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고통에서 벗어날 방법들을 애타게 찾았지만… [욥 9:17-35]
 – 2023년 11월 13일
– 2023년 11월 13일 –
하나님이 행하시는 어떤 법칙이나 원리를 인간이 알 수 없다는 반성적 지혜의 일반론(1-16절)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고난을 주시는지 욥은 알 수 없다. 하늘에서 벌어진 일을 알지 못하는 욥에게 고난은 그야말로 까닭 없는 것이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더욱 고통스럽고 두려운 법이다. 욥은 그 두려움을 매우 솔직하게 고백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주시는 고난의 이유를 피조물인 자신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1. 까닭 없는 고난에 대한 탄식(17~24절)
욥에게 임하는 고통은 “폭풍”과 같은 것이다(17절). 하나님은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을 만큼 괴로움을 채우셨다고 고백한다(18절). 폭풍(세아라_폭풍, 회오리바람) 이 왜, 언제 부는지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큰일이며 셀 수 없는 기이한 일(10절)인 것처럼 욥이 당하는 고난이 “까닭 없는 “것이었다(17절). “폭풍(세아라)은 일상적인 바람과 다르고 언제, 어떤 방식으로 부는지 예측할 수 없기에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된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과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그분의 판단 기준에 욥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도 ‘그분(하나님)의 판단 기준에 맞을 수 없다.’ 19절 하) 인간의 판단과 하나님의 판단은 다를 수밖에 없다.
 
욥은 설령 자신이 아무리 의로울지라도 자신이 당한 처참한 곤경을 스스로 정죄할 수밖에 없으며, 설령 자신이 온전할지라도 내 입이 자신을 정죄할 것이라고 염려한다(20절). 이는 인간으로서 최대한 하나님의 입장에 맞게 살려고 노력한다 해도 그것이 곧 하나님의 기준에 맞는다는 보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를 의롭고 온전하다고 평가하여도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욥을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8; 2:3)라고 여겨도 땅에 거하는 욥은 이런 하나님의 판단을 알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이다.
 
의인, 선인, 지혜자(온전한 자)도 악인과 마찬가지로 죽는다(22절, 전 2:14-16). 이 사실 하나만으로 의인, 선인, 지혜자에게는 생명이, 악인에게는 멸망(죽음)이 임한다는 인과응보에 근거한 이분법은 “모든 사람이 죽는다”라는 객관적 사실에 무너진다.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난은 “무죄한 자”를 포함해 닥칠 수 있는 것이다(23절). 만약에 온 세상이 악인의 손에 넘어간다고 하더라도 올바르게 판결해야 할 재판관들이 하나같이 눈이 가려져 있더라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하신 일(24절)이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 하에 있는 것이다.
 
 
 
2. 두려움에 대한 고백(25~35절)
인생이 너무 빨라 좋은 세월을 누릴 겨를이 없다(25절). 지나가는 것이 갈대 배와 같이, 먹이를 덮치려고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빠르다(26절). 그래서 애써 온갖 불평을 잊어버리고 명랑하게 보이려고 했지만(27절), 이 모든 고통이 두렵기만 하다(28절 상)고 탄식한다.
 
욥은 어느 정도 초월적인 태도를 보일 수 없다. 왜냐하면 깊은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욥처럼 깊은 고통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자신의 상황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자각하게 한다. 그래서 고통이 하나님에게서 왔다고 말하는 것은 불신앙의 표현이 될 수 없다. 오히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앙이 된다.
 
아프고 무섭고 괴롭다고 말하는 것은 “신앙의 결핍이나 왜곡을 의미하지 않는다.” 욥 자신도 고통스럽다고 말하고(28절), 자기 모습이 끔찍하다고 말한다(31절). 자기 자신은 당당하게 나는 두렵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인간임을 잘 알고 있다(35절).
 
*고난과 고통, 두려움 앞에서 솔직한 것은 자신에게 솔직한 것임과 동시에 하나님께 솔직한 것이다. 고통스러운 것을 아닌 척하는 것은 “인내”가 아니다. 삶이 고통스럽지 않은 척, 가난과 어려움이 없는 것처럼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청하는 태도가 아니라는 것을 욥이 말해준다.
 
*자신의 괴로움에 솔직할 수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엎드릴 수 있다. 엎드려서 두렵지 않게 해달라고 그분의 막대기와 위엄이 떠나게 해달라고 간구하며(34절),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간청한다(15절).
 
*욥의 간청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실 의무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인과응보의 원리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니다. 인간의 어떤 행동이 반드시 하나님의 어떤 행동을 촉발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을 조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자이시니 욥에게 주실 수도 있고 거두실 수도 있다. 복을 주실 수도, 화를 주실 수도 있다. 인간의 판단에서 납득할 수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누가 옳은지를 따질 수 없는 것이다(32~33절).
 
**규범적 지혜가 하나님은 경외(두려워)해야 할 분이시니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한다고 가르칠 때, 반성적 지혜는 하나님이 어떤 방식으로 움직이실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더욱 두려운 분이시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나는?
-욥은 인과응보의 원리를 깨뜨리는 경험을 나열한다. 더 나아가 자신처럼 무고한 사람이 죄인으로 판명되고 세상이 악한 자들의 손에 움직이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에 있다면 하나님은 우주적 무질서의 원인이 되신다고 토로한다. 매우 불신앙적인 표현인 듯 보이지만 이것 또한 모든 일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솔직한 표현이다.
 
-그의 토로는 점점 수위를 높여간다. 욥은 물로 몸을 씻고 잿물로 손을 깨끗하게 하는 정화 의식조차 무효하다고 말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달려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무고한 자를 정죄하고 정결한 자를 죄로 정하시면 어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욥이 무죄 입증 노력을 포기한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공정하게 재판을 다뤄줄 강력한 ‘판결자’를 요청한다. 욥은 자신이 아무리 깨끗하더라도 하나님은 자신을 정죄하기로 작정하셨다며 자신의 고난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했다. 절망에 빠져 무죄를 입증하려는 시도 자체를 포기하면서도 갈망하며 ‘판결자’를 요청한 것이다.
 
*욥이 그토록 갈망했던 강력한 “판결자”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주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다(딤전 2:5).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본문이 주는 교훈은 단순하다. 우리에게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공정하게 판결할 판결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고난 앞에서 마음이 괴로운 상황을 만났을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주권이 주님 없는 인과응보의 도구가 되게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와 함께하신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와 만나야 한다.
 
*고통과 절망의 문제가 없는 사람은 없다. 우리는 늘 “절망과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올 방법이 있을까?” 질문하고 있는지 모른다. 고난이 하루하루의 삶을 어둡게 하고 절망에 빠지게 할 때,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와 구원을 얻어야 할까? 두말할 나위 없이 “자비의 아버지이시오,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다.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시므로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히 4:5).
 
*”하나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 147:3)” 라고 노래했다. 그 예수 그리스도만이 고통받는 영혼을 달랠 수 있고, 상처받은 마음을 낫게 해 주신다.
 
 
 
 
*주님, 끝까지 자신의 순전함을 포기하지 않는 욥을 봅니다. 고통이 지속되고 자신의 아픔과 답답함을 알아주는 이 없어도 하나님 앞에 있는 욥을 봅니다.
 
*주님, 깊은 절망이 가져온 무거운 탄식이 욥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의 입술에서 하나님에 대해 주저함 없는 표현이 나옵니다. 그래도 여전히 하나님 앞에 있으니,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으니 희망찹니다. 이처럼 무슨 회의나 고난이 덮치더라도 하나님 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절망의 토로가 끊이지 않게 나와도 떠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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