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혼란… 변해가는 다윗, 불충하는 아마사와 요압… 그리고 이스라엘…[삼하 19:40-20:13]
 – 2022년 10월 22일
– 2022년 10월 22일 –
본문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예루살렘에 돌아오는 과정에서 보이는 이스라엘 안의 분열과 다윗의 대처를 다루고 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분열 가운데 있었고, 여기에 베냐민 지파 세바가 반란을 일으킨다.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지 얼마 되지 않아 일어난 속상한 내란이었다. 한편 예루살렘 궁으로 돌아온 다윗은 피난을 떠날 때 남겨 두고 간 열 명의 후궁들을 별실에 가두고 죽을 때 까지 방치한다. 아마사에게는 세바의 난을 평정할 것을 명령했지만 지체하자 아비새에게 세바를 진압할 것을 다시 명령한다. 아비새는 아마사와 유다 지파의 미적 거림과 달리 순식간에 요압을 따르는 군사들과 그렛과 블렛 사람들과 함께 세바를 진압하기 위해 출정한다. 그 길에 합류한 아마사를 요압이 살해한다. 그런데 요압의 부하가 아마사의 시신 옆에서 크게 외쳤다. “요압을 지지하는 사람과 다윗 쪽에 선 사람은 요압 장군을 따르시오.”(새번역_11절)
 
*혼란 그 자체다… 압살롬의 반란이 가져온 무너진 왕의 권위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급박하기만 했을 정치 현장의 행간을 예리하게 짚는다. 저자는 직접 해석하거나 비판하지 않지만, 자신의 관점으로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건들을 놓치지 않는다. 본문에서 이런 논조가 잘 드러나 있다. 하나님께서 이 혼란스러운 기록들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들은 무엇일까?
 
 
 
1.고통과 수치는 여인들의 몫?(20:3)
*본문에서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내용은 세바의 반란이다. 그러나 예루살렘 환궁 후 다윗이 가장 먼저 취한 일은 피난갈 때 왕궁을 지키라고 남겨둔 열 명의 후궁들을 방에 가둔 것이다. 이후 돌아보지 않고 생과부로 죽는 날까지 그 상태로 두었다는 기록이다. 세바의 반역과 이에 대한 대응을 시작하는 사이에 다윗은 가장 먼저 이 일부터 행한 것이다.
 
과연 이 일이 이렇게 급한 일이었을까? 즉위 초기 암몬의 나하스 장례식에 보낸 조문사절단이 수염이 깎이고 옷이 잘려지는 수치를 당하자 여리고에 머물며 수염이 자라고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라고 조치를 취했던 세심하게 배려하는 다윗의 모습과 너무도 다르다.
 
무엇보다 열 명의 후궁들은 자신이 선택하고 결정하여 남겨 두었었다. 너무도 무책임 하고 무자비 하며, 야비하기 까지 하다.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힘이 전혀 없이 백성들 앞에서 수치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후궁들이었지만, 다윗은 개의치 않았다. 그녀들이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공포와 슬픔을 가져온 일은 다윗 자신이 벌여 놓고 그 고통과 수치는 후궁들의 몫이 되고 말았다….
 
 
 
2.이스라엘의 내분(19:40-43)
복권한 다윗 왕의 영이 제대로 서질 않고 있다. 다윗이 먼저 유다 지파에게 손을 내민 것이 “악수”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더욱 분열하게 하였다.
 
이스라엘은 유다 지파가 다윗의 환궁을 앞장 선 것은 왕을 도둑질 한 것과 같다고 비난한다. 이에 유다 지파는 자신들이 왕과 같은 종친 이기에(더 가깝기에) 당연한 일을 한 것이며 이 일로 아무런 이익을 취하지도 않았다고 항변한다.(19:42) 이에 격분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먼저 다윗을 왕으로 모셔 오자고 말하였고 다윗 왕에게 요구할 권리도 열 갑절이나 있다며 거세게 불만을 표하였다.(19:43)
 
이게 무슨 코미디같은 상황인가 싶지만, 좀 더 생각해 보면 다윗이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복권 이후 통치 권력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것을 열 지파들이 파악한 것이다. 분명히 다윗을 복권 하자는 의견 조율과 합의가 자신들에게서 먼저 나왔고 이를 진행하는 와중에 유다 지파가 소통하지도 않고 급작스럽게 다윗을 모셔 왔기 때문이다.
 
열 지파들이 다윗의 복권에 대한 의논을 유다 지파를 제외하고 한 이유는 압살롬의 반란을 주도한 지파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히려 반란을 주도한 지파가 또 다시 다윗의 복권에 앞장 선다는 것은 모종의 정치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을 갖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유다 지파가 “우리는 아무것도 다윗에게서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고 항변한 것이다. 단지 같은 지파이기에 먼저 한 것 일뿐 이라 하였다.
 
 
*다윗이 왜 탕평책을 쓰지 않았을까? 이 부분은 철저히 정치적인 실리에 기반한 결정 이었을 것이다. 이스라엘 모두가 다윗을 왕으로 다시 세우는 것을 통해 철저히 자기 실리를 추구하려는 것을 다윗은 너무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자신들의 이익을 따라 또 다시 배신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당장 이 순간 탕평책을 쓴다하여도 혼란한 시기에는 자칫 자충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윗의 고심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하나님의 나라 이스라엘임에도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상관없이 자기이익과 실리만 추구하며 본성에 집착하는 결정과 행동들을 여과없이 보여 준다. 이런 모습이 하나님 앞에 선 인간들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지켜보고 계셔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탐심을 따라 죄와 타협한다. 연합과 일치, 소통은 그저 위선의 탈을 쓰는 형식적 절차였을 뿐이다.
 
 
 
3.세바의 반란(20:1-2)
이 혼란과 분쟁을 틈타 세바가 반란을 일으킨다. 자신들의 실리를 따라 형식적으로 다윗 앞에 모였던 열 지파들이 순식간에 돌변한다. 너무도 당황스럽게 유다 지파와 다윗만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나머지 열 지파는 세바를 중심으로 또 다시 반란을 일으킨다.
 
 
*압살롬으로 인해 촉발된 내전이 마무리되지 않고 또 다른 내전으로 이어진 것이다. 세바는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간의 분쟁과 반목을 틈타 또 다시 반란의 에너지를 만들어 냈다.
 
*다윗과 압살롬의 불통이 내전을 가져왔는데, 이번에는 유다 지파와 나머지 지파간의 분쟁과 반목이 내전을 가져온다. 분쟁과 반목은 싸움을 불러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사소한 분쟁거리를 싸움으로 만들지 않는 것이 정치이다. 그런데 요즘은 분쟁거리를 만들어 내고 싸움을 일으켜서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거나 취하려고 “정치”를 활용하고 있음을 본다.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가 진정한 “정치”, 하나님 앞에서 이스라엘 공동체의 하나 됨의 회복을 위해 서로 치열하게 “정치” 했었다면 압살롬으로 인해 촉발된 내전이 반복되지 않았을 것이다. 세바의 반란은 결국 자기 욕심을 따른 필연적인 결과일 수 밖에 없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새번역_약 1:15)
 
 
 
4.아마사와 요압(20:4-13)
아마사는 다윗의 사촌이었지만, 왕의 마음을 전혀 헤아리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물이다. 세바의 반란은 다윗이 요단을 건너 온 직후 자신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왕으로 복권하는 것을 환영하는 자리 한켠에서 이스라엘의 열 지파를 선동하여 다윗을 모시고 예루살렘으로 함께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노골적으로 길갈에 남아 반란을 공식화 시킨 것이다.
 
*다윗이 얼마나 황당하고 충격적이었을까? 예루살렘에 복귀하자 마자 군사령관으로 임명한 아마사에게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사흘 안에 진압군을 편성하라고 명령하였다. 하지만 아마사는 이 명령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왜 그랬을까?
 
*아마사는 유다 지파와 이스라엘 지파간의 강렬한 언쟁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유다 지파내에서 이 반란에 대한 진압에 참전할 것이냐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세바의 반란에 동참한 온 이스라엘을 상대로 과연 아무리 다윗왕이라도 우리 지파만으로 승리할 수 있을까 고민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지파 내에서 갑론을박하는 사이 시간을 흐르고 말았을 가능성이 크다.
 
*이것은 아마사가 다윗에게 철저하게 충성하지 않았다는 분명한 증거가 된다. 아마사는 결코 무능한 인물이 아니었다. 자신이 다윗에게 충성하고자 했다면 어떻해서든지 군대를 편성하고도 남음이 있는 백성들에게 신망있는 용사였다. 하지만, 다윗에게 전적으로 충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다.
 
*세반의 반란이 공동체에게 미칠 영향이 자신과 별로 상관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 이스라엘의 내전 상황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삼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그는 다윗의 군사령관이었다. 다윗에게 충성하지도, 민족과 지파를 염려하지도 않는 그의 본 모습이 아니라면 그는 철저하게 무능한 자다!
 
 
*한편 명령한 사흘이 넘도록 아마사가 군대를 편성하지 못하고 어물쩍 거리자, 아비새를 불러 자신의 군대를 맡긴다. 다윗은 세바의 무리들이 요새화된 성읍으로 들어가 숨기라도 한다면 이 반란이 장기화 하여 큰 부담이 될 수 있으니 신속하게 찾아야 한다고 명령한다.(6절)
 
*아비새는 자신의 군대와 다윗의 군대(그렛과 블렛 사람, 모든 용사)가 힘을 합하여 세바를 뒤쫓아 가기 위해 예루살렘 성을 나선다. 그 군대가 “기브온의 큰 바위 곁”에 이르렀을때 그때서야 아마사가 합류한다. 그가 요압에게 살해 당한 후 요압의 부하 한 사람이 “요압과 다윗의 편에 선 사람은 요압 장군을 따르라”고 외치는 것을 보면 아마사가 그때서야 유다지파 군대를 이끌고 합류한 듯하다.
 
*그렇게 합류한 아마사를 요압은 환대하는 척 하고 그를 죽여 버린다. 결과적으로 요압은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아마사를 아브넬과 압살롬을 처단한 것꽈 같이 제거하는 것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 다윗의 최측근이었지만, 다윗 왕의 뜻 보다는 자신의 뜻, 자기 욕망을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실리와 이익이 최우선인 하나님 나라의 “드러나지 않는 역적”이었다.
 
*세반의 반란을 진압하기 전에 자신의 정적을 먼저 진압한 요압이었던 것이다. 헌란스러운 내란 상황에서 얼마든지 이를 감출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겠지만, 하나님은 요압을 지켜보고 계셨다.
 
 
 
나는?
-압살롬의 반란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내용의 주제가 결국 “정치”이다. 모태신앙, 교회의 울타리에 착실하게 자라온 이들에게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것은 “교회는 정치에 둔감해야 한다, 정치와 종교는 철저히 구분된다”등등의 가르침이었다. 정교분리 논리, 정치 참여 반대 논리는 또 다른 정치 참여의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 요즘 사무엘서를 묵상하며 이 가르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깨닫는다.
 
-물론 정당 정치에 참여하고 현실 정치에 적극 참여하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사무엘서의 다윗왕의 이야기와 열왕기서의 솔로몬과 그 이후 이스라엘 왕들의 기록들이 성경에 들어이쓴ㄴ 중요한 의의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 나라의 정치 원리가 무엇인지 찾아내어 깨닫고, 그 의미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해석하여 현재의 삶에 지혜롭게 적용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른다.
 
-하나님 나라도 결국 정치가 필연적으로 전제되기에 자기 실리와 이익을 따라 민족 공동체의 혼란은 아랑곳하지 않는 무뢰배와 같은 상황들을 접하면서 하나님의 공의와 인간의 탐욕과 불의함을 꾸짖는 성경의 가르침을 교회가 먼저 살아냄을 보여 줌으로 얼마든지 정치적인 메세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을 간과 해서는 안 된다.
 
 
*결국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성경적인 가르침을 상식적이로 보편적으로 살아내는 것 만이 정치의 불의와 탐심, 무뢰와 무식의 일방통행을 견제할 수 있다.
 
 
*혼란 스럽다… 변질되어가는 다윗…충성보다는 자기 탐심을 따라 멋대로 행하는 아마사와 요압… 그리고 이스라엘…. 세바의 반란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주님, 모두들 자기만 생각합니다. 나의 이익을 위해 어제는 동지, 오늘은 적이 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깁니다. 이 지독한 탐심에 끌려가지 않도록 하나님의 만족케 하시는 은혜 안에 머물겠습니다.
**주님, 다윗의 변질이, 아마사의 불충이, 요압의 안하무인이 모두 내 안에도 있는 듯 합니다. 성령께서 이런 욕망들이 활개치지 않도
록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록 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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