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하늘 백성의 삶 [빌 1:12-2:4]
 – 2023년 12월 22일
– 2023년 12월 22일 –
바울은 투옥 중인 자신의 현재 상황을 전하며 본론을 시작한다. 자신의 매임이 가져온 여러 선교적 정황을 소개하며, 분명한 것은 이것이 복음의 진전을 가져왔다고 밝힌다. 바울은 자신의 투옥 중인 현실을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영광의 무대로 인식하고 있다. 이것은 또한 교회에도 유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고난의 신비를 배우기 때문이다. 바울의 이런 모습은 성도들이 각자 처한 상황 속에서 낙심하는 대신 열심을 내야 할 동기를 불러일으켜 준다.
 
 
 
1. 바울의 현재 상황과 복음의 진보(12~26절)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투옥되어 있다는 것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성도들은 없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고난 겪어도 복음만은 진전했다는 것을 성도들이 알기 원했다. 이런 바울의 고백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의 고난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고난 때문에” 복음이 진보했다고 말한 것이다(12~14절). 그의 매임이 복음의 전진을 방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동력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갇혀 있는 현 상황에 대하여 낙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이유를 두 가지로 제시한다.
 
먼저, 그의 매임으로 로마 시위대 안팎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다(13절)고 말한다. 이 고백은 특히 빌립보 교회를 개척할 때와 상황이 유사하다. 이런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현재 그의 매임은 복음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임을 굳게 믿고 있다. 둘째, 그의 매임은 다른 성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 하도록 끌어냈다(14절)고 말한다. 그러면서 성도들의 담대한 복음 전파에 대한 상황 설명을 덧붙인다. 일부는 바울을 염려하며 선한 기회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복음을 전하려고 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다투며 복음을 전하여 바울의 매임을 심화시켰다. 바울이 곤란해질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그랬다는 것이다(17절).
 
어찌 보면 바울이 묵과할 수 없는 상황임이 틀림없다. 이런 식으로 전도한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 유대주의를 지키려는 무리인가? 바울을 향한 경쟁심에 사로잡힌 자들인가? 분명한 것은 그들은 바울의 매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활동이 바울에게 매우 불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바울이 최우선으로 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다. 본질은 타협할 수 없다. 하지만 비본질은 관용할 수 있다. 일부 성도들의 전도 활동이 자신의 매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으나 이 역시 결국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으니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오직 그리스도가 높아지는 것이 바울 삶의 목표요 전부임을 보여준 것이다.
 
바울은 무엇보다 복음 전파에 관심이 있었다. 오늘의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안위와 처지에 대해 관심이 많은 것과 비교된다. 바울은 자기에게 이익이 되든 손해가 되든 오직 그리스도가 전파된다면 이로써 기뻐한다고 말한다.
 
 
 
2.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한 삶(27~2:4절)
바울은 이제 빌립보 교회 성도들을 위해 권면의 말씀을 한다. 바울이 그렇게도 존귀하게 여기기를 바라고 함께 있기를 사모하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한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한마음, 한뜻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각자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고 말한다.
 
바울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는 자들뿐 아니라 대적하는 자들도 많았다. 따라서 이들의 위협과 핍박에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 신앙에 굳건히 서는 것이 중요했다. 특히 교회 내 성도들의 단결은 대단히 중요했다. 빌립보 교회는 여러 면에서 칭찬받을 만한 좋은 교회였으나 다만 하나 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바울은 무엇보다도 하나 됨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에 합당한 생활은 중요하다. 복음은 아는 것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빌립보 교회를 어지럽히던 이들은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우주의 진리를 아는 “지식”만 있으면 다 된다고 생각했다. 이는 오늘날 이단들이 성경의 어려운 비유를 푸는 ‘지식’을 중요하게 여기고 ‘생활’은 등한히 여기는 것과 비슷하다. 올바른 신앙은 그에 합당한 생활로 그 진실성이 증명된다. 열매로 그 나무를 아는 것과 같다.
 
바울은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로마의 풍습을 존중하던 빌립보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 살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들임을 상기시킨다. 따라서 이 땅의 질서를 존중해야 하겠지만, 하늘의 질서와 통치에 복종하며 살아야 한다. 그 복음을 가진 자답게 살아야 한다. 그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나의 말과 행동은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에 속한 자임을 증명하는가?
 
복음에 합당한 삶은 한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고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빌립보 성도들이 한마음과 한뜻으로 서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협력하고 자신처럼 복음의 진리를 대적하고 위협하는 대적들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결연하게 살도록 독려한다. 이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요.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경쟁과 이기주의를 부추기는 시대 속에서 복음과 공동체를 외면하게 하는 자기중심적 신앙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복음 때문에 갇혀 있는 바울은 주를 위해 고난받는 성도의 삶이 대적자들이 보기에 멸망해 가는 증거처럼 보이겠지만, 사실은 구원받은 증거라고 역설한다(28~30절). 그리스도와 진리를 위한 고난과 싸움은 복음을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에게, 이 땅을 사는 하늘 시민에게, 주를 따르는 제자에게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고난 없는 삶을 축복이라고 말하는 거짓 교훈이 무성한 시대에, 주를 위한 고난을 복으로 여기며 은혜로 잘 인내하고 있을까?
 
바울은 복음을 위해 힘써 싸워야 할 뿐 아니라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기를 힘쓰라고 권고한다(2:1~4절). 말씀에 기초한 권면과, 사랑에 기초한 위로, 그리고 성령 안에서의 교제와 긍휼과 자비”로 복음에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인격과 실천을 촉구한다. 바울은 이 일에 교회가 서로 마음과 뜻을 같이하라고 권면한다.
 
 
 
나는?
-로마제국의 시민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로마의 풍습을 존중하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하늘 백성으로 참 정체성과 삶의 방식을 상기시킨다. 나는 이 세상 속에 사는 하늘 백성의 정체성을 늘 상기하고 있는가? 내 생각과 말과 행동이 하나님 나라 백성임을 증명해 주고 있을까?
 
-복음에 합당한 삶은 한마음으로 복음을 위해 협력하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다툼과 허영이 아니라 겸손과 섬김으로 서로를 대하며 주 안에서 하나 됨을 지키는 것이 “복음에 합당한 삶”이다.
 
 
-교회의 하나 됨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의 대적들보다 오히려 성도 간의 분열이 더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것을 보게 된다. 바울은 먼저 외부의 적을 다루고(1:27~30), 그 후에 내부의 적을 다룬다(2:1~4). 바울은 하나 됨을 위해 필요한 전제를 다루는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권면, 하나님의 사랑과 위로, 성령님과의 교제, 그리고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긍휼과 자비를 언급했다. 한마디로 하나가 되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교제”가 전제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형제와 불화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마음을 품으라는 것은 ‘같은 정신’을 가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목적을 바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주신 것이다. 교회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교회에서는 그 목적을 위해 힘을 모은다. 허투루 힘을 낭비하지 않는다. 온 성도들이 같은 목적을 향해 달려가는 상황에서 사소한 문제들이 다툼의 원인이 되게 해서는 안 된다.
 
-겸손해지려면 “다툼과 허영”을 버려야 한다. “다툼”은 “날품팔이”라는 말에서 그 뜻이 유래되었다. 날품팔이는 아무 곳에나 가서 물건을 팔고 그 대를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따라 일할 뿐이다. ‘허영’이라는 말은 ‘공허한 야망’을 가리킨다. 이런 사람들은 교회를 통해서 자기 이름을 내려고 한다. 하나가 되려면 이런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겸손하게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겨야 할 것이다.
 
-겸손의 위대한 본을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 가장 위대한 겸손의 모범이다.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는 것도 공동체가 하나가 되게 하는 길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한 몸을 이루고 있는 각 지체다. 서로 나를 주장하거나 나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지체들의 필요에 민감하고 그들을 배려한다면 공동체는 하나 됨을 잘 유지하게 될 것이다.
 
 
-교회가 하나가 되는 것은 주님의 유언이며 바울의 유언이기도 하다. 하나가 되지 않으면 제 기능을 다할 수 없다. 십자가를 앞에 두고 ‘우리와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신 주님의 유언을 이어받아 오늘 더온누리공동체가 하나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님, 복음에 합당한 삶을 추구하겠습니다. 다툼과 허영을 버리고 겸손하겠습니다. 다른 이들을 돌아보겠습니다. 이런 삶이 하늘 백성의 삶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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