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들어서 아프더라도 들어야 살아난다 [단 8:15-27]
 – 2022년 11월 18일
– 2022년 11월 18일 –
다니엘이 천사 가브리엘으로부터 숫양과 숫염소 환상을 듣고 여러 날 실신 상태에 빠졌다. 너무나 절망적인 해설에 큰 고통에 빠진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었지만, 혼수상태에 빠지고(새번역_18절), 기운 빠져 여러 날 동안 아팠고 일어나 일을 하는 중에도 환상 때문에 당황하여 그 뜻도 깨닫지 못했다(새번역_27절).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으로 받은 다니엘의 상태가 이러했다. 
 
구약성경의 다른 선지자들도 매한가지였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시고, 여러 이상들을 본 반응은 다니엘과 대동소이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아 갈 수록 감당해야 할 무게는 상상을 초월한다. 더 많이, 더 깊이 아는 자의 숙명은 “고통”이다. 하지만 그 고통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들려진 당시에는 고통스럽고 실망 스러운 말씀이 될 수 있지만, 말씀하신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성취의 시간에서는 오히려 소망의 근거가 되게 한다. 
 
나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의 비밀이 깨달아지고 이에 따른 고통이 따른다 해도 나를 통해 말씀의 뜻을 듣는 성도들에 힘과 용기, 굳센 믿음의 의지를 세우는 말씀의 전달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주신 말씀 때문에 함께 아파하고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완성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믿음의 걸음을 굳게 걸어가는 은혜임을 믿는다.   
 
 
 
1.들려주심이 아니면…(15-17절)
다니엘은 환상의 뜻을 알고자 애썼다. “나 다니엘이 이 환상을 보고 그 뜻을 알고자 할 때에 사람 모양 같은 것이 내 앞에 섰고(15절)” “알고자(바카쉬)”라고 번역된 단어는 “찾다, 요구하다, 원하다, 묻다”라는 뜻이다. 즉 다니엘은 환상이 어떤 의미인지 하나님께 간절하게 묻고 구하였다는 의미다. 이와같이 “뜻”을 구하는 다니엘에게 하나님께서는 그가 경험한 적이 없는 두렵고 거룩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때에 나는 울라이 강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이렇게 부르며 말하는 것이었다. “가브리엘아, 저 사람이 환시를 깨닫게 해 주어라.”(새번역_16절) 하나님의 목소리셨다. 그 목소리가 울리고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다가와 이 환상을 설명해 주었다. “사람의 아들아, 깨달아라. 환시는 종말의 때에 관한 것이다.”(새번역_17절하) 
 
*다니엘이 세상의 이치와 질서에 대한 환상을 해석하는 것은 그것이 느부갓네살 왕의 꿈과 환상이었도, 자기 힘으로 된 것이 아님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하나님의 “들려주심”의 은혜와 계시가 아니면 도무지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내가 인간의 지식과 노력으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깨닫게 해주시고 보여 주시는 “들려주심”의 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이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까? 
 
*”들려주심”의 은혜와 계시의 깨달음이 마르지 않고 들려주시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아침이다. 
 
 
 
2.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왕(23절)
다니엘이 본 환상의 초점은 두 뿔을 가진 숫양을 제압한 “털이 많은 숫염소”이다. 이 숫염소는 두 눈 사이에 큰 뿔이 있었고 이 뿔이 꺾인 후 네 뿔이 났다. 그런데 이 네 뿔의 권세는 큰 뿔보다 약했다. 
 
세계사의 흐름으로 보면 두 눈 사이의 큰 뿔은 가브리엘이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페르시아 제국을 무너뜨린 알렉산드로스(알렉산더) 대왕이다. 그는 주전 333년 이소스 전투를 통해 페르시아의 다리우스를 굴복 시키고 여세를 몰아 아나톨리아, 시리아와 유다, 이집트까지 정복하고 인도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알렉사드로스는 그리스 문명에 대한 애착이 강하여 정복한 지역마다 그리스 문명을 입히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독일 역사가 요한 구스타프 드로이젠에 의해 그리스 문명과 오리엔트 문명의 조우가 일어난 이 문명을 “헬레니즘”이라고 명명하였다. 
 
그런데 알렉산드로스가 갑자기 죽게 되고 헬라제국은 네 나라로 나뉘게 되었는데, 알렉산드로스가 임종 당시 자신의 후계자로 가장 강한 자를 지목한다는 원친에 따라 휘하의 장군들 사이에 40여년간 내전 상태가 지속되다가 네 세력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안키고노스(마케도니아, 그리스 중부), 프톨레마이오스(이집트), 셀레우코스(시리아), 아탈로스(아나톨리아)이다. 다니엘이 본 네 뿔은 이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네 나라 가운데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23절)”한 왕이 일어나서 “그는 힘이 점점 세어질 터인데 제힘으로 그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끔찍스러운 파괴를 자행하면서도 하는 일마다 성공을 거두리라. 또 힘센 이들과 거룩한 백성을 파멸시키리라.(새번역_24절)” 고 하였고 “이미 너에게 설명한 대로 2,300일이 지나냐 성전이 회복될 것이라는 그 환상은 분명히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오랜 후의일이므로 너는 이 비밀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혼자 간직하여라.”(현대인의 성경_26절) 이라고 말해 주었다. 
 
이 환상이 말하는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왕”이 바로 셀레우코스 왕조의 8대 왕 안티오쿠스 4세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보면 알렉산드로스에 비해 힘도 약하고 통치 기간도 12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종말에 일어날 일의 주동자로 지목이 되었다. 
 
“그들의 통치 끝에 죄악이 가득 차면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란한 임금이 일어나리라.”(새번역_23절)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란한 임금….” 그저 한 숨만 나온다.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격언이 틀리지 않다. 이런 역사를 반복하게 한 인간의 어리석음이 그저 개탄스러울 뿐이다. 답답하다. 
 
*하지만 “얼굴이 뻔뻔하고 술수에 능한 임금”만 되풀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은 이런 상황에서ㅗ도 계획하신대로 이 세상을 통치해 가신다. 그들의 날은 2,300일에 그칠 것이다. 아…. 문자적으로 절대화 하면 안되지만, 길어도 참 길다…..
 
 
*그럼에도 소망을 갖는다. 그 날이 차면 반드시 “뻔뻔하고 술수에 능한 임금”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산간 위에 계신 하나님의 통치를 믿기에 오늘날 안티오쿠스와 같은 지도자들이 일어나서 세상을 혼란스럽게 하여도 고통스럽지만 좌절할 일이 아니다. 그들의 날은 짭ㄹ다! 한계가 정해져 있다. 하나님께서 악이 준동하고 마치 모든 것을 장악한 것처럼 활개치는 듯 보여도,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없는 심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래서 소망을 갖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3.실신하고 여러 날 동안 아팠던 다니엘(18, 27절)
다니엘은 가브리엘 천사가 들려준 해석을 듣고 실신하고 말았다(18절). “들려주심”으로 들었지만,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고통이 온 몸과 정신을 압도했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해석을 들려주는 천사 앞에서 쓰러져 실신하고 만다. 
 
또 들은 후 여러 날을 앓았다. “나 다니엘은 기운이 빠져서 여러 날 동안 아팠다. 그런 다음에 일어나 임금의 일을 거들었지만, 그 환상 때문에 당황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 뜻도 깨닫지 못하였다.(새번역_27절)” 들려주신 말씀의 무게가 온 몸과 영혼을 압도했다는 것이다. 말씀이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당황하다(샤멤)”는 “깜짝 놀라다, 오싹하게 하다, 황혜하다”라는 의미이다.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다니엘의 온 몸과 마음을 “오싹하게” 만들 정도로 두렵고 두려운 말씀이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말씀들이 그저 평안과 안전으로만 외쳐지고 있다. 그런데 진정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말씀은 언젠가 한 두번 반드시 직면해야 할 “두렵고 떨리는 말씀”이다. 이 말씀 때문에 여러 날 근심하고 몸이 아플 지언정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이런 경험이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가벼이 여겨 자신의 입맛대로 남용하는 삯꾼 목사자 된다. 
 
*전모씨와 같은 이들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단언하고 호언하면서 사회를 분열시키고 홀란케하는 것을 서슴치 않는다. 결국 그 목적이 자신들의 탐욕에 있음이 드러났음에도 이미 호도된 이들은 그들이 남발하는 천박한 말장난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이 아니라 인간의 현란한 말솜씨에 자신의 욕망이 결합된 결과이다. 이제 곧 끝이 날 그들의 때,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결코 핑계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짐으로 마음이 아프고 영혼이 근심되는 것은 영혼이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내가 듣고 싶은 것과 소유하고 싶은 것에만 천착하여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듣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의 유혹에 넘어가 멸망케 하는 인간의 말에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이기에 소망이 있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말씀은 때로 “아프다”… 그것도 여러 날 아프다…. 하지만 이렇게 아프고 나면 더욱 몸과 마음이 건강해 진다. 단단해 진다. 하나님께서 결국 말씀 하신대로 이루시는 것이 증거되어 더더욱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게 된다. “말씀따라” 살아내기 위해 천착한다! 이것이 구원을 얻은 하나님 나라 백성의 삶이 아니겠는가!
 
 
 
 
나는?
-“들려주심”의 무게를 알지만, 그럼에도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기 위해 더욱 더 “듣고 싶다!”
 
-나는 평안과 안전만을 외치는 설교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들려주신 말씀을 괴롭고 힘들어도 전달하는 설교자이어야 겠다고 다시 다짐한다. 여러날 아파도 진리를 진리답게 전하기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수하리라! 그래야 교회가 살고 영혼이 살기에….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임금”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있다. 우리의 지도자들에게서 이런 천박하고 야비하며 국민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것조차 의식하지 못하는 무지한 지도자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근현대사에 이런 지도자로 인해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다했는지 모른다.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주어진 제한되지만 확실한 권리를 잘못 선택하여 이런 지도자를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말씀을 받으면 때로 아파야 한다. 늘 평안과 안전, 기쁨과 즐거움의 말씀 일수만은 없다. 아파야 건강해 진다. 우리 안에 몹쓸 것들이 이 고통을 통해 정리된다. 말씀이 나의 삶을 고통을 통해 정리할 때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 지기에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고통과 아픔을 주는 이들을 비켜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들려 주신대로 “들어서 아프더라도 들어야 산다!”
 
 
 
*주님, 말씀을 들을 때 아프더라도 “들려주시는” 말씀을 사모합니다. 늘 들려 주십시오
*주님, 지금 우리는 뻔뻔하고 속임수에 능한 지도자들로 인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날이 정해져 있다는 것에 소망이 있지만, 또 다시 그런 무리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에게 분별력을 더해 주십시오. 

Leave a Comment

매일성경 묵상

스데반의 설교_모세 이야기 [행 7:17-36]

스데반은 출애굽의 이야기 가운데 중요한 대목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모세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는 모세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져 바로 공주의 아들로 입양된 이야기로 시작하고, 청년 시절 애굽

자세히 보기 »
매일성경 묵상

2차 투옥과 하나님의 적극 개입 [행 5:12-26]

산헤드린 공회의 엄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신자들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고 하나님은 사도들의 사역을 통해 지속적으로 표적과 기사를 일으키신다. 이에 시기로 가득한 사두개인들은 사도들을 다시

자세히 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