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돌아가는 여정, 그러나 단단히 다져지는 신뢰의 여정 [신 2:1-25]
 – 2024년 01월 04일
– 2024년 01월 04일 –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자 했으나 실패한 이후 사건을 기록한다. 38년간의 여정을 압축한 것이다. 하나님은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는 동안, 전쟁을 피하게도 하시고 겪게도 하신다. 특히 에돔, 모압, 암몬이라는 형제 국가들과의 전쟁을 피하게 하시는 사건을 통하여 비록 직접적으로 전쟁을 통하여 얻은 체험과 교훈은 아니지만, 예전에 세 민족에게 땅을 주신 방법을 이스라엘이 간접적으로 배우게 하신다. 광야에서의 여정은 불순종으로 시작했지만, 새로운 세대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까지 신실하게 보호해 주신 여정이었다.
    
2~3장은 가나안을 향해 다시 출발하는 이스라엘이 요단 동편 지역을 통과하면서 겪은 일을 회고하는 부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 모압, 암몬과 싸우지 말고 우회하라고 명령하신다.
    
    
    
1. 때가 되자 다시 약속의 땅으로(1~12절)
“방향을 돌려 홍해 길로 광야에” 들어가라 하셨으나, 때가 되자 이제 광야에서의 오랜 유랑을 끝내고 다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돌이켜 가나안으로 나아간다. 광야가 여정의 끝이 아니었다. 악한 세대의 실패가 결론이 아니었다. 지연되고 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인도하신 여정은 멈추지 않는다. 출애굽 1세대가 다 죽었다고 해서 가나안을 향한 출애굽의 여정마저 중단되지 않았다. 악한 세대에게는 광야가 출애굽의 종점이었지만, 새로운 세대에게는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곳이었다. 어떤 이에게 광야의 시간은 좌절과 죽음의 시간이었지만, 어떤 이에게 그 시간은 다시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변화와 갱신의 시간이 될 수 있었다. 마침내 때가 차자 바로 가나안을 향해 다시 길을 떠난다. 새로운 세대는 가데스 바네아를 떠나 돌이켜 홍해로 이르는 길을 따라 광야로 향하였다. 백성들이 마지막으로 가데스 바네아에 머무는 동안에 미리암이 죽었고(민 20:1) 반석을 치는 므리바 사건도 일어났다.
    
4~7절은 에돔을 우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다. 이스라엘이 모압까지 나아가는 가장 좋은 길은 에돔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의찮아 국경 남부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북진하는 경로를 택해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을 지날 때 그들을 우회하라고 하셨다. 민수기 20장에도 동일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민 20:17~21). 내용에 차이가 있는데, 민수기에는 본문에서처럼 이스라엘이 행동해야 하는 지침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 이스라엘의 형제인 에서의 자손이 사는 지역을 통과할 때는 특별히 조심하여(4절) 다투면 안 되었다. 이유는 분명했다. 하나님께서 세일 산지를 에서에게 주셨기 때문이다(5절). 그들에게서 돈을 주고 양식과 물을 사서 먹으라고 하신다(6절). 그들을 자극하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십 년 광야 생활을 함께 해주신 하나님으로 인해 부족함이 없는(7절) 이스라엘 백성들이었기에 에돔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했다. 특별히 40년 광야 생활을 “네게 부족함이 없었던” 시간으로 표현했다. 이 표현은 “여호와께서 말한 것 중에서 ‘한 가지’도 결핍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8~12절은 모압을 지날 때의 행동 지침이다.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고 모압 족속은 롯의 후손이다. 하나님께서 그 땅(아르)을 모압 족속에게 주셨다. 눈에 띄는 표현은 에돔을 “우리 동족”(8절)이라고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돔 족속의 경우와 동일한 지침을 주시는데, “싸우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이유도 분명하다. “네게 기업으로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9절).
    
에돔과 모압을 언급하시면서 그들이 거하는 지역을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신 것이라는 동일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이방 민족의 하나님이심을 명시하는 것이다. 그런데 모압은 에돔과 달리 “우리 동족”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 이유는 신명기 23장의 “총회법”에서 모압과 암몬은 영원히 총회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씀했기 때문일 것이다(신 23:8).
    
    
    
2.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 시내까지(13~25절)
13~16절은 출애굽 세대, 즉 이스라엘 1세대의 종말에 대한 언급이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정탐꾼 사건 이후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38년의 세월이 흘렀다(13절). 하나님께서 맹세하신 대로 세월이 흐름에 따라 1세대 군인들은 모두 죽었다. 이는 불순종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끝났으며 광야 체류가 완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순종하는 새로운 세대를 통해 가나안 정복이 시작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출애굽 1세대를 “모든 군인”으로 그들의 죽음을 “멸망되었다(타맘)”로 표현했다. 민수기에서는 “이십 세 이상으로 계수된 자 곧 나를 원망한 자 전부”로 표현했고, 20세를 싸움에 나갈 만한 남자로 규정하였다. 신명기에서 “군인”이라고 표현한 것은 민수기의 20세를 다르게 표현한 것이다.
    
17~23절은 암몬을 우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다. 이로써 이스라엘의 이동 경로가 확실해진다.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위해 사해 동편으로 우회시키고 있다. 암몬 땅에 들어섰을 때의 행동 요령과 그 이유는 모압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은 암몬에 도시와 땅을 주셨으나 이 땅을 이스라엘에 주지 않으셨기 때문에 암몬과 싸우거나 그 땅을 지나갈 수 없다.
    
*에돔, 모압, 암몬 족속에 대한 하나님의 통과 요령과 이유의 반복은 온 세상의 주권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반복하여 드러내시는 것이다. 또 이스라엘이 확실하게 가나안 땅을 취할 수 있는 이유가 이 세 나라들뿐만 아니라  갑돌 사람(크레타 사람)들이 아위 족속들의 땅을 취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24~25절은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과의 전쟁을 명령하신다. 이스라엘은 에돔, 모압, 암몬, 갑돌 사람들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땅에 살고 있는 아모리 사람들을 쳐서 취해야 한다. 24절은 하나님께서 아르논 골짜기를 건너 시혼 땅을 “네 손에 넘겼는즉”이라고 말씀하셨다. “그와 싸워서 그것을 차지하라(새번역)”고 말씀하시면서 “오늘 내가 하늘 아래의 모든 백성이 너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게 할 것이니, 그들이 네 소문을 듣고 떨며 너 때문에 근심할 것이다.” (새번역_25절) 라고, 선언하셨다. 그 땅은 이미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졌으며 이런 일들을 통해 온 천하가 여호와의 군대 이스라엘에 대한 소문과 명성으로 무서워하며 떨고 근심하게 할 것임을 밝히신 것이다. 38년 전 무참하게 가나안 땅 목전에서 물러났던 이스라엘이 이제 여호와의 승리의 전쟁 위에 섰다.
    
    
    
나는?
-에서의 자손은 호리 사람을 멸하여 세일 산에 거주하였고, 롯의 후손은 크고 강한 에밈 족속을 멸하고 아르에 정착하였다. 모두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에게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을 차지한 것이다. 광야 40년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에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으로 돌아가게 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역사 수업이었다.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취된 오늘의 현실을 확인하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약속의 땅에 대한 확신을 다듬어 주셨다.
    
-악한 세대들이 행사하지 못했던 “믿음”을 피곤한 여정이지만 이들의 땅을 지나가게 하면서 이 땅들 모두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땅임을 깨닫게 하여 가나안 땅을 주신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고취하고, 그 땅은 믿음으로 들어가는 것임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이 아니시다. 에돔과 모압과 암몬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그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이 있었다. 그렇다면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신자들만의 하나님이 아니시다. 믿지 않는 이들에게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의 약속과 비의 약속을 신실하게 베푸신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좁디좁은 분으로 만들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은 교회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이시다.
    
–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는 부푼 가슴과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가나안을 향해 진군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족속의 땅을 지나면서 이 길을 지나가게 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알아차렸을 것이다. 에서의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는 약속을 따라 ‘호리 사람’들을 몰아내고 세일 산에 거했다. 롯의 후손들은 ‘크고 강한 에밈 족속’을 멸하고 아르에 정착했다. 마찬가지이다. 이스라엘에 주시겠다고 약속한 가나안 땅을 그 땅의 거민을 몰아내고 차지할 땅이었다.
    
-이전의 악한 세대는 가나안의 난공불락과 같이 여겨지는 성들을 보고, 거인 족속들을 보며, 그들이 타고 누비는 철병거에 기가 꺾였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견고한 성읍에 마음을 빼앗겼다. 살아계시고 지금 함께 하고 계시는 하나님 보다 아직 만나보지도 못한 아낙 자손을 더 두려워했다. 중요한 것은 약속한 대로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이지 적들의 전력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의 환경보다 더 크신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야 하리라.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길을 한참이나 돌아간다. 그러나 돌아가는 그 길에서 가르쳐주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 내가 지금 원하는 형통으로 가는 지름길이 아니더라도 돌아가는 듯한 여정이 결국 하나님의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은혜인 것을 믿어야 하겠다. 길이 막히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수록 하나님의 신비한 섭리 앞에 나의 조급한 지혜와 지식을 내려놓아야 하리라.
    
*38년 동안의 광야의 삶은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날마다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왔으며, 구름과 불기둥으로 동행하는 여정이었지만 광야길은 어디까지나 광야길 이었다. 참다운 안식은 없었다. 하지만 그 고달픔이 새로운 세대를 믿음의 세대 순종의 세대로 단련시켰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저버린 결과가 얼마나 뼈저리게 참혹한 것인지를 온몸으로 익히며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는 연단의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은 아무런 어려움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형제 나라 에돔과 모압과 암몬 족속에게 피해를 주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은 아모리 왕 시혼의 땅과 사람들을 이스라엘에 승리의 열매로 내어 주셔서 많은 민족이 언약 백성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셨다(24~25절).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던 이스라엘에는 용사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셨다. 방랑의 세월, 고통스러운 역사 속에서도 소망의 줄을 붙잡을 수 있는 것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이다.
    
    
*광야 40년의 방황을 마치고 가나안으로 향하는 행진은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 주는 여정이었다. 요단 동편 땅은 처음 약속에는 없었다. 그저 통과해야만 하는 땅이었다. 얼마든지 차지할 수 있었지만, 차지할 필요가 없는 땅이었다. 이스라엘은 그들과 전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조금도 손해를 끼치지 않고 대가를 지급하며 지나가야 했다. 어떤 측면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흘려보내는 여정이었다. 그 기간만큼은 이미 제사장 나라였다. 이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가나안으로 향하는 여정은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여정이었다. 요단 동편 땅을 지나는 동안 에돔과 모압, 암몬 족속과 충돌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땅을 각각 그들의 몫으로 약속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싸워 취할 명분이 없었다. 나라의 운명이나 안전, 행복은 나라의 부강함과 강력함에 달리지 않았다. 오직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순종에 달려있다.
    
    
    
    
*주님, 한참 돌아가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경험하는 여정이었습니다. 혹시 지금 나의 삶의 길이 돌아가고 있다는 좌절감이 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놀라우심을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주님, 약속에 신실하신 주님 때문에 용기를 얻습니다. 온 세상 만물에 약속하신 대로 이루신 주님이시기에 저에게 하신 약속도 이루심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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