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거룩함으로 그 뒤를 따르라 [수 3:1-17]
 – 2025년 01월 04일
– 2025년 01월 04일 –
 
무사히 귀환한 두 정탐꾼의 보고를 받은 후 여호수아는 백성을 이끌고 싯딤을 떠나 요단강 강변으로 이동하여 진을 친다. 그곳에서 “사흘이 지난 후” 관리들은 백성에게 요단강 도하를 위한 행동 지침을 내리고 주의 사항을 알린다.
    
이스라엘이 요단강 도하를 했던 시기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늦은 비가 내리는 때였다. 보리와 밀의 추수기로 유월절/무교절 직전이었다(15절). 이른 비는 음력 7월경(태양력 9~10월)에 내리는데 이때가 씨를 뿌리는 시기이므로 이른 비는 파종을 위한 가장 중요한 비였다. 이후 6개월간의 우기가 지속된다. 그리고 우기의 마지막 시기에 내리는 비가 늦은 비다. 늦은 비는 보리와 밀 알곡의 알이 차는 데 가장 중요한 비였으며, 늦은 비가 내리는 시기에는 홍수가 잦았다. 그럼에도 6개월의 건기 동안 과실수의 수분 공급을 위해 매우 중요했다.
    
    
    
1. 요단강 도하를 예고하다(1~6절)
요단강 도하 명령을 받은 여호수아와 백성은(1장) 싯딤에 진을 치고 있을때 두 정탐꾼을 파송했다(2장). 정탐꾼의 보고 이후 싯딤에서 요단강 강변으로 이동한다(3장). 요단강 도하 행동 지침은 여호수아에 의해 관리들에게 하달되고(1장), 이어서 관리들을 통해 백성들에게 전달된다(1절). 우선 제사장들이 언약궤(법궤)를 메고 앞장서야 한다(3절). 여기서 제사장이 법궤를 운반하라는 명령은 평상시에는 레위의 고핫 가문이 맡은 일이었지만, 특별한 이 상황에서는 제사장들이 직접 법궤를 멨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법궤와 뒤따르는 백성 사이의 간격은 이천 규빗(약 900m)이다. 이 간격은 정확하게 맞추어야 하는 거리보다는 백성들이 법궤에 너무 근접하여 혹시라도 접촉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 간격에서 유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후대 유대교는 안식일에 여행 가능한 거리를 이천 규빗으로 제한했다.
    
법궤는 오늘날 내비게이션과 같은 역할을 한다. 출애굽기와 민수기, 신명기는 공통적으로 구름(기둥)이 법궤 위에 현현하여 그들의 갈 길을 지시해 주었다(신 1:33)고 밝힌다. 신명기의 전통을 잇는 여호수아서는 선두에 선 법궤의 행진에서 이를 암시한다. 구름 기둥은 광야에서 생소한 환경 속에서 길에 익숙하지 않아 갈 바를 모르던 이스라엘 백성을 친히 인도했다.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이동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전에 지나가 보지 못한 길을 지나가야 한다(4절). 이때 법궤가 이스라엘 백성이 가야 할 방향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생소한 길을 가는 백성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믿음과 절대 순종뿐이다.
    
또 요단강 도하를 앞둔 백성에게 요구된 것은 “성결함”이었다. 문자적으로는 “자신을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는 뜻이다. 특이한 것은 성결하게 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혀 제시되지 않는다. 하지만 출애굽기 19장에서 옷을 깨끗이 빨고(출 19:10, 14_옷을 빨 때 목욕도 전제되는 경우가 많다). 남녀 간의 잠자리를 갖지 않으며(출 19:15)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선(법궤와의 간격)을 넘지 않는 것이다(출 19:12~13, 21, 23~24).
    
    
    
2. 요단강 도하를 명령하다(7~8절)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 행진하여 요단강을 걸을 것이다. 이때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개인적인 말씀을 통해 용기를 북돋는다.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그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여러 이적과 기사를 통해 보여 주셨다.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과 홍해가 갈라진 기적, 그리고 광야에서의 숱한 이적과 기사는 모세의 손과 지팡이를 통해 발현되었다. 이제 요단강의 기적을 통해 여호와께서 분명하게 여호수아와 함께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실 것이다. 물이 갈라지는 이 기적은 모세가 지팡이를 들고 홍해를 가른 사건의 재현이었다.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물을 가른 것처럼 이제 여호수아가 동일한 능력으로 물을 가를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 하신 것처럼 여호수아와 함께 하신 것을 모든 백성이 알게 될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담대한 요단강 도하를 지시하시고,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메고 요단강에 들어서라고 명령한다(8절).
    
    
    
3. 백성을 독려하는 여호수아(9~13절)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린 뒤 이어서 이스라엘 백성을 독려한다. 무엇보다 그들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제 요단강 도하의 기적이 일어날 것인데, “이것으로써” 백성들은 가나안 모든 족속을 하나님께서 쫓아내신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서 신명기에서 지목한 가나안의 일곱 족속이 다시 등장한다(신 7:1; 20:17). 대체로 ‘가나안 일곱 족속’으로 분류하지만 실제로 구약은 때로 그보다 적은 대여섯 족속을, 때로는 훨씬 많은 족속들(구약에 등장하는 가나안 족속은 열다섯 종족이 넘는다)의 이름을 나열한다. 그러므로 가나안 일곱 족속은 “7”이라는 완전수에 맞춘 대표 종족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여호수아는 각 지파에서 한 명씩 열두 명을 선발하라고 명령한다. 요단강 한복판에 열두 개의 돌을 세우기 위함이다(4:1~9). 여호수아는 미리 백성에게 예고한다. 백성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보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강에 닿는 순간 강물이 멈추고 흐름이 중단되어 한 곳에 물이 쌓이게 될 것이다.
    
    
    
4. 요단강이 멈춘 기적(14~17절)
여호수아의 명령과 함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과 온 백성이 행진을 시작했다. 계절적으로 이 시기는 성경의 절기로는 음력 1월 초, 현대의 태양력은 3~4월에 해당한다. 고대에는 따뜻한 우기 막바지에 요단강이 급격하게 범람하고 헐몬산 일대의 고산 지대에서 눈이 녹으면서 큰 홍수가 발생했다(15절). 이렇게 범람하는 요단강을 멈춘 기적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발생한 것인지에 대해 4:15~24에서 다룬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에 닿자 거대한 강줄기의 급류가 갑자기 멈춘다. 강물이 쌓이면서 사르단 근처 아담 성읍의 변두리까지 덮었다. 아담 성읍과 사르단 성읍 사이의 요단강 지류인 얍복강을 채우면서 쌓인 것으로 보인다. 백성들은 물이 끊긴 요단강을 건넜다. 놀랍게도 강바닥은 마른 땅처럼 변했다(17절). 이것 역시 홍해가 바닥까지 마르면서 갈라졌던 기적의 재현이다. 언약궤를 메고 앞서가던 제사장들은 마른 강바닥에 멈춰 섰다. 그들은 모든 백성이 계속 행진하여 요단을 건널 때까지 강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이때만큼은 법궤가 백성들 선두에 서지 않고 오히려 뒤편에 있었는데, 결국 법궤는 백성을 인도하면서도 때로 특별한 경우에는 백성의 뒤편에서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나는?
-이제 싯딤에 있는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진입하기 위해 요단강을 건너야 한다. 그것은 홍해를 건넜던 사건의 재현이다. 홍해에서처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을 성결하게 하고, 언약궤를 멘 제사장의 뒤를 따르는 것이다. 성결과 순종, 이것이 가나안 땅에 진입하는 비결이다. 더 나아가 그 땅을 차지하는 비결이다.
    
-물이 흐르는 요단강에 발을 내디뎌야 한다. 지도자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앞서가야 한다. 모든 믿음은 모험이며, 특히 지도자의 믿음은 모범을 보이는 믿음이다. 언약궤가 단지 장식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의 표시임을 믿어야 건널 수 있다. 요단강을 건너는 믿음으로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다.
    
-말씀대로 순종하여 요단강에 발을 담갔을 때, 홍해에서 일어난 일이 요단강에서도 일어난다. 강이 갈라져 ‘마른 땅’이 생기고, 그 위로 모든 백성이 무사히 요단강을 건넌다. 혼돈의 물이 물러가고 마른 땅이 생기듯이, 가나안의 혼돈 세력도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는 이스라엘 앞에서 물러가게 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 나라의 완성을 향하여 걸어갈 것이다.
    
    
*제2의 홍해, 요단강….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홍해를 건너는 방식과 흡사하다. 가나안 정복이 하나님의 역사로 성취될 것을 이스라엘은 요단강 도하 사건을 통해서 경험하게 될 것이다. 홍해를 건너는 일이 기적이었듯이, 요단강을 건너는 일도 기적으로만 가능하다.
    
*요단강을 건너는 행렬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앞서간다. 하나님이 앞서가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승리 요인이며,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면 요단강도 서고 가나안 민족들도 쫓겨날 것이다.
    
*요단강을 건너기 위한 작전은 건널 수 있는 장소를 찾거나, 장비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갈 때 그 뒤를 따르는 것이었다. 언약궤가 그들 중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실제로 그들과 동행하심을 보여 주는 것이고 언약궤가 앞장서서 간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신다는 뜻이다. 언약궤와 백성 사이를 이천 규빗 떨어뜨린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궤가 가는 길을 보고 따르며, 동시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범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나는 앞서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면 잘 뒤따르고 있는가? 혹시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는가?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이스라엘에게 필요한 것은 “성결과 순종”이다. 홍해 앞에서 불평했던 모습을 답습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을 성결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실 기이한 일을 기대하며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다. 순종하여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요단강물이 멈추지 않을 것이다. 성결과 순종이 역사를 만들어낼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동참하려면 무엇보다 성결해야 한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가장 중요한 준비는 전투 준비나 정착을 위한 점검이 아니다. 오직 자신을 성결케 하는 일이다.
    
*우리는 문제해결의 전략과 방법을 찾는 일에 몰두하지만 사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거룩함을 회복하는 것이다. 아무리 크고 비싼 그릇이어도 깨끗하지 못하면 쓰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딤후 2:21).
    
    
    
*주님, 진정 중요한 준비가 성결(거룩함)이고, 내 마음대로가 아닌 “그 뒤를 따르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거룩함으로 주님 뒤만 따르겠습니다.
*주님, 하나님이 함께 하여주시는 진정한 증거를 여호수아와 출애굽 2세대가 맛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늘 믿음의 도전을 주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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