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헛된 자랑과 새로운 자랑 [빌 3:1-11]
 – 2023년 12월 24일
– 2023년 12월 24일 –
바울은 육체를 신뢰하는 유대주의자들을 경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비하면 육신의 자랑은 배설물과 같고 오히려 해가 될 뿐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율법의 행위를 강조하는 유대주의자들에 대항하여 맞서라고 1:27~30과 본문에서 반복하고 있다. 교회의 안전을 위해 반복하여 권면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할례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무시하는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은 그들이 아주 자랑스러운 유대인이라는 사상에 기초한다.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며, 율법을 받은 민족이다. 그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으로만 구원 얻는 것을 거절하고 율법을 준수하는 행위를 강조했다. 무엇보다 할례를 자랑하면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받으라고 요구하였다. 빌립보 교회 안에는 이들의 영향을 받아 몸의 할례를 구원의 표지로 여기며 이것을 자랑하는 이들이 있었고, 이들을 용납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경계한 것이다. 바울은 날카롭게 반응은 육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자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말하는 헛된 자랑과 새로운 자랑을 들어보자.
 
 
 
1. 헛된 자랑(5~6절)
먼저 자신이 자랑삼을 만한 옛것들을 열거한다. 바울에게는 유대인들을 향해 육체의 조건으로 자랑할 만한 것이 충분했다. 5~6절은 이 자랑을 두 가지로 밝힌다. 첫째는 선천적으로 조상에게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성취한 것이다. 바울은 태어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았다. 유대인의 율법과 규례에 의해 양육된 증거를 가지고 있음을 밝힌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명예로운 칭호는 “할례받은 백성”이었다. 베냐민 지파에서 태어나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바울은 자신의 히브리어 이름인 사울을 매우 자랑스러워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첫 왕과 같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을 히브리인 중 히브리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나지는 않았고, 디아스포라의 일원으로 헬라어를 주로 하는 사람이었지만, 당시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아람어를 말하고 쓸 줄 아는 진짜 유대인이었다.
 
그가 자라면서 이룬 이력도 화려하다.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파였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켰다. 율법, 즉 토라를 613개의 조항으로 나눠 다 외우고 평생 지켰다. 1세기경의 바리새인들은 약 4,000~6,000명 정도였다. 아무나 바리새인이 될 수 없었고 철저한 훈련과 검증 기간을 거쳐야 했다. 사도행전은 바울이 유명한 바리새인이었고, 당시 가장 유명한 율법 교사였던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다고 밝힌다(행 5:34; 22:3). 이는 바울이 단순한 바리새인이 아니라 율법 교사(랍비) 자격까지 갖춘 바리새인이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그가 선교 여행 중에서 방문한 여러 도시의 유대인 회당에서 가르칠 기회를 얻은 것은 괜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그런데 자신은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 했었다고 고백한다. 갈라디아서 1:13~14에서는 “아주 없애버리려”라는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자신이 믿는 유대교 신앙에 따라 열성을 다해 교회를 핍박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고백한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6절)” “율법의 의로는 흠잡을 데가 없는 사람”이라는 표현이다. 바리새인으로 살면서 율법을 완수하며 살았다는 고백이기 때문이다. ‘흠잡을 데가 없는’이라는 뜻은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기 보다. ‘율법이 요구하는 의로운 삶을 유지했다’라는 의미이다. 바울은 “율법의 의”는 자신 있었다.
 
 
 
2. 새로운 자랑(7~11절)
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나서 바울의 모일 것이 뒤집어졌다. 바울은 율법을 지키지 못해 힘들어하다가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다. 자신의 믿음에 확신하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예수를 만났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나니 자신이 자랑했던 것, 확신했던 것, 유익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7절은 예수를 만나기 전에 “이로웠던 것(케르데, 자산)”이 예수를 만난 후에는 “해로운 것(제미안, 손실)”이 되었다고 말한다. 바울은 독특하게도 “~여기다(헤게오마이)”라는 동사를 7~8절에서 세 차례 반복한다. 이 단어는 “합리적 과정을 통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하는 동사이다. 이를 통해 그가 예수를 만나 변화된 과정을 “인식의 변화”로 특징 지워 묘사한다. 그에게 일어난 변화는 “마음의 변화”이기도 하다. 무엇이 가치 있고 없는지를 평가하는 기준이 달라진 것이다.
 
인간적으로 시각으로 보면 바울은 여전히 자신이 육신으로 이루었던 일에 대하여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바울이 그리스도를 만나서 일어난 변화는 엄청난 것이다. 충실한 유대인으로서 바울이 추구한 것은 육신을 신뢰하며 자기 의를 이룩하려는 삶이었다. 율법을 철저하게 지켜 의를 얻겠다는 것은 육신이 이루는 업적에 의지하여 의를 얻겠다는 의미이다. 자기 의지, 자기 노력으로 이룩하겠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은혜의 복음”과 “성취와 공로의 복음”은 공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시면서 말씀하신 것은 두 가지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이루기 위해 율법을 주신 것인데,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왜곡하여 사랑과 무관한 정죄하는 종교, 인간의 업적을 자랑하는 종교, 선택받은 특권을 강조하는 종교를 만들어 냈다. 예수를 만난 바울이 이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율법을 이루었다는 헛된 자랑을 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의롭게 되었다는 새로운 자랑을 외치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된 것이다.
 
 
 
나는?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로 발견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한 가지 믿음뿐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도록 하는 의는 율법을 지켜서 얻는 의가 아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얻는 의이다. 그 의가 그리스도 안에 서기 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 (새번역_9절)
 
*이런 믿음의 의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그와 교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율법 준수에서 오는 의로움 때문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로만 가능하다.
 
*유대주의자들은 자기 스스로 쌓아 놓은 의를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자랑하려고 하나님한테서 오는 의를 거부하고 그 의에 복종하지 않는다(롬 10:3). 이처럼 할례를 행하고 율법 조항을 준수하며 의를 얻는 것이 아니다. 선물로 받은 구원이지 자기 행위를 자랑할 것이 없다.
 
 
-본문은 우리에게도 예수를 믿은 후에 육신을 의지하며 살아갈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십자가에서 해결해 주셨으나 그 후의 삶은 내가 책임지고 이루어 나가겠노라는 “헛된 자랑”의 유혹을 강하게 받는다. 물론 오늘날에는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소리는 없다. 하지만 더 교묘하게 우리가 육신을 신뢰하게 만드는 거짓 가르침이 많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 자신의 육신을 의지하게 만드는 사상들은 넘쳐난다.
 
-우리가 어떤 업적을 쌓아야 책임 있는 그리스도인 될 것이라는 생각은 철저히 틀렸다. 그런 논리가 얼마나 상식적으로 들리는지 모른다. 은혜의 복음은 무게감이 없다. 값싼 싸구려처럼 들린다. 그러나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우리가 의지할 분은 성령밖에 없다.
 
-세상에서의 성공을 믿음으로 연결하고, 내가 열심히 믿어야 하나님이 나에게 성공을 보장해 주신다는 생각, 내가 실패한 이유는 열심히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내가 여전히 육신을 의지하는 신앙임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내가 열심히 믿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는 어떤 신앙의 성취와도 무관하다. 이 무서운 잣대를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적용하려는 무지가 넘친다. 신앙을 업적으로 만들려는 착각을 거두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동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신앙의 처음과 끝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새로운 나의 자랑, 오직 예수 그리스도!
 
 
 
*주님, 나의 의를 드러내고자 하는 헛된 자랑을 버리고 새로운 자랑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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