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완벽한 삶에 덮친 완벽한 재앙, 그러나 완벽한 찬양 [욥 1:13-22]
 – 2023년 11월 04일
– 2023년 11월 04일 –
천상에 하나님과 사탄 사이에 나눈 대화의 결과가 지상에서 펼쳐진다. 욥에게 갑자기 재앙이 닥친다. 그 원인을 독자들은 너무도 잘 안다. 그러나 욥을 알지 못한다. 그에게는 평상시와 다름없는 어느 날 갑자기 닥친 알 수 없는 고통이 시작되었다. 스바와 갈대아 사람들이 몰려와 소와 나귀와 낙타를 빼앗고 “칼”로 종들을 죽였다.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들을 살라 버렸다. 자녀들이 큰바람에 집이 무너져 한꺼번에 죽는다. 숨 쉴 틈 없이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까닭 없는 고난” 앞에서 욥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초월한 신앙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욥의 신앙 고백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 텅 빈 그의 인생에 울려 퍼진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욥에게 어떤 고난들이 닥쳤고, 그 고난에 대하여 욥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보여준다. 인간의 이해를 벗어난 천상의 공간에서 욥의 고난이 결정되었다. 욥 자신과 그의 친구들은 욥에게 왜 재앙이 임했는지를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있다. 욥이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임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이다. 그 모습을 통해 하나님 나라 백성이 가져야 할 신앙적인 태도가 무엇인지 살펴볼 수 있겠다.
 
 
 
1. 욥에게 닥친 첫 번째 재난(13~19절)
평범한 어느 하루였다. 이날 욥의 자녀들은 첫째 아들의 생일을 맞아 그의 집에서 잔치하고 있었다. 소는 밭을 갈고 나귀는 그 곁에서 풀을 먹는(14절) 일상이 반복되고 있었다. 그때 욥의 삶을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갑자기” 스바 사람이 이르러 소와 나귀를 약탈하고 종들을 죽인다. 하나님의 불이 하늘에서 떨어져 양과 종들이 희생된다. 연이어 갈대아인들이 기습적으로 공격하여 낙타를 빼앗고 종들을 살해한다. 가장 결정적으로 욥의 열 자녀가 몰살당한다.
 
*평범한 일상이 이어지다 갑자기 고난이 닥친 것은 욥의 재앙이 “까닭 없이” 일어난 것이고 인과응보의 원리에서 벗어난 재앙임을 밝힌다. 첫 번째 재난은 욥에게 건강한 몸 외의 모든 것을 앗아간다. 욥에게 닥친 고난은 총 네 가지이다. 그중에 둘은 외국인들(스바, 갈대아인들)에 의한 것이고 나머지 둘은 천재지변(하늘에서 떨어진 불, 큰바람이 집을 무너뜨림) 이다. 욥기는 인재(人災)와 천재(天災)를 구분하지 않는다. 고대의 세계관은 불행과 화가 사람에게 나오든 천재지변에 의한 것이든지 모두 하나님의 주권 하에 그의 뜻을 따라 발생한 일이었다.
 
 
욥에게 닥친 네 가지의 재앙을 기록하면서 “그가 아직 말하는 동안에 또 한 사람이 와서…. 나만 홀로 피하였으므로 주인께 아뢰러 왔나이다” (16~18절)이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욥에게 닥친 재앙은 시간 순차적으로 하나씩 온 것이 아니라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은 또한 재앙이 욥이 소유한 모든 것, 즉 하나님께서 욥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에 총체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을 표현한다. 재앙이 발생하는 대상이 2~3절에 묘사된 욥의 소유 목록 순서(열 명의 자녀, 양, 낙타, 소, 나귀 그리고 종들)와 정확히 반대순으로 일어난 것을 보여준다소, 나귀, 종(14~15절), 양과 낙타(16~17절), 그 후에 자녀들(19절)이다. 재난이 점점 더 크게 점층적으로 일어난 것을 가리킨다.
 
이 모든 재앙은 욥의 처지에서 보면 “까닭 없는 재앙”이다. 스바와 갈대인들의 약탈, “하나님의 불(번개), 큰바람(폭풍)” 등은 인간이 마음대로 조절하고 대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욥에게 재앙의 원인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고대 세계에서 자연에서 비롯된 재앙은 인간의 행위 여부와 무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 영역이었다. 욥에게 일어난 모든 재앙은 하늘에서 결정된 사항이라는 의미다. 하나님의 허락과 주관하에 벌어진 일이다.
 
 
 
2. “까닭 없는” 고난에 대한 욥의 첫 반응(20~21절)
독자들은 욥의 고난 원인을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욥은 모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까닭 없는” 재앙이다. 이러한 일어나자, 욥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먼저, 일어나서 겉옷을 찢고 머리카락을 민다. 지금의 상태가 극심한 고통인 것을 표현하는 행동들이다.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 상태인 것을 외부로 표현하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미는 행위도 역시 “통곡”을 표현하는 행위였다. 그런데 이런 구체적인 행동이 나오기 전에 욥에게서 먼저 보인 행동이 있다. 바로 “침묵”이다.
 
네 차례에 걸쳐 끔찍한 소식들이 들려지는 가운데 욥은 줄곧 침묵한다. 절망의 소식을 들었을 때 욥의 반응을 설명하지 않고 있다가 그가 취한 행동을 통해 욥의 반응을 알려 준 것이다. 너무도 충격적인 소식들이 연이어 들려올 때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심지어 탄식조차 내뱉지 않았다. 그저 들은 후에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땅에 엎드려 예배하며” 고백한다. “말하기를 “내가 맨몸으로 모태에서 나왔으니, 맨몸으로 그곳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주신 분도 여호와시며, 가져가신 분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소서.” 하였다.” (새번역_21절) 도무지 예상하지 못한 행동이었다. 도대체 믿기지 않는 신앙 고백이다. 그가 당한 재앙의 경중과 상관없이 말 그대로 정통적인 신앙 고백을 올려 드린다. 그의 이런 신앙 고백은 “하나님에 대한 까닭 없는 경외, 대가를 바라지 않는 신앙은 있을 수 없다”라는 사탄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욥은 알몸으로 태어났으니 다시 아무것도 없는 상태로 죽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이름이 찬양받지 못할 아무런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고백한다.
 
21절을 직역하면 “주님은 주시고 주님은 거두신다”이다. 이 고백에 어떤 이유나 조건이 붙어 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 주시면 우리가 무엇인가를 받을 만한 일을 해서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가져가실 때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일을 내가 해서가 아니다. 이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결정에 따른 것이다. 절대주권이다. 하나님의 결정하심에 대한 자유로움이다.
 
그러므로 극단적인 욥의 고백에 담긴 분명한 메시지는 “하나님은 인과응보의 원리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3. 욥의 반응에 대한 평가(22절)
까닭 없는 재앙이 닥쳤을 때 욥이 보인 첫 번째 고백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다시 가져가신다”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모습의 욥을 향해 “그가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22절)”라고 평가한다.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은 본래의 정통적인 신앙 노선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원망하지 않았다는 것도 불경건한 어떤 언사도 행치 않았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욥이 까닭 없는 재앙의 한가운데서 정통적인 신앙의 노선을 잘 견지하고 있음을 표현한다. 하지만 욥이 당한 고난은 정통적인 신앙의 인과응보의 원리와 맞지 않는다.
 
이해되지 않는 재앙의 연속적이고 불행하기 짝이 없는 고통 앞에서 하나님의 의도를 먼저 스스로 오판해서 어리석은 판단을 내리지 않은 것이다. 욥의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인과응보의 원리에 충실하기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여준다. 성경은 이것을 “지혜”라고 말한다.
 
 
 
나는?
-인간이 당할 수 있는 최악의 재앙 앞에서 놀랍게도 욥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으로 반응한다.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일어나 들려오는 재물의 상실과 청천벽력 같은 열 자녀의 죽음에 망연자실한다. 그러나 그는 비통하고 참담한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가다듬고 하나님께 경배를 올린다. 온전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온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고통을 줄 수 있느냐며 원망과 불평을 쏟아낼 수 있을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욥은 하나님을 찬양한다.
 
-이러한 욥의 모습은 그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 때문이 아니라 마땅히 찬양받으실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주신 이도 다시 거둬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다”는 절대주권의 고백이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고백을 잊지 말아야 한다.
 
 
*완벽한 의인인 욥에게 완벽한 재난이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찾아온다. “한 소식이 다 끝나기 전에 그가 아직 말하고 있는 동안에” 다른 소식이 연이어진다. 그에게 소중한 것을 모두 잃었다. 완벽한 재난이 그를 덮쳤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며 그 슬픔과 아픔을 표현한다. 하지만 사탄의 기대와 달리 그의 입에서는 저주 대신에 아름다운 찬양이 흘러나왔다.
 
*그에게 어떤 원인이 있지 않다. 욥은 여전히 온전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그런데도 고난이 닥쳤다. 아직은 아무도 그 뜻을 모른다. 독자인 우리도 아직은 왜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런 고난을 내려도 된다는 것을 허락하셨는지 알 수 없다. 그저 그냥 일어났다.
 
*욥은 자녀들이 죽었다는 소식에 참지 못하고 오열한다.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린다. 그리고 그 고통 중에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의 예배는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으니, 알몸으로 돌아갈 것이다. 주신 이도, 거두어 가신 이도 여호와이시다.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어다”라고 고백하는 예배였다.
 
*자식을 한꺼번에 잃은 상황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찬양이라니….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 재난과 고통의 모든 일의 배후에 하나님이 계신 것을 분명하게 고백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욥이 죄를 범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한편으로는 완벽한 고백이어서 찜찜하다. 혹시 종교적인 위선은 아닐지 조심스레 상상도 해본다. 그만큼 재난을 당한 욥의 태도가 그야말로 “온전하다.” 그래서 믿기지 않는다. 이후에 욥은 하나님께 적나라하게 불평한다. 그런 부분을 알고 있는 독자가 완벽한 재난의 시기에 완벽한 신앙 고백을 하는 욥의 모습이 무척이나 놀랍다.
 
*완벽한 축복의 인생이 완벽한 재난을 당하여 모든 것을 잃고 만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사탄이 기대했던 변절이나 배교의 고백이 아니라 찬양과 고백이 흘러나왔다.
 
 
 
*주님, 욥의 완벽한 삶에 완벽한 재난이 덮쳤지만 완벽한 신앙 고백을 드렸습니다.
*주님, 가장 좌절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끝까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고백하는 그 신앙이 나의 신앙이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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