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 [삼하 21:1-14]
 – 2022년 10월 24일
– 2022년 10월 24일 –
음… 너무도 오래된 언약을 깨뜨린 사울의 죄를 다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사울은 아모리 족속 가운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남아 있던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일이 있었다. 가나안 정복 당시 기브온 사람들은 책략을 써서 이스라엘과 화친하였고 이스라엘은 기브온 사람들과 더불어 공적인 신의로서 평화 조약을 맺었었다(수 9장). 그 조약을 통해 기브온 사람들은 생명은 안전하게 보호되었지만 재산과 자유는 박탈 되어 이스라엘의 노예가 되고 그들의 토지는 이스라엘의 소작지가 될 것이라는 것에 동의 하였었다.(수 9:23)
 
사울은 왕이 된 후 이스라엘의 명예를 위한다는 구실로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유업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근절시킬 계획을 세우고 상당수를 학살하였다. 사울의 학살은 명백한 죄였다. 무죄한 그들을 살해함으로서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이스라엘이 신의로 약속한 거룩한 맹세를 깨뜨렸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 죄로 인해 이스라엘이 극심한 기근을 형벌로 받는다. 다윗의 영광스러운 치세 기간에도 기근이 임한 것이다. 무엇보다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기다리셨다는 듯이 대답해 주셨다. “사울과 그의 집안이 기브온 사람을 죽여 살인죄를 지은 탓이다.”(새번역_1절 하) 달리 생각하면 다윗이 기근이 일어나자 마자 하나님께 물었다면 3년 동안 지속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응답할 준비를 하고 계셨지만, 다윗이 묻기를 지체한 것이다.
 
또 사울이 지은 죄가 다윗의 치세에 나타나는 것은 세월이 흐른다고 해서 그 범죄 행위가 없어지지 않는 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 준다. 심판이 연기되었다고 처벌이 면제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에게 그들이 이전에 당한 일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면 되는지 먼저 묻는다(3절). 그들은 사울의 후손 일곱 사람을 처형하기를 원했고(4-6절) 다윗은 이를 들어준다. 다윗은 이 일을 행하면서 무엇보다 “사울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들 사이에 계시는 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새번역_7절)” 처리한다.
 
*사울은 이스라엘과 아모리 족속과의 언약 속에 계시는 하나님을 무시하며 자기 기준과 만족으로 기브온 민족을 학살했지만, 다윗은 사울 왕가의 남자 후손 7명을 선정하면서 “요나단과 사이에 계신 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 처리한다. 사울과 다윗의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다.
 
*사울의 이런 행태는 그가 죽어서도 후손들에게 큰 부담이 되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반면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은, 아껴서 빼놓았다. 그 대신에 왕은 아야의 딸 리스바가 사울과의 사이에서 낳은 두 아들인 알모니와 므비보셋을 붙잡고, 또 사울의 딸 메랍이 므홀랏 사람 바르실래의 아들인 아드리엘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다섯을 붙잡아다가, 기브온 사람의 손에 넘겨 주었다.”(새번역_7절하-9절상)
 
 
 
기브온 사람들은 그들을 “주님 앞에서”산에 있는 나무에 매달았다!(9절). 이들은 이스라엘에 닥친 흉년의 재앙을 물러가게 한 “희생제물”이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 땅에서 물러가도록 하려는 것이다. 7인의 희생 제물된 그들은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산에 있는 나무에 매달렸다. 그리고 함께 죽는다.
 
그런데, 7명에 포함된 알모니와 브비보셋의 어머니인 리스바가 7명의 시체를 지킨다(10절). 얼마나 큰 고통이겠는가… 두 아들은 노년의 어미에게 큰 의지가 되었을 터이다. 그런데 그 두 아들이 처참하게 죽어있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7명의 시체를 새와 들짐승으로부터 보호하였다. 다윗이 내린 비가 내릴때까지 시체를 그대로 매달아 놓으라는 명령을 어기지 않는다. 또는 훔치거나 강제로 가져 가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아들들의 시체를 지켰다. 왜 그랬을까?
 
*리스바는 이렇게 함으로서 자기 자식들이 죽은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리고 싶었다. 온 이스라엘이 당한 흉년의 재앙이 사울의 아모리 족속 학살 때문이며, 그들은 단지 사울의 후손이어서 재앙을 물러가게 하기 위한 희생제물이 되었음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다. 의지하고 기대었던 두 아들이 순식간에 나무에 매달린 시체가 되었어도 아들들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통해하고 동정했을 것이다.
 
 
 
다윗은 이 모든 소식을 들었다. 감동 했을 것이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다윗은 사울의 집의 명예롭게 해주었다. 매달려 죽은 자들의 시체를 사울과 요나단의 뼈와 함께 가족 묘지에 장사 지내 준 것이다.
 
이렇게 행함으로 다윗이 사울의 자손을 넘긴 것은 그 가족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이 아니라 흉년에 힘겨워 하는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증거하게 되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행한 뒤에야 마침내 가뭄을 물러가게 하는 비가 내렸다. “다윗이 이렇게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를 거기에서 가지고 올라오니, 사람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다른 사람들의 뼈도 모아서, 사울의 뼈와 그의 아들 요나단의 뼈와 함께, 베냐민 지파의 땅인 셀라에 있는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무덤에 합장하였다. 사람들이, 다윗이 지시한 모든 명령을 따라서 그대로 한 뒤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돌보아 주시기를 비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새번역_13-14절)
 
 
 
놀랍다. 가뭄이 물러간 것은 기브온 주민들이 원하는 대로 사울 후손 7명을 죽이자 마자 물러간 것이 아니었다. 다윗이 사울 집안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길르앗 사람들이 벳산의 광장에 매달려 있던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몰래 빼돌려 장사 지낸 뼈와 7인의 후손들의 시신을 함께 합장하여 명예롭게 장사를 지낸 후에 “그 땅을 돌보아 주시기를 비는 그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새번역_14절 하)
 
가뭄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기브온 주민들에게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다윗이나 사울의 집안에게도 “진정한 용서와 화해”였던 것이다. 오래 전의 학살에 대해 아무런 사죄나 해결을 위한 노력 없이 단 몇마디, 몇푼의 물질을 쥐어 주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았다.
 
 
*다윗은 흉년의 원인을 하나님께 들은 후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의 직접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런데 그 요구에는 다윗도 하나님 앞에서 약속한 것을 지키는가에 대한 시험이 포함 되어 있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를 더 만드는 것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브온 사람들은 보잘것 없는 존재들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그들의 설움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의 민족이 학살 당했어도 오히려 그것이 잘 된 것이라고 사울왕 처럼 생각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을 것이다.
 
*아무도 신경써 주지 않는 기브온 사람들의 원통함을 하나님께서는 알고 계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관심을 심판하시기 위해 흉년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들의 아픔을 왕이 알도록 왕이 묻기 전까지 철저하게 고통 당하도록 다윗에게 어떤 선지자도 먼저 보내지 않으셨다. 왕이 직접 묻기까지 먼저 움직이지 않으셨다.
 
*기브온 학살 사건은 모두가 알아야 하는 사건이었고, 모두가 책임 져야 하는 죄였기 때문이다. 사울의 학살로 이스라엘은 가장 영광스러운 전성기때 최악의 흉년의 고통을 3년이나 겪어야 했고, 사울 집안은 애꿎은 남자 후손들이 7명이나 희생 되어야 했다. 왜 7명이어야 했을까? 그것은 7이 가지는 의미인 “완전함”에 힌트가 있다. 완전한 해결을 위한 완전하 제물이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루 아침에 사울의 집안에서는 통곡이 일어났다. 그런데 어찌할까? 그들의 세대와 전혀 상고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왕가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져야 했다. 아…. 죄가 이리도 무섭다. *학살은 또 다른 학살을 낳을 뿐이었다. 기브온이 흘린 통곡은 리스바의 피눈물로 이어졌다. 아… 죄의 고통은 이리도 치밀하게 전가되었다.
 
*다윗이 진심으로 사울 왕가에 대한 선대를 베풀자 비가 내린다. 사울과 요나단의 시신을 방치되어 있던 길르앗에서 가져오고 기브온 사람들에 의해 매달린채 방치되어 있던 7명의 사울 후손들의 시신을 내려 사울 왕가 기스의 묘에 합장하도록 선대를 베풀자 하늘문이 열렸다. 비가 내렸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으니 기브온 사람들이 7명이 처형한 직후 흉년은 끝났을 것이다. 다만, 그 증거가 보이질 않았을 뿐이다. 다윗은 이를 믿지 못한 것이다. 가뭄이 해갈되는 비가 내릴 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일 수 있다. 사울과 요난단, 7명의 시신을 정당히 장례를 치루어줄 마음이 있었다면 처형 직후 그리 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윗은 그러지 못했다. 이 부분도 하나님께서 다윗의 마음을 점검하신 것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사울과 그 아들들에게 인자함을 베품으로 그제야 기근을 물러가게 하는 비가 내린 것이다.
 
*형식을 지키는 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으로, 진정성 있게 행하는 것이다. 다윗이 리스바의 눈물을 전해듣고 그제서야 공감하며 애통하는 마음으로 “인자”를 베푼 후에야 비가 내린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닮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주님 앞에서 맹세한 일을 생각하여 올곧게 행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있는 일인지…. 미래를 밝히 여는 은혜인지….
 
 
 
*주님, 이스라엘과 기브온의 약속은 하나님과의 약속이기도 했습니다. 사울이 이를 간고하고 무참히 어기며 학살한 후 더 심각한 것은 어느 누구도 기브온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심각한 기근이 3년이나 지속된 후에야 비로소(마지못해) 기브온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다윗의 모습이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것이 무리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하나님 앞에서 이를 잘 순종하려는 다윗의 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요나단과의 약속도 “주님 앞에서” 한 것이기에 최선을 다해 지키려는 모습도 도전이 됩니다. 심란한 이야기에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지금 우리가 이런 모습을 반복하지 않도록 늘 도와 주십시오.
 
*주님, 다윗이 사울 왕가에 인자함을 베풀었을 때 하늘의 문을 여시고 비를 주셨습니다. 은혜의 비는 은혜의 행동이 몰고 옴을 느낍니다. 은혜를 베풀며 사는 삶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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