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1차 아람 전쟁_하나님의 승리 [왕상 20:13-21]
 – 2023년 10월 23일
– 2023년 10월 23일 –
하나님의 큰 능력을 맛본 이후에도 엘리야를 쫓아낸 아합과 이스라엘은 아람 왕 벤하닷의 공격을 받는다. 광야로 도망 나온 엘리야는 여호와의 도우심과 위로하심을 맛보고 평안 가운데 거하지만, 아합은 사마리아 자신의 성읍에 있으면서도 공격과 위협을 받은 것이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와 의지하지 않는 자 사이의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편 본문은 아합이 벤하닷의 연합군에 맞서 싸우기로 하면서 이스라엘과 연합군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생긴다.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한 선지자를 보내 아합에게 승전을 약속하신다. 또 아합의 질문에 대답하시며 전투 전략을 알리신다. 아합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지방 고관의 청년들을 앞세워 아람을 공격하게 한다. 아람 왕 벤하닷과 동맹국의 왕들은 술에 취해 있다가 불시의 공격을 받고 도망한다. 아합도 출정하여 아름을 크게 격파한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듯 했던 전쟁에서 승전함으로써 하나님의 능력과 신실하심이 또 증명되었다.
 
아합 통치 시기에 아람의 벤하닷(2세)과 있었던 전쟁은 총 3차례였다. 첫 번째는 사마리아에서 붙은 전투였고, 아람이 패했다(20:1-21). 두 번째는 아벡에서 일어났으며 아람이 역시 패했고 벤하닷까지 사로잡혔었다. 하지만 아합은 벤하닷(2세)을 살려두고 그와 조약을 맺어, 이스라엘에 후환거리를 만든다. 세 번째는 길르앗 라못 전투이고, 아합이 전쟁 중에 전사한다(22장).
 
 
 
1. 한 선지자의 하나님의 신탁_어떻게 이런 상황에서? (13~15절)
아람 연합군에 의해 약탈 위기를 맞은 아합이 장로들과 전쟁을 불사한 결정을 했다. 아람 군대는 사마리아를 향해 공격 대형을 갖추었다. 이때 갑자기 한 선지자가 아합왕에게 나타난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이세벨의 위협 때문에 엘리야처럼 도망가고 있거나 오바댜가 숨긴 선지자들처럼 숨어서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아람과의 전쟁을 앞두고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선지자를 보내셨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바알의 선지자나 아세라의 선지자들, 특히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어떤 역할도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여호와께서는 승리를 약속해 주신다. “큰 무리”인 아람 군대를 물리치는 승리를 통해 자신이 여호와이심을 알리기 위한 것임도 밝힌다.
 
매우 불리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신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이심을 보여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런 선지자의 말에 아합은 어떻게(누구와 함께) 전쟁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각 지방 장관의 청년들과 함께하면 된다고 알려주신다. “청년들”은 전쟁 경험이 적은 미숙한 이들을 가리킨다. 그러자 아합은 그러면 누가 군사를 구성하고 전쟁을 이끌 것인지도 묻는다. 그러자 선지자는 단호하게 아합 직접 지휘관으로 나가라고 말한다.
 
아합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방 장관들의 젊은 부하들을 불러 모았고 그 수가 232명이었다. 그 외의 군인 수는 7,000명으로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사람들의 숫자와 같다. 하나님께서 전쟁에 능숙한 이들 대신 미숙한 청년들을 택하신 이유는 전쟁이 사람의 수나, 무기의 상태나, 전쟁을 잘하는 용사들의 유무에 달린 것이 아님을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아합은 이에 어떤 이의도 제기하지 않고 순종한다. 갈멜산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권능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세벨은 태어날 때부터 바알을 섬겼고 이스라엘에 바알 숭배를 전하는 것을 사명으로 생각한 골수 바알 주의자였지만, 아합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여호와의 이적을 직접 보고서 어렸을 때부터 들었던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심이 생겼고,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믿음이 생겼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아합이 이세벨과 달리 여호와의 선지자를 죽이지 않고 그의 말을 따랐을 것이다.
 
 
 
2. 벤하닷의 오만(16~18절)
여호와의 명령대로 아합의 군대는 전쟁을 시작한다. 이들은 정오에 전쟁하기 위해 성문을 나갔는데, 이 시간은 태양이 뜨거운 한낮이었기에 일반적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 쉬었다. 그런데 벤하닷과 32명의 왕은 장막에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시며 취해 있었다. 자신들의 군사적인 우위를 믿고 아합이 자신들과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거나, 혹시 전쟁하더라도 쉽게 이길 수 있으리라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이렇게 대낮부터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에 아합의 군대가 성문으로 나온 것을 보며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지방 장관들의 젊은 부하들이 앞장서서 성문을 나오는 것에 대해 정탐꾼을 보내 파악한 후 이들이 전쟁에 능숙하지 않은 232명에 불과하다는 보고에 벤하닷은 더욱 아합의 군대를 얕잡아 본다. 무조건 이기는 전쟁으로 착각한다.
 
벤하닷은 아합의 232명 군사를 화친하러 나왔어도 사로잡고, 싸우러 나왔을지라도 사로잡으라고 명령한다. “사로잡는 것”은 군사력의 절대적 우위에 있을 때 수행할 수 있는 명령이었다. 벤하닷은 술에 취해 자기 군대의 압도적인 전력을 맹신한 채 어린 청년들 뒤에 더 많은 군대가 있을 수도 있다는 가장 기본적인 판단도 하지 못했다. 사마리아 성에 군사가 더 남아있을 수 있다는 단순한 판단조차 하지 않았다.
 
 
 
3. 아람 군대를 이긴 이스라엘(19~21절)
아합이 232명의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만 전쟁하러 보낸 것이 아니다. 이들은 선발대였다. 그 뒤에 7,000명의 군대가 성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젊은 부하들이 앞장선 것은 아람 군대가 아합의 군대를 만만하게 보고 경계심을 늦추고 전쟁터로 나오도록 유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전쟁터로 나오는 아람 군대가 강력한 의지가 아니라 얕잡아 보며 나오도록 유인한 것이다.
 
방심한 아람 군대는 그 뒤를 따라 나온 7,000명의 주력 부대에 죽임을 당하게 된다. 전쟁에서 방심은 절대금물임에도 벤하닷은 아합이 처음부터 매우 저자세로 일관한 탓에 방심했다. 그런 방심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기는 방법과 용기를 주신 것이다. 하나님 말씀대로 전쟁했을 때 아람 연합군을 물리칠 수 있었다.
 
결국 아람의 군대는 허둥지둥 도망갔으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들을 추격하여 아람 사람들과 말과 병거를 쳐서 대승을 거두었다. 이 사이에 벤하닷은 말을 타고 병사들을 데리고 도망한다. 벤하닷에게 굴욕을 당했던 아합은 큰 승리를 얻었다.
 
하나님께서 한 선지자를 보내 약속해 주신 대로 승리를 맛보았다. 아합은 어릴 적 들었을 여리고 전투나, 사사기 이야기나 다윗의 이야기 속에 담긴 진리, 즉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고 사람 수의 많고 적음과 무기의 상태에 좌우되지 않는다”라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보고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런데 그가 섬기던 바알은 가장 위급할 때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쟁의 위협 속에서 어떤 방책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이것은 그가 섬기던 바알은 거짓 신인 것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가뭄도 주시고, 비도 주시고, 이스라엘이 위험할 때 구원하여 주시는 살아계신 참 하나님이시다.
 
이번에는 전쟁을 통해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번 분명하게 알려주신다. 이는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사랑 표현임을 속히 깨달아야 했다.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은 “여호와”임을 깨닫기를 바라셨다(13절).
 
하지만 여호와의 말씀 하신 대로 승리한 전쟁에서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들의 대결을 지켜봤던 아합이나 백성들의 입에서 하나님을 여호와라고 고백하는 내용이 이어지지 않아 긴장된다.
 
 
 
나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승리 약속 _ 벤하닷의 침공을 우상숭배를 포기하지 않는 아합을 심판하시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보내 아합의 승리를 예고하셨다. 아합이 여호와께로 돌아와서가 아니라, 돌아오게 하시려고 이같이 하신 것이다. 동시에 벤하닷의 오만함을 심판 하시는 것으로 보인다.
 
-아합이나 벤하닷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십보백보다. 도긴개긴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 다를 바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합에게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신 것이다. 도무지 상대가 되지 않는 이 전쟁을 통해 오직 하나님만이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이신 여호와 임을 깨닫기를 원한 것이다.
 
-아합은 위기의 순간에 장로들을 먼저 찾았다.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한 선지자를 보내주셔서 승리를 약속하신다. 아합과 이스라엘은 이미 오래전에 하나님을 포기했지만, 하나님께서 아직은 아합과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한 자들에게만 역사하지 않으신다. 자격 없는 자에게도 역사하신다. 그 자비와 사랑 때문에 나도 구원을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주도하신 전쟁 _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전쟁 전략과 전술을 말씀해 주신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벤하닷의 오만한 마음을 이용하여 철저하게 승리의 전략을 내놓으셨다. 아직은 싸움에 능하지 못한 각 지방 고관의 청년들(부하들) 232명과 7천 명의 군사들을 전쟁에 나서게 하신다. 그리고 아합에게 먼저 싸움을 시작하라고 하신다.
 
-이것은 아합왕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다. 전쟁에서 이기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전투할 자를 준비할 때 아람의 군대는 이미 승리를 거둔 것처럼 벤하닷과 왕들이 대낮부터 취해 있었다. 그리고 이스라엘 청년들이 성문에서 나오는 것을 투항으로 오해하고 생포하라고 까지 명령한다.
 
-이스라엘은 몰랐겠지만, 하나님은 이들의 상태를 너무도 잘 아셨다. 그러니 영적 전투에 임할 때 우리가 적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하나, 우리뿐 아니라 적의 상태도 너무도 잘 아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승리할 수 있는 전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긴 전쟁이었다.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은 손쉽게 승리하였다. 이스라엘의 칼에 크게 죽었고 아람 왕 벤하닷과 군사들은 도망쳤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앞서 이긴 것도 아니다. 전술에 능해서 이긴 것도 아니다. 이스라엘 중에서 자기 공로를 주장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이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대로 “말씀”이 이겼다. 나의 삶도 내가 이기려고 하는 것 보다 나에게 약속해 주신 말씀이 이기도록, 결국 말씀이 이겼음을 증언하는 삶이 되어야 하겠다. “말씀”이 이기도록 더 진실하고 성실하게 묵상하고 순종해야 하리라.
 
 
 
*주님, 아합에게 주신 승리의 말씀은 오늘 나에게도 주시는 말씀임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나를 에워싸고 있는 무수한 대적들을 주님이 나도 더 잘 아십니다. 그러니 주님을 의지할 그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도 나를 지켜 주시고 승리를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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