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감하지 말하. 그러면 혹시…[렘 26:1-15]
 – 2024년 07월 01일
– 2024년 07월 01일 –
여호아하스가 애굽에 잡혀가고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김이 대신 왕이 된다. 하나님은 여호야김 즉위 초기부터 예레미야를 통해 예루살렘을 멸망하시겠다고 선포하신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제사장과 선지자, 모든 백성에게 외면을 받고 죽음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감하지 않고 그대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전에 속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에 의해 거짓 예언자로 고발당한다. 성전이 대변하는 구원 신학은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성전과 성의 멸망에 관한 여호와의 심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예레미야서를 크게 나눌 때 26~45장은 둘째 대단락으로 분류한다. 1~25장이 주로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신탁)이라면, 이 부분은 30~33장(구원 예언이 수집된 위로의 소책자)을 제외하면 예레미야와 그의 주변과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된다. 본문은 거짓 예언자들과의 논쟁(26~29장)에서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로 고발을 당하는(26장) 서론 부분으로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로 알려져 있다.
 
 
 
1. 예레미야의 성전 연설(1~7절)
본문에서 실제로 성전에서 선포한 말씀은 4~6절까지다. 나머지는 선포의 배경에 대한 언급이다. 선포의 배경이 메시지만큼이나 중요했다는 의미다.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주전 608~598)이 다스리기 시작한 때에(1절)’ 말씀이 주어졌다. 추측하기로 주전 605년을 전후로 말씀이 주어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전 605년은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유브라데강 상류 갈그미스에서 애굽 왕 느고의 군대를 대파하고 시리아와 가나안의 주도권을 애굽에서 바벨론으로 빼앗아 온 해였다. 유다 왕 여호야김은 애굽의 느고의 선택에 따라 왕위에 올랐었기에 그의 패배는 유다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었다. 바벨론은 이 승리를 기점으로 앗수르의 후계자임이 분명해졌고, 애굽의 봉신국이었던 유다는 주군을 바꾸어야 하는 정치적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여호와께서 적극 개입하신 것이다. 요시야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외세에 의한 왕위의 강제 교체로 혼란이 있었지만 유다에게는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여전히 반전의 여지도 남아 있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성전 뜰에 서서’성전에 예배하러 오는 ‘유다 모든 성읍(주민들)’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전해야 한다(2절). 예배하러 성전에 올라오는 자들에게 성전 파괴의 선포는 충격 이상이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예배하러 성전에 오는 자들이라면 여호와께서 보내신 예언자의 말에 순종해야 함도 한다는 것도 시사한다. 구원은 성전 또는 성전 예배(제사)에 달린 것이 아니라 예언자들을 통해 자신의 의지를 전달하시는 여호와께서 결정하심을 알아야 한다. 
 
3절은 왜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예언하게 하셨는지에 대한 동기를 밝힌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서면 언제라도 자신의 결정을 되돌리실 준비가 돼 있으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예언자의 말을 줄곧 듣지 않았으나 여호와께서도 단념하지 않으신다. “혹시(3절_울라이)”라는 막연하고 절망스러운 기대 속에 다시 경고의 말을 전하게 하신 것이다. 이를 통해 여호와께서는 선포된 재앙을 집행하시기보다 거두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계속 보여주신다. 여호와의 “혹시”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의 멸망 심판은 어쩔 수 없는 마지막 선택이었음을 보여준다. 여호와께서 능력이 없어서나,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구해주고 싶으셨지만 유다 백성은 끝까지 여호와의 도움을 거절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혹시”는 유대 백성의 완악함을 고발하고 멸망과 유배의 책임이 전적으로 저들에게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호와의 ‘혹시’는 예레미야 36:3과 에스겔 12:3에 두 번 더 등장한다. 
 
4~6절의 설교는 내용상 새로운 것은 없다. 유다의 불순종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광야를 떠나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부터 계속된, 이제는 본성이 되어버린 죄악이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그의 율법대로 걷지 않는다면(4절), 예언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면(5절), 성전은 파괴되고 예루살렘은 세상 모든 민족의 저주거리가 될 것이다(6절). 여호와께서는 율법을 바로 세우기 위하여 예언자들을 거듭 보내셨으나 유다는 예언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여호와의 현존을 상징하는 성소의 존재가 구원을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다. 성소가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악을 조장하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소라 할지라도 멸망에 넘기신다. 
 
 
 
2. 예레미야를 대적하는 제사장들, 예언자들, 그리고 모든 백성(8~11절)
“혹시”가 “역시”가 된다. 여호와의 성전 뜰 안에서 행한 예레미야의 선포는 적대적인 반발만 불러 일으켰다. 그의 말을 들은 제사장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이 예레미야를 붙잡고 위협했다. 이들이 이렇게 행동한 것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내용 때문이었다. 자신들이 세워놓은 성전신학의 관점에서 보면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의 멸망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선포될 수 없는 예언이었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을 훼방하는 불경죄로 반드시 죽음에 붙여야 했다(레 24:15~16). 종교 지도자들을 포함한 모든 백성에게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이름을 모독한 여호와께로부터 보냄을 받지 아니한 거짓 예언자일 뿐이었다. 
 
성전에서의 소란은 곧이어 고관들이 왕궁에서 성전으로 올라와 “여호와의 성전 새 대문 입구”에 앉고 재판정을 꾸리게 된다. 고관들이 재판장으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고발자로 등장한다. 고발자들은 예레미야가 예루살렘 성을 거슬러 예언했기에 죽어야 마땅하다고 고관들과 백성에게 고발한다. 
 
 
 
3. 예레미야의 자기변호(12~15절)
예레미야는 그들의 고발 내용을 인정한다(12절). 그리고서 성전 뜰에서 행한 메시지를 다시금 반복하여 선포한다(13절). 또, 자신의 목숨이 백성의 손에 달린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들에게 책임 있게 판단할 것을 요구한다(14~15절). 또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예언자를 죽여 여호와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도록 신중할 것을 모든 고관들과 백성에게 경고까지 한다. 
 
그는 여호와의 예언자를 죽여 여호와로부터 징계를 받지 않도록 신중할 것을 모든 고관과 백성에게 경고까지 했다.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은 여호와께서 현존하시는 예루살렘 성전과 성의 멸망을 선언하는 예언자는 여호와께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일 수 없다고 고발하고 예레미야는 자신이 바로 그 일을 위해 여호와께 보냄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나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에게 절기를 지키러 성전에 모여든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되 “한 마디 말도 감하지 말고 모두 말하라”고 명령하셨다(2절). 백성들이 듣기 편한 소식으로 변형시키지도 말고 그들이 원하는 말씀을 끼워 넣지도 말며, 그들이 환영하지 않을 메시지를 빼지도 말라는 뜻이셨다. 사태의 심각성을 있는 그대로 알려야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진정한 회개가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당부하신 그대로 한 말씀도 감하지 않고 전한다. 자기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자기를 죽이려는 자들의 목숨을 걱정한 것이다. 육신을 죽일 수 있는 자들이 아닌 육신과 영혼을 다 죽일 수 있는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경외했기에 그토록 담대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마음은 유다 백성을 심판하고 멸망시키는데 있지 않다. 오히려 죄악에서 돌이켜 구원하시는데 있다. 그것이 선지자를 보내신 뜻이었다. 그들에게 내리실 재앙을 돌이키고 싶으셔서 그들이 악행에서 돌이켜 여호와의 목소리에 청종하라고 요구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죄악이 깊어진 지금이라도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면 곧장 재앙을 거두실 준비를 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 “혹시” 뜻을 돌이키리라(3절) 말씀하시는 애절함이 예레미야의 마음을 담대하게 했을 것이다. 그가 백성들에게 해야 할 말은 도발적이고 도전적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실로처럼 수치를 당할 것(6절)”이라는 메시지는 성전을 신성시 하는 제도종교에 속한 이들에게는 대단한 악담이었고 분노를 일으키는 저주였다. 그럼에도 이런 “악담”을 듣고 “혹시” 돌이킬 수만 있다면 담대하게 가서 전해야 한다는 하나님의 마음에 담긴 사랑을 알기에 백성들에게 원수가 되는 것을 받아들였다.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 사무엘 때까지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던 곳으로 제사가 드려지고 군사가 주둔한 땅이었다. 여호수아는 이곳에서 제비를 뽑아 하나님의 뜻을 물었고(수 18:1) 레위인의 첩의 죽음으로 촉발된 베냐민 지파의 멸절 위기 때는 이곳에 모여 종교축제를 벌이는 여인들을 납치하기도 했다(사 19~21장). 임신하지 못한 한나가 이곳에서 기도하였고(삼상 1:1~9), 엘리의 두 아들의 참담한 타락상이 일어난 곳(삼상 2:22)이다. 이후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언약궤를 탈취당하고 만다. 
 
-언약궤와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구속을 상징한다. 또한 성전은 오실 메시아의 예표이기도 하다. 주님께서 공생애로 사역하실 때의 성전은 에돔 출신 헤롯이 건축한 것이기는 하나 이스라엘의 전통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건물일 뿐이었다. 성전에서 행해지는 가장 중요한 일이 “죄를 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주님은 갈릴리와 유대와 사마리아를 다니시면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사죄를 선포하셨다. 성전이라는 제도와 질서에 편승하며 사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주님은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세우겠다(요 2:19)고 하셨다. 성전 자체이신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사흘만의 부활을 빗댄 말씀이셨지만 그만큼 성전에 적대적이셨다. 눈에 보이는 화려한 건축물로서의 성전은 가짜였다. 진짜가 오면 가짜는 물러나야 한다. 가짜가 진실(진짜)의 옷을 입고 있는 한 세상은 어두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레미야의 예언도 다르지 않았다. 
 
-예레미야를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자아를 죽이고 자기 죄를 죽이는 대신 선지자를 죽이려고 하였다. 그릇된 길에서 돌이켜 말씀을 청종하면 재앙 내릴 뜻도 거두시겠다는 약속은 감춘 채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의 멸망 선포만 부각하여 거짓 고소를 하기에 이른다. 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들었다. 그리고 눈엣가시 같은 선지자를 제거하기 위해 말씀을 왜곡하고 오용했다. 스스로 구원 얻을 길을 외면한 것이다.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죄를 지적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다(1~5절). 그리고 회개하고 돌아서면 재앙을 돌이키시겠다고 하신다. 성령께서 말씀을 들을 때, 읽을 때, 배울 때 경고의 말씀으로 내 마음을 요동하면 그때가 즉시 돌아설 때이다. 이 단순하고도 확실한 하나님의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하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법을 행하지 않으며, 주신 기회를 무시하면 예루살렘 성전과 성을 멸하시겠다고 경고하신다(3~6절). 이미 엘리 제사장 가문의 죄악으로 실로에 있던 법궤를 빼앗기고 두 아들이 죽은 사건(삼상 2~4장)으로 성전이 결코 안전지대가 아님을 경고했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감하지 않고 재앙을 선포했다. 권력자들과 모든 백성 앞에서 재앙의 메시지를 담대하게 선포했다. 하지만 그들은 외면한다.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여야 한다고 지도자들에게 고발한다. 하나님은 성전을 멸하실 분이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예레미야를 거짓 선지자로 정죄하였다. 
 
*나는 말씀이 나에게 경고할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더욱 더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이고 무릎을 꿇어야 하리라. 그래야 “혹시” 하나님의 긍휼이 임하지 않겠는가….
 
*다시 예레미야 묵상이 시작되었다. 심판하시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더욱 더 깊이 알아가기를 소원한다. 그저 나에게 유익한 말씀만 추구하기보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유익한 말씀으로 받아들이기를 소망한다. 
 
 
 
*주님, 예레미야에게 명하신 사명이 곧 나의 사명임을 믿습니다. 저도 “감하지 않고” 전하겠습니다. 
*주님, “혹시”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제 마음에 깊이 들어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을 바라보게 합니다. 저도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며 “혹시”라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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