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가 죽은 때는 정확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유대 전승은 출애굽 후 제40년 12월 1일로 이해한다. 아론은 제40년 5월 1일에 사망했고, 6개월 후 모세가 신명기를 최후에 반포한 뒤 사망했으며,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는 40년의 광야 시대를 종료하고 새해가 되어 제41년 1월 10일에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발을 디뎠다고 전해진다. 가나안 땅에 들어온 날에 대해서는 여호수아 4:19에서 요단강에서 올라와 길갈에 진을 쳤다고 보고한다. 이에 근거하여 추측하기로 1:1의 여호와의 명령은 41년 1월 1일에 내려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해진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사후 이스라엘의 지도가 된 여호수아를 찾아오셔서 격려하시고 권면하신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진입할 것을 명령하시면서 주께서 늘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주님께서 함께 하시는 조건은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잘 읽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주께서 함께 하시면 형통할 것이니 겁내지 말고 담대하게 나아가라고 격려하셨다.
1. 여호수아, 약속의 땅으로 가라(1~4절)
여호수아서는 여호수아의 등장으로 시작하여 여호수아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 구조다. 모세의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여호수아서가 시작된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 역사상 큰 전환점이었다. 모세 시대에서 여호수아 시대로, 방황의 시대에서 안식의 시대로 전환된다. 1절은 도입부다. 모세의 사망을 언급함으로써 여호수아서를 신명기 34장의 연속편으로 연결한다. 동시에 가나안 진입 이야기의 도입부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수종자”라고 부르시는데, 그에게 출애굽기 33:11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는 모세의 수종자 혹은 부관으로 부름을 받았고, 모세가 죽은 후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지도자로 세워진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직접 말씀해 주신다. 그 내용이 2~9절이다.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다. 그 땅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주는 땅(2절)’이고 ‘발바닥으로 밟는 모든 곳(3절)’이다. “곳(마콤)”으로 번역된 단어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의 장소를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쓰인다. 이는 하나님이 주시는 땅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이며, 늘 일상에서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순종과 실천의 삶이다. 4절은 그 땅의 범위를 알려준다. 남쪽으로는 네겝 광야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 레바논 산맥 너머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영역이고, 동쪽으로는 요단강 동쪽 지역의 광야에서부터 서쪽으로는 지중해 연안에 이르는 영역이다. 이 곳을 흔히 “가나안 땅”이라고 부른다. 3절과 연결하여 이해한다면 가나안 땅의 모든 곳에서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땅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주시는 땅이며 그곳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이룩해야 할 땅이다. 그곳으로 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만 한다(2절).
2.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약속의 땅(5~6절)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시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5절)”는 원어로 “에흐예 임마크”이다. 출애굽기 3:12과 동일하다. 하나님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처럼 여호수아와도 함께 하실 것이기 때문에 여호수아를 가로막을 대적은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사실을 믿고 마음을 굳게 해야 한다.
6절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은 창세기에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땅 약속이 이제 막 성취된다는 사실을 표현한다. “차지한다(나할)”는 동사의 또 다른 뜻은 “상속하다”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것이었던 가나안 땅을 이제 하나님의 자녀에게 상속해주신다는 의미다(출 19:5).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백성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들이며 하나님의 땅을 상속받은 자녀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가지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3. 그 땅은 말씀을 따라 살아가야 할 땅(7~9절)
약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삶은 강하고 담대하여 율법을 지키며 살아가야 한다. 7절에서 하나님은 “오직(라크)” 강하고 “극히(메오드)” 담대하라고 권면하신다. 또 명심해야 할 것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이 구절은 23:6에서 다시 등장하는데, 여호수아서를 앞과 뒤에서 감싸고 있다. 참고로 신명기에서는 다섯 차례나 반복한다(신 2:27; 5:32; 17:11, 20; 28:14). 율법을 지키며 사는 구체적인 방법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교회 공동체는 이처럼 오로지 말씀에 근거하여 복음의 길로만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차와)”는 동사는 1장에서만 일곱 차례나(7, 9, 10, 11, 13, 16, 18절) 반복되며 그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복음의 원리를 지킬 때 형통하는 삶이 열린다. “형통하다(사칼_7절)”로 번역된 동사는 “성공하다”라는 의미도 있고, “평탄하게 되다(찰락흐)”는 “성공하여 번영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율법을 준행하는 성도가 누리는 복된 삶을 알려준다. 삶의 성공은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하려는 마음과 그 마음에 하나님께서 늘 함께해주시는 임마누엘에 그 비결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라고 여호수아에게 약속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 7절에서 ‘율법(토라)’과 8절의 ‘율법책(세페르 하토라)’라는 용어가 특별하게 사용되며 이 ‘토라’를 묵상하라는 명령이 이어진다. “묵상하다(하가)”는 시편에서 자주 사용되는 단어인데, “낮은 소리로 웅얼거리다”라는 뜻이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낭송하며 생활할 때 성령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이다. 결국 평탄하고 형통한 삶은 말씀을 따라 살아내는 삶에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는?
-모세는 죽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함께 하신다. 그리고 모세의 하나님이 아니라 여호수아의 하나님으로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지도자가 된 여호수아에게 전쟁에 필요한 전술 능력보다 먼저 말씀을 묵상하고 철저히 지키는 순종의 모범을 요구하신다.
-모세는 죽었지만, 가나안 땅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은 중단되지 않는다. 모세는 여호수아를 후임으로 세웠고,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통해서 다시 일을 지속하신다. 여호와의 종이 죽었어도 하나님은 모세의 수종자를 통해서 자신의 경륜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의 섭리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지만, 사람이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
-모세는 없지만 승리할 수 있다.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이 승리의 요인이기 때문이다. 모세가 떠났지만 하나님은 여호수아와 함께 하실 것이다. 그러니 강하고 담대할 수 있다.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않을 수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특정 인물을 영웅시 하면 안된다. 우리에게는 특별한 인물보다 더 놀라우신 하나님이 계심을 망각하면 안 된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할 때 그 약속이 내 것이 된다(1~3절).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기로 약속한 땅이지만, 그렇다고 노력과 열심이 없어도 얻게 되는 땅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이 이스라엘 백성의 것이 되게 하려면 실제로 그 땅을 발바닥으로 밟아야 하고, 가나안 민족과 열심히 싸워야 한다. 분투의 과정은 필연적이다. 혹시 믿음의 분투 과정 없이 약속의 결과만 누리려 하지는 않는가? 일상에서 믿음으로 내딛어야 할 발걸음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언제 어디서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5~6, 9절). 모세라는 걸출한 지도자가 죽었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백성과 싸워야 하는 여호수아의 마음은 긴장과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여호수아에게 직접 나타나셔서 말씀해 주셨다. 모세와 함께 했던 것처럼 함께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격려하신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함께 하셨던 그 하나님이 오늘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는가? 걱정과 긴장,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살고 있다면, 내가 하나님 없이 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가나안 정복의 막중한 사명을 받은 여호수아에게 요구되는 것은 군사력이나 전술 능력을 키우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는 일에 온 마음과 힘을 쏟는 것이었다(7~8절). 왜냐하면 가나안 전쟁은 단순한 영토싸움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이 가장 평탄하고 형통한 길임을 믿어야 한다.
-가나안 정복을 하는 데 맨 먼저 필요한 것은 철저한 율법 준수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오직 율법이 가르쳐준 길을 따라 걷는 것이다. 주야로 그 말씀을 묵상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그러면 형통할 것이다. 전쟁을 위한 치밀한 작전 수립보다, 이스라엘의 군사력을 키우는 것보다, 정작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영적 전력”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영적 전력은 말씀을 의지하지 않고는, 기도를 통하지 않고는 증진될 수 없다.
*주님, 전환기의 혼란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것도 아님을 봅니다. 더온누리 공동체의 전환기도 그렇게 인도하여 주신 은혜를 찬양합니다. 더욱 하나님만 의지하겠습니다.
*주님, 나라와 민족이 혼란할 수록 하나님 나라 백성이 말씀으로 중심 잡고 살아내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혼란스러운 새해 초반을 담대하게 정복하며 나갈 줄 믿습니다.
*주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전력이 아니라 보이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영적 전력”을 갖추는 것인줄 깨닫습니다. 말씀과 기도가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 강력한 영성이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