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처절한 비탄의 노래 [욥 16:18-17:16]
 – 2023년 11월 22일
– 2023년 11월 22일 –

욥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하여 땅을 향해 하나님이 자신의 결백함의 증인이라고 말한다(16:18~22). 욥은 엘리바스의 무정하고 정죄하는 말에 상처를 입고 그이 말을 반박하며 하늘에 계신 자기 증인(하나님)이 나타나 주기를 탄원한다. 고대 사회에서 하늘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어 욥은 자기 죽음을 예감하여 자신을 위한 애가를 부른다(17:1~16). 욥은 자기 죽음이 멀지 않았음을 예감하며 하나님께서 응보를 해 주실 것을, 친구들은 지혜가 없음을, 그리고 자신에게는 희망이 없음을 처연하게 노래한다.

 

 

 

  1. 하늘의 증인을 부름(16:18~22)

17절에서 자신의 무죄함을 또다시 천명한 욥은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이 무죄를 밝히겠다고 결심하여, 땅에게 자기 피를 덮지 말라고 한다. 이와 같은 표현은 무고한 사람의 피는 덮이지 않는 한 그 피가 하나님께 소리를 치며 복수를 요구한다고 여기는 사상에 근거한다. 성경에는 비슷한 표현들이 다수 등장한다(창 4:10; 37:26; 사 26:21).

 

욥은 현재 자신의 무죄를 증언해 줄 증인이 하늘에서 움직이지 않지만, 땅에 흘린 피가 계속해서 소리를 치면 언젠가는 죽은 후에라도 하나님께 세 사람과 친구 사이에서 누가 옳았는지 판결해 주실 것이라고 믿으며 간구하는 것이다(21~22절).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요청하는 이유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1. 욥의 애가(17:1~16)

욥의 처연한 슬픈 노래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1~2절은 자기 죽음을 예감하는 그의 탄식이다. 그는 자신을 지탱하는 힘이 없고 모든 것이 끝났다고 느끼고 있다. 자기 생명력이 파괴되었으며, 자신의 날이 다 소진되었고, 이제 죽을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무덤이 준비되었다고 고백한다(1절). 그러나 자기 곁에는 여전히 자기를 조롱하고 비판하는 자들이 책망하고 화를 내며 모진 말들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모습은 육신의 쇠약함과 함께 더욱 욥을 좌절하게 하고 너무도 기가 막혀 슬프고 아파서 한탄을 멈추지 않는 지경이다. *욥이 홀로 투쟁하는 것이 얼마나 고독하고 힘들고 아플지 가늠조차 버겁다.

 

 

그들 앞에서 욥은 3~5절에서 제일 먼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는 담보물을 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한다(3절). 이는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분이 오직 하나님밖에 없기에 그는 자기 자신을 맡기며 무죄를 증명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자기 자신을 담보물로 맡길 수 없을 만큼 욥의 편에 서서 그를 옹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하나님께 하소연한 후 4~5절은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을 하나님께 고발한다. 자신을 조롱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참 지혜에서 가려진 어리석은 자들로 본 것이다(4절). 하나님께서 그들의 분별력을 어둡게 하셨다는 의미도 된다.

 

그렇기에 욥의 형편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자기를 이해하지 못하고 비난한 그들을 높이지 말아 달라고 하소연하면서 물질적 이익을 위해 친구를 비난한 자는 그들의 자손의 눈이 멀게 될 것이라고 노래한다. ‘눈이 멀다’라는 것은 육체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으로 지혜를 상실한다는 뜻이다. 아버지가 지혜를 잃으면 자녀들은 자연스럽게 지혜를 모르는 눈먼 자들이 될 수밖에 없다.

 

 

욥이 친구들에게 자신이 이렇게 백성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모욕 거리가 된 것이 하나님 때문이라고 말한다(6절). 이런 고백에 담긴 욥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자신의 운명이 어떤 길로 가든지 자신의 인생은 철저히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고 있음을 전제한다. 욥은 다시 한번 친구들에게 고난으로 어두워진 자신의 상태를 말한다(7절). 이는 죽음이 가까웠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이 상황이 정직한 자들에게는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한 상황이며 자신을 책망하는 경전 하지 못한 자들에게 분노하는 상황이라고 말한다(8절). 그럼에도 의인은 이런 자신을 보고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며 신앙을 지킬 것이며 제의적으로 정결한 자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서 점점 용기와 힘을 얻는 상황이 된다고 말했다(9절). 이와 같은 표현으로 욥이 하나님의 지혜를 모르는 자들에게 자신의 상황은 조롱거리요, 비난거리이지만 지혜로운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뜻을 찾으며 더욱더 하나님께 나아가는 기회가 된다(9~10절)고 강변하는 것이다.

 

 

11절에서 욥은 자신의 살날이 이제 지나갔다고 표현한다. 거의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죽음은 갑자기 오는 것이기에 욥은 자신의 계획과 열망들이 강제로 뽑혔다고 표현한 것이다. 12절은 친구들의 위로를 인용한 것으로 암흑 같은 욥의 상황이 곧 빛같이 회복되고 영광스러운 상황으로 바뀔 것으로 위로했다. 그러나 욥은 13~16절을 통해 자신에게 희망은 없고 죽을 수밖에 없음을 강하게 표현하였다. 욥은 자신의 상황이 이미 스올을 집으로 삼기로 작정하고 침대까지 들여놓은 상황(13절)이고, 무덤이 아버지고 구더기가 어머니, 자매라고 한탄한다(14절). 이런 상황에서 어디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겠냐며 깊은 절망감을 표현한다(15~16절).

 

 

 

나는?

-절망의 상황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호소한다. 친구들조차 욥을 정죄하는 상황에서 욥은 모든 다른 소망을 잃어버렸다. 오직 하늘의 하나님만이 그의 마지막 소망이었다. 욥은 정죄하고 조롱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변호해 주시기를 눈물로 호소한다. 땅에 흘린 아벨의 피의 호소를 들으시던 하나님께서 자신의 애통함을 변호해 주시도록 기도한다.

 

-세상 누구도 내 편이 아니고 날 이해하려 하지도 않고 오히려 조롱하고 비난할 때 우리의 기도는 하늘을 향하게 된다.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고후 4:8) 하늘과 우리 사이에 열린 기도의 톨로는 항상 열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절망의 상황에서 욥은 하나님께 신원을 요청한다. 욥의 친구들은 자신들의 옳음을 증명하기 위해 욥을 악인으로 정죄하고 비난하였다. 욥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이와 함께 자신을 조롱하는 자들이 스스로 옳다고 우쭐대는 모습을 바로잡아 주시도록 기도한다. 바른 것이 굽어지고 불의한 말이 힘을 얻을 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정의를 구하며 애통해한다.

 

-욥은 무죄한 자가 고난당하고 정죄 받는 불의한 세상을 하나님께서 절대로 방치하지 않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한다. 나는 욥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할까? 욥은 자신의 고난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억울함 속에 있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께 탄원했다.

 

 

-욥은 세상에서 자칭 의인이라는 자들의 행태를 보고 절망한다. 정직하고 의로운 자라면 마땅히 의로운 욥이 고난당하는 것에 대해 놀라고 분을 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직한 삶이 인정받고, 의로운 자가 힘을 얻도록 해야 하지만, 욥의 친구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들은 스스로 의인이며 지혜자라 생각하지만 정작 욥이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 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조롱하고 정죄한다.

 

-나는 의로운 자, 무죄한 자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 분노하는 마음이 있는가? 고난 중에 있는 자의 마음에 공감하며 함께 탄식하고 기도하고 있는가?

 

 

*가장 절망스러운 상황이 가장 하나님을 절실하게 찾게 되는 순간이다. 절망 중에 희망을 버리지 말고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찾아야 한다. 세상은 불행한 일을 당하면 기구한 운명으로 받아들이거나 깊은 절망에 빠진다. 딱하게 여기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스스로 고립되기도 한다. 때로 호소할 데 없는 세상을 비난하며 반사회적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과연 고난 앞에 어떻게 서야 할까?

 

*하나님께 오직 하나님께 신원을 요청해야 한다. 친구들조차 욥을 비난하는 모습에 욥은 모든 희망을 잃어버린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갈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감하며 하나님께 판단을 요청한다. 억울함을 변호해 주시고 자신의 의로움의 보증이 되어주실 것을 눈물로 호소한다. 나의 상황을 알아주실 분은 하나님뿐이시다. 억울한 마음을 변호해 주실 분도 하늘의 하나님이시다. 세상 누구도 나를 이해할 수 없고 깊은 절망에서 건져줄 수 없다. 정죄하고 비난하지 않으면 오히려 다행이다. 홀로 어떤 변명도, 항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나님께 나아가 신원하며 그 앞에 엎으려야 한다.

 

*항변할 수 없는 억울한 일을 만날 때 오해나 곡해의 시선을 받거나, 어처구니없는 비난에 직면할 때 해결할 수 없거든 인내해야 한다. 주위의 어리석은 말과 곱지 않은 시선에서 주님을 생각함으로 견뎌내야 한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드러내시고 바로잡아 주실 것이다.

 

*욥의 절망은 극에 달한다. 친구들은 아침이 올 것이라 위로하지만 욥은 자신이 깊은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 무덤을 아버지로, 주검을 먹는 벌레를 어머니와 누이라 부르겠다며 형언할 수 없는 깊은 절망감을 표출한다. 이는 역설적으로 강렬한 생의 의지를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절망의 언어로 희망을 추구하는 욥의 모습이 보인다. 자신의 이런 상태를 버려두지 마시라고 비탄한 심정으로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난을 개인의 불행과 불운으로 여기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하나님 나라 백성도 이를 받아들이고 불편한 시선을 감내하며 살면 곤란하다. 우리에게는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신다. 고난이 축복이라는 역설을 가능하게 하시는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주님, 깊은 고난, 바닥을 모르는 절망의 심연으로 빨려 들어가는 와중에도 처절한 통곡의 외침으로 희망을 바라보려는 욥의 모습을 봅니다. 그 모습이 나에게도 삶의 길잡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처절한 비탄의 노래를 부르는 이웃들이 여전합니다. 적어도 공감이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을 교회에게 주십시오. 그 마음에 순종하도록 용기를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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