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모압 평지에서 숨을 고르며 가나안을 바라보다 [신 1:1-18]
 – 2024년 01월 01일
– 2024년 01월 01일 –
신명기는 모세가 모압 땅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은 아모리 왕과 바산 왕을 물리치고 그들의 땅을 차지하며 승리를 경험한다. 40년 광야 생황을 마무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뜻하지 않은 암몬 족속의 땅 헤스본의 아모리 왕 시혼을 물리쳤고, 바산 왕 옥을 물리친 전과를 올리게 된 것이다. 승리의 감동과 흥분으로 고조되었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바라보게 하고 40년 전에 들려주셨던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들려줌으로써 가나안 땅에서의 삶에 대한 비전 고취를 하게 된다.
 
 
 
 
1. 듣기를 위해 멈춤(1~5절)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요단 동편 모압 땅에 서 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하나님 말씀을 듣기 위함이다. 그간 백성들은 광야에서 고통스러웠던 일들을 벗어버리려는 듯 쉬지 않고 달려왔다. 이 기세로 가나안을 차지할 법도 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모세는 모든 것을 멈추고 하나님 말씀을 강론한다.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을 물리친 여세를 몰아 정복 전쟁을 치르는 것보다 말씀을 듣고 가나안에서 살아갈 모습을 그려보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승리의 경험으로 들뜰 수 있는 그들에게 모세는 이전에 전했던 언약의 말씀을 다시 선포한다. 변질되기 쉬운 체험에 근거한 전진이 아니라 변함없는 말씀을 의해 나아가기를 바란 것이다. 호렙산에서 “열하루”면 갈 수 있는 약속의 땅까지 “사십 년”이나 걸렸다. 이스라엘의 불신과 불순종 때문이다. 하나님을 불신하고 말씀을 외면할 때 “방황의 시간”은 길어지고 “약속의 땅”은 멀어질 것이다. 길이 멀다고 불평하기 전에 첩경(빠른 지름길)을 허락할 수 없는 불신앙이 내 안에 있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내 신앙의 여정과 성숙을 가로막거나 더디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인생처럼 신앙도 여정이다. 우리는 어제 머물렀던 장소를 뒤로하고 오늘 새로운 장소에 머물며 내일은 다른 장소에 머물게 된다. 이러한 여정은 최종 목적지에 이를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30~40년이라는 한 세대를 다 소비할 정도의 긴 여정일수록 낙심하여 출발지로 되돌아가거나 길을 잃고 방황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럴수록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하며 상황과 위치를 파악하고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2. 돌아보아 확인함(6~8절)
애굽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호렙산에서 머무르지 말고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한 호렙산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원히 머무를 곳은 아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루며 온 세상 복의 근원(창 12:3)이 되기를 바라셨다.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다가 오늘의 신앙을 잃어버리고, 영적인 안일과 나태로 “가야 할 길과 해야 할 일”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닌가?
 
모세는 호렙산에서 받은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을 회상한다. 그는 백성들이 언약을 기억하고 사명을 확인하도록 요청한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부터 아라바, 네겝, 서쪽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 나아가 레바논과 큰 강 유브라데까지 이른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그들이 성취해야 할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재의 위치를 확인하고 미래의 목표를 찾도록 도와준다.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과 명령에 따라 교회가 수행해야 할 사명을 재확인하고 나아가 우리 공동체가 지향하는 참 가치를 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작점에서 주신 약속의 말씀은 아직 마무리할 때가 아니다. 구원의 감사와 하나님의 동행하심의 위로와 감동은 아직 우리가 지키고 채워가야 할 중요한 것들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끝이 아니다. 그 나라를 누리고 확장해야 할 것은 여전히 완수해야 할 신자들의 과제이다.
 
 
 
 
3.함께(9~18절)
“홀로” 직무와 책임의 중한 짐을 져야 했던 모세는 백성들에게 자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의논한다. 그리고 백성들이 택한 지도자들을 임명해 일을 분담한다. *내가 속한 공동체는 문제를 숨기기에 급급하지 않고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함께” 힘을 모으고 있는가? 혹시 방임과 방관에 익숙해져 있지 않는가?
 
재판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법을 따라 공정하게 판결해야 했다. 빈부와 신분에 따라 재판의 결과가 영향받는 것을 금한다. 힘 있는 자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고, 약한 자라고 두둔해서도 안 된다. 공정한 재판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중요한 사명이었다.
 
*여행을 포함한 모든 일은 사전 준비가 제일 중요하다. 실제 과정 중에 수정·보완이 필요하며 사후에 반성을 통해 지혜를 얻고 새로운 일에 대해 조망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앙공동체는 항상 상황과 필요에 따라 유기적이고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새롭게 되어야 한다. 지혜와 판단력을 갖춘 존경받는 자들을 등용하고, 내외적으로 발생하는 변화와 문제에 지혜롭고 공평하고 정의롭게 대응하지 못한다면 바르게 성장할 수 없고 목적을 이 수 없다.
 
 
 
나는?
-멈춤의 영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에서 연전연승의 흥분 속에서도, 광야 40년 생활의 일상 기적을 누리는 과정에서도 모세는 과정이 결론되게 하려는 미혹의 마음을 모압 평지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점검한다.
 
-우리의 삶에 이런 유혹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보다 지금 누리고 있는 은혜와 축복에 머물려는 유혹이다. 이 유혹은 상상보다 강력해서 사명을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지만 살아 역사하는 말씀은 유혹을 깨뜨린다. 말씀 앞에 멈추어 서야 한다.
 
-신명기의 본래 이름은 성경의 첫 단어를 제목으로 삼는 히브리 전통을 따라 “데바림”이다. “이것이 말씀이다(1절)”로 번역될 수 있다. 하지만 주전 3세기 헬라어로 번역된 70인역 성경에는 “두 번째 율법”으로 제목을 명기한다. “필사된 율법”을 가리키는 제목이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한 이후 삼 개월 하루 만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고 모세가 산에 올라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을 “첫 번째 율법”으로 전제한 표현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은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시내 광야를 떠났다(민 10:11). 그 후 이스라엘은 38년을 광야에서 방랑했다. 마침내 40년째 되는 해에 요단 건너편 모압 평지에서 시내 산에서 받은 첫 번째 율법을 반복하여 백성에게 설교했다. 그 내용이 “신명기”이다.
 
 
-시내 광야와 모압 평지에서의 설교는 같은 설교자에 의해 이루어진 같은 텍스트였다. 하지만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먼저는 모세의 신앙과 지도력이 시내 광야에서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성숙하고 완숙의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시내 광에서의 모세는 금송아지 축제를 벌이던 백성에게 분노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돌판을 깨뜨리기까지 했다(출 32:19). 하나님을 불신하여 분노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드러내지 않음으로 가나안 땅 진입에서 배제되었다(민 20:11~12). 반면 자신의 이름을 주님이 기록한 책에서 지울지언정 죄를 범한 백성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하는 지도자였고(출 32:32), 하나님께 죄를 범한 이스라엘 대신 모세를 통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제의를 거부한 공의로운 지도자였다(민 14:19). 120세의 나이에 이르러 죽을 때가 되어도 눈이 총총하였다(신 34:7). 모세는 영적으로 시내 광야와는 비교할 수 없이 성숙해져 있었다.
 
-또 한 가지는 모세의 설교를 듣는 백성이 “새로운 세대”라는 점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출애굽 세대 가운데에 20세 미만과 출애굽 과정에서 출생한 이들만 모세의 설교를 듣는다. 출애굽 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었다. 하나님을 멸시하고 불순종하는 이들은 모세의 두 번째 설교를 들을 수 없었다(민 14:22~24).
 
*가만 생각해 보면 설교자의 자격도 중요하나, 청중들의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도 매우 중요함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다.
 
-세 번째는 모세의 말씀 해석 능력이 매우 연륜이 찼다는 점이다. 첫 번째 설교와 두 번째 설교가 대개는 같지만 조금 다른 부분들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신학의 성숙과 해석의 깊이 차이이다. 이런 점에서 나의 설교도 2023년보다 더 해석의 깊이와 신학의 성숙함이 진보되기를 갈망할 수밖에 없다. 말씀의 깊이와 넓이가 더욱 진중해지고 폭넓어지도록 은혜를 주시리라 확신한다.
 
-의미 없이 교조화된 가르침을 앵무새 훈련하듯 반복하는 태만을 저지르면 안 된다. 첫 번째 전한 말씀은 생생했다면, 두 번째 전한 말씀은 완성도가 높아져야 하리라.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아닐까?
 
-시간은 흐른다. 그런데 의미 없이 흐르는 시간으로 만들면 안 된다. 우리의 언행 심사가 지난 시간만큼 성숙해져 있는 것이 흘러가 버린 시간이 준 선물이 아니겠는가!
 
 
*모압 평지에서 약속의 땅 가나안을 바라보며 숨을 고를 때, 들려주시는 두 번째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다잡는다.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을 때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이 사명을 일깨운다. 삶을 의미 있게 다지도록 만져준다. 멈춤의 시간과 자리에서 말씀이 역사하신다.
 
*모세처럼 시간과 더불어 성숙하고 싶다. 지난해보다 나은 신앙과 삶에 이르기를 소망한다. 지도자답게 더 성숙해지고 싶다. 주님, 도우소서
 
 
 
 
*주님, 멈춤의 영성, 멈춤의 말씀이 더 성숙한 걸음으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주님, 첫 번째 말씀보다 두 번째 말씀이 더 완숙하고 깊이 있는 말씀으로 전하고 싶습니다. 늘 말씀과 씨름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삶과 인격에서도 성숙하기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키심을 신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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