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만시지탄(晩時之歎)”의 땅 가데스 바네아에서 [신 1:34-46]
 – 2024년 01월 03일
– 2024년 01월 03일 –
가나안 땅 입성을 거부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여호와의 분노를 담고 있다. 민 14:20~45의 내용과 유사하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백성을 위해 기도했던 모세의 모습은 생략이 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정탐꾼들을 약속의 땅에 파송하였으나, 돌아온 정탐꾼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하고 만다. 이스라엘은 불평하게 되고 이에 따라, 오랜 방황의 징벌을 받게 된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불순종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자, 이제는 모세의 강권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들어가겠다고 고집했다가 전쟁에서 패하게 된다.
    
    
    
1. 여호와의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34~36절)
“여호와께서 너희 말을 들으시고(34절)”라는 표현으로 시작한다. 민수기 본문에서는 “애굽으로 돌아가자”(민 14:3~4)라고 말하는 백성의 모습을 묘사하지만, 본문은 “원망하는 소리”만 나올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듣고 맹세하신다. 35절에서는 이 악한 “세대” 사람 중에는…. 이라고 표현하여 원망한 자의 개별적 심판이 아니라 공동체가 함께 심판받을 것을 암시한다.
    
이스라엘의 불신앙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다고 여겼던 갈렙과 그 자손을 제외하고 원망하고 불평하여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하다고 외친 악한 세대는 가나안 땅을 얻을 수 없었다. 한편 갈렙의 순종을 “온전한 순종”으로 표현했다(36절). 그것도 ‘오직’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의 순종 가치를 강조했다. 개역 개정이 “온전한 순종”으로 번역한 단어는 “여호와의 뒤를 따르다”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 그만이 그 땅을 볼 것이니, 그가 온전히 여호와를 따랐으므로 그가 밟은 땅을 내가 그와 그의 자손에게 줄 것이다.’ 하시고,” (새번역_36절) *갈렙은 여호와의 뒤를 온전히 따른 사람이었고 그에게 가나안 땅이 주어진 것이다.
    
    
    
2. 여호와의 모세에 대한 분노(37~40절)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거부한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들의 지도자인 모세에게도 진노하셨다. 모세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세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만이 약속의 땅에 들어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사건을 통해 이미 여호수아의 지도력이 드러나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모세를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할 것이다. 이제 모세의 역할은 여호수아가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격려하는 것이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불신하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두려워하였고 자기들의 어린 자식들만 포로로 잡힐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린아이들과 조금 더 큰 아이들(선악을 분별할 수 있을 정도의 아이들)이 오히려 장성하여 대적들과 싸워 이기고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하나님께서 불신 세대를 징벌하시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새 시대를 통해 완성될 것이다. *불신의 1세대는 약속의 땅 앞에서 돌이켜야 했다. 이스라엘은 서쪽 홍해를 따라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으로 돌려보내지 않으셨다(40절).
    
    
    
3. 여호와의 명령을 다시 거역하는 이스라엘(41~44절)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이스라엘에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들어가라고 명령하셨다(40절). 민수기 본문과의 차이는 본문이 ‘여호와의 말’로 나오지만(42절), 민수기는 ‘모세의 말’로 표현되었다(민 14:39). 백성들은 자신들의 불순종에 진노하심으로 반응하신 하나님께 놀랐다. 그들은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겠다고 주장한다. 즉시 무기를 챙겨 산지로 진격하려 했다(41절). 이제라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다. 하나님은 “돌이켜” 광야로 가라고 하셨으나, 그들은 진격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려” 하였다. *약속의 성취에 대한 불순종도 문제지만, “순종이 없는 회개”도 잘못이다. 불순종에 대한 처벌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참된 회개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진격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싸우지 말 것을 명령하셨다. 그들과 함께하지 않으실 것이기에 이스라엘은 올라가서는 안 되었다(42절). 민 14:43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지 않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증명한다. “너희가 여호와를 배반하였으니” (문자적으로는 ‘여호와로부터 돌이켰으니’) 이다. 하나님을 떠난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나 승리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임한 불순종의 결과를 수용하고 인정해야 할 때였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거리낌 없이 산지로 올라간다(43절). 이는 명백한 반역이자 교만한 행위였다. 백성은 언약궤를 진중에 두고 산지로 향해 나아갔다. 여호와 하나님도, 모세도 버리고 자신들의 원대로 진격하였다. 하지만 산지에 있던 아모리 족속이 벌 떼처럼 몰려와 이스라엘은 세일 근처 호르마까지 도망쳐야 했었다. 참담하게 쫓겨 내려간 지역의 이름이 호르마였다.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이 얼마나 극심한 패배를 경험했는지 암시하듯 “헤렘(진멸)”을 연상시키는 지명이었다. 훗날에 이 장소는 이스라엘이 그 지역의 군대를 진멸한 곳으로 기록에 남는다(민 21:3). *이것은 하나님께서 과거의 실수를 나중에 동일하게 만회하도록 해주시는 분이심을 알게 한다.
    
    
    
4. 여호와께서 듣지 않으시다(45~46절)
이스라엘은 아모리 족속에게 쫓겨나 다시 여호와께 돌아온다. 이스라엘은 통곡했으나, 여호와께서는 그 소리를 듣지 않으신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고 하나님을 떠나가는 것에 대한 뼈저린 경험을 한 이스라엘은 차후에 불순종의 1세대가 죽고 이동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임하기 전까지 이곳, 즉 가데스 바네아에서 오래(38년) 머물게 된다.
    
    
    
나는?
-언약 백성의 불신과 불순종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믿음의 사람과 새로운 세대를 남겨두신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라는 말이 있다. 기회가 지났음을 한탄한다는 말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이랬다. 오늘 우리는 어떤가? 늘 믿음으로 살기를 도전하다 이런저런 불신과 불순종의 늪에서 지나가 버린 “믿음”이라는 기회를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지는 않는가?
    
-장막 안에서 원망하는(27절) 이스라엘의 악한 불평을 들으시고 진노하신 하나님은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겠다는 약속을 철회하신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악한 세대”는 단 한 사람도 “좋은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34~35절). 하나님의 징계와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만큼이나 실제적이다. 나는 하나님의 큰 은혜를 아는 사람답게 불평의 장막을 떠나 순종의 자리에 머물고 있을까?
    
-악한 세대 가운데서 온전히 하나님께 순종했던 갈렙만은 그의 믿음대로 자손과 함께 그 땅을 누리게 하신다. 또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한 여호수아에게 새로운 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신다(36~39절). 이를 통해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길과 가나안 땅의 약속을 받을 조건은 오직 “믿음” 뿐임을 보여주신다. 우리 더온누리 공동체는 자녀와 공동체에 믿음의 본을 보이며 믿음으로 세상과 상황을 보도록 도전하고 있을까?
    
    
-약속의 땅에 올라가지 않겠다고 거부한 백성을 향해 광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진노 심판이 선언되었다. 그러자 정작 올라가지 않겠다고 불평한 가나안으로 올라가 정복하겠다고 호들갑을 떤다(40~44절).
    
*여전히 듣고 싶은 말만 듣고,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한다. 무모한 만용에 지나지 않았고, 결과는 참패로 끝났다. 순종으로 이어지지 않는 뉘우침은 회개가 아니다. 때로는 적극적인 행동이 불순종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올라가지 말라고 경고했음에도 올라갔다가 아모리 족속에게 참패당한 이스라엘이 울부짖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한(43절)” 백성이 이제는 하나님의 거절(“듣지 아니하심”)을 당한다(45~46절).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듣고 애굽에서 끌어내신 하나님이시지만, 약속의 땅을 앞에 두고도 불순종으로 일관하는 백성의 부르짖음에는 귀를 막으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기도를 들어주셔야만 한다는 착각 속에 빠질 수 있는 이들에게 경종을 울린다. 위급할 때만 찾는 하나님이라면, 형통하고 살 만할 때는 늘 내게 잊힌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다가 정작 더 절박하게 울부짖어도 “듣지 아니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을 수 있다.
    
    
*때늦은 후회는 탄식밖에 남는 것이 없다. 모압 평지에서 다시 듣는 부모 세대의 실패한 이야기는 “새로운 세대”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오직 믿음”을 “오직 순종”으로 이루어 내는 것이다. 약속의 땅이 바라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으로 인한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이야기가 자신들에게도 반복되지 않기를 결심하고 또 결심했을 것이다.
    
*생생하게 살아있는 갈렙과 여호수아는 분명한 하나님의 메시지였다. 열 두 명의 정탐꾼 중에서 오직 그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이뤄질 수 있음을 믿고 올라가서 차지하자, 순종하자고 주장했었다. 당시에는 그들의 주장이 백성들에게 거절되고, 하나님에게서도 거절된 것처럼 보였지만, 아니다. 오직 그들만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제 38년 만에 모세의 입술을 통해 다시 환기되고, 새로운 세대에게 하나님 약속의 신실한 성취를 보게 하셨다.
    
*이제 여호수아는 정복 전쟁을 진두지휘하게 될 것이고, 갈렙은 가장 앞서서 싸우게 될 것이다. 불확정성과 불확실성의 땅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길과 가나안 땅의 약속을 받아 누리게 될 유일한 길은 “믿음” 뿐임을 자신들의 눈앞에 서 있는 두 거장을 통해 확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불순종의 대가는 참담했다. 하나님은 장막 안에서 자신을 향해 원망하는 이스라엘의 악한 불평을 들으시고 진노하셨다. 그리고 단호하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하신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그 믿음대로 되게 하신다. *약속이 실제가 되게 하는 것은 믿음이다. 약속 자체가 아니다.
    
*심판의 책망을 듣고서야 광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한 채 가나안 땅을 정복하러 가겠다고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하라고 한 것은 외면한 채 하지 말라고 한 것을 하려고 기를 쓴다. 이것은 믿음이 아니라 만용이다.
    
*불순종으로 인해 당한 쓰라린 패배로 울부짖는 백성을 외면하셨다.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거절하셨다. 위급할 때만 찾는 하나님, 살 만하면 잊히는 하나님, 이런 백성의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 노릇을 포기하실 때가 있음을 분명하게 각성시키셨다.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37절). 출애굽 1세대 백성과 함께 광야에서 삶을 마친다(34:5). 그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그의 신앙과 인품, 지도력을 볼 때 안타깝기도 하다. 어찌보면 여호수아와 갈렙보다 더 신앙이 탁월한 이가 모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를 통해 시작한 출애굽의 완성을 보지 못하게 하셨다.
 
*그럼에도 성경 어디에도 모세가 이를 불만스럽게 여기는 구절은 없는 것으로 보아 그도 하나님의 의중을 잘 알아차렸음을 알 수 있다. 지도자는 백성과 함께 하는 존재이다. 백성 없는 지도자는 없는 법이다. 진정한 지도자는 백성과 자신을 동일시 여긴다. 더 나아가 예수님처럼 백성의 짐을 대신 져주는 존재이다.
 
*모세의 지도력을 묵상하며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아쉽기만 하다. 품격이라고는 느낄 수 없고, 언행심사가 민망할 때가 불쑥 불쑥 눈에 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모습은 예사이고 특히 약자들을 무시하는 정책들이 가뜩이나 어려운 시기를 지나는 국민들을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국민을 아우르는 운영 철학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할 만큼 차별과 비하와 적대감을 조장하는 말을 정제하지 않고 남발한다. 이념의 갈등을 부추기는 것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국민들을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참담할 정도이다. 힘을 숭배하고 미신과 술에 취해 허우적 거리며 패거리 정치를 하면서도 ‘패거리 카르텔 타파’를 운운하는 것은 또 한편의 코미디와 다름 없다. 그런데 이런 지도자를 추앙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더 가관이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이런 이들 속에 상당수의 교회가 적극적으로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낯부끄럽다.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보여주어야 교회가 미신에 얽매이고 힘을 앞세워 패거리 정치에 동조하고 있는 형국이라니… 국가와 지도자에 대한 시선과 견해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면 말씀에서 추구하게 하는 가치로 지도자를 분별하면 된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에게 지도자 복은 없다.
 
*그래서 모세의 지도력이 그리워진다. 갈렙과 여호수아를 세워주고 자신은 출애굽 1세대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에 믿음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말씀으로 보살펴주는 그의 지도력과 성품을 본받아야겠다. 공동체와 함께 하는 지도력을 겸손하게 감당해야겠다.
 
*가나안 진입의 목전에서 자신은 들어가지 못할 것을 받아들이는 모세를 통해 깊은 울림이 오는 아침이다.
    
    
    
 
*주님,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순간들이 반복되지 않게 “믿음”으로 살겠습니다.
*주님, 불순종의 대가가 참담한 것을 봅니다. 무엇보다 참담한 것은 하나님의 외면임을 봅니다. 이스라엘의 참담을 반면교사 삼겠습니다.
*주님, 백성과 함께 하는 지도력을 보이는 모세의 모습을 본받겠습니다. 늘 공동체와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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