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나님은 인과율을 창조하셨지만, 이에 얽매이지 않는다! [욥 12:1-25]
 – 2023년 11월 16일
– 2023년 11월 16일 –
12~14장은 욥과 세 친구의 대화 중에서 첫 번째 사이클의 마지막 부분이다. 앞서 욥에게 회개를 촉구한 소발을 향한 대답이다. 욥이 말이 많다고 비판하는 소발에게 저항이라도 하듯 욥은 지금까지보다 더 길게 진술한다. 앞서 친구들과 소발이 인과응보의 논리로 욥을 정죄하며 회개를 촉구한 것과 그들 지식의 한계에 대해 욥은 하나님은 인과율에 제한되는 분이 아니며 인간이 규정한 선악의 기준을 뛰어넘는 분이라고 반박한다. 하나님의 지혜를 모른다고 한 소발의 공격(11장)에 대해서 욥은 의인이 고난을 겪는 것도 하나님의 지혜라고 반박한다.
    
    
    
1. 의인의 고통과 악인의 형통(1~6절)
욥은 소발을 포함한 친구들의 지혜에 대해 평가한다. 그들은 모두 전통적인 인과응보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특별 계시(엘리바스_4~5장), 선조들의 지혜(빌닷_8장), 사람의 지혜의 한계를 넘는 하나님의 지혜가 오묘함(소발_11장)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판단하면 욥은 죄가 있어서 고난을 겪고 있는 것이므로 회개하여 회복을 이루라고 소발은 권면했다(11장).
    
이에 욥은 친구들의 섣부른 판단과 독설에 실망하기도 했지만(6:15~21, 26~27), 제한적인 지혜를 가진 같은 인간임에도 지혜의 대표자처럼 주장하는 세 친구의 오만함을 지적한다(2절). 그러면서 친구들의 주장을 두고 “나에게도 너희만큼 분별력이 있으니, 너희에게 뒤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은 것을 모를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 (새번역_3절) 라고 반론을 제시한다. 즉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고난은 인과응보의 원리에 입각한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어서 세 친구의 평가와는 달리 자기 기도가 하나님께 응답하고 의롭고 온전한 자임에도 웃음거리와 조롱거리가 되었다고 말한다(4절). 친구들의 인과응보 교리가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들은 욥처럼 재앙을 겪지 않아 마음이 평안하고 재앙을 만나는 것이 죄의 결과로 내려진 하나님의 처벌로 보여 그의 재앙을 멸시한다(5절). 이들의 논리에 따르면 강도와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사람이 재앙을 받아야 하나 실제로 평안한 것은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어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인다(6절).
    
우리의 삶에는 인과응보의 전통적인 논리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들도 일어난다. 또 의인이 고난받고 악한 자가 잘되는 현실적 모순들도 비일비재하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주권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오묘함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로운 섭리에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2. 하나님의 절대 주권_(섭리_7~12절)
이 부분은 소발이 하나님의 오묘한 지혜를 하늘보다 높고, 스올보다 깊고, 땅보다 길고, 바다보다 넓다고(11:8~9절) 말한 것에 대한 반응이다. 욥은 그러한 지혜를 짐승, 하늘의 새, 땅, 바다의 물고기들과 같은 피조물들도 잘 알고 있다고 대답한다(7~10절). 창조주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셨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손”은 창조주로서 세상과 인간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권세와 주권, 능력을 상징한다. 여호와의 손은 욥의 고백을 통해서 알 수 있듯, “만들기도 하고(10:3, 8; 14:15), 치기도 하신다(2:5; 10:3; 13:21). 모든 만물은 그 여호와의 손 아래 있는 것이다(10절).
    
이와 같은 고백은 인과응보의 원리와 다르게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지혜와 섭리가 있으며, 하나님께서 욥의 고난을 허락하실 수 있음을 모든 창조물도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9절). 욥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과응보의 원리가 일괄적으로 삶의 경험에 적용될 수 없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욥은 마치 입이 음식의 맛을 구별하고, 귀가 말의 진리와 뜻을 분별하는 것처럼 적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11절).
인간 세계에 가장 뛰어난 지혜의 대표자로서 늙은이와 장수하는 자들의 지혜와 명철이 있으나(12절) 이마저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아는 것이 중요함을 말한다.
    
    
    
3. 하나님의 지혜_선악의 구별을 초월한다(13~25절).
지혜와 명철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자연 만물 가운데 행하시는 일들에 잘 나타나 있다. 하나님께서 허무시면 누구도 세울 수 없고 가뭄으로 마르게 하시고 홍수로 땅을 뒤집기도 하신다(14~15절). 모두 창조주의 주권에 속한 것이다. 심지어 인간 삶에서 속고 속이는 자까지도(16절), 왕권이 상실당하는 것이나 지혜로 조언하는 모사와, 재판하는 재판장, 제사장들, 충성된 사람들, 늙은 자들, 귀인들, 강한 자들의 언행과 모순을 주관하신다(17~21절). 이들은 모두 나라의 지도자들에 해당하는 이들이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제한이 없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는 것이다. 한 나라의 모든 권세가 사라지고 지혜자로 여겨지던 이들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는 일들이 모두 하나님의 지혜와 권능, 계략과 명철에 있다는 의미다.
    
욥은 세 친구의 인과응보 원리가 합당한 것이 아님을, 하나님의 지혜에 근거한 하나님의 섭리를 인간의 한계로는 예측할 수 없음을 인간 나라의 지혜자로 여겨지는 대표자들과 사람들을 예로 들어 반박한다. 22~25절에서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어두움 속에서도 은밀한 것을 드러내시고 죽음이 광명으로 나오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신다. 하나님께서 뜻과 목적에 따라 나라와 민족을 일으키시기도 하시고 그들을 들에서 유리하게도 하시며 취한 사람 같이 비틀거리게도 하신다고 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표현하였다.
    
욥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행사하시는 것 중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오묘하고, 신비한 일들과 모순처럼 여겨지는 것들이 인과응보의 원리로 입증되거나 해석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강조한다.
    
    
    
나는?
-인과응보의 원리에 기초한 규범적 지혜는 중요하다. 그런데 이 원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는 예외 사례들이 발생한다. 욥도 이 예외 상황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욥은 재난을 멸시할 수 있을 만큼 평강을 누리던 자였지만 여호와의 법도를 따라 걷지 않는 자들에게나 닥칠 재앙을 맞이하고 있다. 욥의 처지에서 보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고장 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상황이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고 경외하며 살았던 자신이 조롱받는 현실은 인과응보의 원리가 만고불변의 법칙이 아님을 증명한다고 항변한다. 그만큼 욥은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삶을 살았다.
    
-소발이 하나님만 아시는 “오묘한 지혜”를 이야기하자 욥은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과 바다의 고기도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셨다”라는 지혜 정도는 다 알고 있다고 반박한다. 인과응보의 원리가 세상 질서의 근간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소발과 친구들은 몰랐다. 악인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손뿐만 아니라 의인에게도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판단은 절대적이고 임의적이며 자유롭다. 즉, 어떤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이 철저하게 기준을 삼고 얽매인 인과응보의 원리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지만 이에 얽매이지는 않으신다는 것이다. 판에 박힌 듯한 교리의 지식만을 의지한 채 현실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를 외면하면 안 된다.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께 속해 있다. 인간의 지식과 학습에 속한 영역이 아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명철은 인간의 학습된 지식에 얽매이지 않는다. 욥은 늙고 장수한 자에게 더 지혜와 명철이 있는 것 같다고 하지만, 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인간이 절대화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 인과응보의 원리에 갇히지 않으시고 자유롭게 역사하시며 인간이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도 얼마든지 일하실 수 있는 하나님이시다.
    
-선하고 의로운 사람만이 아닌, 어리석은 자들조차 하나님의 심판 역사에 사용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지혜이다. 인간 선악의 기준을 따라 일하시지 않고 하나님 본인의 뜻에 따라 일하신다. 그러므로 혼돈의 세력마저 하나님의 손 아래 있는 것이다. 개인뿐 아니라 국가도 열방의 운명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 이 과정에서 인간이 신뢰하는 지혜의 사람들인 왕들, 제사장들, 충성된 자들, 늙은 자들의 지혜가 물거품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인간의 바람과 소망을 따라 일하시지 않는다. 오직 자기 뜻대로 행하신다.
    
    
    
*욥의 친구들은 고난이 닥쳐 괴로워하는 지기를 위로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판단한다. 자신들이 아는 보응의 원리라는 지식에 근거해서 내린 것이었다. 고난을 겪어 고통스러운 친구를 불의한 악인으로 몰아세웠다. 친구들의 지식은 고통과 절망에 빠진 이에게 더 깊은 고통과 절망으로 이르게 하는 지식이었다. 그야말로 파괴적이다. 나의 지식은 고통받는 이웃에게 어떤 지식일까? 주님께서 부디 더 깊은 고통으로 내모는 것이 아니라 살리는 지식으로 사용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땅의 모든 상황은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혹시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 논리적으로, 혹은 합리적으로 설명하고 이해하려 들면 오류에 빠지기 매우 쉽다. 그보다 먼저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탐색하는 것이 지혜로운 방법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이성으로 긍정적인 것뿐 아니라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현상들도 모두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 안에 있다. 욥을 묵상하며 이런 상황 가운데서 결국 하나님께서 이러한 부조리함을 통해서라도 그의 선하신 뜻을 반드시 세우실 것을 믿고 신뢰하는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이를 기다리는 기다림은 가치가 있다. 나를 생각과 행동에 있어 더 깊은 은혜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주님, 내가 가진 지식이 고통과 절망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가져오는 지식이 되고 싶습니다.
*주님, 욥의 통찰이 점점 더 깊어집니다. 고난이 가져온 고뇌와 끊임없는 질문들을 정직하게 주님께 토해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주님 앞에 토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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