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묵상
말씀이 깨달아 질 때 [단 9:1-19]
 – 2022년 11월 19일
– 2022년 11월 19일 –
다니엘이 바벨론이 멸망하고 메대 바사의 다리오 왕 원년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년만에 그치리라”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이 깨달음이 임하자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 쓰며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 하려고 결심하였다(1-3절). 다니엘은 하나님께 기도(테필라_주 하나님을 주권자와 능력자와 미쁘신 분이심을 고백함)와 간구(테히나_필요를 아룀)를 드렸다. “주를 위하여(17절)”, “주 자신을 위하여(19절)” 간구를 들어주시기를 구한다. 즉, 약속하시는 하나님, 그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도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깨달은 다니엘은 그저 감탄만 하지 않는다. 그 약속의 의미를 깨달았기에 약속하신 하나님께 속히 이루어 달라고 구한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구하는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런데 다니엘의 기도는 철저히 회개의 기도였다.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신 포로생활 70년의 의미를 깨닫고 이제 그 년수가 다 되어감을 알아챘는데, 그 순간 감사와 감격과 환희의 아우성이 아니라 철저하게 하나님의 긍휼을 의지하며 간구한다. “들으소서!”, “용서하소서!”, “귀를 기울이시고 행하소서!”, “지체하지 마옵소서!”(19절)라고 기도한 근거는 “그의 통치 제일년에 나 다니엘은 성경을 펴 놓고, 예레미야 예언자에게 내린 주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이 폐허가 된 채 채워야 하는 햇수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일흔 해였다.”(새번역_2절) 라고 깨달은 하나님의 약속이었다. 
 
 
 
1.다니엘이 깨달은 하나님(4,6,10,11,14절)
다니엘은 하나님에 대하여 “아, 주님! 위대하시고 경외로우신 하나님,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계명을 지키는 이들에게 계약과 자애를 지키시는 분!”(새번역_4절) 이라고 고백한다. 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 죄를책망하고 주께로 돌이키라고 말씀하시는 분”(6, 10절)이시라고 고백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듣지 않음(6절),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10, 11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신 말씀을 이루시는 하나님(12절)을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셨으며, 그 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셨으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고(14절) 애통해 한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간절하게 자신의 뜻을 알리시기를 멈추지 않으셨음을 고백했다. 
 
*하나님을 깨달았을 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조상들의 죄에 일치감이 들었던 것이다. 조상들을 향한 불평이나 원망이 아니라 내 자신도 그럴 수 있었을 것이며, 지금이라도 그 지은 죄에 대한 돌이킴을 주저하지 않은 것이다. 
 
 
 
2.다니엘이 깨달은 “우리”_조상들과 그 후손들의 관계(7-8절)
다니엘은 이 기도에서 죄를 회개할 때 자신의 조상들과 현재 이곳에 살아있는 후손들을 모두 함께 “우리(저희)”라는 말로 통칭하여 고백한다. 7-8절에서 다니엘은 “그들(조상)이” 주께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8절은 곧바로 우리에게… 우리의 왕들과 우리의 고관과 조상들에게 돌아온 것은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음이니이다”(8절)라고 연결되었다. 다니엘은 조상들의 죄가 지금 현재 우리의 죄와 다를 바 없다고 고백한다. 
 
다니엘은 본문에서만 “우리(새번역은 저희)”라는 단어를 33회 사용하였다. 그는 조상들과 현재의 자신들을 분리하지 않고 철저하게 하나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옛적에 지은 조상들의 죄를 지금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자신에게도) 책임을 돌리는 공동체 의식이 돋보인다. 하난미 나라 백성은 옛적이나 지금이나 미래 모든 시대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의 한 백성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나는?
-영원할것 같은 바벨론의 멸망을 목격했다. 그것은 이미 느부갓네살의 꿈을 통해, 자신에게 보여진 환상을 통해 알고 있었다. 새롭게 시작한 메대 바사 제국의 총리로서 직임을 감당하고 있을 때, 예레미야가 예언한 회복의 때가 다 되었음을 불현듯 깨닫는다. 말씀을 읽을 때 깨닫게 된 것이고 깨닫게 된 그 말씀이 기도로 이끌었다. 무엇보다 새롭게 건설된 메대 바사 제국이 이 세상의 주권자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주관하신다는 깨달음이 예레미야의 예언을 생각나게 하였고, 포로생활의 기한이 다 되었음을 절실히 깨달은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세계경영을 다시 확인한 깨달음이었다. 단지 유대민족의 귀환만 깨달아 진 것이 아니라, 바벨론을 무너뜨린 메대 바사 제국의 발흥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행하신 통치 주권을 깨달으면서, 유대 민족에게 약속하신 예레미야의 약속도 깨달아 진 것이다. 
 
-신비롭게도 한 가지 말씀이 깨달아지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이로 인해 하나님의 긴밀한 섭리가 깨달아 질 때가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임에 틀림 없다. 
 
-늘 하는 말씀 묵상의 시간속에서 말씀이 깨달아 질 때, 살아계신 하나님의 주권이 또 다른 약속의 말씀을 들추고, 이와같이 이루실 것을 함께 깨닫게 될 때 어떤 순간은 하나님 앞에 그저 깊은 탄식과 감사와 간구로 이어지는 경험이 있기 마련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말씀을 깨우쳐 주시고, 동시에 기도의 마음을 불러 일으켜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인정하며 나아가게 하신다. 이렇게 은혜를 주실 때 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며 순종하며 나아갈까? 아니면 여전히 인간적인 생각과 계산으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인간적인 지식과 지혜의 영역으로만 묶고 있을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말씀의 힘은 더 깊은 지식의 차원을 열어 주기보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의 통치하는 주권을 더 표현하도록 이끌어 주신다. 지식보다 사랑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주권을 깨달은 한 사람이 공동체가 함께 이 주권을 깨닫도록 돕는 사명을 감당한다. 
 
 
*묵상하며 기독교 신앙의 중요한 본질 두 가지를 다시 깨닫는다. 바로 말씀과 회개이다. 다니엘은 예레미야의 말씀을 읽다가 깨달았다. 그는 왕의 꿈을 해석하고 자신도 환상을 보는 가운데 이를 해석하고 그 뜻을 깨닫기 위해 부단히 기도했었다. 그런데 기도만 한 것이 아니었다. 다니엘은 늘 “말씀”을 읽었다. 말씀을 읽으며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았다. 
 
*그리고 그렇게 깨달은 말씀을 붙잡고 절규했다. 말씀을 읽다가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고 그 깨우친 말씀을 부여잡고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든 과정이 바로 “묵상”이다. 다니엘은 말씀을 묵상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묵상은 최근에야 교회안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믿음의 조상들은 묵상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통찰했다. 신비적인 꿈이나, 환상, 은사등에만 천착한 것이 아니다. 이런 것에만 매달리면 신앙은 왜곡될 수 밖에 없다.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정체성은 종교적인 형식만 추구하는 껍데기만 남는다. 
 
*또 본문의 다니엘은 말씀을 깨닫는 자기 만족에만 취하지 않았다. 자신이 이런 말씀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집회를 하지도 않았다. 그가 말씀을 깨달은 후에 곧바로 행동한 것은 바로 “회개”였다. 그가 환상을 보았을 때도 너무도 두려운 나머지 하나님께 엎드렸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면 그 말씀 앞에 한 없이 부족하고 나약한, 혹은 교만하기만 한 자신을 보게 된다. 그래서 말씀을 깨달은 이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엎드릴 수 밖에 없다. 
 
*말씀을 깨달았으면 가장 먼저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며 애통해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남 탓”하지 않았다. 포로생활의 원인이 조상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린 교만과 불신이었음에도, 조상들의 탓만으로 돌리지 않는다. 범죄한 자기 백성들의 탓으로만이 아니라 “우리가 범죄하였다”고 고백하며 울부짖었다. 
 
*하나님 나라 공동체의 범죄는 모두의 책임이다. 반드시 “내가 포함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의 자리에 서야 한다. 나는 그 시간 그 자리에 없었으니 상고나없다는 식이 아니었다. 조상들의 죄가 나의 죄이고 공동체의 죄가 곧 나의 죄임을 인정했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의 내용이었다. 70년의 기한이 다 찼음을 깨달았지만, 당연히 그 구너리를 주장하기 위한 혀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70년의 유배를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그 죄에 대하여 통렬하게 회개한 것이다. 포로로 끌려온 백성들에서 회개의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다는 좌절만 가득했었다. 그래서 자신들이 생각하는 대로 멋대로 유배 직후 곧 자시 회복된다는 거짓 확신만 가득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70년의 기한이 차왔을 때에야 예레미야의 말씀을 일고 있었던 다니엘이 참 회개에 이른 것이다. 다니엘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약속이 이루어질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을 때, 여지껏 회개하지 않았던 조상들의 교만함이 더 두려워서 회개했던 것이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일상에서 전혀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지 못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회복만을 기대하는 이들에게 다니엘의 회개는 큰 울림이 된다. 
 
 
*꿈과 환상을 보고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닫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라 회개거리가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열어 주심으로 깨닫게 하신 말씀은 철저하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도록 이끈다. 자기 자랑으로 이끌지 않는다. 말씀을 깨달으면 무릎이 꿇려질 수 밖에 없다. 
 
*참된 하나님 나라 백성은 말씀을 읽는다. 읽다가 깨달아 질 때 그 말씀을 부여잡고 절실하게 회개한다. 자신과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죄악을 부여잡고 마음을 찢는 회개의 자리로 나아간다. 회개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 백성이다. 
 
*말씀이 깨달아 지면 그 말씀 앞에 겸손히 나를 돌아보고 공동체를 돌아본다. 
 
 
 
 
*주님, 약속하신 말씀대로 이루시는 하나님을 붙잡습니다. 그래서 말씀이 깨달아 질 때마다 나의 연약함을 통분히 여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의 부족함을 자비롭게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겸손하게 살겠습니다. 
*주님, 말씀을 읽다가 기도하고 살아내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 말씀묵상의 삶이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내도록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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