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다니엘과 세 친구_갈대아의 학문과 언어를 정복하고 휘둘리지 않았던 듬직한 크리스천의 삶![단 1:1-7]
 – 2022년 11월 01일
– 2022년 11월 01일 –
다니엘서는 바벨론의 1차 예루살렘 침공 때 포로로 잡혀간 다니엘이 바벨론과 메대-바사 두 왕국에서 네 명의 통치자 아래 공직자(총리)와 선지자로 일하며 자신의 신앙적 체험과 하나님꼐로부터 받은 계시를 기록한 책이다.
 
다니엘 1장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에 의해 예루살렘이 점령당한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이때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로 붙잡혀 바벨론으로 왔고 왕실교육을 받는 와중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우상 앞에 드려진 왕궁의 산해진미를 거절하고 오직 채식과 물로만 다른 소년들보다 월등히 뛰어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축복 하셨고 왕실에 등용된다.
 
 
유다 왕 여호야김 3년,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점령했다(1절). 하나님께서는 여호야김과 성전 기물 가운데 일부를 바벨론으로 가지고 가서 자기가 섬기는 신전의 보물창고에 넣어 두었다(2절). 또, 왕은 아스부나스 환관장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왕과 귀족의 자손 가운데 몸에 흠이 없고 용모가 잘생기고 모든 일을 지혜롭게 처리할 수 있으며, 지식이 있고, 통찰력이 있고, 왕국에서 왕을 모실 능력이 있는 소년들을 데려오게 하여 바벨론의 언어와 문학을 가르쳤다(3-4절). 이 때 왕은 왕궁에서 일정한 양의 음식과 포도주를 공급하고 3년동안 가르친 뒤 왕을 모시도록 하였다(5절).
 
그들 중에 유다 사람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가 있었다. 환관장은 이들에게 바벨론식 이름으로 개명을 해 주었는데, 다니엘은 벨드사살, 하나냐는 사드락, 미사엘은 메삭, 아사랴는 아벳느고로 하였다(7절).
 
*바벨론은 제국을 효율저긍로 다스리기 위해 피정복 민족의 소년들을 선발하여 바벨론식 사고방식으로 개조시켰다. 이것의 첫 번째 시도가 이름을 개명하는 것이었다. 정체성을 바꾸려면 이름을 바꾸는 법이다.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교훈을 되짚어 보자.
 
 
 
1.하나님께서 … 넘기셨다(2절)
세계 역사 가운데 바벨론이 유다를 공격하여 성전의 그릇과 유다의 왕족과 귀족을 포로로 끌고 간 사건을 기록한다. 바벨론의 위대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이 약소국인 이스라엘을 공격한 역사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을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넘기셨다(2절)” 라고 기록했다. “넘기셨다(나탄)”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주셨다”라는 의미이다. 이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
 
유다의 왕족과 귀족들, 성전의 물건을 소유하신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신인 마르둑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패배하셨다는 뜻은 아니다.
 
다른 시각으로 확대해석하자면 유다의 왕과 귀족들과 성전의 물건들을 바벨론으로 옮긴 것은 하나님께서 유다에만 머무르시지 않고 온 세계와 열방으로 하나님의 무대를 확장해 나가시는 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께서 직접 챙시기신다는 분명한 증거를 보일 수 있는 충분한 현장이 된다. 또, 온 인류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 주시기 위하여 바벨론에게 유다를 넘기신 것이다.
 
*하나님이 바벨론에게 끌려가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유다를 바벨론에게 넘기시고 끌려간 포로들을 통해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내시기 위한 패배를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 중에 이런 경우가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시려고 나의 삶에 철저한 실패와 곤란을 주실 때가 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인내할 때 찬란하게 드러날 하나님의 이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2.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
고대의 학문을 단순하게 종교적인 영역에 국한 시키면 큰 오산이다.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는 그 당시 갈대아 사람들(바벨론 사람들)의 과학과 어학이 결합된 총체적인 지식을 가르킨다.
 
예를 들어 바벨론의 수학은 다니엘이 포로로 붙잡혀 오기 전 천여년에 걸쳐 축적된 고급 학문이었다. 이 시기의 바벨론 사람들은 2차 방정식을 사용하 수학을 풀어냈고, 역수, 제곱, 제곱근, 입방, 입방근표들을 사용하였다. 십진법과 육십진법을 사용하였고, 1분=60초, 1 시간=60분, 원=360도로 나누었다.
 
또한 천문학은 이미 다니엘 시대에 일식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고, 더 나아가 일식을 에언 하기도 한다. 바벨론의 천문학자들의 일식 기록들은 매우 정확하여 현대 천문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게 귀중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일상 생활에서는 흙벽돌을 사용한 건축과 관개 수로, 직각형의 거리를 설계하였다. 상인들은 계산서, 영수증, 약속어음, 신용장, 수표등을 능숙하게 사용하였고 복리 방식에 능숙 하였다고 한다.
 
바벨론의 언어는 바벨론의 국어인 아카드어, 전통적인 종교언어인 수메르어, 국제적인 상업 언어와 외교 언어였던 아람어를 혼용하였다. 특히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는 약 625개의 설형문자를 사용하여 점토판에 기록하였다.
 
*다니엘은 유대에 살던 소년 시절에 이미 아라어와 히브리어를 쓸 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카드어와 수메르어를 배우는데 매우 많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갈대아 사의 학문과 언어”에서 뛰어난 성적을 얻었다. 치열하게 노력한 것과 그들과 함께 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였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를 가르치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점령한 지역의 다음세대 리더들을 바벨론화 하는 것이었다. 철저하게 친 바벨론화 시켜서 이들을 그들의 고국 행정 조직에 배치하고 자연스럽게 바벨론화를 이끌게 하는 치밀한 전략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전혀 바벨론에 동화되지 않았다. 갈대아 사람의 학문과 언어에 능통하게 되었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지하는 신앙은 철저 하기만 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3.유다식의 이름과 바벨론식의 이름
다니엘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심판관이시다”는 의미이다. 하나냐는 “여호와의 은혜”, 미사엘은 “하나님은 강한 분이시다”, 아사랴는 “여호와는 도움이시라”는 의미이다.
 
환관장은 이들의 이름을 바벨론 식으로 개명시켰다. 목적은 명료하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하는 것이었다. 환관장이 지어준 바벨론식 이름은 갈대아의 우상숭배를 물씬 드러내는 이름들이었다.
 
벨드사살은 “벨의 감춰진 보물을 지키는 자”, 사드락은 “태양의 영감”, 메삭은 “삭 여신에 속한 자”, 아벳느고는 “밝게 비치는 불의 종”이라는 의미였다. 특히 태양은 바벨론 사람들이 숭배하던 것 이었고, ‘삭’ 여신은 훗날 비너스로 알려진 미의 여신이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포로로 끌려간 바벨론에서 바벨론의 학문과 언어에 담긴 무수히 많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학문들과 언어들 속에서 꿋꿋하게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고 섬기는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들의 치열함이 어느 정도 였을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들의 바벨론식 이름은 언제나 함께 교육을 받고 있는 무수한 식민지 청년들의 입술을 통해 늘 불려졌겠지만, 그 이름대로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이름으로 살아냈다. 그것도 바벨론 땅, 통치의 중심부에서 숨막히도록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를 종요 받는 바로 그곳에서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꿋꿋하게 견뎌 낸 것이다.
 
*하나님 나라 백성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직면한 것과 비슷한 상황속에 살아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자랑스러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인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의 학문과 언어를 정복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이름과 언어를 밝히 드러내는 삶을 충분히 살아낼 수 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살아낸것처럼….
 
 
 
나는?
-하나님께서 느부갓네살에게 유다를 넘기신 것은 하나님의 통치권은 전 세계 열방 모든 곳에 안미치는 곳이 없다는 것을 증명해 내시기 위한 것이었다. 아무리 강성한 제국이라도 하나님께서 정사를 간섭하시고 통치하심을 드러내시려는 하나님의 큰 그림이셨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었지만, 진멸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가도록 역사 하셔서 적대국의 한 가운데 종살이 하는 치욕스런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통치하시는 지를 선명하게 드러내 보이고자 움직이신다.
 
-하나님께서 넘기셨지만,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의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에 능통하고 인정받아 소수 엘리트로 선발되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이야기는 큰 울림이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이름을 내고 그와 관련된 정부 부처의 결정권자의 자리에 들어간 것과 단순 비교할 수 있다.
 
*다니엘서에서 보이는 “성공”은 일확천금을 얻고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영향력”을 끼치는 자리로, 결정권자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겠다. 그 결정이 갈대아의 학문과 언어에 기초한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가치 기준에 따른 것이라면 진정한 성공자의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또, 공식적인 사회적 이름도 최선을 다하지만, 본래 유다의 이름대로 신앙을 지키고 믿음의 정절을 지키려 몸부림 치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이 너무도 대견스럽다. 고작 10대 중반쯤 되었을 나이인데, 그 강단과 선택이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막히다.
 
*나는 과연 나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최선을 다해 살고 있을까? 세상의 직함이 주는 이름으로 사는 것 보다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이름으로 사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신실하게 지켜낼 수 있를까?
 
 
 
*주님, 다니엘의 치열했을 소년시절이 상상이 갑니다. 내 인생의 걸음도 세상과 무관치 않고 밀접하게 그 제도와 과정에 충실 했는지 돌아봅니다. 무엇보다 그 안에서 크리스천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는 삶을 추구하고 추구했을까요? 앞으로 그런 삶을 더욱 추구하며 순종하도록 도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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