세벨의 생명의 위협에서 급히 도망친 여독을 먼저 풀게 하신다.
 
-꾸중하거나 책임을 묻기 전에 진이 빠져 깊이 잠든 엘리야에게 “거룩한 어루만져 주심(깨워주심_7절)”과 음식으로 기운을 차리게 하셨다. 그리고서 하나님의 계시와 언약의 장소인 호렙으로 인도하여 거기서 영적인 각성과 갱신,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나도 명심해야겠다. 지친 사역자들이나 지체들이 몸과 영이 모두 회복되도록 실질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공동체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시 하나님 앞에서 힘이 있게 사역을 감당하도록, 다시 하나님 앞에 견고하게 서도록 이끌어 주면 좋겠다.
 
 
-다시 확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소명…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곳인 이스라엘을 떠나 호렙에 와 있는 이유를 물어보심으로 그의 영적인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신다. 점거하고 사명을 다시 붙잡도록 일깨우신다.
 
-이를 위해 통상적인 계시 방식인 강한 바람과 지진과 불이 아닌 세미한 음성으로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신다. 이런 모습은 하나님의 주권은 인간의 기대와 상식과 전통에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역사 됨을 보여주신다. 정해진 전통과 고정된 형식으로만 역사하시거나 나타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나타나고 싶으신 대로 나타나시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엘리야의 눈에 보기에 이스라엘 사역은 완전한 실패로 보이겠지만, 하나님에게는 완전한 성취를 위한 과정일 뿐인 것을 깨닫게 하신다. 전통적인 임재의 방식으로 알려진 바람과 지진과 불이 지나가도 임재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 세미한 음성으로 나타나신 것은 인간에게 익숙한 것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과 선택에 따른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내가 보기에 실패한 것처럼 보이는 것일지라도 하나님께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온전하게 성취하시는 과정이다. 아! 얼마나 복음인가! 지금 나의 현재를 결론으로 여기지 말라. 나의 현재는 하나님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며 걸음일 뿐이다. 내가 스스로 과정과 걸음을 결론으로 결정하지 말자.
 
 
-다시 맡기신 사명…. 엘리야에게 하사엘을 아람의 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라는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다. 엘리야가 낙심하고 있을 때도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진행되고 있으니, 속히 하나님의 나라 역사에 동참하라는 촉구이다. 하나님의 인자한 독려이다.
 
-또한 자신만 남았다고 여기며 스스로 영적인 외톨이를 자처하는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절하지 않은 칠천 명과 동역자이자 제자인 엘리사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심으로 힘을 불어넣어 주신다.
 
-엘리야의 부름을 받은 엘리사는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소를 잡아 두루 나누고 소의 기구를 불사른 후 엘리야의 뒤를 따른다. 하나님 나라는 나의 소와 소의 기구를 마땅히 내려놓고 따라야 한다. 내가 불살라야 할 소의 기구들은 무엇일까?
 
 
 
*주님, 다시 불러주심과, 다시 맡겨주심의 하나님이시기에 감동입니다. 저에게도 혹 영적 침체 속에 있을 때 “다시 불러주심, 다시 맡겨주심”의 은혜가 있을 줄 믿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