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그 때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이스라엘 [신 1:19-33]
 – 2024년 01월 02일
– 2024년 01월 02일 –
가나안으로 가는 여정에서 처음 일어난 일을 회상하며 반복 소개한다.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이스라엘은 그 땅을 탐지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효과적으로 약속의 땅을 정복할 수 있는 상황판단을 하도록 정탐꾼을 파송하였지만,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한 상황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부인하며 거부하기 위한 판단을 준비하였다. 그것이 40년 방황의 이유가 된다.
 
민수기 13장의 바란 광야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사건이다. 같은 사건에 대한 민수기와 신명기의 기록이 조금 차이가 있다. 민수기는 “여호와의 명령”에 따라 정탐이 진행되었다고 기록했지만(민 13:1), 신명기는 백성의 요청으로 정탐했다고 진술한다(1:22). 그런데 더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신명기는 백성들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모세가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한 것이다(1:29). 민수기에서는 이런 역할을 “여호수아와 갈렙”이(민 14:9) 했었다. 신명기는 출애굽에 이어 가나안 정복에서도 모세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1.호렙에서 가데스바네아까지_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19~21절)!
모세는 이스라엘이 “광활하고(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왔다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광야를 “두려운” 곳으로 묘사한다. 이 광야를 11일 여정으로 세일 산을 통과하여 이제 곧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즉,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들어가게 되었다(민 11:1~12:16). 가데스 바네아는 가나안 산지로 이르는 길목이었다.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의 오아시스에서 숨을 고르게 된 이스라엘은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약속한 땅을 소유하도록 주셨고, 이제 이스라엘은 올라가 취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욱 촉구한다. “두려워하지 말라, 주저하지 말라(21절)”
 
 
 
2. 정탐꾼 이야기(22~28절)
“주저하지 말라”는 모세의 재촉과는 달리 이스라엘 백성들은 신중한 결단을 원했다. 전체적인 문맥에서 전쟁에 대한 세부적인 하나님의 지시가 발견되지 않는 것으로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주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듯하다. 일반적인 구약의 전쟁 기사에는 하나님의 세부적인 전쟁 전략이 지시되는 것에 비하면 백성들이 정탐을 요청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한 면이 있는 듯하다. 백성의 대표들이 모세에게 나아와 정탐의 필요성을 설득한다(22절). 모세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각 지파에서 한 명씩 뽑은 정탐꾼들을 신 광야를 지나 하맛 어귀 르홉을 거쳐 네겝으로 올라가, 헤브론을 지나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곳을 정탐하고 그 땅의 열매를 가져오게 하였다. 정탐꾼들이 가져온 열매는 두 사람이 운반해야 할 정도로 매우 큰 포도였다. *모세는 이를 보고 “하나님이 주시는 좋은 땅”이라고 했다.
 
26~28절은 정탐 보고에 대한 회상이다. 열 명 정탐꾼의 부정적인 보고는 생략되어 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한 것만 묘사하고 있다. *정탐꾼들이 가져온 소산물을 보고 그 땅이 풍요로운 것을 부인할 백성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 땅을 차지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 못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들의 천막에서 하나님의 선의를 원망한다. ‘들어가 취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거부당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해 심각한 오해를 하게 되는데, 자신들을 미워하여 가나안 땅에 거하는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보기에 가나안 거민들은 강력한 거인족이었고, 도시는 난공불락이었다. 심지어 그곳에 아낙 족속이 있다고까지 여겼다. 그들은 돌아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듯 여겨 낙심하고 좌절하였다.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땅의 거주민들을 하나님보다 더 크게 여기고 있었다. 이것은 명백한 하나님에 대한 반역이었다. 불신앙이었다.
 
 
 
3. 모세의 격려와 “먼저 가서 행하시는 하나님” (29~33절)
이런 상황에서 모세는 “무서워 말고 두려워 말라”고 다시 격려한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하나님이 애굽과 광야에서 행하셨던 것처럼 이제 그들보다 먼저 가셔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모습은 미래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누구를 멸망시키실지 지켜보아야 한다.
 
모세가 백성의 불평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29절)” 이 외침은 이스라엘이 자신보다 월등한 가나안 족속을 보고 그들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두려워할 때 선언된 말이다. 그런데 민수기에서는 이를 말하는 주체가 여호수아와 갈렙이었다(민 14:9). 민수기에서는 모세가 여호와의 심판을 막는 중재자의 역할이 두드러졌다면, 신명기에서는 그 당시 모세가 백성의 마음을 돌이키는 역할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
 
모세는 광야 여정 가운데 있었던 여호와의 역사를 상기시키며 여호와를 굳게 신뢰할 것을 촉구한다. 31~33절은 하나님은 아버지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고 인도하신다고 묘사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언약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묘사되지만, 핵심은 하나님의 자비로움과 사랑의 충만함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여 솔선수범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신앙과 반역으로 인해 약속의 땅을 바로 앞에 두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38년을 보내게 되었다.
 
 
 
나는?
-본문에서 신명기를 설교하는 곳은 “모압”이다. 이곳은 요단강 동편으로 강만 건너면 가나안이다. 이곳에서 38년 전 일을 회상하는 설교를 전한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가나안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었다. “크고 두려운(무서운) 광야”를 지나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렀다고 말한다(19절).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고 출애굽 둘째 해, 둘째 달 스무날에 시내 광야를 출발하여 가나안 남부 접경 가데스 바네아에 이른 것이다. 이곳만 지나면 가나안이었다.
 
-모세는 이 여정을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났다”라고 회고한다. 그리고 그곳을 지날 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안는 것 같이 걸어온 길에서 안아 주시며 이곳에 이르렀다고(31절) 덧붙인다. 그뿐만 아니라 길을 인도하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갈 길을 지시하여 주셨다(33절).
 
-크고 두려운 광야를 거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오롯이 경험한 것이다. 인생이 이와 같지 않을까? 인생이라는 광야에서 불현듯 만나는 고난이 크고 두렵게만 느껴지고, 버겁기만 하여도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아버지가 아들을 안고 보호하듯 그 길을 함께 통과 하여 주신다. 하나님께서 함께해 주시는 분명한 흔적들(불과 구름)로 하나님 백성다운 거룩함을 빚어내 주신다. 자라온 삶의 과정이 어려울수록 인생은 진득해지는 법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과 똑같이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났으나 백성들의 신인식과 분명한 차이를 보인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고 올라가서 차지하라(21절)”고 외친다. 그런데 백성들은 “땅을 탐지하는 일이 우선(22절)”이라고 주장하면서 요지부동이다. 모세는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열두 명을 뽑아 가나안을 탐지하게 하였다. 그들이 돌아와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이 좋다(25절)”라고 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그 땅을 올라가지 않았다.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했다(27~28절).
 
-정탐꾼들이 가져온 가나안의 열매를 보고 마음은 혹했으나 그 땅에 살고 있는 거인족인 아낙 사람과 견고한 성읍 이야기를 들으며 간담이 서늘해졌다. 의심하고 머뭇거린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아모리 사람에게 자신들을 넘겨주어 전멸시키려고 애굽에서 이끌어 내셨다고 말한다(27절).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그저 남 골탕 먹이기를 즐겨하는 천박한 개구쟁이 수준의 하나님이었다.
 
 
*믿음은 얄팍한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날 때 분명한 보호와 인도하심의 흔적을 보여주신 하나님을 붙잡고 의심을 극복하는 행위이다. 봐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않고 간과해도 될 것에 집착하여 의심하려는 상황에서 바로 보려는 몸부림이다.
 
 
*가나안은 더 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라 이제는 들어가서 차지해야 할 땅이었다. 그들이 두려워 해야 할 것은 가나안 족속이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불신”이었다. 나도 “불신”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모든 영역에서 불신하게 하는 소리를 들으며 이미 보고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함께 하심마저 망각하게 하는 “미혹의 소리”의 강력함을 늘 경계해야 할 것이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싸우신 하나님을, 크고 두려운 광야에서도 이스라엘을 보호하시고 갈 길을 지시하시며 인도하신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 막연하고 암담한 미래 앞에서 두려움과 불안이 삶을 잠식하는 것 같다면, 지나온 삶을 인도해오신 하나님의 은혜 궤적을 반추해 보아야 하리라.
 
*나의 걸음의 방향과 보폭을 결정해 주시는 하나님의 세밀하신 동행을 신뢰하여야 하겠다. 혹시 너무 서둘러 하나님보다 앞서가려고는 하지 않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주저하지 말라”는 모세의 명령에 정탐 제의로 반응했다. 겉으로 보기에 매우 신중한 처사인 듯 보이지만 사실 더 이상 정탐이 필요 없을 만큼 하나님의 분명한 약속과 역사와 인도를 경험했음을 간과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으로 포장하여도 불순종이 순종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은 열 명의 과장된 거짓 보고만을 믿고, “올라가서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며 원망한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족속과 견고한 성읍 앞에서 두려워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오해하고 애굽에서 구원하여 주신 역사마저 왜곡했다. 크고 작든 나의 불신과 불평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와 인도를 부정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주님, 크고 두려운 광야를 지날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을 세상과 사람의 소리와 맞바꾸지 않겠습니다.
*주님, 이미 보았던 것마저 망각하게 만드는 거짓의 소리 힘을 간과하지 않겠습니다. 늘 분별하며 주님의 음성을 따라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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