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욥이 삶을 통해 살아내는 하나님 나라 백성의 가 [욥 31:24-30]
 – 2023년 12월 08일
– 2023년 12월 08일 –

계속되는 무죄 주장과 서약으로 욥의 말이 종결된다. 본문에서는 (14가지의 목록 중에서) 총 여섯 가지가 더 첨가된다. 모두 재물과 이웃과의 관계에 대한 문제가 중심을 이룬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의 문제가 중요하게 다뤄진다. 욥은 자신이 악행을 행하였다면 저주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하며 하나님 앞에서의 재판을 고대하며 변론을 마친다.

 

욥은 “만일 내가 ~했다면”이라는 맹세의 형식을 사용하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한다.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정의와 사랑을 실천하는 온전한 삶을 추구하고 살아왔다는 데에 조금의 의심도 없다. 어떤 면에서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했다면 저주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단언할 정도로 자신의 무고함에 대해 확고하다.

 

 

 

  1. 재물과 일월성신을 숭배하지 않은 욥(24~28절)

1~23절에서 욥은 마음과 육체의 정욕을 좇지 않고 순결을 지켰으며 종이나 약자를 불의하게 대하지 않고 존중하였다는 내용으로 짓지 않은 죄 여덟 가지를 진술했다. 그는 이어서 “재물을 의지하지 않았고 재물이 많았다는 이유로 기뻐하지 않았다(24~25절)”라고 고백한다. 보통 사람들은 재물이 늘어나는 것을 즐거워하지만, 욥은 재물이 늘어나는 것이 아닌 재물을 늘어나게 하시는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집중하였다. 욥이 안락하고 부유한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이나 지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임재와 축복의 결과였음을 확신했다(29:3~6).

 

재물이 욥의 숭배 대상이 되지 않았던 것처럼 하늘의 해나 달도 욥의 경배 대상이 되지 못했다. 욥은 오로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었다. 매 순간 그의 임재를 인정하며 일월성신이나 우상을 향한 동경과 관심이 일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26~27절). 이런 마음조차 재판에 부칠 죄악이라고 여겼을 정도다(28절). 욥에게 있어 세상을 밝게 비춰주는 것은 태양이나 달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였다.

 

욥은 해와 달에 대해 자신의 마음속에 미묘한 동요가 일어나는 것조차도 하나님에 대한 배신이며 속임수라고 여겼다. 그는 마음의 태도와 변화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신앙의 자세를 줄곧 유지했다(1:5; 31:1).

 

 

 

  1. 원수의 재난과 나그네를 섬기는 일에 대하여(29~32절)

이 단락은 자신의 주변에 있는 원수와 종, 나그네를 언급하며 그들에 대한 자신의 마음과 행동의 태도를 드러낸다. 욥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정의와 자비를 베풀므로 사람들에게 존경받았으나(29:7~17; 21~25), 이런 그를 미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런 자들이 재앙을 만났다고 해서 기뻐하거나 우쭐해하지도, 그들이 죽기를 바라는 저주의 말조차 내뱉지 않았다고 고백한다(29~30절).

 

또 그의 집에 함께 거주하는 종들은 단순히 허기만을 채우는 수준이 아니라 풍성한 고기로 배를 채울 수 있었고 지나가는 나그네들은 욥의 호의로 그의 집에서 편안하게 묵을 수 있었다(31~32절). 이미 13~23절에서 언급되었던 사회에서 지위가 낮거나 가난하고 약한 자들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받을 권리와 보호를 제공했다.

 

레위기 규정에 나온 나그네나 손님을 대접하고 가난한 자를 돌보며 종을 무시하지 않는 행동은 하나님을 자기 주인으로 모시며 그를 경외한다는 표현임을(레 25:43; 엡 6:9) 잊어서는 안 된다.

 

 

 

  1. 악행이나 죄를 숨기지 않았고 결백함을 호소하다(33~37절).

짓지 않은 죄 열세 번째로서 악행이나 죄를 숨긴 일이 없다며 자신의 정직성을 주장한다(32~34절). 이미 앞서 5~6절에서 이미 자신이 거짓말로 남을 속이지 않았음을 하나님께서 직접 테스트해 보시라고 할 정도로 자신의 온전함을 주장했었다. 여기에 자신은 죄를 지었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죄를 덮어 감추려 하지 않고 다 드러냈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실수나 죄를 바로 인정하기보다 죄를 은폐하거나 남의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체면, 자존심, 양심의 불량함으로 인해 또는 남으로부터 비난이 두려워 죄를 감추려 한다. 하지만 욥은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에게는 “온전함”을 지키려는 강한 열망이 있었다. 지체하지 않고 회개하는 그의 모습은 이미 1:20~22를 통해 잘 드러냈다.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당한 것에 대해 사람들에게 모멸당할까 두두려워 집에 숨지 않고(34절) 오히려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가 되기를 소원하여 자신의 죄가 밝혀지는 것과 그에 따른 결과를 감수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기 위해 구구절절 자신이 짓지 않은 죄를 나열하다가 “나의 변명을 들어달라!”고 외친다(35절).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세 친구는 되려 욥을 정죄하고 그의 변론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전능하신 하나님도 무슨 까닭인지 욥을 향한 침묵이 길어진다. 욥은 우상이나 재물을 섬기지 않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그의 길로 행하고자 했다. 의의 길을 걷다가도 죄를 짓는 경우에 신속하게 회개하며 용서함을 받아 의로운 삶을 다시금 이어 나갔다. 나그네와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와 사랑을 구현한 것은 당연하였다.

 

이처럼 욥은 하나님과 자신, 그리고 이웃들과의 관계 안에서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고 실천하며 살아왔다. 그렇기에 자신의 결백을 확신하며 하늘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에 대하여 스스로 변론하기 위해 법정에 나갈 준비가 되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의 사건을 살피고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촉구한다. 자기를 고발하려는 자들에게는 고발장을 써오기를 명령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이 드러날 것이 확신하므로 그 고소장을 어깨에 메거나 왕관처럼 머리에 쓰겠다(36절)고 말한다. 자신은 결백하므로 하나님께 다 알려지는 것에 있어 매우 떳떳했다. 왕족처럼 당연하게 왕 앞에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1. 땅을 악용하지 않았다(38~40절).

짓지 않은 죄의 마지막으로 땅을 악용하지 않았음을 밝힌다. 욥은 하나님이 한 가정의 생계를 지탱해 주시기 위해 땅을 주셨다는 것과 땅에 관한 법을 지켜야 함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은 땅을 마구잡이로 이용하여 환경을 파괴하지 않았고 남의 땅을 가로채지 않았으며 다른 이의 땅에서 나오는 소출을 얻는 경우 정당한 값을 지불하여 땅의 주인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땅과 관련한 법을 어겼다면 밀과 보리가 나야 할 땅에서 가시나무와 독보리가 나는 것이 마땅할 것이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만이 우리가 의뢰하고 경배할 분이시다. 욥은 하나님보다 재물을 앞세우지 않고 하나님 외에 어떤 것도 경배하지 않았다(24~28절).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거나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경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을 싫어하신다.

 

-나는 혹시 하나님 아닌 다른 것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지금 나는 혹시 하나님 보다 더 하나님처럼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이 없을까?

 

-욥은 자기를 미워하는 자가 겪는 불행을 보고 기뻐하지 않는다(29~30절). 나를 먼저 괴롭히고 상처를 준 것은 상대방의 범죄일지라도 그에게 마음과 보복의 마음을 품는 것은 나의 또 다른 범죄가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약자에 대한 돌봄과 환대는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행동이다(31~32절).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의롭게 산다는 이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은 명예와 체면일 것이다. 이미 형성된 ‘의로운 사람’이라는 명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죄악을 감추고 위선에 빠지는 일이 허다하다. 욥은 의롭게 살아왔지만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잘못을 인정하고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했다고 말한다(33~34절). 그의 이런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죄를 끊는 비결, 의를 회복하는 원리가 될 것이다.

 

-욥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열거하면서 지금의 고난이 죄의 결과가 아님을 항변한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하나님께 도전하고 있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는 건방지고 무모해 보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온전한 삶을 살아왔기에 가능한 것이다.

 

-“연약한 죄인”이라는 핑계에 익숙하여 하나님 앞에서 온전한 삶을 살고자 하는 노력을 너무 쉽게 포기해 버리지는 않을까?

 

 

*욥처럼 살 수 있을까? 그의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를 흉내 낼 수 있을까?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해와 달의 빛남에 마음이 미혹되어 자기 손에 입 맞추는 일 한번 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원수를 향해 저주해 본 적도 없었다.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다 아신다고 확신하고 허투루 행하지 않은 것이다.

 

*이러한 욥의 태도는 삶 속에서 순금과 재물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것 때문에 약자를 학대하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고 나그네의 필요에 눈감지 않았다. 남의 땅을 가로채거나 그 대가를 지불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는다. 그는 재물과 관련하여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였다.

 

*재물과 관련하여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삶은 오늘날 목회자의 삶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물질을 탐하지 않는 것뿐 아니라 나그네를 기꺼이 섬기는 그의 모습은 목회자들에게 매우 중요한 덕목이 아니겠는가!

 

 

 

 

*주님, 욥이 살아온 삶은 평범한 이들이 쉽게 살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온전하고 온전하게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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