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2차 아람 전쟁_하나님의 승리를 망각하고 자신의 승리처럼 도취한 아합 [왕상 20:22-34]
 – 2023년 10월 24일
– 2023년 10월 24일 –
승리의 신탁을 받은 아합은 여호와의 말씀대로 전쟁하였고 오만하여 방심한 벤하닷과 아람 군대를 크게 이긴다. 전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번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의 보호자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그럼에도 아합과 아람 왕 사이의 전쟁은 계속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람이 전쟁을 계획하기도 전에 그들의 계획을 아합에게 알리셨다. 벤하닷의 신하들은 앞선 패전 원인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었다는 점으로 결론짓는다. 이에 벤하닷은 골짜기(평지)에서 전쟁할 것을 권하고 승리를 확신한다. 하지만 그들은 또다시 대패했고 벤하닷은 사로잡힌다. 아합은 아람의 세력을 제지할 기회를 얻었으나, 어리석게도 벤하닷과 조약을 맺고 그를 살려둔다.
    
    
    
1. 포기하지 않는 벤하닷의 전투 전략(22~25절)
전쟁이 승리로 끝난 뒤 하나님께서는 또다시 선지자를 아합에게 보내신다. 아람 왕 벤하닷이 내년 봄이 되면 다시 올라올 것이니 가서 스스로 강하게 하고 무엇을 할지 알아보라고 명령한다. 선지자가 아람 왕의 재침략을 예고하며 아합에게 군사력을 증강하고 잘 대비하라고 미리 경고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벤하닷의 의도를 미리 아시고 아합을 준비시키는 동안, 아람의 궁전에서는 자신들의 패전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운다. 그들은 자신들이 진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고 산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데, 산에서 전쟁했기 때문에 질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는 고대의 전쟁은 인간들의 전쟁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을 인간들이 대리하는 전쟁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는 아람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강력하심을 인정한 것이다. 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산의 신이라고 한정하며 자신들을 스스로 위로한 것은 이들이 싸운 곳이 사마리아와 숙곳 사이에 있는 산악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만약 전쟁터를 평지로 바꾸면 그들보다 자신들이 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에 따라 대책을 세우는데, 먼저 왕이 지휘관으로 새운 왕들, 즉 지방의 각 속국이나 부족들 30명의 왕 대신에 지방관을 세우는 것이었다. 이는 외국의 왕들 대신에 벤하닷에게 충성스러운 왕의 심복들로 지휘관을 교체한 것이다. 그다음으로 왕의 잃어버린 군대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말은 말대로, 병거는 병거대로 다시 이전처럼 보충하고 전투력을 회복하고 평지에서 싸우면 반드시 이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병력은 지난번과 같은 상황에서 충성스러운 지휘관으로 바꾸어 전열을 가다듬고 싸움 장소만 평지로 바꾸면 얼마든지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강함은 인정하겠지만 절대적으로 강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어리석다. 하나님은 이미 벤하닷의 마음을 아시고 아합에게 준비시키시지만, 벤하닷은 하나님을 모른다. 다시 패배가 뻔한 전쟁을 치밀하게 준비한다.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지도자,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지 못하는 왕이 백성을 얼마나 큰 위기로 이끄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의 하나님만이 아니셨다. 벤하닷이 그토록 자신하는 평지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는 확실했다. 옛적 드보라와 바락의 시대, 자신들의 조상 하솔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철 병거 900대를 이끌고 기손 강 계곡에서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도 산악 전투에 능한 이스라엘에 맞서기 위해 많은 말과 병거를 가진 시스라의 군대가 취한 적절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이론적으로는 나무랄 데가 없었으나 하나님께서는 당시 상황을 역이용하셔서 건기에 말라 있던 기손 강에 폭우를 내리셨다. 불어난 물과 급류로 병마와 병거는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스라엘은 큰 승리를 거둔 것은 물론이다. 벤하닷은 이 역사의 교훈을 알지 못했다.
    
*여호와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벤하닷은 손바닥으로 태양을 가리며 재침략을 준비한다. 재침략을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평지에서 전쟁을 벌이면 반드시 이스라엘보다 ‘강할(하자크)’ 것을 반복하며(23, 25절) 승리를 확신한다. 그러나 벤하닷과 신하들을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이미 아합에게 힘을 ‘기르게(하자크_22절)’ 하셨고 이스라엘의 승전을 보장하셨다.
    
    
    
2. 두 번째 전쟁에서도 승리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26~30절)
봄이 되자 하나님의 예고하신 대로 벤하닷이 이스라엘을 침공한다. 그러나 또다시 이스라엘의 “산의 신”에게 완패한다. 벤하닷은 그의 군대와 ‘아벡’으로 올라와 진을 친다 ‘아벡’은 위치가 정확하지 않지만, 갈릴리 호수의 남쪽 끝부분에 있는 평지였다. 아람 군대가 아벡으로 들어왔다는 소식에 곧 이스라엘 백성들도 무장하고 그들 앞에 진을 친다. 저자는 그 모양이 두 개의 적은 염소 떼처럼 적어 매우 초라하게 보였다고 묘사한다. 반면 아람 사람들은 그 땅에 가득하게 보일 만큼 많은 수가 단단히 준비하고 쳐들어왔다. 객관적으로 이스라엘이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다시 하나님의 사람이 아합에게 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한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시리아 사람이 말하기를, 내가 산의 신이지, 평지의 신은 아니라고 하니, 내가 이 큰 군대를 모두 네 손에 내주겠다. 이제 너희는 곧, 내가 주인 줄 알게 될 것이다.'”(새번역_28절) 하나님께서 이런 기적을 베푸시는 이유는 아합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만이 참 신이시라는 것을 알려서 아합과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으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이다.
    
여호와의 약속으로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 전쟁의 주도권은 이제 여호와 손으로 넘어갔다. 이 전쟁이 여호와의 전쟁이 된 것이다. 7일 동안의 대치 끝에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고 그날 이스라엘 자손이 아람 보병 십만 명을 죽였다는 사실은 작은 염소 떼 같은 이스라엘이 얻은 성과는 아니다. 분명 여호와께서 함께하셨음을 보여준다. 전쟁에 패한 아람의 남은 군사들은 아벡으로 도망하고 그때 아벡 성벽이 무너지면서 이만 칠천 명이 죽는다.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모습이 충분히 연상된다. 여호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여호와의 힘을 얕봤던 아람 군대는 여호와의 힘 앞에 무참하게 쓰러졌다. 전쟁을 주도한 벤하닷은 아벡 성읍의 방 중의 방 즉, 밀실로 들어가서 깊숙이 숨는다. 그만큼 벤하닷은 아합의 군대를, 아니 여호와 하나님을 매우 두려워하고 있었다. 1년 동안 철저하게 준비하여 땅을 가득 채울 만큼 군사들과 말과 병거를 끌고 왔으나 하나님의 힘 앞에서 처절하게 무너진 것이다.
    
    
    
3. 아합의 오만(31~34절)
벤하닷의 부하들은 이스라엘의 왕이 자비로운 왕이라고 들었기에 항복하고 조약을 맺을 가능성을 물색하고자 했다. 그들은 굵은 베를 허리에 동이고 머리에 두르고 나가면 혹시 왕이 살려줄지 모른다고 했다. 굵은 베를 허리에 동이거나 머리에 두르는 것은 일반적으로 큰 재난이 닥쳤을 때 애도하거나 신에게 죄를 회개하는 모습이다. 아합에게 전쟁을 일으킨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라는 의미로 읽힌다. 신하들은 자신들이 먼저 항복의 복장을 하고 아합에게 나갔다. 아합의 의중을 알아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내 생명을 살려주옵소서”라는 벤하닷의 간청을 전달한다.
    
그런데 아합은 벤하닷이 살아 있는지 안부를 물으면서 “내 형제”라고 부르며 먼저 항복하러 나온 그들에게 평화 조약을 제안한다. 이에 벤하닷의 신하들은 아합의 말이 자신들의 신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하고 재빨리 그 말을 받아 벤하닷도 왕의 형제라고 대답했다. 아합의 평화 조약을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아합은 벤하닷을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고 결국 벤하닷은 그의 앞에 나온다. 아합은 벤하닷을 보고 자신의 병거에 올려주고 그를 형제의 예로 대우한다. 아합은 벤하닷의 신하들이 기대한 대로 매우 자비로운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이런 아합에게 벤하닷은 자신의 선조들이 이스라엘에서 빼앗은 모든 성읍을 다 돌려주겠다고 약속하고 서로 평화 협정을 맺은 기념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사마리아 성안에 상업 활동을 위한 거리를 만든 것처럼, 아합도 아람의 수도인 다메섹에 그런 거리를 만들어도 좋다고 제안한다. 아람에서 이스라엘이 물건을 잘 팔 수 있도록 특별한 권한을 주겠다는 의미였다.
    
이 제안에 아합은 흔쾌히 동의하였고 그 제안을 받아들여 서로 이 내용이 포함된 평화 조약을 맺고 벤하닷을 풀어 주었다. 아합은 이 전쟁으로 인해 성읍들을 되찾았고 무역권도 얻는 등 많은 이익을 얻게 된 것에 대해 매우 흡족해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 전쟁의 주인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잊고 있었다.
    
이 전쟁의 목적이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는데, 아합은 승리에 도취하여 전쟁의 목적과 전쟁의 주인공이 되신 여호와 하나님을 잊어버렸다. 벤하닷의 제안에 대해 여호와께 묻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평화 조약을 체결하고 그를 놓아주었다.
    
    
    
나는?
-미리 전쟁을 준비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아람은 하나님이 고작 산의 신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전쟁을 시작하시기도 전에 적의 상황을 아셨다. 전쟁의 승패가 이스라엘의 군사력에 달린 것은 아니지만 한 선지자를 보내 내년에 있을 전쟁에 대비하여 힘을 기르고 행할 일을 준비하게 하신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먼저 알고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었기 때문이다.
    
-나에게도 요즘 하나님께서는 내년을 지혜롭게 준비하라고 늘 깨우쳐 주신다. 내년 사역을 위해 힘을 기르라고 하시고, 준비해야 할 것을 준비하라고 하신다. 이를 준비할 때 철저히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그의 뜻 안에서 준비하리라.
    
    
-산의 신이 아니라 천지 만물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 완벽한 승리_아람의 신하들은 하나님을 산의 신으로 깎아내렸다. 그래서 평지에서 싸우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연합한 왕들 대신 전문적인 군사훈련을 받은 지방관들을 세우고 사마리아 전쟁에서 잃은 병력을 보충하여 평지에서 싸우라고 조언한다.
    
-그런데 그들은 알았어야 했다. 아무리 잘 준비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오해하면 반드시 지고 만다. 인생의 승리를 위해 꼭 준비해야 할 것이 무수히 있겠지만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그를 신뢰하는 마음보다 우선되는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없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대로 두 무리의 적은 염소 떼와 같은 이스라엘이 아벡 땅에 가득한 아람 군대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이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산과 평지는 물론 하늘과 땅 전체를 지으시고 주장하시는 “천지 만물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셨다.
    
    
-아합, 자격 없는 자의 오만함, 무책임한 관대함_아벡 성읍 골방에 숨어있던 벤하닷이 신하들의 조언대로 아합왕에게 나아가 생명을 구걸하나, 아합은 그를 형제로 받아주고 자신의 병거에 함께 오르게 하는 등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 준다. 그 대가로 벤하닷에서 선대 때 빼앗긴 성읍을 되찾고 다메섹에 아합왕을 위한 대로를 만들 수 있도록 조약을 맺었다.
    
-겉으로 보면 승자의 아량, 매우 지혜로운 외교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전쟁에서 이겼다면 전쟁 후에도 하나님께 먼저 물었어야 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기억한다면 조그마한 성취에 우쭐하거나 간교한 찬사에 분별력을 잃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반복하는 실수는 실수가 아니다. 아합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셔서 계속 “말씀하신 대로” 전쟁을 이끄시는 것을 경험했다. 사마리아를 둘러싼 아람 대군을 물리치고서 내년을 준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준비하여 어김없이 몰려오는 아람 군대를 맞아 하나님의 큰 능력으로 승리를 맛보았다. 그랬으면 당연히 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도 하나님께 물어보았어야 했다.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았어야 했다.
    
*자신이 모든 승리를 이끈 듯이 전쟁을 마무리하는 주체가 되는 모습에서 겉과 속, 시작과 마침이 다른 전형적인 자기중심적이고 오만한 인간의 모습을 본다.
    
*승리를 주관하신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신데 승리의 영광은 모두 아합 자신이 받았다. 어리석은 인생이다.
    
*내가 아합의 길을 답습하지 않을까 두렵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한 시라도 잊게 된다면 모든 영역에서 내가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주인 노릇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 돌려져야 할 영광이 나에게 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그 기분 좋은 멸망의 함정에 스스로 빠질 것이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고 누리는 그 허영심이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며 조그마한 성취에도 우쭐하거나 간교한 찬사에 마음이 빼앗기지 않기를 늘 조심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아합과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신 이유는 단 하나이다.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아합과 이스라엘 뿐 아니라 하나님의 산의 신이라고 경시 여기는 아람의 벤하닷과 그의 신하들, 군대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여호와(스스로 존재하시는 천지만물의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아합과 이스라엘은 전통적으로, 아람의 신하들은 지식적으로만 알고 있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실제로 보고 깨닫도록 기회를 주신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스라엘이나 아람이나 하나님에 대한 시선은 사라지고 자신들의 욕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합은 자신의 탐욕과 허영(빼앗겼던 땅을 되찾고, 다메섹에 자신의 이름을 딴 거리를 두어 무역권을 확보하여, 전쟁의 업적을 자신에게 돌리려는 것)을 2번이나 침략한 아람의 벤하닷을 “내 형제”라고 부르고, 자신의 병거에 함께 태우며 조약을 맺고 풀어주었다. 겉으로 보기에 포용하고 관용하는 외교력으로 포장했지만, 그들의 침략으로 고통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하는 결정은 전혀 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의 이름만 높였다.
 
*왕의 이런 허영과 탐욕, 교만이 가져올 이후의 불안감은 오롯이 백성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 아합만 만족하고 하나님도, 백성들도 한숨만 나오는 결정을 성급하게 내리고 말았다.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승리와 성취를 아합과 같이 자신의 영광으로 취하지 않도록 늘 분별해야 하겠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지 조금만 더 공동체를 돌아보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겸비한 마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내가 하는 결정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교만이며 이는 곧 패망의 지름길임을 잊지 않겠다.
    
    
    
*주님, 아합의 마음이 저의 마음일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저도 칭찬에 약합니다. 하나님께 올려져야 할 칭찬을 욕심내지 않겠습니다. 철저히 하나님께서 하신 일임을 모든 영역에서 굳건하게 붙잡겠습니다. 나를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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