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블레셋은 이겼지만, 한 여인에게는 패하다! [삼하 11:1-13]
 – 2022년 10월 04일
– 2022년 10월 04일 –

암몬과 아람을 제압한 다윗 왕과 이스라엘은 명실상부한 가나안 땅의 맹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럼에도 암몬과의 전투는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윗은 암몬과의 전쟁에 출정하지 않는다. 요압에게 전권을 주고 자신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출정 시킨다. 이렇게 출정한 군대가 암몬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을 때 예루살렘에서 사달이 난다.

밧세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주변국들을 차례로 제압하고 아람까지 복속시키는(10:19) 절정의 시기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공의와 정의로 통치하는데 사용되어야 할 권력을 충신의 아내를 빼앗아 범하고 그 죄를 은폐하는데 남용하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위대한 왕 다윗이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긴 사건이다. 단순히 간음 사건에 그치지 않고 이를 숨기기 위해 살인교사까지 하게 된다. 본문은 1-5절을 통해 요압을 중심으로 그의 충성스런 부하들이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람과의 전쟁을 위해 출정하고 홀로 예루살렘 궁전에 남아 옥상을 거닐다가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보게 되고, 그녀를 탐하여 동침함으로 간음죄를 저지르는 장면이다. 6-13절은 다윗이 자신이 저지른 간음으로 인해 밧세바가 임신을 하게 되자 이를 감추기 위해 전장에서 우리아를 불러들여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지만 충성스러운 우리아는 이를 거절하고 동료들과 잠을 자게 된다. 다윗의 마음이 매우 다급해 져서 우리아를 하루 더 머물게 하여 술에 취하게 했지만, 여전히 집에 들어가기를 거절한다.

*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는 항상 죄의 유혹에 대해 깨어 분별하고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다윗은 그 날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함께 “왕들이 출전할 때”(1절) 였지만 이에 충실하지 않고 한가로이 거닐 때 범죄하고 말았다. 다윗의 삶의 가장 큰 오점인 이 사건은 어쩌다 일어나고 말았을까?



다윗 왕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삼하 8:6, 14). 그야말로 연전 연승이었다. 나라는 사울왕의 죽음 이후 분열 되었다가 통일되는 과정 가운데서 금새 안정이 되었고 주변 국가들을 차례로 굴복시켰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심”으로 이루어 진 일이었다. 이스라엘의 최고 전성기가 막 시작되려는 참이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이 안정되어 가자, 다윗은 전쟁터에 더 이상 출정하지 않는다. 충성스러운 부하들과 군대만 보내고 자신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 결과 간음과 살인교사죄까지 이르게 된다.



1.자만에 빠지면 누구나 범죄할 수 있다(1절)
다윗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게 되었을까? 본문에서 분명하게 언급하지 않지만, 이 사건의 배경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다. 다윗은 온 이스라엘을 “공의과 정의”로 통치 하였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따라 살려고 늘 묻고 물었던 신앙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위대한 다윗이 너무도 쉽게 무너지고 만다.

특히 군대를 출정 시킨 후 해질 녘이 되자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사달이 났다. 다윗은 예루살렘 궁전의 옥상을 한가로이 거닐면서 “이만하면 됐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는 식의 자만한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 아쉽게도 이와 같은 자만하는 마음에 다윗은 무너지고 만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 3:23)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이 땅의 모든 인간은 죄에 대하여 완전할 수 없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부탁하고 부탁했다.



2.어디서든 죄를 범할 수 있다(2절)
시간이나 장소에 상관없이 범죄할 수 있다. 다윗은 자신의 왕궁 옥상에서부터 범죄하기 시작했다. 평소의 그곳은 평범한 장소였다. 어쩌면 다윗에게 힐링의 장소 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죄는 장소를 배려하지 않는다. 어디서든 죄는 범할 수 있는 것이다.

다윗이 왕궁 옥상에서부터 범죄가 시작되었듯이 죄는 장소나 때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이는 일몰 직후 저녁 때의 몽환적인 분위기 때문에 라고도 하고, 어둑해지기 직전 우연히 바라보게 된 환경을, 하필 그 시간에 목욕을 한 여인에게 범죄의 원인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죄는 특정 장소나 시간, 환경을 가리지 않는다. 유혹에 넘어가면 범죄는 이미 일어나게 되어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땅에는 죄가 없는 장소는 없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얼마나 많은 범죄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가릴 수 없을 정도다. 그러므로 항상 조심해야 한다.



3.우리는 과연 범죄의 유혹을 피할 수 있을까?(9절)
우리아의 모습에서 안타까운 힌트를 얻는다. 우리아는 전시 중이었기에 다윗 왕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집에 들어가서 잠을 청하지 않았다. 왕궁 문 앞에서 함께 전장에서 소식을 가지고 온 군사들과 함께 잠을 잤다(9절).

우리아는 지금 전시 상태이기에 부하들을 이끄는 장군으로서 본을 보이기를 원했다. 그는 지극히 충성되고 성실한 장군이었다. 전시 중에 자신만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없다는 “공의와 정의”가 오히려 다윗보다 우리아에게서 보인다.

다윗은 자신이 지은 죄를 은폐하기 위해 이전에 우리아처럼 자신이 부하들에게 보여 주었던 이 모습들을 잃어버렸다. 우리아가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다윗과 함께 유대 광야를 방황할 때 보고 배운 것 아니겠는가!

*우리아는 여전히 충성되고 성실한데, 다윗은 변해 버렸다. 한편 다윗은 우리아의 완곡한 거절의 모습을 보며 왕궁에서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범한 잘못을 깨닫고 뉘우쳐야 했다. 그런데 다윗은 우리아의 충성을 불편해 한다. 범죄한 인생은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행동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려 하면 불편해 한다. 죄를 감추려고 점점 더 변해가는 다윗의 모습이 안타깝다. 이 모습이 언제든지 나의 모습일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범죄의 유혹은 언제나 누구든지 피해갈 수 없다. 다윗은 범죄 이후 이를 은폐하기 위해 더 많은 죄를 구상하여 실행에 옮긴다. 하지만 우리아의 충직스러운 모습을 바라보며 부끄러워하며 멈췄어야 했다. 자신도 우리아처럼 하나님 앞에 충직스러운 왕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다윗은 이를 거절하고 만다. 어느 누구도 이를 조언하거나 부추기지 않았다. 오직 자기 자신이 이렇게 이끌어 갔다.



나는?
-다윗에게는 범죄의 유혹을 단호하게 끊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3절은 목용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는데, 밧세바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했다. “다윗은 신하를 보내서, 그 여인이 누구인지 알아 보게 하였다. 다녀온 신하가, 그 여인은 엘리암의 딸로서,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라고 하였다.”(새번역_3절) “엘리암의 딸, 헷 사람 우리야의 아내”라고 알려 왔을 때 멈췄어야 했다. 4절의 새번역은 “그런데도 다윗은 사람을 보내어서….”이렇게 이어진다.

“그런데도”이다. 엘리암과 우리야는 모두 다윗의 삼십칠명 용사들이었다(삼하 23:34, 39). 엘리암은 대상 3:5에서 암미엘로 기록되어 있고 사무엘하 23:39에서는 길로 사람 아히도벨의 아들로 소개되었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모사였고, 다윗이 그의 말을 하나님의 말처럼 여겼다(삼하 15:12; 16:23)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도” 다윗은 밧세바를 불러 들였다.

한편 밧세바도 그리 현숙하지 못했다. 아무리 왕의 부름이라고 하나 저녁 시간에 남편은 전장에 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윗이 요구를 거절하지 않은 것은 다윗의 범죄만이 아니라 밧세바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 사건은 다윗의 강간이 아니라 서로 합의한 간음사건인 것이다. 좀 더 신중하지 않은 사람들의 눈에 띌 수 있는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혹여 누구라도 볼 수 있는 장소에서 목욕했다는 점도 그녀의 현숙하지 못함을 짐작케 한다.

또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4절) 이라는 기록은 밧세바가 다윗과의 간음의 부정함을 깨끗하게 했다는 것이 아니라 생리로 인해 부정한 기간을 지났다는 의미이다. 적어도 생리 이후 7일이 지났다는 의미인데, 이는 임신하기에 좋은 가임기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게 된다. 하나님 뿐인가? 자신의 모사 아히도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충성스러운 용사 우리야는 어떻게 그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죄의 유혹이 너무도 강렬하여 자신은 이 모든 관계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죄의 유혹의 힘이 이렇게 강력하다.

*또, 밧세바가 임신하였다고 알려 왔을 때 하나님께서 이 일을 드러내셨음을 깨닫고 죄 아래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왔어야 했다. 이미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다윗은 이를 자신의 힘으로 어떻게 은폐할까에만 집중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어떤 돌이킴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이웃의 것을 탐하여 간음 했고,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나게 하셨지만 하나님을 업신 여겼다. 이스라엘의 원수인 블레셋은 이겼지만, 한 여인 앞에서는 무너졌다.


*누구나 죄의 유혹을 받을 수 있다. 안 받을 수 없다. 하지만 유혹이 유혹으로 끝나야 한다. 이것이 나의 몫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밧세바가 임신 소식을 알릴 때 하나님께서 밝히 드러내셨다고 깨달았어야 했다. 그리고 진심으로 회개했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다윗은 회개 대신 은폐를 선택하고 만다.

*은폐를 선택한 이상 철저하게 이를 진행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더 죄의 노예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자신의 구상대로 은폐되지 않는다. 그의 사악한 계획이 우리야의 충성과 부하들을 위하는 마음 앞에서 맥을 못춘다.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신 것이다. 다윗은 이 지점에서 하나님께 다시 돌아왔어야 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 점점 더 죄악에 치달았다.

*다윗이 스스로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주위에서 아무도 이렇게 하도록 돕지 않는다. 자신이 그렇게 살기로 작정한 것이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의 원수 블레셋은 이기고 또 이겼지만, 한 여인 앞에서는 단번에 무너졌다…..



*주님, 죄가 언제든지 저에게 유혹하고 있음을 잊지 않겠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실 때 멈추는 용기를 내겠습니다. 도와주십시오.
*주님, 범죄한 다윗을 죄가 더욱 더 치밀하게 죄를 짓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이 끊지 못합니다. 저도 그럴 수 있기에 두렵습니다. 죄의 유혹을 이길 수 있도록 늘 깨우쳐 주실 때 알아듣겠습니다. 유혹이 유혹에서 멈추게 해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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