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 예수님 때문에 자족하며 기뻐합니다 [빌 4:1-30]
 – 2023년 12월 26일
– 2023년 12월 26일 –
편지의 결론 부분이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 사이의 끈끈한 애정과 동역자적인 연대가 돋보인다. 바울의 마지막 권면은 서로 같은 마음을 품을 것을 다시 한번 권하면서 주 안에서 기뻐하고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당부하며 그들에게 평안이 있기를 바란다(1~9절). 그리고 빌립보 교회가 보내준 선물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아울러 자기가 어떠한 처지에 있더라도 만족한 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마지막 문안과 축원으로 편지를 마친다(10~23절).
    
    
    
1. 주 안에 굳게 서라(1~9절)
안팎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빌립보 성도들에게 함께 협력하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덕목을 실천함으로 “주 안에 굳게 서라”고 권면한다.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자들의 거짓 교훈과 악한 행위에 맞서서 하늘에 소망을 두며 주 안 굳게 서라”고 당부한다(1절). 어떤 시련과 유혹 속에서도 주의 약속을 붙들고 주를 향한 믿음과 주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승리하라는 뜻이다. 바울이 바라는 유일한 기쁨과 면류관은 영적 승리자로 주 앞에 흠 없이 진실하게 서 있는 성도이다.
    
바울은 갈등 당사자의 이름(유 오디가, 순두게) 을 거론하며 한마음을 품도록 촉구한다(2절). 또한 “각 사람”에게 권고함으로써 갈등의 책임을 상대방에게 넘기지 않고 책임 있게 화해하기를 기대한다(3절). 바울에게는 그들 모두가 경쟁자가 아니라 복음을 위해 함께 수고한 동역자이며, 영원한 생명에 함께 참여할 가족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가 안팎으로 든든하게 서 나가기 위해 “하나 됨”은 매우 중요했다. 의견이 다른 것이지 틀린 것이 아닐 때, 유연하게 이견을 조율해 나가는 지혜와 관용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하나 되어 힘을 합하는 것은 교회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주께서 가까우시니, 모든 사람에게 관용하라고 권면한다(4~5절). 주님의 주권을 신뢰할 때 어떤 환경에서든 기뻐할 수 있고, 주의 임재를 의식하고 재림을 확신할 때 늘 너그럽고 여유로울 수 있다. 내 안에 기쁨과 관용을 잃어버리고 있다면 주님과의 관계를 먼저 점검해야 할 이유이다.
    
그래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하라고 권한다(6~7절).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기도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나 문제는 없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련이 다가오고 염려가 몰려올 때 기도를 “앞세운다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더 나은 길을 예비하시는 하나님께서 불안에 매인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서부터 서둘러 “평강”으로 지켜 주실 것이다.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다면” 험한 풍파 속에서도 굳게 서 있을 수 있다(1절).
    
바울은 “내게 배운 것, 받은 것,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고 당부한다(8~9절). 그렇게 하는 사람에게 평안의 하나님이 임하시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것이 무엇인가? 바로 “복음”이다. 복음으로 사는 삶에 대해, 복음에 따라 사는 삶을 보았다. 복음은 생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를 불러온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간절하게 권면한 것이다(1:27). 세상에 덕을 끼치고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칭송받으며, 인정받을 만한 덕목들을 “생각하며”, 지도자에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대로 “실천하며(순종하며) 살 때, 평안의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다.
    
    
    
2. 주 안에서 자족함을 배우다(10~23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보내준 선물에 대해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한다. 단지 선물을 받아서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바울을 생각하고 복음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이 생각나는 것을 보고 하나님 앞에서 기뻐하는 것이다. 곧 빌립보 교회가 복음을 위해 올바르게 행동한 것으로 인하여 기뻐한 것이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어떤 형편에 있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10, 14절). 그런데 헌금이나 그로 인한 궁핍 해결보다도 자신을 늘 염려하며 도울 기회를 찾고 이 일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성도들의 마음을 더 기뻐한다. 또한 그들의 자발적인 섬김을 통해 자신을 세심하게 돌보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더 기뻤다. 섬길 기회와 마음을 주시는데도 형편을 핑계로 미루거나 불응하지는 않는가? 꾸준히 물질을 보내 돌보고자 하는 마음은 나의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틀림없다. 그렇게 보내진 물질은 하나님이 하시는 마음을 만져 주심으로 인해 기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능력이 모든 일에 대한 자신감이 아니라 모든 형편에서의 “자족함”인 것을 고백한다(11~13절). 하나님으로만 만족하고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는 데서 오는 자족함, 소유를 우상처럼 받들지 않고 상대화할 수 있는 자족함이다. 형편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조건 속에 두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수용하고 감사할 수 있는 자족함이다. 특히나 지금 이 시대는 탐욕의 시대이다. 환경과 여건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족할 수 있는 삶은 이 시대의 “복음에 합당한 삶”이 아닐까?
    
복음의 시초부터 지금까지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사역을 오랫동안 자발적으로 아낌없이 후원하였다(14~18절). 이것은 갇혀있는 바울에게 큰 위안을 주었고 그들에게 풍성한 열매를 안겨주었다. 복음 사역에 진보를 가져온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제물이었고 헌신이었다. 주의 은혜는 기쁨과 감사의 이유와 원천이고, 항상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이며, 어그러진 세상 속에서도 복음에 합당하게 살 수 있는 원동력이다(20~24절).
    
빌립보서는 “나의 하나님(1:3)”으로 시작하여 “나의 하나님(4:19)”으로 끝나는 서신이다. “나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으로 바울은 감옥 안에서도 그리스도인의 기쁨을 간직할 수 있었다. *나도 “나의 하나님”을 신뢰하며 막막하기만 했던 올해를 하루하루 걸어왔다. “나의 하나님”이 지켜 주셨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곤경에 처한 바울을 염려하며 그의 쓸 것(16절)을 채워준 성도들의 헌금을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시고 기뻐하신다. 그리고 사심 없는 그들의 희생적인 헌신을 기억하시고, 영광 가운데 자신의 풍성함을 따라 그들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실 것이다. *기억해야 한다. 복음을 위한 우리의 염려와 헌신은 주께 드리는 또 하나의 예배이며 주께서 기억하고 기뻐하시는 예물이다.
    
    
    
나는?
-평강의 하나님은 하나님이 평강을 주시는 분이라는 말이다. 그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을 누리는 복을 누린다.
    
-염려란 마음이 나뉘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이 나뉘면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모든 상황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래서 바울은 염려를 멈추라고 권면한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께로만 쏟으라는 것이다.
    
-마음을 하나님께 쏟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에 내 사정을 아뢰는데 어색함이 없다. 주저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울은 “오직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했다. 염려하는 사람은 기도하지 못한다. 마음이 나뉘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를 멈출 수 있다. 그리고 기도를 이루실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다.
    
-그럴 때 사람의 헤아림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 사람에게 임한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기뻐할 수 있다. 주님이 계시기에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보일 수 있게 된다. 주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굳게 설 수 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참된 것, 경건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명예스러운 것, 덕스러운 것, 칭찬할 만한 것을 생각하라(8절)”고 외친다. “생각하라”는 말은 우연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논리적으로 주의 깊게 생각하는 것이며, 거듭거듭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즉 삶의 태도, 혹은 습관을 가리킨다.
    
-생각하는 것에서 멈추지 말고 “내게 배운 것, 받은 것, 듣고 본 것들을 행하라(9절)”고 당부한다.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라는 것이다. 지식에 멈추지 말고 행함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고 맡기며 기도하는 사람이다. 참된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도자에게 배운 바를 본받아 행하는 사람에게 평강의 하나님이 함께하실 것이며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것이다.
    
-이런 삶은 세상과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산다는 뜻이다. 세상과 전혀 다른 자원으로 산다는 뜻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에서 오직 하나님만이 주인이심을 인정할 때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 평강으로 살 것이다.
    
    
-로마 감옥에 갇혀있던 바울은 육신적으로 무척 외로울 수 있었다. 낙심하고 좌절하여 우울하게 지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라고 당부한다. 수감 중에서 이렇게 나는 기뻐한다. 너희도 기뻐하라고 외칠 힘이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먼저 본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에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하며 기뻐한다. 그들의 사랑 수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 마게도냐 지역의 전도 여행을 지속할 때 오직 빌립보 교회만 물질로 후원하였다. 그 후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도 부족함을 채워주었었다. 그 외에도 여러 번 실질적으로 도우려고 했었다. 그리고 이제 로마의 감옥에 있는 그를 위해 쓸 것을 마련하고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했다. 감격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나의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이여”라고 부른다. 외로움에 처한 사역자들을 돕는 조그마한 사랑이 감격하게 만든다. 우리 더온누리공동체가 선교사님들과 지역의 형편이 어려운 목회자들을 위해 이런 사랑을 아끼지 않는 교회여서 감사하다. 한두 번으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진실하고 진심으로 꾸준히 감당하는 교회이기를 결심해 본다.
    
    
-무엇보다 바울은 이런 사랑을 통해 감옥에 갇힌 자신이 잊힌 존재가 아니라 성도들의 큰 사랑의 대상임을 알고 크게 기뻐한 것이다. 또 그 기쁨의 마음이 기쁨의 이유 전부가 아니었다. 바울의 기쁨은 외부의 상황과 조건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나의 전 삶을 통해 자족하기를 배웠다”라고 선언한다. 자기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이미 만족할 만큼 다 얻었다고 말한다.
    
-바울이 표현한 “자족”이라는 표현은 “자급자족”이라고 번역할 수 있는 단어이다. 이 단어를 통해 자신의 만족과 기쁨은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원천이 있어 그곳에서 채워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배부르거나 굶주리거나 풍족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떤 경우에도 적응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웠다”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의 자급자족 원천이 무엇일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바울이 함께 계셔서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인 예수 그리스도가 안에 계시기에 어떤 조건과 환경 속에서도 만족할 수 있었고 기뻐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꺼이 외칠 수 있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13절)
    
    
    
    
*주님, 제게도 예수님이 계시기에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예수님이 능력을 주시기에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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