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아합의 죽음 _ 결국 말씀하신 대 [왕상 22:29-40]
 – 2023년 10월 30일
– 2023년 10월 30일 –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으로 아합은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죽는다. 그는 우상숭배에서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했고, 불순종하여 수많은 죄를 지었다. 그가 이번 전쟁에서 죽을 것이라는 예고를 들었음에도 아합은 전쟁을 포기하지 못했다. 한편 전쟁에 따라나선 여호사밧은 아합의 옷을 입고 북이스라엘의 왕 노릇까지 해주다가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생명을 건졌다.
 
 
 
1. 변장하고 전쟁에 올라가는 아합(29~30절)
아합은 전쟁에 올라가면 죽을 것이라는 미가야의 신탁을 무시하고 길르앗 라못으로 올라간다. 길르앗 라못은 이스르엘에서 동쪽으로 약 70km 정도 떨어진 요단 동편에 있다. 길르앗 라못은 왕의 대로와 주요 대간선이 만나는 곳에 전략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2차 전쟁에서 벤하닷은 이스라엘에서 취한 성읍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길르앗 라못은 아직 돌려주지 않았다. 아합이 앗수르가 힘이 약해진 틈을 타서 아람과의 전쟁을 통해 이 땅을 되찾으려고 한 것이다.
 
전장에 출정하기 전에 아합은 여호사밧에게 자신은 변장하고 여호사밧에게는 왕복을 입으라고 한다. 이렇게 한 이유는 미가야의 신탁을 무시하고 전쟁터로 왔지만, 마음 한편에 두려움이 가득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그대로 입힌 것은 역시 이기적인 그의 삶의 태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여호사밧이 자기를 대신하여 공격 대상이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다. *변장이 그의 생명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아합이다.
 
 
 
2. 아합만 잡으라고 명령한 벤하닷(31~33절)
아람 왕 벤하닷은 그의 병거 지휘관 32명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린다. 작은 자나 큰 자와 싸우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왕과 싸우라고 지시한다. 아람 왕은 전쟁에서 병사나 지휘관 몇 명 죽이는 것보다 왕을 잡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승리의 길임을 잘 알고 있었다. 왕이 이끄는 전투에서 왕이 죽으면 병사들은 그대로 흩어지기 때문이다.
 
아람 왕의 명령을 받은 지휘관들은 왕복을 입고 있는 여호사밧을 보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확신하고 달려들었다. 여호사밧은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부르짖다”라고 번역된 동사 “자아크”는 일반적으로 위험이나 어려움에 부닥쳤을 때 여호와께 도움을 요청하며 부르짖을 때 사용하는 동사이다. 여호사밧이 하나님께 절박하게 부르짖었다.
 
이때 아람 왕의 지휘관들은 자신들이 쫓고 있던 사람이 이스라엘의 왕이 아닌 것을 확인한 후 추격을 멈추고 돌아섰다. 여호사밧이 부르짖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살려 주셨다. 역대하 18:31에서는 “여호사밧이 소리를 지르매 여호와께서 그를 도우시며 하나님이 그를 감동을 주사 그를 떠나가게 하신 지라”라고 기록하며 여호와의 도우심을 분명하게 언급한다.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여호사밧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지켜주셨다.
 
 
 
3. 우연한 화살에 맞아 죽음에 이른 아합(34~36절)
반면 아합은 우연히 어떤 사람이 아합을 맞힐 의도 없이 쏜 화살에 맞는다. 그것도 가슴 갑옷 솔기 사이를 관통하며 꽂힌다. 거의 일어날 가능성이 없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분명함을 증언하는 것이다.
 
아합은 미가야를 통해 들은 여호와의 신탁을 피하려고 왕복을 입지 않았고, 대신 유다 왕 여호사밧을 미끼로 세웠으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갑옷까지 꼼꼼하게 입었으나 “여호와에서 날린 화살”은 피할 수 없었다. 그가 온갖 책략을 가지고 있었어도 여호와의 지혜를 능가할 수 없었고 아무리 방어 준비를 꼼꼼히 했어도 도무지 꽂힐 수 없는 부분에 화살을 꽂히시는 하나님이시다.
 
여호와의 명령을 어기고 여호와의 손과 눈을 피하려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결과는 비참했다. 화살을 맞은 아합은 병거를 모는 자에게 자신이 화살을 맞았으니 치료하기 위해 빨리 전쟁터에서 벗어나라고 명령한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합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전쟁이 치열해져서 그의 병거는 아람 군대 앞에 막혀 오도 가도 못했다. 그러다가 저녁 무렵에 결국 병거 바닥에 많은 피를 흘리고 죽게 된다.
 
아합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그것도 매우 고통스럽게 하루 종일 피를 흘리고 죽었다. 아합왕이 죽고 저녁 무렵이 되자 각자 집으로 가라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의 죽음이 확인된 후 전쟁은 완전히 끝났다. 미가야의 예언처럼 전쟁터에서 죽었고 미가야는 참 선지자였다는 것이 분명하게 증명되었다.
 
 
 
4. 아합의 죽음 공식(37~40절)
전쟁터에서 죽은 아합의 시체는 그의 부하들이 사마리아까지 메고 와서 안장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봇의 포도원 사건으로 아합의 가문에 심판을 내리셨을 때, 아합이 진정으로 회개하여 아합 때에 내리시기로 한 징벌을 아들 대로 미뤄주신 결과다. 하지만 열왕기상 21장 19절에서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던 곳에서 네 피를 핥으리라는 예언은 유사하게 성취가 된다.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는다는 것”은 평안한 죽음이 아닌 비참한 죽음, 집이 아닌 객지에서 죽음을 가리키는 관용구라는 점에서 길르앗 라못 전쟁터에서 전사한 아합의 죽음이 여호와께서 아합에게 내린 심판이 성취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후에 아합의 아들 요람이 예후에 의해 나봇이 죽은 곳에서 죽임을 당한다.
 
아합의 업적을 기록하면서 그가 건축한 상아궁을 언급한다. 당시 상아로 만든 가구 장식과 널판을 벽에 붙여서 만든 궁이었다. 상아는 주로 아람에서 수입하였다. 아합이 상아로 만든 호화로운 궁전을 건축한 것은 솔로몬이 예루살렘에 백향목 궁을 만든 것과 비교가 된다. 이는 아합의 통치 기간의 북이스라엘이 매우 부유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복을 주셔서 부유했던 솔로몬과 달리 아합은 바알 숭배를 수단으로 부와 영화를 취하였다. 아합의 큰 치적 중의 하나가 상아 궁이었다. 그러나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기록과 다르게 그의 상아궁에 대한 묘사는 추가하지 않는다.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의미다. 아합이 죽자, 그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되었다.
 
아합의 긴 이야기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 중에서 가장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아내 시돈 사람 이세벨이 여호와의 신앙을 없애고 바알 숭배를 퍼뜨렸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악한 통치를 간과하지 않으셨다. 엘리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를 보내시고 큰 권능을 보여주시며, 아합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돌아올 기회를 여러 번 주셨다. 하지만 결국 아합은 이런 기회를 모두 버리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가장 악한 시대, 가장 강한 선지자 엘리야와 많은 선지자를 보내셔서 아합에게 말씀하신 것은 그만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표현이었다.
 
 
 
나는?
-아합의 비겁한 꼼수, 그러나 그의 의도대로 되지 않는 전쟁터…. 아합은 일반 군사로 변장했고 여호사밧에게 왕복을 입게 한다. 아벡 전투의 수치를 갚기 위해 아람의 벤하닷이 자신을 노릴 것으로 생각했든지, 혹은 미가야의 예언이 마음에 걸렸든지 얄팍한 꼼수를 사용한다. 어떠해서든 자신에게 닥칠 위험을 여호사밧에게 떠넘기려는 비겁한 행동이다. 이런 왕의 통치를 받아야 했던 이스라엘의 고충이 눈에 선하다.
 
-아람 왕 벤하닷은 이스라엘의 왕을 집중하여 노렸다. 아합은 변장도 하고 갑옷도 더 단단히 여미며 전장에 나섰다. 하지만 단단히 무장한 아합의 갑옷 가슴막이 이음새 사이를 꿰뚫은 “우연히 쏜 한 발의 화살”에 아합의 꼼수는 깨지고 미가야의 예언은 적중하며 성취되었다.
 
 
*우연으로 변장한 하나님의 필연의 화살”이 변장한 아합의 모든 인간적인 계산과 간교한 전술, 근거 없는 자기 기대, 자기 확신에 정확히 적중하며 관통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셨기에 인간적인 꾀와 견고한 갑옷도 아합을 지켜주지 못했다.
 
*미가야의 예언대로 왕이 백성보다 먼저 죽었고 그의 죽음이 확인되자 백성들은 흩어졌다. 그의 피 묻은 병거를 사마리아 못에서 씻을 때 개들이 핥았다. 이것 또한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태도가 이스라엘과 아합왕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화살에 맞은 아합은 전쟁터를 빠져나가려고 애썼으나 실패한다. 군사들의 사기를 꺾지 않기 위해 해질 때까지 버티고 서 있었다. 인간적으로는 마지막까지 할 도리를 다했다. 그는 또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건축에 능한 왕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가장 안정된 시대도 안겨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다 무슨 소용인가?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했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을 명백하게 알고 있었어도 이세벨의 충동에 넘어갔다. 참 선지자인 줄 알면서도 엘리야와 미가야를 미워하고 핍박했다. 선지자를 미워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이었다. 강렬한 하나님을 향한 미움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기회들을 바라보지 못하게 했다. 깨닫지 못하게 했다.
 
*아합은 하나님을 피하는 인생이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늘 변명하는 인생이기도 했다. 결국 하나님에게서 도망하려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하고 심판의 화살이 그를 꿰뚫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붙잡으실 때 붙잡혀야 한다. 구속하여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붙잡고 구속당해야 한다. 그래야 진짜, 영원히, 살 수 있다.
 
 
 
*주님, 자기 지혜, 자기 방법이 자신을 지킬 수 없음을 깨닫습니다. 그저 하나님만 더욱 의지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주시리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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