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더 가까이서 듣고, 들은 대로 온전하게 전하는 중재자(대언자) 모세 [신 5:22-33]
 – 2024년 01월 13일
– 2024년 01월 13일 –

모세는 모압에서 그의 죽음이 가까운 것을 알았다. 그는 요단을 건너지 못할 것이며 따라서 그의 생의 마지막 사역은 시내산 언약의 말씀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심어주고 그들이 대를 이어 출애굽의 구속사건과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게 하는 데 있었다. 본문은 십계명 서술이 끝나고 다시 여호와의 계시 사건을 언급한다. 출애굽기 20:18~21절의 말씀과 평행한데, 분량은 훨씬 더 많다.

 

본문은 모세의 중재를 담고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말씀하시는 모습으로 시작하여 이후에 모세는 여호와께서 기록한 말씀을 받았다고 기록한다(22절). 23~31절에서는 모세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중재해달라는 백성의 요청과 그것을 용인하는 여호와의 말씀이 나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될 때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에 모세는 여호와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모든 가르침을 행하라고 명령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중재한다.

 

 

 

1.두 돌판(22절)

십계명에 대한 언급이 마무리되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총회에 하셨다”라고 기록한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서” 음성을 발하셨다고 묘사했다. 4:11에서는 “어둠과 구름과 흑암”으로 표현했다. 또, 본문에서 “더 말씀하지 않으시고”라는 번역이 있는데”로 야사프”라는 말로 “가감하지 말라”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다(4:2). 이것은 모세가 여호와가 ‘십계명’ 외에 다른 것을 더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를 불로 소멸하지 않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부르셨다(출 3:2). 또한 시내산에서 우레와 번개와 구름과 연기와 불(출 19:16~17) 가운데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재하셨다. 이는 초자연적이며 인간이 접근할 수 없는 상황임을 직감하게 한다. 만약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그 불과 위엄에 진멸된다. 그런데도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하였다. 이는 모세만이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믿게 하고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기 위함이다(출 19:9).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은 두 돌판에 기록하여 모세에게 넘겨주셨다. 본문에 나오는 두 돌판은 출애굽기 20장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출애굽기 31~32장에서 등장한다(출 31:18; 32:15~16).

 

 

 

  1. 중재자 모세(23~31절)

이스라엘은 “불 가운데서” 나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보이지 아니하시고 그분의 거룩하심은 모든 죄인을 진멸하신다(출 28:35; 레 16:2; 민 4:19).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대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불과 구름과 큰 소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여기에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가 생존한 것도 보았다(24절).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불 가운데서 듣고 모세가 하나님을 대면한 것을 본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였고, 모세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임을 증명하는 사건이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한 번 들은 것에 만족한다. 그러한 일이 한 번 더 일어난다면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불에 소멸할 것이기 때문이다(25~26절).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계속 듣고 싶었지만, 그분에게 직접 나아갈 수 없었다. 따라서 모세에게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줄 것을 간청한다(27절).

 

모세는 백성들에게뿐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도 하나님의 대리자로 인정받고 있다(28절). 이는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설 중보자는 사람의 인정뿐 아니라 하나님의 인정이 있어야 함을 확인하게 한다.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과의 종적 횡적 관계를 하나의 관계로 본다.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려면 사람과 하나님의 인정이 유기적으로 교차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인정하신 것은 백성들이 꼭 인정해야 한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모세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품어 순종해야 한다. 그것만이 대대로 복을 받는 길이다(29절).

 

이와 같은 원리를 하나님께서 세우신 인간 지도자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화를 당하거나 저주에 처한다는 의미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 모세의 지위는 지금 현대의 지도자의 위치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완성하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 그렇다면 인간 지도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에 복종할 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사림이 복을 받는 길은 단순하다. 그분의 말씀을 진리의 표대로 삼아 살면 된다. 여호와는 모세에게 구체적으로 명령한다. 먼저 이스라엘 지도자를 각자의 처소로 돌려보내라고 명령한다(30절). 이어서 모세는 여호와의 곁에 서서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듣는다. 이는 6장부터 나오는 내용을 가리킨다. 동시에 오경 전체를 가리킨다. 모세에게 주어진 책무는 그것을 백성에게 가르치는 일이다. 이제 계시의 중재자에서 동시에 “율법(토라) 교사”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가 기업으로 주는 “땅을 차지하기 위해” 모세가 가르쳐 주는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행하여야 한다. *율법 순종과 땅 점령을 연결하여 율법 순종을 강조한 것이다.

 

 

 

  1. 모세의 가르침(32~33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령하신”이라는 표현이 두 번이나 반복된다. 모세가 중재하게 될 “명령과 규례와 법도”는 “여호와의 명령”이다. 모세는 여호와의 명령을 행함에 있어서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명령한다. 이는 “가감하지 말라”는 명령과 일맥상통하며, 말씀의 정도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의미도 된다. 또한 다른 거짓된 진리와 교훈, 종교적 가르침을 따르지 말라는 경고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을 “도(데레크)”라고 표현한다(33절). 신명기에서 “도를 행하라”는 명령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5:33; 9:12, 16; 10:12; 11:22; 26:17). 시편이나 선지서에서도 등장하는 명령형이다. 이는 율법 순종에 대한 강조이다. 모세는 율법 순종과 약속의 땅에서의 장수를 연결한다(33절). 이는 십계명의 부모 공경 계명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율법에 불순종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이 기업으로 주신 약속의 땅에서 거주할 수 없을 것이다. 모세를 통해 주어진 율법은 향후 “이스라엘의 역사”를 평가하고 해석하는 기준이 된다.

 

 

 

나는?

-백성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두려워하여 모세에게 중보자 역할을 요청하였다. 임재에 동반된 위엄과 영광은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여호와를 나의 하나님으로 부를 수 있는 언약 백성의 특권을 주셨으나 여전히 그 임재 앞에서 두려워 떪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는 분이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두려움을 넘어 하나님과 연결될 수 있는 모세라는 중재자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그 나라 안에서 거할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세워 주셨다. 하늘 보좌에서 땅으로 내려오셨고, 말씀을 들려주시고,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낼 수 있도록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기를 바라셨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이 살 길이자 자손과 함께 복을 누리는 길이다.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옳은” 길이다. “항상” 경외하며 순종하라는 명령에는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는 마음과 함께 이를 듣는 이스라엘의 마음과 태도가 한결같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도 들어있다. 하나님의 마음은 어쩔 수 없다는 체념이 아니라 더욱 긴장하라는 채근일 것이다. 형식적인 명분으로 불순종을 정당화하는 것보다 단순한 순종으로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삶이어야 하지 않겠는가!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에서 순종을 강조한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백성이 없는 “수많은 자손”과 “가나안 땅”만으로는 하나님 나라가 서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이나 신앙 연륜, 직분이 아니라 “순종”을 보신다. 말씀을 배우고 알려는 열망이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소망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시고 말씀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직접 현현하여 말씀하시자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대언자로 세워 하나님 말씀을 그 백성에게 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대언자는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까?

 

*우선 가까이 나아가 듣는 것이 먼저다. 모세는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대화하였다.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그 백성에게 전하였다. 백성들의 요청은 모세가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가서(27절) 그분의 말씀을 듣기를 요청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자는 하나님과 친밀해야 한다.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가 멀어져 있으면 안 된다. 늘 가까이 나아가 대면해야 한다. 그 교제의 깊이만큼 말씀을 받게 되며, 그 만남의 친밀성만큼 진리를 풍성하게 깨우칠 수 있다. 그래야만 말씀을 담대하게 전할 수 있다.

 

*본문은 분명하게 도전한다. “사람들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먼저 서라!”

 

 

*그다음 중요한 것은 “온전하게 전하는 것”이다. 대언자는 말씀의 통로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여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우리에게 전하여 주소서” (27절)이라는 갈망을 느끼고 예배의 자리로 찾아온다. 온전한 대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않는다. 자기의 사상과 생각을 섞지 않는다. 하나님께 받은 바를 그대로 전하는 메신저가 되고자 몸부림친다. 그야말로 순수한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언자는 자신이 첫 번째 수신자가 됨과 동시에 온전한 전달자가 되어야 한다. 나의 목회의 걸음도 이 길을 따라야 한다. 늘 말씀을 가장 먼저 듣고 온전하게 전달하는 사명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는 이유는 단순하고 분명하다. 그 이유는 백성이 그 땅에서 잘되고 풍요로운 행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29절; 10:13). 그런데 이 행복은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여 행할 때 주어진다. 대언자가 말씀을 온전히 전할 때 온전한 행함의 역사도 뒤따른다. 그렇기에 말씀을 듣는 자는 순종의 자세를 늘 잊으면 안 된다. 들은바 말씀을 있는 그대로 행하고자 결단해야 한다.

 

*중재자이자 대언자는 “듣는 자, 전하는 자, 동시에 실천하도록 안내하는 자 이어야 한다.

 

 

*결국 대언자가 말씀을 온전한 말씀의 통로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된다. 대언자는 하나님의 스피커가 되어야지, 자기 욕망의

스피커가 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의 귀를 열어 그 심령 안에 말씀을 전달하고 그 말씀에 온전하게 반응하여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리게 하는 거룩한 소명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설교자나, 목회자만 대언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오해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대언하는 사명이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 백성은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담대하게 전해야 한다.

 

 

 

*주님, 저에게 맡겨주신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누구보다 더 가까이 나아가 듣겠습니다. 듣고 온전히 전달하겠습니다. 함께 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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