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없는 무참한 꼴의 아합과 이스라엘 [왕상 20:1-12]
 – 2023년 10월 22일
– 2023년 10월 22일 –
갈멜산에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보았으나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 했다. 엘리야는 절망하며 광야로 도망하였다. 그곳에서 죽기를 간구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고 새로운 사명을 주셨다. 다시 불러주시고, 다시 맡겨주셨다. 그리고 아람의 벤하닷(하사엘)과 이스라엘의 예후와 엘리야의 뒤를 이을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으라고 하시고 그들이 완악하기 짝이 없는 아합 가문을 멸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20~23장은 하나님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어 가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합의 어리석음과 완악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구약에 나타나는 아람의 벤하닷은 세 명이 등장한다. 열왕기상 15장에 처음으로 등장하는 아람 왕은 벤하닷 1세이다. 열왕기상 20장에 등장하는 아람 왕은 벤하닷 2세이다. 그리고 열왕기하 8장에 등장하는 벤하닷 3세는 후에 엘리야가 기름 부은 하사엘에게 죽임을 당한다. 본문의 아합은 아람의 벤하닷 2세가 주변의 32명의 들과 연합하여 북이스라엘을 공격하며 사마리아를 포위하자 벤하닷이 요구하는 공물을 주고 속국 관계를 맺으려 했다. 벤하닷은 가족과 금은을 요구하는데, 속국 관계를 맺으면서 약속을 지키겠다는 보증으로 아합의 가족을 볼모로 요구한다. 다시 앗수르에서는 속국의 반란을 막기 위해 왕자들을 볼모로 데리고 가는 것이 관행이었다. 벤하닷은 아합에게도 동일한 요구를 하는 것이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의 왕들을 통틀어 가장 악하다고 평가받은 아합에 대한 기록은 그 명성만큼 가장 많은 분량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16:29~22:40까지의 말씀이다. 저자는 이 기록을 통해 아합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긍휼과 공의의 심판을 함께 묘사한다. 아합의 통치를 개요하고(16:29~34), 석 장에 걸친 가뭄과 엘리야와 관련된 사건들(17:1~19:21) 이후, 다시 세 장에 걸쳐 아합 중심의 사건을 서술한다*20:1~22:40). 그리고 그 중간에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배치한다(21장).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17~19장에서 가뭄과 비를 통해 하나님께서 바알과 비교할 수 없는 살아계신 전능자이심을 증명했다는 점이다. 또 20~22장을 통해서는 첫째, 아람과의 전쟁 기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드러내셨다는 점이다. 둘째는 전쟁에 개입하고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증명하셨다. 이는 악한 세대 속에서도 자기 백성에 대한 언약적인 사랑을 증명하신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 때문에 백성들의 넘쳐나는 죄악의 증거들 속에서도 사랑하신다. 셋째, 선지자들에게 계속 말씀을 보내셔서 왕과 백성을 안도하시고 순종을 요구하신다는 점이다. 넷째는 그렇게 선포된 “말씀대로” 이루셔서 하나님의 전능함을 나타내신다. 다섯째, 죄의 경고와 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행하시고 순종하고 회개하는 자에게는 긍휼과 은혜를 베푸신다. 이와 같은 과정을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통치자이심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20~22장의 아합은 적어도 세 가지의 죄목 탓에 고발당하고 심판을 받는다. 첫째, 신앙적인 죄이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이득과 판단에 부합되지 않으면 거리낌 없이 버렸다. 자신이 스스로 악을 행하였을 뿐 아니라 이세벨을 통해서도 범했다. 둘째, 사회적인 죄이다. 아합은 죄 없는 나봇을 죽이고 포도원을 갈취했다. 이로써 백성의 권리가 담긴 율법과 사법 질서를 짓밟는다. 자신이 지키지 않을 뿐 아니라 백성들도 지키지 못하도록 했다. 셋째, 정치적으로 그는 아람 왕 벤하닷을 살려두고 동맹을 맺음으로써 하나님과의 언약을 버렸다. 백성과 후손에게 전쟁의 고통을 지속시켰다. 이런 모습은 이미 16장에서 이루어진 그에 대한 평가를 더욱 도드라지게 바라보게 하는 것이었다.
 
 
 
1. 벤하닷의 침략(1~3절)
아합왕은 하나님의 권능을 보았으나 아내 이세벨이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는 것을 막지 못한다. 결국 엘리야가 북이스라엘을 떠나 도망하는 것을 방치하고 만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고, 말씀하신 대로 폭풍우로 쏟아지는 비를 고스란히 맞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이 나타난 현장에 있었음에도 여전히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려는 이세벨에게 꼼짝하지 못한다. 바알과 여호와 사이에서 절뚝거리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마리아는 아람의 벤하닷 왕의 침략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는다. 아람 왕 벤하닷은 자신의 군대와 주변 나라 30여 명의 왕들과 군사를 모아 사마리아를 포위했다. 사마리아를 포위하고 아합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항복과 함께 공물을 요구한다. 그의 요구는 당시 고대 근동 지역의 속구 계약에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내용이었다. 조공과 함께 인질로 가장 아끼는 아들과 왕비들을 보내라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당당한 벤하닷의 요구는 사마리아가 처한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벤하닷과 그의 연합군 기세는 하늘을 찌르는 듯했고, 사마리아는 완전히 포위되어 함락 직전이었음을 예상할 수 있다.
 
 
 
2. 벤하닷의 요구를 승낙한 아합(4~6절)
벤하닷의 요구에 대한 아합의 반응은 “나의 주, 왕”이라고 부르며 당신의 말씀처럼 나와 내게 속한 모든 것이 왕의 것이라고 말한다. 벤하닷의 조공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만큼 사마리아의 상황이 매우 불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아합은 인질에 대한 요구는 거절하고 조공만 바치겠다고 했다. 이에 벤하닷이 다시 사자를 보내 조공과 함께 아내들과 아들까지 넘기라고 요구했다. 인질 요구까지 받아들여야 하며 내일 이맘때까지 자신의 군대를 보내 왕궁과 사마리아 성내의 집들을 약탈하고 아합이 귀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가져가겠다고 경고한다.
 
벤하닷의 반응은 아합이 예상한 것과 달랐다. 아합은 조공을 바치겠다고 하면 순순히 물러갈 줄 알았다. 그런데 약탈하겠다는 말을 들은 것이다. 벤하닷의 입장에서 보면 주변의 32명의 왕과 함께 출정했기에 아합이 바치는 조공물보다 자신들이 약탈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전리품을 얻을 수 있었기에 약탈하겠다고 한 것이다. 즉, 벤하닷은 처음부터 북이스라엘의 수도를 무력으로 약탈할 작정으로 왔지만, 협상하는 척만 한 것이다.
 
 
 
3. 벤하닷의 요구를 거절하기로 한 아합(7~9절)
아합은 단지 조공을 요구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사마리아성이 점령당할 위기인 것을 인식하자 나라의 장로들을 불러 모았다. 자신 혼자 결정하고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이었다. 장로들은 아합의 설명과 상황을 듣고서 분노한다. ‘왕은 듣지도 말고 생각도 하지 말라’고 강권한다. 벤하닷의 무례함에 화가 치민 것이다. 아합은 벤하닷의 사자들에게 매우 겸손하게 “나의 주 왕”이라는 표현을 거듭 사용하며 처음에 제안한 것, 즉 자신이 공물과 인질을 벤하닷이 요구하는 대로 보내줄 수 있지만, 군대를 이끌고 사마리아 성내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받아들일 수 없다고 분명히 전하라며 돌려보낸다.
 
 
 
4. 사마리아 성읍을 포위한 벤하닷의 오만함(10~12절)
아합의 말을 들은 벤하닷은 다시 사자를 보낸다. 사마리아의 티끌로 자신이 데려온 군사들의 손을 가득 채우지 못하며 자신이 신의 저주를 받겠다고 저주 맹세를 한다. “사마리아의 티끌”이라는 것은 사마리아 성을 티끌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것으로 사마리아를 완전하게 부수고 모든 군사의 손에 가득하도록 노획물을 빼앗겠다는 말이다.
 
고대 사회의 전쟁은 땅을 빼앗기 위한 전쟁보다 양식과 물건을 빼앗기 위한 전쟁이 주를 이루었다. 늘 양식과 사람과 물자가 부족하기에 농사철이 끝나면 부족한 양식과 물자를 채우기 위해 전쟁을 했다. 이러한 노획물을 얻기 위한 전쟁은 이웃 나라들 사이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났다. 대부분의 전쟁이 노획물을 얻기 위한 목적이었으므로 노획물을 얻지 못하면 전쟁을 일으킨 왕은 백성들과 연합세력에 의해 비난을 면치 못하고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해진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노획물을 많이 얻는 것과 그 노획물을 정당하게 나누는 것은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이런 배경에서 벤하닷은 아합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이에 아합은 “너의 왕에게 가서, 참 군인은 갑옷을 입을 때에 자랑하지 아니하고, 갑옷을 벗을 때에 자랑하는 법이라도 일러라.” 새번역_12절) 라고, 말한다. 이 표현은 고대 근동에 널리 퍼진 격언이다. “진정한 군인은 갑옷을 입었을 때 자랑하지 않고 갑옷을 벗었을 때 자랑하는 법이다”라는 뜻으로 전쟁에 승리하여 갑옷을 벗기 전까지 함부로 승리를 장담하거나 자랑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싸워봐야 아는 것이니 싸우자는 뜻도 된다.
 
아합은 백성 장로들의 조언과 지지에 힘을 얻어 벤하닷과 싸우기로 결심한 것이다. 벤하닷은 왕들과 함께 장막에서 술을 마시다가 이 말을 듣는다. 벤하닷은 아합이 자신들의 규모와 세력, 강한 저주의 맹세를 곁들인 협박이면 항복할 줄 예상한 듯하다. 그런데 협상이 결렬된 것을 알고 ‘성읍을 향해 진영을 치라”고 명령하며 전쟁을 준비한다.
 
 
*엘리야가 이세벨을 피해 광야로 도망하고 그곳에서 여호와께 아람 왕 벤하닷 다음 왕으로 하사엘을 세우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 후에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북이스라엘은 아람 왕 벤하닷의 침략으로 위기를 맞이한 것이다. 벤하닷은 하나님께서 징벌할 인물이기에 아합이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지만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아합에게 그는 사마리아를 무너뜨릴 힘을 가지고 있는 강력하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있었다면 아합은 그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고 도움을 얻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세벨에 의해 북이스라엘에서 도망하였기에 아합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했다. 대신 이웃 나라들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것은 아합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아니라 바알을 숭배한 참담한 결과였다.
 
 
 
나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선지자를 죽이는데 당당했던 아합이 벤하닷 앞에서 쩔쩔맨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바알과 아세라 우상과 각종 우상을 숭배하였으나 정작 어려울 때 그들이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못하고 있음을 본다. 가뭄에서도 기근에서도 갈멜산 대결에서도 그리고 아람과 연합군과의 전쟁에서 바알은 침묵한다. 그런데도 아합은 끝까지 바알에게 충성을 바친다. 아…. 어리석은 아합…. 어쩌란 말인가!
 
-벤하닷의 무리하고 무례한 요구와 그 요구를 들어주려는 아합의 무능함…. 아합은 벤하닷의 요구를 듣자마자 수락한다. 상황이 그만큼 급박하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기에는 너무 면목이 없었을까? 믿음이 없었을 것이다. 아합은 자기가 섬긴 바알에게도 구하지 않는다. 신앙은 고난과 위기 앞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는 하나님보다 벤하닷을 더 두려워했다. 우상은 먹고살 만할 때 도움이 되는 대상일 뿐이었다.
 
-벤하닷은 아합의 조공 약속에 만족하지 않았다. 직접 군사들을 보내 왕궁과 신하들의 집을 샅샅이 뒤져서 아합왕이 귀하게 간주하는 것을 가져오게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한다. *이를 보면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은 만족을 모른다. 약한 자들에게 긍휼도 없다. 강자들은 서로 인정하나 약자들을 억압하고 그 위에서 공존한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 가치 속에 하나님을 의지하기란 어려운 문제이다. 도무지 이루어질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합처럼 아예 세상 요구에 완전히 종속되어 들어갈 수도 있다.
 
-아합의 무모한 전쟁, 벤하닷의 오만한 방심…. 아합은 장로들에게 벤하닷의 지나친 요구를 수용해야 할지를 묻는다. 장로들이 반대하자 아합도 벤하닷에서 거부 의사를 전한다. 벤하닷은 사마리아를 먼지 더미로 만들고, 사마리아에 포획할 것보다 자기 군사들이 더 많을 것이라고 위협한다.
 
-선지자를 죽이고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 나라 이스라엘이 이렇게 무참하게 조롱당한다. 아합이 전쟁 불사 의사를 밝히자, 벤하닷도 이에 화답한다. 하지만 그는 너무 자신만만한 나머지 장막의 술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하나님을 떠난 세상 지도자들의 허풍과 달리 전쟁은 아무에게도 승리를 가져다주지 못한다.
 
 
*아합과 이스라엘을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 가뭄, 기근, 갈멜산의 큰 권능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아합은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번에는 아람의 벤하닷과 32명의 왕의 연합군을 보내셨다. 전쟁이다. 그 위세가 얼마나 컸던지, 아합은 싸울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자기 군대의 능력으로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는 여전히 돌아올 기회를 놓치고 있다.
 
 
 
*주님, 하나님을 떠난 아합에게 세상의 위협과 조롱이 그치지 않음을 봅니다. 참 보호자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 우상을 붙잡는 것이 잠시 형통하게 보여도 고난과 고통이 덮치면 무참해질 뿐인 것을 잊지 않겠습니다. 늘 하나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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