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벨사살… 이런 왕이 있나….[단 5:1-16]
 – 2022년 11월 11일
– 2022년 11월 11일 –
바벨론 왕이 느부갓네살에서 벨사살로 바뀌었다. 벨사살이 천 명에 이르는 자기 대신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 때(1절), 느부갓네살이 탈취해 온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들(금, 은 그릇)을 가져다가 술을 마셨다(2-3절). 그렇게 술을 마시면서 금과 은, 청동과 쇠, 나무와 돌로 된 신들을 찬양했다(4절).  그때 사람 손가락이 나타나더니 “촛대 앞 왕궁 석고 벽”에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 왕은 얼굴빛이 달라지고 온 몸이 두려움으로 떨었다(5-6절). 
 
왕은 크게 소리를 질러 술객들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 바벨론의 지혜자들을 불러 모아 벽면의 글씨를 읽고 해석을 하는 자에게는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어주며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임명하겠다고 약속하지만, 누구도 해석하는 지혜자들이 없었다(7-8절). 왕은 번민에 빠지고 대신들은 혼란에 빠졌다. 어느 누구도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바로 그때 왕후가 나타나 “신들의 영”에 사로 잡힌 다니엘을 부르라고 충언한다(10-12절). 왕 앞에 불려 나온 다니엘에게 백성들에게 약속했던 “자주색 옷, 금사슬, 셋째가는 통치자”를 또 다시 약속한다(9, 16절).  
 
 
 
*느부갓네살의 시대가 가고 그의 손자 벨사살의 시대가 왔다. 느부갓네살이 교만한 왕이었다면, 벨사살은 교만함에 신성모독의 죄를 더 얹는다. 벨사살은 귀족(신하) 천 명이 참석하는 호화 연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사용할 술잔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약탈하여 가져와 마르둑 신전 보물창고에 보관하고 있던 성전 기물을 사용한다.
 
*거룩한 하나님의 기물들이 인간의 유흥을 위한 기물로 전락했고, 더 나아가 술에 취하여 각종 우상들을 찬양하는 것까지 이른다. 연회의 분위기가 한껏 무르익었을 때 석회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왕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하고 오금이 저렸다. 
 
*이 뜻밖의 광경에 서둘러 지혜자들을 불러 모은다. 얼마나 다급했던지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7절).”고 할 정도였다. 그만큼 두렵고 다급했었다는 증거이다. 하지만 파격적인 보상을 내걸었지만, 아무도 이 글을 해석하지 못한다. 벽에 씌여진 글을 읽을 줄 모르니 뜻은 당연한 것이었다. 
 
*왕후(왕의 어머니)는 낙심하고 번민하는 왕에게 “문제 해결이 다니엘에게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벨론 제국의 왕궁에서는 다니엘 말고는 문제해결의 뾰족한 수가 없었다. 매우 낙심될 수 있지만, 반대로 생각하자면 “한 사람”이 분명한 문제해결의 열쇠가 됨을 알리는 것이다. 
 
 
 
*예루살렘에서 가져 온 성전 기물은 바벨론에게 패한 나라의 신전에 있었던 기물이지만, 엄연하게 신을 섬기는 기물들이었다. 벨사살은 교만을 넘어 자신이 신의 위치에 있다고 착각했다. 신성모독과 같은 행위들을 버젓히 행한 것이다. 무엇보다 이 기물은 자신의 조부 느부갓네살의 업적이었다. 하지만 마치 자신의 힘으로 얻은 업적인 것처럼 사용한다.
 
*특히 이 연회는 역사적으로 볼 때 고레스의 메대 바사 연합군이 바벨론 성을 둘러싸고 있을 때 벌인 연회였다. 벨사살 나름대로 이 연회는 메대 바사 연합군의 침공에도 바벨론은 굳건하게 성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있음을 드러내는 일종의 정치연회 였다. 이런 맥락으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성전 기물로 술을 마시는 것은 이처럼 충분히 메대 바사 연합군에 맞서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기물에 술을 마시며 그들이 노래하고 읊었던 바벨론의 신들을 찬양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 마르둑이 어떤 신보다도 강력해서 이 전쟁도 역시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자부하는 행동들이었다.
 
*자신의 조부 느부갓네살의 포고문을 기억하지 못하는 교만과 어리석음으로 하나님을 모독한 그에게 하나님은 가장 충격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심판의 선언을 하신 것이다.
 
 
 
*느부갓네살의 하나님을 찬양 찬양은 이미 무색해졌다. 역사적으로 드러난 바벨론의 미래는 암담했다. 느부갓네살은 43년을 통치하고 BC 562년에 죽는다. 그의 뒤를 이은 에윌므로닥은 이복형제 네리글리사르에게 암살되었고 네리글리사르는 4년 동안 통치한 뒤 그의 아들 라바시마르둑에게 왕위를 계승했다. 하지만 여러 공모자들에게 한달만에 축출 당하고 나보니두스가 왕이 된다(BC 555-539).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도 여러 공모자들 중 막강한 한 명이었고 이 때문에 나보니두스가 왕이 되었다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그런데 나보니두스는 달의 신을 열렬히 추종하여 바벨론의 주 신이었던 마르둑의 지위를 약화하려고 했었고 수도 이전 계획을 실행했다고 추측한다. 이로 인해 10년 동안 바벨론에서 800KM떨어진 아라비아 북부 사막 지역의 오아시스 테마에서 지냈다고 한다.
 
나보니두스의 아들 벨사살이 바벨론에서 실제적인 왕위 역할을 수행하면서 더욱 친 마르둑 입장에서 나라를 운영함으로서 지역 제사장들의 반역을 억눌렀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 다니엘 5장에서 갑자기 벨사살 왕(BC 553-539)이 갑자기 등장한 것이다. 벨사살은 바벨론 제국의 마지막 왕이었다.
 
 
 
나는?
-벨사살은 교만했다. 그 교만은 결국 그의 통치 3년만에 바벨론 제국의 멸망으로 결말 났다. 그와 같은 오만함이 이 시대에도 여전하다. 그래서 두렵다. 세상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만물을 추악함으로 바꾸어 놓고서 자신의 업적이라고 자랑한다. 자신의 힘과 능력을 하나님보다 더 높인다. 성전 기물로 술을 가득 채워 마시면서 자신들이 섬기는 신들을 찬양한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벨사살과 천 명의 신하들 앞에 “하나님의 손”이 나타났다. 그 손가락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다. 왕이 알 수 없는 글을 흥이 가득한 연회장 벽면에 또박 또박 새겨졌다. 한 순간에 즐거움이 두려움으로 변했다. 왕의 낯빛은 흑빛이 되었고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손가락은 사라졌지만, 벽에 남은 선명한 글씨는 그 두려움을 지속시켰다.
 
-아무리 유명하고 탁월한 세상의 지혜자들을 불러 해석시켜도 할 수 없었다. 번민은 더해져 갔고, 두려움은 증폭되고 있었다. 그때 왕의 어머니가 다니엘의 존재를 알려준다. 그의 안에는 신들의 영이 있어서 어떤 꿈이나 환상도 해석할 수 있다고 알려 준다. 왕은 지체하지 않았다.
 
-왕 앞에 나온 다니엘은 80대 중반의 노인이었다. 하지만 바벨론 제국의 지혜자의 어른이었다. 그런데 벳사살의 못남이 또 한 번 드러난다. 아무리 포로 출신이었다고 하나 제국의 왕궁에서 일평생 지혜자의 어른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다니엘을 포로 수준으로 하대한다. 교만과 오만이 하늘을 찌른다. 그러니 멸망을 피할 수 없었겠다. 벨사살…. 이런 왕이 있나….. 한숨만 나온다.
 
 
*다니엘을 찾는 왕의 어머니의 마음에 시선이 멈춘다. 그리스도인이 이런 존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은 번민한다. 혼란스러워 하고 때로 어찌할 바를 몰라 두려워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지 알려 줄 거야!”라고 할 수 있는 믿음과 평안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스도인이 있음으로 평소에 오만방자하고 교만하게 살다가도 두려움이 크게 임할 때, “어떻게 하면 좋을까?” 찾을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인도하심을 이 세상속에서 살아내어 보았기에 세상이 알고 찾을 수 있는 존재가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
 
*혼란스러운 세상이 교회를 찾아야 하는데,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이를 어찌하면 좋을까…. 내가 꿈꾸는 교회는 번민하는 세상이 찾는 교회이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주님, 번민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평안을 드러내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벨사살의 오만방자함과 교만이 기가 찹니다. 그런데 혹시 저도 그리 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