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넘치고 넘치는 우상들의 세상 속에서 유일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내기 [신 4:32-43]
 – 2024년 01월 10일
– 2024년 01월 10일 –
본문은 두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32~40절까지는 과거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서술하며 율법 순종을 요구한다면, 41~43절은 요단 동편에 설치된 도피성을 서술한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사건은 전무후무한 “위대한 사건”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것을 행한 하나님이 누구인지 가르친다. 또한 요단 동편에 세 성읍을 구별하여 도피성으로 삼은 것을 언급한다.
    
모세는 광야 2세대들에게 세상 그 어디에도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기적과 가까이하심을 얻은 나라는 없음을 반복하여 상기시킨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 인격적으로 임재하셨고 율법을 계시하셨다(4:5~7). 그러나 그 일은 광야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제 그들은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가나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 때문에 모세는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고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또한 그 하나님은 생명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이심을 도피성을 구별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가나안에 들어갈 이스라엘에 가장 큰 도전은 우상숭배이다. 가나안의 종교는 그들의 주요 생업인 농경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들의 문화, 생활방식, 그리고 여흥에 깊숙이 뿌리박고 있다. 모세는 출애굽 2세대에게 이런 정황을 고려하여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며 그 외에 다른 신의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시킨다. 이를 증명하고 설명하기 위해 출애굽에서 일어난 창조주 하나님의 초월적인 계시와 사랑의 언약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1. 하나님의 행하신 유일한 역사를 상고하여 보라(32~34절)
“네가 있기 전, 곧 하나님께서 이 땅 위에 사람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들에 물어보아라. 하늘, 이 끝에서 하늘 저 끝까지 이런 큰일이 있었느냐? 그런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새번역) 모세는 역사상 전무후무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와 임재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상고하여 보라(샤알)”고 한다. ‘상고하다’는 ‘묻다, 구하다, 요구하다, 간청하다’는 의미가 있다. 믿음은 결코 맹목적이지 않다. 상고한 후에 드러난 증거를 통해 명백히 입증될 수 있는 것이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믿음의 내용과 이유를 주시면서 믿으라고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만 베푸신 유일한 기적들을 제시한다(32~34절).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늘로부터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들었다(출 20:18, 22).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까이 서서 그의 음성을 들었음에도 그들은 죽지 않고 생존했다(33절). 또한 전쟁이나 혁명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열 가지 재앙을 통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 당시 최강대국이었던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을 구속하셨다(34절).
    
이러한 일들은 모두 역사상 유일한 일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믿음은 이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에 달려 있었다. 믿음을 더욱 세우기 위해 또 다른 새로운 정보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들이 경험하고 지나온 역사면 충분했다. 그 역사를 현재화하기만 하면 됐다. 과거에 역사를 만드신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역사 속에 명백히 존재하는 증거 앞에 선 이스라엘의 태도여야 했다.
    
    
    
2. 왜?_사랑하셔서(35~40절)
하나님께서 이런 이적과 기사와 큰 권능을 행하신 목적은 무엇일까?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놀라운 일을 행하셨는가? 35절은 분명하게 그 목적을 선언한다. “그러나 네게 이것을 보여주신 것은 여호와만이 참 하나님이시고, 그분 외에 다른 신이 없음을 네게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새번역) 궁극적으로 여호와만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고(창 1:1) 그 외에는 다른 신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게 하려 하심이다.
    
구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이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다. 하나님이 불 가운데서 인간의 세계에서는 들어 볼 수 없는 두려운 음성을 발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은 두려워하고 경외해야 할 분이심을 알게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산의 타오르는 하나님의 임재의 불을 두려움 속에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36절). 이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훈련 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뿐 아니라 37~38절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며 39~40절을 통해 구원받은 백성에게 기대하는 모습을 언급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을 사랑하셔서 그의 후손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이다(37절). 사랑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구속하게 된 원동력이다. 이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 하나님의 선택 동기가 이스라엘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랑하시는 백성들을 위해 축복의 땅을 기업으로 준비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오직 한 분 여호와 하나님만을 마음과 뜻과 성품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6:5; 7:9; 10:12; 11:1; 13:3). 이것이 선택받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기대하시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사랑에 전심으로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이 곧 언약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준수하라고 요청하는 배경에 바로 이 사랑이 있다. 굴종이 아니라 사랑에서 나오는 자발적인 순종으로 사랑해야 한다. 택함 받은 백성은 유일하신 창조주이자 구원자이신 하나님만을 섬겨야 한다(39절). “위로 하늘에나 아래로 땅에 오직 여호와는 하나님”이심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유일하신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것이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장수하며 복을 받는 유일한 길이다(40절).
    
    
    
3. 하나님 사랑의 증거_도피성(41~43절)
갑자기 도피성 이야기가 등장한다. 요단 동편의 도피성 이야기를 통해 요단 서편의 도피성도 자연스레 상기가 되는데, 이는 요단 서편 땅 정복을 기정사실로 하는 표현이라 하겠다. 모세는 “요단 건너편(동편)”을 세 지파에게 분배했고 성읍을 “구별했다.” (41절). 구별한 이유는 “원한이 없이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성읍으로 도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의 “생명”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었다(42절).
    
도피성을 지정하는 이야기에 담긴 함의는 이렇다. 일단 요단 동편의 도피성 3개와 요단 서편 3개 모두 6개의 도피성을 지정하였다(신 19:1~14; 민 35:14). 이는 가나안의 완전한 정복을 예고할 뿐 아니라 그 정복의 주요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가나안 땅은 제사장 나라와 거룩한 백성이 세워질 땅이다. 그러므로 그 거룩한 땅을 피로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민 36:33~34). 도피성은 무죄한 살인자의 피를 흘리지 못하도록 그들을 보호함으로써 거룩한 땅의 정결을 유지하는 중요한 상징적 기능을 가진다.
    
    
    
나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여호와이시다(32~36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시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만나주셨다. 불 가운데 나타나시고, 애굽에서 구속하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구름 기둥으로 불기둥으로 이스라엘과 광야에서 동행하셨다. 이 모든 것을 상고할 때(묻고, 구하고, 요구하고, 간청할 때) 오직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되짚어 보자. 지나온 삶의 걸음걸음을 깊이 생각해 보자. 하나님만이 살아계신 참된 나의 하나님이심을 어떻게 부정할 수 있겠는가? 나도 이스라엘처럼 예수님의 사랑이라는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 특별한 사랑, 특별한 역사를 거쳐 구원받았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오늘까지 베풀어 주신 은혜와 역사를 상고하라”는 모세의 권면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다. “오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순종을 새롭게 하라는 강권함도 역시 우리에게도 해당한다.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이 과거에 묻힌 역사, 혹은 과거에 갇힌 지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지나간 경험은 항상 찾아오는 시험 앞에서 나의 마음과 신앙을 오래 지켜주지 못한다.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묵상하여 받은 은혜를 기억하고 명령하신 것에 순종할 때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를 누릴 수 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끝까지 참여할 수 있다.
    
    
-사랑해 주셔서 언약을 맺어 주셨다(37~40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이유는 그들의 조상과 맺은 사랑의 언약 때문이다(4:37; 7:9).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고 광야에서 동행하시고 그들의 반역과 배교에도 불구하고 거듭 그들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는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먼저가 아니다. 나의 사랑에 앞서 하나님의 사랑이 먼저였다. 나의 선택에 앞서 하나님의 선택이 먼저였다. 그러니 은혜가 아니고 달리 표현할 말이 없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이유도 분명하다. 사랑할 수도, 자격도 없는 나를 먼저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 때문에 기필코 순종해야 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그분만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명심하고 그분의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39~40). 오직 이러한 신앙고백과 순종의 삶만이 약속의 땅에서 장수하는 길이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40년 광야 생활의 종착역인 모압 평지에서 출애굽 2세대는 모세의 설교를 통해 아직 들어가지 못한 약속의 땅을 믿음으로 바라보게 된다. 도피성의 지정은 그들로 하여금 정착의 확신을 가지게 하였고 더 나아가 그 땅에서 무고한 피가 흘러서는 안 되는 땅임을 되새기게 된다. 가나안 땅은 정결하고 거룩한 약속의 땅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제사장 나라로 우뚝 서야 함을 재차 다짐하게 되었다.
    
-도피성은 하나님의 의롭고 자비로운 통치가 약속의 땅에 구현되도록 마련된 사법적인 장치였다. 이와 같은 도피성의 지정은 요단 동편의 정복이 “이미” 끝났다는 것을 확정해 주고, “아직” 끝나지 않은 요단 서편의 가나안 땅에 대한 정복의 기대와 확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인간은 기억에 의존해 살아간다. 기억을 통해 자기 정체성을 확립하는 “기억의 존재”이다. 그런데 동시 “망각의 존재”이기도 하다. 기억과 망각은 모두 소중하다. 하지만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기억은 대단히 중요한 기여를 한다. 공동체는 공동의 여정을 통해 공동의 이야기를 만들고 공동의 이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신명기에서는 “기억하다, 물어보다(상고하다_샤알_32절)”라는 동사는 20회나 사용될 정도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경에서 기억한다는 것은 단순히 과거를 회상하는 차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때에 노아와 가족들, 그리고 들짐승들과 가축들을 기억하셨다(창 8:1). 홍수 후 무지개 언약을 통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창9:16)”라고 말씀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기억하고 그에게 사무엘을 허락하셨다(삼상 1:19). 이는 “기억”이 구원 사건과 관련하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음을 생각하게 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력하게 말한다. “지나간 일(출애굽, 광야 40년)을 상고하여 보라” (32절).
    
*모세는 창조의 때부터 지금까지 일을 기억하라(32절)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태어나기 전의 일을 기억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이는 기록된 성경의 이야기를 오늘의 이야기로 재해석하라는 의미다. 이를 통해 마치 모압 평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창조주, 구원자가 되신 하나님이 유일하신 하나님이심을 확신하고 우상이 넘쳐나는 가나안 땅에서 오직 하나님만 섬기는 백성으로 서 있으라는 의미임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 문명에 종속하지 말고 하나님 백성의 하나님 나라에 거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다.
    
*창조 이야기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어진 이야기다. 인간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이고, 바로를 비롯한 소수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함께 통치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출애굽은 전대미문의 이적으로 이집트 신들을 제압하고 바로를 굴복하여 탈출시켜서 홍해를 건너 여기까지 이른 유일무이한 사건이다. 자신들이 과거에 종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종들을 비롯한 약자들을 관대하게 대할 수 있다. 애굽의 신들은, 자신들을 종으로 삼았으나 전사이신 하나님께서 그들을 물리치고 승리하셨음을 기억한다면, 가나안의 무수한 신들이 아니라 오직 유일하신 구원의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된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성경의 이야기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분명한 증거임을 믿고 확신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의 법칙과 문화, 사상에 종속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에게만 속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세상 무엇과도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의 사랑 이적을 경험한 백성들은 그 사랑에 감격하여 세상 속에서 세상의 방식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순종(방법)이다.
    
    
    
*주님, 무수한 신들의 세상 속에서 유일하신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드러내며 당당하게 살아내겠습니다.
*주님, 나를 사랑하여 주신 사랑 때문에 당연히 떳떳하게 주님을 자랑하며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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