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욕망이 나를 끌고 간다? NO! 믿음이 나를 이끌기를… [욥 31:1-23]
 – 2023년 12월 07일
– 2023년 12월 07일 –
욥은 자기가 짓지 않은 죄를 줄줄 나열하면서 그가 자기 자신과 이웃과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해 결단하고 노력하였음을 증언하며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욥은 온전한 삶을 지향하고 그런 삶을 실천해 왔다. 그는 하나님의 주권과 정의로운 통치를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죄를 멀리하는 삶을 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변론하는 욥은 온전하고 떳떳하기에 너무 억울하다. 그러므로 자신이 짓지 않은 죄를 나열하며 하나님이 자기의 변론을 들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한다.
   
31장은 세 번에 걸친 친구들과의 논쟁이 끝나는 장이며 동시에 엘리후와 하나님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논쟁의 서막이기도 하다. 욥은 자신이 지금 이렇게 고난을 겪는 것이 죄의 결과가 아님을 맹세하며 지금껏 살아온 삶을 증거로 제시한다.
   
   
   
1. 죄를 짓지 않은 욥_성적 정욕과 속임수(1~12절)
욥은 자신이 성적인 범죄나 저울을 속이는 경제적인 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하나님이 자기 길을 살피시고 자신의 삶을 저울로 달아보시면 아실 것이라고 자신한다. 욥은 정욕대로 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았다.
   
고통과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두려움을 느끼는 욥이지만 자신의 결백에 대해서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 자신의 무죄를 증명해 줄 이가 주위에 없으므로 스스로 자신의 무죄를 변론해 왔다. 욥은 본 장에서 자기가 짓지 않은 죄 14가지를 하나하나 나열함으로써 자신이 결백하다는 것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욥이 열거한 죄의 목록은 죄를 총망라하거나 조직적이고 논리적인 순서를 따르지 않는다. 그의 최종 목표가 자신의 무죄 증명이기 때문이다. 한편, 완전수를 상징하는 “7”을 두 번 사용하여 14가지의 죄를 나열한 것은 자신이 나열하지 않은 죄가 있더라도 자신은 결백함을 암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다.
   
1~4절은 9~12절과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행위를 다 보고 계시며 악인에게는 환난을, 의인에게는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드러낸다. 욥이 자기 눈과 약속하고 음란한 눈길로 처녀를 보지 않은 것, 또 결혼 관계를 정결하게 지킨 것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마음을 관리하기 위해 보는 것을 통제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다. 욥처럼 내 모든 발걸음을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고 있는가?
   
5~8절에서는 탐심이 바른길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임을 드러낸다. 남들보다 더 좋은 것, 더 많은 것을 얻고자 하는 탐심은 거짓과 속임수로 이어질 뿐 아니라. 마침내 우상숭배에 이르게 한다(골 3:5). 혹시 눈앞의 작은 이익 때문에 허위와 속임수를 사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정확하고 공평한 저울에 달아보신다는 사실을 망각하면 안 된다.
   
   
   
2. 약자를 괴롭히지 않은 욥(13~15절)
욥은 자기가 부리는 종들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았다. 자기 이익을 위해 고아를 폭행하지도 않았다.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그들의 불만을 무시하지 않았다. 욥은 모두 똑같은 하나님의 존귀한 피조물이라는 생각으로 그들을 대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심판하실 진짜 주인임을 잊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만드시고 종이나 약한 자도 같은 사랑으로 돌보신다. 모든 사람은 지위고하(地位高下)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을 막론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힘없고 약한 자를 멸시하고 학대하는 것을 절대 묵과하지 않으신다.
   
   
   
3. 약자의 필요를 외면하지 않은 욥(16~23절)
그는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보고서 못 본 척하지 않았다. 의복이 없이 죽어가는 자들이나 가난한 자가 덮을 것이 없으면 도와주었다. 고아를 데려다 길렀고 과부를 챙겨 주었다. 혼자만 먹고 고아의 배고픔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현재의 고난은 그런 그가 받기에 너무도 가혹한 것이었다.
   
욥은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약자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돌봐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약한 자들의 필요에 얼마나 민감하며, 그들이 도움을 요청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혹시 내가 힘과 지위가 있다면 그것을 이용하여 힘없는 자들을 괴롭히지 않는가?
   
욥은 하나님의 재앙을 두려워했기에 죄악을 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심판하시기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행동을 하는 것 자체가 재앙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나는?
-욥의 친구들의 모습이 세상의 모습이다. 친구들은 하나님의 완전성이 손상을 입히지 않도록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변호하는 믿음 좋은 신학자나 목회자처럼 보였지만, 욥은 자신을 고발하는 세상 속에 홀로 내팽개쳐져 있었다.
   
-아무도 욥의 사정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친구들이 욥의 말을 열심히 들었으나 그들은 공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판을 위해서 열심히 들은 것이다. “공감 없는 비판”은 당사자를 죄인으로 단죄한다. 세상은 욥을 죄인이라고 비난하며 입을 다물라고 다그친다. 욥은 아무도 자신을 변호해 주는 이 없는 이 세상 법정에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억울함을 호소하였다.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1:8)였던 욥은 세상의 비난에 시종일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나는 무죄다. 오히려 나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하나님이 유죄이다.”라며 하나님을 욕하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는 이미 무한 욕망의 시대와 동시에 욕망이 해방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믿음을 지키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눈은 누 깜짝할 사이 욕망의 대상을 포착한다. “눈을 감는다고 눈을 제거한다고 욕망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이 문제이다.
   
-욥은 다른 여인에게 주목하지 않겠다고 눈과 약속했다. 욕망을 자극하는 눈을 따라 하려고 하지 않다. 욕망의 시대에 자신의 온전함을 지켜가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이던가! 욥은 욕망을 해소하기 위해 음란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당당하게 고백한다.
   
-욥이 침묵하지 않은 이유는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 저항하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는 욥이 유죄라고 판단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욥의 하소연을 듣기 위해서였다.
   
   
*하나님은 들으신다. 약한 자의 아픔과 억울함을 귀를 쫑긋 세우고 들으신다. 욥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 약한 자의 아픔과 억울함을 귀를 쫑긋 세우시고 들으신다. 욥은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 하나님을 닮은 자들이 약자들의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과부와 고아들을 돌보는 일에 헌신하였다. 나는 욥의 모습을 보면 어떤 마음이 들까?
   
   
   
*주님, 욕망의 시대에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일어나면 좋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