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의 아버지의 길로 [왕상 22:41-53]
 – 2023년 10월 31일
– 2023년 10월 31일 –
남 유다의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을 섬기고 아버지 아사의 선한 길을 따랐으므로 “여호와 앞에 정직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는 바알을 섬기고 아합과 이세벨과 여로보암의 악한 길을 따랐으므로 “여호와의 눈에 악한 왕”으로 평가받는다. 어떤 길을 선택할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1. 등극 공식과 평가(41~44절)
여호와 앞에 신실했던 유다 아사 왕의 아들 여호사밧의 이야기이다. 그는 아합이 전사한 아람과의 길르앗 라못 전쟁에 잠시 등장했었다. 아사 왕과 함께 여호와 앞에 선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아합왕 제4년에 35세의 나이로 남 유다의 왕이 되었고 25년을 다스렸다. 아합과 동시대를 살았고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위에 오를 때까지 살았다. 여호사밧은 즉위 초기 3년 동안 아사 왕의 섭정이 있었고(주전 872~869) 통치 말기 5년 동안(주전 853~848) 그의 아들 여호람과 함께 유다를 통치하였다. 이렇게 보면 그의 실질적인 통치 기간은 44년까지 늘어난다. 그의 어머니 이름은 실히의 딸 아수바이다.
 
여호사밧은 아사 왕과 함께 긍정적인 평가는 받는다. 여호사밧은 아버지 아사가 행한 단호한 우상숭배 배격 정책을 그대로 유지하였다. 저자는 아사에 대해 ‘아사의 마음이 일평생 여호와 앞에 온전하였다(왕상 15:14)’라고 평가했다. 그런데 여호사밧도 아사가 그대로 행한 산당 제의를 허용했다. 저자는 아사 왕과 비교하여 이 부분을 아쉬워한다. 여호사밧이 아사의 종교개혁을 물려받아서 산당을 척결하여 개혁을 완성했어야 했다는 것이다.
 
또 저자는 여호사밧이 이스라엘의 왕과 더불어 화평하게 지냈지만, 여호와 보시기에 악한 아합과 아하시야와 정략결혼을 통해 결혼동맹을 맺었기 때문임을 밝힌다. 여호사밧은 아합과 이세벨의 딸인 아 달랴 와 자기 아들 여호람을 결혼시켰다. 이 때문에 아합이 죽은 아람과의 길르앗 라못 전쟁에 합류할 수밖에 없었다.
 
여호사밧이 아합을 도운 이 행동에 대하여 역대하 19:2에서 선지자 예후가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까?”라고 비난했다. 아합과의 결혼동맹은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남 유다에게 끼쳤는데, 여호람과 결혼한 아달랴는 자기 아들 아하시야가 죽은 후 다윗의 자손을 모두 멸절시키고 스스로 왕이 되어 6년 동안 유다를 통치한다. 이때 바알 신앙을 유다 전역에 퍼뜨렸다. 아합 가문의 영향력이 유다 가문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 여호사밧과 아합의 결혼동맹으로 얻은 평화가 결국 남 유다에 바알 신앙이 급속하게 유입되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2. 여호사밧의 업적과 죽음 공식(45~50절)
여호사밧의 업적에 대한 기록은 다른 왕들에 비해 길게 언급된다. 그가 다른 왕들과 다른 점은 ‘싸움을 잘하는 힘 있는 장수였다는 것과 전쟁을 했다는 것’이다(45절). 열왕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역대하 20장에서는 모압 자손과 암몬 자손과 전쟁하여 여호와의 도움으로 크게 이겼다. 또 여호사밧은 아시 시대에 남은 이방 신전의 남창 제도를 없앤다. 그곳에서 일하던 남창들을 모두 근절하였다(46절). 에돔을 유다에게 복속시켜 유다에서 총독을 보내 다스렸다는 것도 빼놓지 않는다(47절). 유다의 국력이 그만큼 강성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았기에 유다를 강성하게 해주셨다는 의미이다. 또 여호사밧은 다시스에서 선박을 건조하여 무역업을 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에시온게벨에서 배가 파선되어 무위로 돌아간다. 이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가 함께 배를 다시 건조하여 무역업을 하자고 제안했지만, 여호사밧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역을 함께 하여 금전적 이익을 나눌만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다. 역대하 20:35~37에서는 이 사건을 여호와께서 여호사밧이 악한 왕 아하시야와 교류하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역대기는 전반적으로 오므리 왕조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다루었고, 열왕기는 여호사밧이 북이스라엘과 교류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시가보다는 사실관계 확인 정도에 국한하여 기록한다.
 
여호사밧은 죽어서 그의 조상 다윗성에 안장되었고 그의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되었다(50절). 전형적이 죽음 공식이다. 여호사밧은 그의 아버지 아사가 시작한 종교개혁을 완성하고 유지한 인물이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던 북이스라엘과 달리 두 세대 동안 평화의 시대를 구가했다.
 
 
 
3. 안 하셔야 왕의 이야기(51~53절)
히브리 성경은 열왕기를 상하로 구분하지 않는다. 헬라어 성경(70인역)이 상하로 구분한다. 열왕기상의 마지막 부분에 소개되는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 왕의 이야기는 열왕기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상권에서는 그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열왕기하에서는 구체적인 사건들을 언급한다.
 
북이스라엘의 아하시야는 유다의 왕 여호사밧 17년에 왕이 되어 2년 동안 다스렸다. 아람과의 길르앗 라못 전쟁에서 아버지 아합이 죽자 곧이어 왕이 되었으나 상당히 짧은 기간 통치하다 병들어 일찍 죽는다. 사마리아 왕궁 이층 난간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 후에 얼마 안 돼 죽는다. 이때 엘리야에게 자신이 죽을지 물어보는 이야기가 열왕기하 1:1-18에서 이어진다.
 
그에 대한 저자의 평가는 “여호와 앞에 악을 행했다”라는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의 길과 여로보암의 길을 따랐기 때문이다. 저자는 아하시야를 평가하면서 특이하게도 어머니 이세벨의 길을 따랐다고 강조한다. 이세벨은 남편 아합뿐만 아니라 아들 아하시야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 결과 아하시야의 북이스라엘은 바알을 여전히 숭배하고 예배했다. 저자는 그의 아버지가 했던 온갖 못된 행동을 그도 따라 했다고 기록한다. 이런 행동으로 아하시야는 여호와의 진노를 받게 되었다.
 
*유다의 여호사밧이 아버지 아사의 길을 따라가며 여호와 축복을 받은 것과 대조가 된다.
 
 
 
나는?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은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은 선한 왕이었다. 하나님 보시기에 긍정적인 평가의 핵심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한 것이 있었다. 아버지 아사가 신전 남창들을 제거하는데 앞장선 것처럼 여호사밧도 그 남은 남창들을 일소하였다. 그러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산당은 폐하지 못하였는데, 저자는 그 원인이 백성들에게 있는듯한 뉘앙스를 풍긴다.
 
-아버지의 신앙을 이어받아 과감하게 종교개혁을 단행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 나도 선대 목사님의 유산을 이어받아 더욱 “더 예수님처럼” 신앙을 개혁하고 단단하게 세워가는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겠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하나님 나라 복음 신앙이 잘 전수되도록 삶에서 보여주어야겠다.
 
-우리의 후대에 우리 공동체의 신앙적인 고민과 열정과 목표를 이해하게 하고 이어받도록 잘 전수해야겠다.
 
 
-여호사밧은 평화와 번영의 시대를 이끈 왕이었다. 여호사밧 통치의 특징을 또 언급하라면 북이스라엘과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관계를 맺었다는 점이다. 남 유다의 선대 왕들은 지속해서 북이스라엘과 전쟁을 이어왔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이 관습을 끊어낸 것이다. 물론 그의 아들 여호람과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의 혼인으로 인해 맺어진 결혼동맹의 영향이긴 했지만, 여호사밧이 여호와 앞에 바로 서 있었기 때문에 형제 나라와 전쟁은 피했을 것이다.
 
-또 다윗 이후 계속해서 에돔을 지배하고 에세온게벨 항구를 이용하여 솔로몬 시대에 성행하였던 홍해 무역을 재개하려고 했다. 이 과정에서 배가 파선하여 실패로 돌아갔지만,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의 동업 제의를 거절하며, 경제적인 실리도 영적인 상태도 맞지 않는 북이스라엘과 무역동맹까지는 발전시키지 않았다(대하 20:35~37).
 
 
-아합의 아들 아하시야는 악을 떠나지 않은 왕이었다. 단 2년을 왕위에 있으면서 아버지 아합과 어머니 이세벨의 악행에서 떠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과 선지자를 미워한 부모 밑에서 자란 아하시야에게 하나님의 옳고 그름의 기준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다. 말씀을 향한 부모의 태도와 가치관이 자식의 미래에 얼마나 결정적으로 영향을 끼치는지를 바로 보여준다.
 
-부모 세대의 신앙이 살아있다면 자녀 세대가 이를 잘 전수 받는다. 부모의 뒷모습을 따라간다. 오늘을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따라 치열하게 살아내야 할 이유이다.
 
 
*국어사전에서 “길”은 여러 의미로 설명한다. 먼저 ‘사람, 짐승, 배, 차, 비행기 등이 오고 가는 공간’이라고 설명한다. 또 길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나 임무’로도 설명한다. 그리고 길은 ‘어느 곳으로 가는 노정’으로도 설명이 된다. ‘목표로 하는 방향’으로, ‘개인의 삶이나 사회, 역사의 발전 따위가 전개되는 과정’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어떤 일을 하는 도중이나 기회’를 뜻하기도 한다. ‘기회나 방법, 즉시’의 뜻으로도 연결된다.
 
*본문에서 여호사밧과 아하시야의 인생을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고 공통으로 평가한다. 같은 시대를 살았으나 그들이 걸어온 길과 사후 평가는 극명하게 갈렸다. “여호와 앞에서 정직한 길”과 “악한 길”이었다. 이들이 걸어온 길은 그들이 처음 걸어온 길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따라 산 길”을 계속 걸었다.
 
*얼마나 소름이 끼치는 삶인가.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업적과 결과를 만든 인생이었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떤 “방식, 태도”로 살았는가를 평가하신다. 나는 아들들에게 어떤 길을 보여주며 함께 걷고 있을까? 아들들은 훗날 어떤 길을 걸어갈까? 환경을 탓하며 세상의 방식과 하나님의 방식을 적절하게 섞으며 산 이도 저도 아닌 삶을 보여주고 있을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올곧게, 바르게) 산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렇게 살아내도록 충분한 용기를 주고 있을까?
 
*내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간 길을 아들들도 당연하게 살아가도록 정신을 차리며 살아야지….
 
 
 
*주님, 제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올바르게 살아내겠습니다. 아들들이 자연스럽게, 당연하게 따라 살아내도록요…. 아들들의 삶이 아버지의 삶의 연장임을 알고 책임감 있게 살겠습니다.
*주님, 믿음의 유산을 전수 시키는 교회가 되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먼저 여호와 보시기에 선한 삶을 살아내면 우리 후손들도 이 길을 따를 줄 믿습니다. 아사의 길을 따른 여호사밧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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