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때 예수의 심장으로 살던 바울과 교회, 지금 여기에서도…. [빌 1:1-11]
 – 2023년 12월 21일
– 2023년 12월 21일 –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이다. 그들을 위하여 항상 기쁨으로 간구하고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복음 전하는 일에 신실하게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을 간절히 사모하여 그들을 위해 기쁨으로 기도한다고 말한다.
 
 
 
1. 인사말(1~2절)
바울은 편지 서문에 자주 공동발신자를 소개한다. 이 편지에서는 그와 함께 빌립보 교회를 세운 디모데를 포함한다. 또한 다양한 어려움에 부닥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급히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내 디모데를 파송해 주기를 요청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들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으로 표현하고, 편지를 받는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축복한다.
 
 
 
2. 감사와 기도(3~11절)
바울은 먼저 “내가 감사하노라(유카리스토)”라는 말로 본문을 시작한다. 그의 대부분의 서신서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고백이다(롬1:8; 고전 1:4; 고후 1:3; 엡 1:3; 골 1:3; 살전 1:2; 살후 1:3; 딤후 1:3). 이것을 보면 바울의 신앙은 “감사 신앙”이었다. 또, 그의 감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교회를 위해 간구하는 가운데 감사한 것이었다(3~4절). 즉, 바울은 교회를 위해 중보하며 기도할 때 감사하였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마다 감사한 이유도 밝히고 있다. 이는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였기” 때문이다(5절). 바울의 복음 전파 사역에 기도와 물질로 동참했다는 의미다. 또 그가 이렇게 감사한 것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인데, 곧 하나님께서 끝날 것까지 그 선한 일을 이루실 것에 대한 확신이었다(6절). 이는 바울 자신이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빌립보 교회가 계속해서 선한 일에 힘쓸 것을 확신하였고, 그래서 감사한 것이었다.
 
 
이런 고백을 스스럼 없이 밝히는 이유도 이어서 설명한다(7~8절). 그것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7절). 이런 마음을 품을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은혜에 동참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의 복음 전도사역을 “은혜”로 표현한다. 특히 고난을 겪으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일 자체가 “은혜”이며, 또한 그것을 지원하는 일도 “은혜”로 표현하고 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나, 복음을 변증하고 견고히 세울 때나 변함없이 이 일에 동참하였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의 심장”으로 빌립보 교회를 사모한다고 밝힌다(8절). “심장(스플랑크논)”으로 번역된 단어는 “창자, 내장”을 뜻하는 단어로 “뭉클한 사랑, 애정”을 표현하는 의미가 있다. 바울은 이 고백이 참되고 진실한 것을 강조하기 위해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라고도 덧붙였다.
 
 
이렇게 빌립보 교회를 사모하는 마음은 늘 기도하게 하였다. 진정한 사랑은 늘 간절함을 수반하고 그것은 기도로 표출될 수밖에 없다. 바울의 기도 제목은 첫째,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더욱 풍성하게(9절)” 해달라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전하는 은혜의 일에 사랑의 풍성함을 나타내주었으니 그 위에 “지식과 총명함”이 풍성해지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기계적인 지식이 많아지기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 선악을 분별하는 판단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10절)” 되기를 바랐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분별하는 것은 성도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단의 미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해서라도 분별의 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바울이 이렇게 간구하며 강조하는 것은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에 이르는 것(10절 하)”이라고 밝힌다. “진실하다(에일리크리네스)”라는 “순수하다(pure)”라는 뜻이고, “허물 없다(아포로스코포스)”라는 “걸려서 넘어지지 않는다”라는 의미다. 바울은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듯이 빌립보 교회가 아무런 허물없이 순수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된다(11절). 본문에서 의미하는 의의 열매는 모든 종류의 선행, 착한 일을 가리킨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돕는 그것뿐 아니라 가난한 자를 돕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모든 것이 “선행”이다. 각종 선행을 통해 “의의 열매”가 많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찬송의 제목이 된다.
 
 
 
나는?
-에게해의 최북단에 있는 빌립보는 마케도니아 왕 필리포스 2세가 건설한 도시로서 인근에 큰 금맥이 있어 정치와 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주전 168년에는 로마의 속국이 되어 로마의 주요 군사도시가 되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아드리아해(두러스)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이스탄불)에 이르는 1,120km의 에그나티아 가도(Via Egnatia) 한 가운데에 위치하여 번영을 누렸다. 빌립보 시민은 이탈리아 본토인과 같은 “이우스 이탈리쿰(Ius Ltalicum)”의 지위를 얻어 당당한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에게 호소할 권리와 특별한 이유 없이 신체를 구금당하지 않는 자유를 누렸으며 공물·세금의 면제와 로마 총독의 간섭 없이 행정을 꾸릴 특권을 누렸다. 그런데 빌립보에는 하늘나라를 사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인이다. 빌립보가 복음의 거점 도시가 된 것은 바울이 제2차 전도 여행 때 소아시아의 서쪽 끝 드로아에서 본 환상 때문이다. 바울은 한밤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나타나 “마케도니아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와주십시오”(행 16:9)라는 환상을 보았다. 주님의 부름이라고 확신한 바울 일행은 빌립보를 방문하여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의 말을 귀담아듣던 옷감 장수 루시아가 첫 열매가 되어 그녀와 그녀의 온 집안이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이 유럽의 길을 걷는 교두보가 되었다. 하지만 귀신 들려 점을 쳐 주인의 돈벌이 수단이 되는 한 여종을 고쳐준 일로 돈벌이 수단을 잃은 주인들에 의하여 바울과 실라가 고소당하여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 고초를 겪기도 하였다(행 16:16~40).
 
이런 과정을 거쳐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바울에게 큰 기쁨이고 위로였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를 떠나 데살로니가와 고린도에서 전도 활동을 할 때 빌립보교회는 선교비를 지원하였다(고후 11:9, 빌 4:15~16). 그들은 이방인 교회이면서도 가난과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유대인 예루살렘교회를 위하여 마음을 모았으며,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누구보다 걱정하며 기도하였다. 바울이 로마 옥중에 있을 때는 에바브로디도 편에 선물을 보내 위로하기까지 하였다. 그래서 바울이 빌립보 교회 교인들에게 쓴 편지의 인사말은 빈말이 아니라 진심이다.
 
 
-은혜와 평강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이 보인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복음을 위해 수고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전한다. 차디찬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 은혜와 평강의 호위를 받고 누리며 전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진정한 능력일 것이다. 우리의 삶도 날마다 옥죄어 오는 팍팍한 현실 속에서 한숨짓고 주저앉지 않고 주의 은혜와 평강에 매여 하늘 소망을 누리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바울이 이렇게 옥중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한 “기억과 확신” 때문이었다. 바울은 감옥 속에서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 사역에 동참한 성도들을 기억하며 감사했다. 착한 일(구원의 경륜)을 주관하시고 이루실 하나님의 주권을 확신하며 기뻐했다. *한결같은 감사와 기쁨은 변하는 조건이나 환경이 아니라 변함없는 주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는 은혜이다.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선교 열정이 대단하다.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인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전하고 확정하는 바울의 사역에 참여해 왔다. 심지어 바울이 갇혀 있을 때도 물심양면으로 힘껏 도왔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관계가 아니라 복음이 엮어준 진실한 교제와 사심 없는 동역, 성실한 사랑이 있었다.
 
-새해 첫 주일부터 한 달은 늘 선교 동원 기간으로 지킨다. 일 년 동안 함께 동역할 선교사님들을 작정하는 시기이다. 내년 경제지표는 더 암울하다고 연일 전망하는 세상의 흐름을 본다면 교회의 본질이며 사명인 선교에의 동참이 자칫 관심 밖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교에 마음을 쏟는 백성의 삶은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들로 채워질 것이다. *선교는 상황과 여건에 따라 조정되는 것이 아니다. “복음을 위한 일(5절)”에 참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고, 기본이다. 일상이다.
 
 
-바울은 그런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예수의 심장”으로 뜨겁게 사랑했다. 더 나아가 이 사랑이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지기를 중보한다. 성숙한 사랑 안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의의 열매를 맺으며,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삶을 늘 꿈꾸리라.
 
-더온누리 교회를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한다. 우리 공동체가 이 사랑으로 하나가 된 공동체로 발돋움하고 굳게 서 있기를 원한다. 여기에 순수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지혜와 총명으로 풍성해지기를 간구한다. 바울의 간구가 곧 나의 간구임을 묵상하는 내내 되새겨진다. 우리 교회 이런 교회 되게 해시기를….
 
 
-하나님께서는 빌립보 성도들 안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을 끝까지 이루실 것이다. 유럽의 첫 관문이자 로마의 식민지인 빌립보에 복음의 문을 여신 분은 하나님이셨다(16장). 또 심한 박해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복음의 역사에 참여하게 하셨고(5절), 이제 사랑 안에서 흠 없이 주님의 날까지 이르게 하실 분도 하나님이시다(10절).
 
-하나님께서 우리 더온누리교회에도 이 선한일을 시작하셨다. 우리 공동체와 나의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진행 중이다. 우리는 이 선한 일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1세기 빌립보에 ‘예수의 심장’을 가지고 살던 그리스도인은 21세기 전주에도 있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 일꾼을 격려하고, 어려운 형편에 처한 인류를 염려하며 하나님의 선한 뜻이 이루어지기 위해 최선을 다하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이다. 곧 나사렛 예수의 십자가 대속 죽음을 믿고 그 길을 자기 길로 정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따뜻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란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이다. 습관적 종교인이 아니다.
 
 
 
*주님, 은혜와 평강, 감사와 기쁨, 성실한 동역의 빌립보 교회가 보입니다. 장차 우리 더온누리교회도 그 길을 따라갈 줄 믿습니다.
*주님,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하는 바울의 모습도 보입니다. 저도 예수의 심장으로 사랑하며 목회하겠습니다. 교회를 향한 감사와 사랑과 기도가 이심전심입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