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철저한 심판 [렘 47:1-48:10]
 – 2024년 08월 07일
– 2024년 08월 07일 –
블레셋(47장)과 모압(48:1~10)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다룬다.
 
블레셋은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가드라는 다섯 도시 국가 체제로 되어 있다. 이들은 유다 산지 동편의 남쪽 해안 지역에 거주했다. 그들은 가나안 원주민들이 아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람세스 2세(주전 1279~1213)와 메르넵타(주전 1213~1203)가 통치할 때 애굽을 침략했던 해양 민족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은 이 지역에서 상층 계급을 형성하고, 2~3세대 후에는 도시들을 지배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판의 대상으로 애굽과 블레셋 다음으로 요단 동편의 암몬과 에돔 사이에 있는 모압이 등장한다. 그들이 심판받는 이유는 교만과 이스라엘에 대한 조롱 때문이다.
 
 
 
1. 블레셋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언(47:1~7)
블레셋은 해양 민족으로 불렸다. 주전 12세기 말에 가나안에 정착했고, 이스라엘과 가나안 지역의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자주 충돌했다. 그들은 초기 이스라엘에는 없는 철기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늘 이스라엘에게 위협이 되는 존재였다. 1절에서 “바로가 가사를 치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블레셋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할 것이라고 예레미야에게 신탁이 주어졌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애굽이 가사(블레셋 도시 중 하나)를 치는 사건과 바벨론에 의해 블레셋이 멸망 당하게 되는 사건은 여호와의 의지 가운데 일어난 일임을 밝힌다.
 
2~3절은 블레셋에 대한 신탁이 여호와의 말씀임을 강조한다. 특이한 것은 북쪽(바벨론)에 의한 가사의 멸망을 애굽 바로의 가사 공격과 연결한다. 바로가 가사를 칠지라도 블레셋은 애굽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는다. 여호와께서 북쪽에서 오는 바벨론 군대에 넘겨주기로 하셨기에 이 침략은 우발사건으로 끝난다. 북쪽에서 일어난 물이 시내를 이루어 “그 땅”의 모든 것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쓴다(2절). 그 땅의 주민들이 울부짖고 통곡한다. 애굽 군대는 도망이라도 치지만, 블레셋 사람들은 공포로 온몸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4~5절은 블레셋 멸망의 모습을 묘사한다. 사람들의 혼을 빼놓는 적들의 무서운 공격이 더 절망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 일을 여호와께서 결정하셨기 때문이다. 4절은 “여호와께서 ….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라고 선언한다. 블레셋은 당시 페니키아의 도시국가인 두로, 시돈과 동맹을 맺고 있었으나 그들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소망에 불과했다. 블레셋의 절망적인 상황을 “가사는 슬픔에 겨워 머리털을 밀고 아스글론은 말문이 막힌다. 아낙의 살아남은 자들아, 너희가 언제까지 몸에 상처를 내며 통곡하려느냐?(새번역_5절)”이라고 표현한다. 이를 통해 블레셋의 모든 거주지가 폐허가 될 것을 말씀하신다.
 
6~7절은 여호와의 칼이 블레셋 심판의 주체로 표현된다. 6절에서 예레미야는 블레셋 사람의 처지에서 탄식하며 의인화된 여호와의 칼에 직접 말한다. “‘아! 주님께서 보내신 칼아, 네가 언제까지 살육을 계속하려느냐? 제발 너의 칼집으로 돌아가서 진정하고 가만히 머물러 있거라’ (새번역_6절)” 이런 예레미야의 탄식에 대한 여호와의 답변이 7절이다. “내가 그 칼을 보냈는데, 그 칼이 어떻게 가만히 쉬고 있겠느냐? 그 칼은 아스글론과 해변 지역을 치라고 내가 보낸 것이다(새번역_7절).” 블레셋 사람들은 칼이 흡족하게 마셨기에 쉬기를 바랐지만, 이는 헛된 기대에 불과했다. 북쪽에서 오는 적은 여호와께서 명령한 “여호와의 칼”이기에 자신들에게 맡겨진 과업을 완수하기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블레셋의 심판 선언이 애굽의 심판 선언과 다른 점은 심판 이후에 회복에 관한 약속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께서(4, 7절) 이를 명령하셨기(7절) 때문이다. 멸하시는 주체와 명령하시는 분이 여호와라는 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블레셋의 멸망이 그의 공의로운 심판에 속함을 보여주신다.
 
 
 
2. 모압에 대한 신탁((48:1~10)
모압에 대한 신탁은 특정 성읍들의 멸망을 탄식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절). 그런데 멸망에만 초점을 두고 왜 그 멸망이 일어났는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적의 공격에 느보와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고 점령당하는 것으로 이미 모압의 명성은 끝났다. 유리한 지정학적인 위치 덕분에 외적에 점령당한 적이 거의 없었던 모압이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했던 파국적인 재난에 직면한다. 적들은 헤스본에서 모압을 침략할 계획을 세운다(2절 상반절). 이들의 계획은 모압이 더는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끊어버리는 것이다. 헤스본에서 세운 계획에 따라 모압 침략이 진행된다. 느보와 기랴다임 다음으로 맛멘이 희생 당한다(2절 하반절).
 
맛멘에서, 호로나임에서 절규가 이어진다(3절). 모압이 멸망 당했다는 어린이들(젊은이들)의 절규가 이어진다(4절). 젊은이들은 적에 맞설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두려움과 절망에 사로잡혀 울부짖기만 한다. 사람들은 울며 루힛 고개를 오르고, 호로나임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듣는다(5절). 전란에 휩싸인 피난민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이런 모압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살길을 알려주신다.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6절).” 적들이 의도한 대로 모압은 더는 나라로 살아남을 수 없다. 속히 성읍을 떠나야 한다. 적의 칼이 뒤따르지 않는 광야로 들어가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선포하는 것이다.
 
7~9절을 통해 모압이 이와 같은 심판을 받게 되는 이유를 제시한다. 7a절은 자신의 업적과 보물에 의존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즉 모압의 교만이 멸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추측하기로 “보물”은 모압이 축적한 경제적인 부를, “업적”은 군사력이 관련된 치적일 가능성이 있다. 모압은 주요 산지를 요새화하여 방어 시설을 구축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였기 때문에 적의 침략에 자신감이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자만에 빠져 나라를 멸망시킨 지배계층이 징벌을 받는다(7b절). 종교 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은 물론 그들의 신인 그모스까지 유배를 당한다. 신상을 약탈해 가는 것은 고대 근동의 일반적인 풍습이었다. 이는 단지 신상이 값비싼 귀금속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다. 패배한 민족의 시상은 승리한 민족의 신이 우두머리로 있는 만신전의 낮은 자리에 놓였다. 정치적으로 종속된 관계가 신학적으로 정당화된 것이다.
 
모압에 임하는 재앙은 전면적이어서 누구도 피할 수 없다. “멸망시키는 자가 성읍마다 쳐들어올 것이며, 어떤 성읍도 이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골짜기는 폐허가 되고, 고원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나 주의 말이다(새번역_8절).” 모압의 모든 성읍이 적의 공격을 버텨내지 못하고 함락당한다. “파멸하는 자”에 의해 모압은 철저하게 파괴당한다. 그런 모압 사람들에게 광야로 도망하여 생명을 구하라고 명령하셨다(6절). 그리고 9절에서는 “너희”에게 “모압에게 날개를 주어라”고 명령하신다. “너희”가 누구를 가리키는 지는 불분명하다. 다만, 파멸하는 자의 칼에 죽지 않으려면 모압 사람들은 할 수 있으면 빨리 성읍을 떠나 도망해야 한다. 절망하거나 울부짖을 여유가 없다. 어떻게 해서든지 힘을 내서 적이 미치지 못하는 광야로 도망해야 한다. 도망치지 않는다면 재난을 벗어날 수 없다.
 
10절은 여호와의 저주가 예언자를 통해 여호와의 일을 소홀히 하는 자들에게 선언된다. “주님의 일을 정성을 다하여 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받을 것이다. 칼을 휘둘러 모압 사람을 죽이지 않는 사람은 저주받을 것이다(새번역_10절).” “주님의 일(여호와의 일)”은 모압을 침략하여 폐허로 만드는 일을 가리킨다. 3절에서 헤스본에서 모압을 침략할 계획을 세운 자들, 곧 8절의 “파멸하는 자”에게 주는 경고이다. 모압의 멸망은 여호와의 의지에 속하기에 심판의 도구로 택함을 받은 자들은 모압이 완전히 파괴될 때까지 자비를 베풀거나 연민을 갖지 말고 칼을 휘둘러야 한다. 겉으로는 모압을 공격하는 자들에게 주는 말이지만, 실제로는 모압을 심판하시는 여호와의 의지가 얼마나 확고한지를 보여주는 말이다. 모압의 멸망은 어떤 경우에도 모압이 결코 떨쳐 낼 수 없는 여호와께서 선포하신 것이다.
 
 
 
나는?
-블레셋도 심판받는다. 큰물이 온 땅에 넘쳐서 그 가운데 있던 것을 다 휩쓸고 지나가듯, 하나님께서 북방에서 바벨론을 불러와 블레셋 전역을 심판하실 것이다. 그 심판의 날이 오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날을 감당할 재물도, 권력도, 명예도 없다. 블레셋을 도울 자도 없다.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던 블레셋을 도울 자도 끊을 것이다. 그들의 고향 갑돌마저 진멸하심으로써 다시는 일어설 수 없게 철저하게 멸망시키신다.
 
-블레셋에는 죽음과 슬픔이 임할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죽음을 애도하면서 삭발할 것이고, 아스글론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어 정적만 감돌 것이다. 남은 사람들은 자기 몸을 베며 죽음을 슬퍼할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삶에 남는 것은 죽음의 슬픔뿐이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이들의 화려한 이력 뒤에 따라오는 지독한 고독과 우울과 공허함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블레셋을 여호와의 칼로 치실 것이다. 블레셋을 내려친 바벨론이라는 칼은 여호와의 칼이었다. 그것은 바벨론의 위용을 증명한 칼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입증하는 칼이 될 것이다. 그 칼에 블레셋은 쓰러져서 잠잠할 것이다. 온 블레셋이 다 심판을 받을 때까지 그 칼은 멈추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요행을 바랄 수 없다. 어쩌다 잘 넘어간 죄악에 안도하면 곤란하다. 죄악에 끌려가지 말고 멈추고 단호하게 돌아서야 산다.
 
 
-모압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그들의 “오만함”에 대한 심판이었다. 스스로 막강하다고 여긴 묘새들이 무너지면서 모압의 명성도 무너질 것이다. 그림판은 철회되지 않을 것이기에 모압 땅을 떠나 도망하라고 선포한다. 광야의 노간주나무처럼 되어서라도 가까스로 생명을 부지하라고 하신다. 모압 땅에서는 아무도 심판에서 예외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모압에 대한 심판은 철저할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심판의 칼이 멈추면 도리어 심판을 위임받은 자들이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만큼 심판은 철저하게 이행될 것이다.
 
 
 
*주님,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심판은 철저하게 진행될 것을 선언합니다. 하지만 살려면 광야로 도망하라고 말씀하시는 긍휼도 보여주십니다. 광야의 노간주나무처럼 살더라도 살아만 있으라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받을 세상을 떠나 광야로 나가 구원을 누리며 살아가겠습니다. 내 삶의 광야는 곧 믿음으로 살아내는 그곳인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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