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단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진다. 다윗 집안에 형언하기 민망한 비극이 일어난다. 그야말로 재앙이다. 장자 암논이 이복 누이 다말을 근친상간하고 압살롬이 2년만에 이를 복수하는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다윗의 우유부단함과 사촌 요나답의 간교함이 한 몫을 더한다.
다윗 왕가에 재앙이 끊이지 않는다. 다윗의 간음이 장자 암논의 근친 상간으로 다시 재현된다. 마치 아브라함이 아내 사라를 누이로 속인 것을 아들 이삭이 똑같이 반복했고, 야곱이 아버지를 속여 형의 복을 가로 챘는데, 밧단아람에서 외삼촌 라반으로부터 열 번이나 품삯을 속임 받는다.
다윗 집안에 내려지는 재앙은 13장에서 20장까지 이어진다. 그 영향은 열왕기상 1장에 까지 나타난다. 다윗의 아들들은 크게 헤브론과 예루살렘에서 낳은 아들들로 나뉘어 기록되어 있다. 헤브론에서 낳은 아들들은 이스르엘 출신 아히노암에게서 맏아들 암논, 갈멜 출신 아비가일이 낳은 둘째 다니엘, 그술왕 달매의 딸 마아가가 낳은 셋째 압살롬, 그리고 학깃에게서 난 넷째 아도니야, 다섯째 스바댜, 여섯째 이드르암이다.
그리고 그 외에 밧세바가 낳은 네 아들, 여기에 아홉명의 아들들과 또 다른 소실의 아들인데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낳았다. 다윗에게는 어림잡아 20명 이상의 아들이 있었다.
1.암논의 성충동_죄 인줄 알면서도
맏아들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보면서 성적인 충동이 일어나 상사병에 걸려 버렸다. 우연히 한 두번의 마음이 아니라 깊은 시름에 빠질 정도였다. 이 시름은 근친 간음을 철저하게 경고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을(레 18:9) 알면서도 끌려가는 유혹이었다. 심지어 다말도 이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 정도로(12, 13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상식적인 말씀이었다.
또 당시 왕궁은 처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남자들과 만나지 못하도록 거하는 처소가 따로 구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암논이 다말을 만나고 싶어도 쉽게 만날 수 없었다. 그래서인지 암논이 시름시름 앓고 치밀어 오르는 울화로 인해 병이 나고 말았다.
이때 다윗의 형 시므이의 아들 요나답은 암논이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다윗왕이 들으면 반드시 왕자를 보러 올 것을 예상하고 매우 간교한 계략을 암논에게 건의한다. 암논이 흠모하는 다말을 병 간호를 위해 자신의 처소에 방문할 수 있도록 다윗의 허락을 받는 것이었다. 이 간교한 계략은 허락되어 다말이 맏오빠 암논의 병을 위로하기 위해 그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차라리 다윗에게 말하여 결혼을 요청하라는 다말의 간곡한 만류에도 그녀를 강제로 욕보인다. 그리고서 그녀를 내쫓아 버린다. 암논이 다말을 “사랑했다(4절)”고 한 것은 사랑이 아닌 주체할 수 없는 성충동 이었을 뿐이었다.
*암논은 죄 인줄 알면서도 적극적으로 죄를 범하였다.
2.다윗 집안 재앙의 시작
다말은 분명히 충동하는 암논에게 “싫다!”고 말했다. 더구나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말로도 성적충동이 일어난 암논을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다말은 친오빠 암논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만다.
*이 사건은 다윗 집안의 재앙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칼부림이 멈추지 않는다. 다말의 친 오빠이면서 다윗의 셋째 압살롬은 2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여 양털 깎는 축제일에 형제들을 불러 암논에게 술을 먹인 뒤 그를 살해하며 복수한다.
*창세기에 기록된 가인이 아벨을 죽인 것처럼 형제간 살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압살롬은 이 일로 그술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삼 년동안 망명하여 지낸다. 이후 압살롬은 반역을 일으켜 예루살렘을 빼앗았고, 나중에는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성경은 이와 같은 형제 살인의 원인이 다윗의 죄 때문임을 분명하게 밝힌다. 이제 사무엘하 저자는 압살롬부터 아도니야의 반역까지 계속 다룰 것이다. 다윗이 옥상을 거닐며 유혹 받았던 그 죄를 다스리지 못한 것으로 인해 오고 오는 후손들의 칼부림에 희생자들이 속출하게 될 것이다. 다윗 집안만 그럴까? 온 이슬라엘이 다윗 집안의 반란들로 인해 큰 혼란에 빠진다.
나는?
-먼저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바라보며 율법에 기록된 경고를 알고 있었음에도 연정을 품었다. 절대 금해야 할 관계임을 알면서도 포기할 줄 몰랐다. 기록된 말씀 중에 내 자신이 선명하게 기억하고 알고 있는 말씀이 경고하고 있음에도 자신의 행동을 스스로 합리화 하지 말아야 한다. 다말을 보고 눈에 들 수 있었겠지만 그 이상으로 감정을 발전시키면 곤란했다.
-또 암논은 “요나답”이라는 모사꾼의 말을 분별하여 듣지 말았어야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죄의 구덩이로 직행 되었다. 연정을 품는 것에서 구체적으로 악을 행하기 위해 왕을 속이고, 다말을 속이는 것을 불사한다. 자신의 못된 마음의 만족을 위해 그 이상의 죄악으로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놀랍게도 다윗이 밧세바와의 죄를 감추기 위해 그랬다. 죄가 더 큰 죄를 낳고 결국 그 죄가 자신을 집어 삼킬 줄 모르고 폭주한다. 이 폭주를 돕는 간교한 요나답의 말도 문제다. 암논이 누가 보아도 어처구니 없는 마음을 품고 있을 때 더 큰 죄악으로 가도록 부추기는 말보다 분명한 경고와 조언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요나답은 간교한 인물이었다. 그는 암논을 조정하였다.
*자신의 말을 신뢰하는 암논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돌이키기 보다 죄악을 행하도록 부추겼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에게 자신의 존재와 능력을 이렇게라도 각인 시키려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암논 만큼이나 악하디 악하다. 암논은 요나답의 말을 들어서는 안됐다. 하지만 이미 욕정에 휘둘러 버린 그 마음에 그의 말은 달콤한 해결책으로만 들릴 뿐이었다.
*또 다말이 간곡하게 만류하고 방법을 제시할 때 진심으로 연모하는 마음이라면 거기서 멈춰야 했다. 하지만 몹쓸 일을 행한 후 다말을 내쫓아버리는 모습을 보면 암논은 다말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욕정의 대상으로만 본 것이 틀림없다.
*이런 모습이라면 암논의 평소 행실이 어떠했을지 눈에 선하다. 이런 일을 저질렀어도 별다른 문제로 발전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는 다윗왕의 장자였기 때문이다. 그 자체가 피해자들에게는 큰 두려움이었다. 암논은 다말도 그리할 것이라고 여겼을 수 있다.
*하지만 다말은 달랐다. 자신의 수치 당함을 만천하에 드러낸다. 강간당한 후 버려지자 자신이 처녀임을 나타내는 채색옷을 찢고 공적으로 자신의 부끄러움을 드러낸다. 암논은 매우 당황했을 수 있다.
*그런데 다윗도 문제였다. 딸이 몹쓸 일을 당한 것을 자신의 채색옷을 찢으며 통곡하는 것을 보고받았을 때, 그저 분노만하고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다말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음에도 화만 낼 뿐 이 비극을 바로잡기 위한 어떤 일도 하지 않는다. 화를 내는 것은 그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것 뿐 이었을까? 다윗의 행동이 너무도 기막히다.
*이러한 모습은 다말 뿐 아니라 압살롬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현명한 압살롬은 이런 다윗의 자세를 통해 현재 다윗 왕가의 정서를 재빨리 파악했다. 다윗은 더 이상 이 낯부끄러운 일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은 것이다. 자신의 명예와 지도력이 이와 같은 일로 인해 영향을 받는 것을 수치스러워 했다. 딸의 고통보다 자신의 명예를 더 중요하게 여겼을 수 있다.
*아…. 암몬의 왕 나하스가 죽었을 때 파견한 조문사절단이 수치를 당했을 때 여리고에 머물고 오라고 배려했던 다윗의 심성은 어디로 갔을까? 신하의 수치를 가려주기 위해 이렇게 세밀히 생각했던 다윗의 마음이 자신의 딸의 수치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 이해못할 다윗의 모습과 일치되지 않는다. 도대체 다윗이 왜 이리 변한 것일까?
*압살롬은 다말에게 네가 아무리 울부짖어도 어느 누구도 이에 동조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래서 잠잠히 있으라 하고, 자신도 암논에 대해 분노를 표현하지 않는다. 아버지 다윗이 암논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징계하지 않으니 자신이 직접 암논을 처벌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압살롬은 철저히 침묵하였다.
*겉으로는 잠잠해 진 듯 하지만, 이제 다윗의 집안을 향해 재앙의 폭풍이 세차게 몰려오고 있었다.
*주님, 암논의 비열함, 요나답의 간교함에 분노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묵살되고 업신여김을 받는 것이 비참합니다.
*주님, 다윗의 대처가 더 화가 납니다. 죄를 지은 암논 보다 범죄한 아들에게 아무런 징계를 하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더 안타깝습니다. 다윗이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주님, 다말의 고통이 서글픕니다. 어느 누구도 위로하지 않습니다. 진정한 위로인 악을 처벌하지 않고 그저 침묵하는 집안에서 그녀의 마음이 더욱 황폐해 질까 염려됩니다.
*주님, 압살롬의 침묵에 살기가 느껴지는 건 자연스러워 보입니다. 조용히 칼을 준비하는 그의 행보가 다윗의 집안에 난무하게 될 칼춤을 짐작하게 됩니다.
*아…. 다윗과 그의 집안에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요?….
할렐루야, 여호와를 찬양하라 [시편 111:1-10]
이 시는 ‘할렐루야’로 시작하는 찬양시이다. 구조적으로 72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시의 특징은 할렐루야 이후 마지막 시행까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첫 글자가 시작되는 알파벳 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