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먼저 땅을 받은 지파의 책임과 사명 [신 3:12-29]
 – 2024년 01월 07일
– 2024년 01월 07일 –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모압에 이르는 우회 행군과 아모리 족속 헤스본의 시혼과 바산 왕 옥과의 예정에 없던 전쟁의 승리로 약속의 땅을 얻을 수 있다는 경험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 전쟁의 승리로 차지하게 된 요단 동편의 땅을 르우벤과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분배하는 과정을 경험함으로 향후 약속의 땅을 정복한 후 땅을 분배하는데 귀중한 토대를 쌓는다. 그러나 모세는 가나안 전쟁과 땅 분배의 맛보기만 보고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다시 확인받는다. 그의 아쉬움과 고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기 잘못이 아닌 이스라엘로 인해 하나님의 분노를 산 모세가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다시 한번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하나 단호하게 거절당한다. 다만, 비스가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볼 수 있도록 허락을 얻는다.

 

 

 

  1. 요단 동편의 땅을 얻은 지파들(12~17절)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왕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차지한 땅을 열두 지파 중에서 세 지파가 차지하기를 원했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지파의 절반이 이 땅을 요구했다. 이 요구는 받아들여져서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요단 동편 남부지역(아르논 골짜기 곁의 아로엘~길르앗 산지 절반)을,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 북부지역(길르앗의 남은 땅~아르곱 지방)을 얻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출발하여 이스라엘의 먼 친척들의 땅들(모압, 에돔, 암몬)을 우회하여 요단 동편까지 이르렀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땅들을 싸워 얻게 하신 것이다. 이 지역들은 하나님께서 불순종에서 돌이켜 순종하는 자들에게 넘치게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첫 열매였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이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을 온전하게 소유할 수 있음을 확신하게 하는 사건들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의미심장한 하나님의 은혜 선물이 땅을 차지한 지파들과 아직 땅을 차지하지 못한 나머지 지파들 사이에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다. 가나안 전쟁을 목전에 두고 심각할 수 있는 분열의 위기가 감지된 것이다.

 

 

 

  1. 기업을 얻는 일에 동참하라(18~22절)

모세는 요단 동편을 분배받은 세 지파에게 나머지 지파들이 약속의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선봉에서 가나안 전쟁을 수행하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위험한 임무는 다른 지파들을 위한 책임감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가축들을 안전한 곳에 남겨두었기에 가능했다. 또한 전쟁의 승리는 떠돌이 생활의 마침이라는 점에서 “안식”이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이끌 지도자로 여호수아를 지목하셨다.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고 명령한다.

 

모세는 선봉에 설 세 지파에게, 그리고 이스라엘 군대를 이끌 여호수아에게 각각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선포한다. 먼저 세 지파에는 “너희에게 주신 것과 같이 너희의 형제에게도 “안식”을 주시겠다”라는 것이다(20절). 이 약속대로 나머지 기업들이 “여호와께서 주시는 땅을 받아 기업으로 삼기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셨다(18~20절). 그리고 여호수아에게는 “하나님께서 시혼과 옥에 행하신 모든 일처럼 네가 가는 모든 나라에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행하실 것이니,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친히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고 격려했다(21~22절).

 

아모리 족속들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신 전사(戰士)이신 하나님과 이미 약속의 땅을 받은 사기 충천한 선봉 부대가 있으니, 이스라엘은 염려할 것 없었다. 요단 서편 땅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된 후에 하나님의 전쟁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요단 동편의 세 지파는 자신들의 거주지로 돌아올 것이다.

 

 

 

  1. 모세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23~29절)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일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에 대한 “증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그래서 간청한다(23절). 하나님께서 오래전에 약속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일이 이제 막 시작되었는데, 이 일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꼭 보고 싶다는 열망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위대함과 권능이 이제 막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 외는 그 누구도 그와 같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24절). 그러면서 간절히 간구한다. “부디 저를 건너가게 하셔서, 요단 건너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하소서.’ (새번역_25절). 그의 마음에 얼마나 간절한 바람이 깃들어 있는지, “요단 건너 아름다운 땅과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을 보게 해달라고 했다. “레바논까지 이스라엘의 손에 들어오는 것을 보고 싶다는 소원이다. 25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에에브라 나” 라고 시작한다. 직역하면 “제발 제가 건너가게 해주십시오”라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단호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진노하시사” 그의 간구를 거절하시고 이 일을 더 이상 언급하지 말라고 하셨다(26절). 민수기에서는 출애굽 1세대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리라는 결과에 대하여 자기 잘못을 크게 부각하게 시켰었다. 그것은 백성의 죄에 대한 지도자로서의 책임이 컸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간절히” 구하는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세 차례나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듣지 아니하시고, 그만해도 족하다,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26절)”이다. 모세는 이처럼 단호하게 거부하시는 이유를 “너희 때문에”라고 서술한다(참고. 1:37). 이는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반역을 가리키지만, 직접적으로 “진노하사”라고 표현하신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하신 것은 모세가 이미 약속의 땅에 들어와 있기 때문이다. 요단 동편의 땅은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하신 요단 서편의 땅은 아니지만 아모리 족속의 왕 시혼과 이스라엘에서 내에 주시며 차지하여 기업으로 삼으라고 분명히 말씀하셨기 때문이다(2:24, 31; 본문 18절). 그런데도 모세는 요단 서편만 약속의 땅이라고만 여긴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주의할 것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범위를 넘어서서 이미 이루어진 약속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이다. 모세는 요단 서편의 땅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주셨다고 스스로 말했음에도, 요단 서편이 진정한(?) 약속의 땅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단호하게 모세의 간구를 거절하시고 진노하신 이유는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심판받은 백성들의 지도자로서의 책임을 짊어지라는 것과 함께 그럼에도 은혜로 덤으로 주신 요단 동편의 땅이 확실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임을 확인시켜 주시기 위해서였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셨으나 모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신다. 비스가 산꼭대기에 올라 눈을 들어 “동서남북”으로 약속의 땅을 둘러볼 수 있는 특권을 주신다. 하나님의 의도는 분명하다. 지금 모세가 서 있는 곳이 이미 약속의 땅임을 깨우쳐 주시는 것과 동시에 조상으로부터 계승 받은 약속의 땅을 멀리서나마 둘러보게 하심으로, 아모리 족속을 물리친 것처럼 가나안 족속들을 물리치고 차지하게 될 땅을 먼저 보게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참으로 섬세하신 분이시다.

 

동서남북으로 바라보는 땅을 점령해야 할 일은 여호수아에게 위임하라고 명령하신다. 자신의 뒤를 이을 지도자를 세운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명령하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라.”고 하신다(28절). 자신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이끌 지도자에게 먼저 명령하여 끝까지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려 주어라는 것이다. 여호수아에게 명령한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21~22절에서 이미 해주었다. 그리고 격려와 용기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22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여호와 너희 하나님은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다”라는 격려와 용기의 근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이다.

 

이 격려와 용기의 근원이면 전부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싸우신다.

 

 

 

나는?

-본문은 먼저 약속의 땅을 분배받은 세 지파가 공동체인 나머지 열 지파에 대한 의무를 어떻게 감당하는지 그 원리를 잘 보여준다. 이것은 먼저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아직 은혜를 기다리고 사모하는 이들을 위해 어떤 자세로 섬겨야 하는지에 대한 교훈이다. 요단 동편의 아모리 족속의 땅, 헤스본과 바산을 정복한 후, 르우벤과 갓, 므낫세 지파의 반에 땅을 분배하였다. 이 지파들은 비옥하고 전술적으로도 유리한 드넓은 땅을 분배받아 참으로 행복했을 것이다. 40년의 광야 생활의 마침표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그것도 이제 시작이다. 그 땅을 얻기까지 이스라엘 모든 백성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으니, 이제는 형제들이 땅을 얻을 때까지 함께 가야 한다. 뒤에서 어물쩍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보다 앞서서 가야 한다(18절). 신앙은 나만 잘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부르는 지체들의 짐을 서로 나눠서 지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길이다. 갈 6:2 “너희는 서로 짐을 져 주어라. 그리하면 그리스도의 법을 완성할 것이다.” (새번역)

 

-먼저 “선봉”에 서라고 하셨다. 먼저 받은 은혜와 복을 “선점”하거나 “독점”하는 것은 축복이 아니다. 주님은 은혜받은 이에게 사명을 주시고 선택받은 이에게 책임을 부여하신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먼저 소유한 자는 은혜를 소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한 신앙생활은 자기만족이 아니다. 애굽에서의 생활은 내 배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노동의 대가로 받은 것이니 그렇게 사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이 세상의 방식이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다르다. 18절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이 되게 하셨은즉”이라고 말씀하셨다. 약속의 땅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 주신 선물이었다. 모든 형제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교회 공동체도 마찬가지의 원리 위에 있다. 교회 공동체는 단지 예배라는 형식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살아내는 공동체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그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값을 매길 수 없는 희생으로 주신 선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 교회 공동체의 은혜를 깊이 소유한 성도일수록 이를 공동체 가운데서 “맨 앞에” 서서 보여주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백성의 누려야 할 공동체가 무엇인지 깨닫도록 섬겨야 한다. 이것이 영적 전쟁터에 선봉으로 선 구원받은 하나님 백성의 자세이다.

 

 

*모세는 요단 서편만을 약속의 땅으로 여겼다. 당연하다. 출애굽 때부터 늘 그렇게 말씀해 주셨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단 동편의 땅을 추가로 선물로 주셨다. 이제 요단 동편도 이스라엘 백성의 약속의 땅, 그들의 삶의 기업이 되었다. 그런데 모세는 이를 실감하지 못한 듯하다. 그래서 하나님께 간구했다. 요단 서편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셨다. 지금 네가 선 땅도 이미 약속의 땅과 마찬가지라고…. 그리고 38년 전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불순종한 백성의 지도자로서 책임을 함께 지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격려해 주시기 위해 바스가 산꼭대기에 올라 “동서남북”을 바라보며 약속의 땅을 볼 수 있는 특권을 허락하셨다. 아론이나, 미리암은 누려보지 못한 축복이었다. 하나님의 섬세한 배려가 눈에 띈다. 우리도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붙잡고 따라가야 하지 않을까!

 

*한편 모세도 하나님의 단호한 반응에 더 이상 매달리지 않는다. 더구나 후임자인 여호수아가 그 땅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들어갈 것이라는 분명한 선언도 있었다. 더 이상 간청하지 않았다. 물러설 때를 알고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거인이다. 마치 사도바울이 자신의 간질을 고쳐 달라고 간구할 때 하나님께서 하신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고후 12:9)라는 말씀을 따라 더 이상 간구하지 않았던 그것처럼 믿음의 거장은 나의 욕심을 고집부리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에 만족하고 과욕을 구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믿음이다.

 

*여호와의 전쟁은 공동체를 위한 싸움이다. “나만 잘되는 길”이 아니라 “서로의 짐을 나눠서 지고, 모두가 안식하는 신앙공동체를 위해 선봉에 서야 한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이 아니라 물러설 때를 알고 포기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주님, 세 지파의 선봉에 서는 책임감과 물러설 때를 아는 현명함을 저도 갖추겠습니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