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욥을 만나주신 하나님이 나도 만나주셨으니 [욥 42:1-17]
 – 2023년 12월 20일
– 2023년 12월 20일 –

욥기의 대단원 막이 내린다. 욥과 친구들이 토론하는 동안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드디어 욥에게 나타나셔서 두 번의 연설을 하셨지만, 끝까지 왜 욥이 고난을 받았는지는 말씀하지 않으시고 대신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큰지를 창조와 폭풍우와 베헤못과 리워야단을 예로 들어 말씀하셨다.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드디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한다. 또한 하나님의 명령으로 욥은 친구들의 죄를 위해 제사를 지내주며 관계를 회복하였다. 이후에 하나님께서 욥에게 가져가셨던 모든 것을 넘치도록 회복시켜 주신다.

 

 

 

  1. 욥의 신앙고백(1~6절)

욥은 하나님의 두 번의 연설을 통해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확실하게 인정하게 되었다. 2절에서 “아오니(야다_나는 알았다)”라는 표현은 기도나 애가에 대한 응답으로 신탁이 주어졌을 때 전형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시 20:6; 41:11; 56:9). 욥은 자신의 모든 질문에 응답받았음을 선명하게 표현한 것이다. 새번역은 “저는 압니다”로 번역하여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으며, 그 모든 것은 선하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욥은 이전에도 하나님을 알았다. 단지 그가 알았던 하나님은 세 친구나 엘리후와 다르지 않았다. 질서 정연하고 논리적이며 설명이 가능한 하나님이셨다. 하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빠진 욥은 지금껏 확신해 왔던 인과응보의 신학에서 벗어나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주권성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부당하다고 느낄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고 회개한다.

 

특히 3절은 38:3의 하나님의 질문과 거의 일치한다. 38:3에서는 ‘어둡게 하는 자’라고 표현했던 것을 ‘가리는 자’로 표현한 것 외에는 동일하다. 전에는 침묵으로 항의하던 욥이 이제는 온전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수긍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욥은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 고백하는데, 그동안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세상에 관하여, 하나님께 관하여 지혜가 있다고 많은 말을 했던 것이 결국은 잘 알지 못하고 한 말이다. *하나님을 진실로 만나게 될 때 인간은 자신의 나약함과 부족함을 여실하게 깨닫고 하나님께 엎드리게 된다.

 

4절은 40:7의 “내가 네게 묻겠으니 내게 대답할지니라”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 질문한다. 이제 욥이 하나님과 자유롭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5절 “제가 주에 대하여 귀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저의 눈이 주님을 뵙습니다. (새번역)”라는 고백에서 귀로만 들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율법적으로, 관념적으로, 종교적으로 배운 대로 종교 생활에 열성적이고 조금도 소홀함이 없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욥은 지금 그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며 그의 앞에 나타난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만난 것이다.

 

*진정한 신앙은 종교 행위와 말씀을 공부하는 것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서든 기도를 통해서든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난 욥은 6절에서 자기 자신을 철저하게 부인한다. 죄를 시인하고 다시는 그런 죄를 짓지 않겠노라고 철저하게 회개한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난 백성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위대함 앞에서 철저하게 자신을 부인하고 회개할 수밖에 없다. 욥의 회개로 욥과 친구들, 하나님과 욥의 기나긴 대화가 막을 내린다. 누가 참 지혜자인가에 대한 논쟁은 오직 하나님만이 진정한 지혜자인 것으로 결론이 났다.

 

 

 

2.세 친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7~9절)

하나님과 욥 사이에서 누가 옳은가의 문제를 정리하신 하나님께서 이제 친히 욥과 친구들 사이의 문제를 정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세 친구 중 가장 연장자인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 대표로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욥은 선지자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하나님은 엘리바스와 두 친구에게 진노하였다고 말씀하신다(7절). 하나님은 욥의 말이 옳고 세 친구의 말이 틀렸다고 평가하신다. 친구들의 말이 틀린 것은 하나님을 기계적인 인과응보의 수행자로만 보고 욥에게 죄가 없다는 주장을 전혀 받아 들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록 욥이 무례하기는 했지만, 욥 자신은 죄가 없다는 것과 죄가 없는 사람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옳다고 인정해 주셨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세 친구의 죄를 씻기 위해 일곱 마리의 수소와 일곱 마리의 숫양을 자기고 욥에게 번제를 드려달라고 부탁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때 욥이 너희를 위해 기도하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8절). 이와 같은 하나님의 명령에 세 친구는 짐승을 잡아 번제를 드렸고 욥이 이들을 위해 기도하였을 때, 하나님께서 욥을 기쁘게 받아 주셨다. 친구들과의 관계도 회복시켜 주셨다.

 

 

 

  1. 욥의 고난, 그 이후(10~17절)

욥을 용서해 주시고 받아 주신 하나님께서 이제 그동안 욥이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데 10절에서 “갑절”로 회복시켜 주셨다고 보고한다. 원래 욥의 것에 그동안 고생한 것까지 갚아주신 것이다.

 

먼저 그동안 끊겼던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 이들은 욥이 고난 가운데서 괴로워할 때 그와 거리를 두었던 사람들이다(6:14-23; 19:13-22). 이제 그들이 찾아와 식탁교제를 회복하고 욥의 어려움에 대해 같이 슬퍼하고 위로하며 물질적인 도움까지 준다(10~11절). 이런 위로는 그동안 욥이 너무도 원했던 것이다. 욥은 세 친구에게 자신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애원까지 했었다. 이렇듯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그동안 깨졌던 관계를 회복시켜 주셨다.

 

둘째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욥은 다시 부자가 되었는데 처음보다 하나님께서 더 복을 주셔서 더 많은 소와 양과 낙타와 암나귀를 갖게 되었다(12절). 또한 가정도 이루게 되어 아들 일곱과 딸 셋을 얻게 되었다. 욥은 사랑하는 아들과 딸들과 또한 4대나 되는 손자를 보며 매우 행복하게 살다가 “늙어 나이가 차서” 죽었다(13~17절).

 

 

욥기에서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왜 고난을 주셨는지 끝까지 말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욥은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현재의 고난이 왜 왔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고 또한 그의 주권을 인정하며 그 앞에 순복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의 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의 걸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으로 하나님의 때를 따라 선하게 인도하여 주신다.

 

 

 

나는?

-하나님의 질문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정체성을 새롭게 깨달은 욥은 하나님께 공손하게 답변하며 회개한다. 하나님을 만나면 자신의 한계를 여실하게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나의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잘못 말한 것을 생각나게 하실 때 고집 피우지 않고 선선히 인정하며 회개하는 심령이기를 결심해 본다.

 

-욥은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기도한다. 친구들의 진심 어린 사과에 용서하고 그들의 회복을 위해 기도한다. 자신의 마음에 대못을 박은 친구들이지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그에게 걸림돌은 되지 않았다. 욥의 진정한 회복은 친구를 위한 기도와 용서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십자가에서 고난받으심으로 고난받는 자를 도우시는 예수님처럼 자신을 아프게 한 친구들을 용서한 욥처럼, 내가 받은 고난으로 나와 같은 고난을 겪는 자를 돕는 또 하나의 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은 욥의 친구들을 꾸짖으셨다. 욥에게 가서 사죄할 것을 명령하셨다. 그들의 잘못은 하나님과 욥을 잘못 알았기 때문이다. 인과법칙이라는 틀에 하나님을 가두고, 잘못된 잣대로 욥을 판단하는 바람에 의인의 고난을 가중했다. 나도 혹시 나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하나님에 대해 잘못 말한 것이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욥을 총체적으로 회복시키신다. 극심한 고난으로 망가진 욥의 전부가 원상 복구가 된다. 먼저 친구들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그들을 위한 중보기도로 그의 영혼이 회복된다. 경제적으로 두 배의 복이 임했다. 가족도 회복되었고 장수를 누린다. 기억해야 할 것은 이 모든 복은 고난에 대한 보상이 아니다. 까닭 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이다. 잠깐 고난을 겪었지만 결국 회복시켜 주셨다. 이런 욥의 결말이 곧 나의 결말일 것이다. 복된 결말을 계획하시고 약속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린다.

 

 

*고난 중에 하나님은 어디 계시는가라고 탄원했던 욥이 하나님을 만난 그 순간 겸손을 낳았고 그 겸손으로부터 회복이 시작되었다. 첫 단계는 영성의 회복이었다. 영성의 회복은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회복이었다. 욥이 가졌던 회의와 의심은 이제 하나님에 대한 장엄한 고백으로 바뀌었다. 하나님께 “이루지 못하실 일이 없다”라고 고백하기에 이른다.

 

*욥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간접적인 것에서 직접 체험한 것으로 바뀐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인격적으로 주님을 맛보아 아는 것이다. “귀로 들어서” 간접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보아서” 즉, 직접 체험함으로 아는 것임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은 회복의 하나님이시다. 욥이 하나님과 인격적으로 만난 이후 영적으로만 아니라 사회적인 관계(친구)도, 가정도, 물질도 회복이 되었다. 하나님을 만나면 회복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임재만 경험하여도 일평생 그 신비로움을 사모하며 살아갈 능력이 생긴다. 그만큼 하나님의 임재와 인격적인 만남, 직접적인 체험 등은 신앙 걸음의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만나게 될 때 정죄와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회복과 구원, 생명의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다. 정죄와 심판의 하나님으로 오시기 전에 이 세상 고난의 현장 속에서 회복의 주님을 먼저 경험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착하고 의롭게 산 욥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허물과 죄로 더럽혀진(죽은) 인생에도 기회가 있다는 역설적인 희망의 메시지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구약의 전통적인 신명기 율법의 테두리인 인과응보의 신학을 넘어서는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 은혜, 복음이 욥기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바울은 욥기의 하나님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연결하듯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롬 3:21)”가 나타났다고 선언했다. 욥의 고난이 인과율에 따른 고난이 아니라 죄와 상관없는 ‘우발적인 고난’이었지만, 이 역시 하나님과 사탄의 천상 회의에서 결정된 것이었다. 욥은 억울하다고 이의를 제기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는 욥의 입장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재난은 변수가 아니라 완전하게 하나님의 주권으로 통제되는 상수이다.

 

*욥의 고난은 죄라고 하는 원인이 없을 뿐 목적은 분명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완전하게 설명한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온 인류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고난을 기꺼이 완전하게 감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 경륜은 그래서 인과율을 뛰어넘는다.

 

*이것을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는 예수님의 재림과 연결한다면, 욥의 회복이 보여주는 분명한 메시지가 있다. 바로 완전한 회복이다. 본문에서는 ‘갑절(11절)’로 표현하고, 친구들, 가족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식탁의 교제가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천국 잔치를 떠올리게 한다. 딸의 이름이 분명하게 기록된 것은 고대사회에서 여성은 이름이 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상황에서 생명책에 기록된 구원 받을 이름들을 확신하게 한다. 또 딸들이 아들들과 똑같이 기업을 상속받은 기록은 구원받아 회복된 하나님 나라 백성들에게 차별 없이 주어질 영원한 나라를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은 잔치일 수밖에 없다. 어둡고 음침한 종말이 아니라 환호와 기쁨의 잔치임을 바라보게 한다.

 

 

 

 

*주님, 욥을 만나주신 하나님이 나를 만나주셨음을 믿습니다. 저도 이 회복의 여정을 걷고 있음을 믿습니다.

*주님, 욥의 고난과 회복이 예수님의 십자가와 재림의 환희를 바라보게 함을 깨닫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말의 결과를 알고 있기에 확신하며 당당하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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